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한국의 근대사상/한국의 근대사상〔槪說〕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의 기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는 일정한 견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 서구의 근대화 시기를 우리의 근대화 시기로 잡는다면 조선 왕조가 건국된 14세기 말을 기점으로 잡을 수도 있고, 또는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겪고나서 민족적 자각이 발생하여 실학(實學)과 같은 혁신적 기운이 일어난 17세기를 기점으로 잡을 수도 있다. 또는 근대화란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내용으로 이해하여, 쇄국정책이 무너져서 개국이 되고 동학과 같은 민중의 봉기가 일어나고, 갑신정변·갑오경장과 같은 근대국가에로의 전환을 모색한 것을 중요한 계기로 삼는다면, 근대화의 기점은 1876년의 병자수호조약에서 찾아서 그 근대화의 노력이 여의치 않아 결국은 1910년의 국치(國恥)를 당하고, 1919년의 현대적 형태의 독립운동을 일으킨 전해인 1918년까지를 우리의 근대사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는 맨 나중의 것을 기준으로 하겠다. 한국의 근대사상은 한 마디로 외래사상(外來思想)과 전통사상(傳統思想)이 착종(錯綜)하는 속에서 발현된 민중의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에 자아의식이 앙양되어 실학이 대두한 이래 국가를 바로 잡고 민중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는 기독교나 민주주의와 같은 서구(西歐)의 사상을 배워야 한다는 풍조와 한국고유의 전통사상을 계발해야겠다는 풍조가 엇갈려 일어났다. 서구사상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배우게 하였고 전통사상은 우리에게 민족주의를 각성시켰다. 1876년의 병자수호조약은 우리나라를 개국시킨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은둔국(隱遁國) 조선이 세계 무대로 진출하게 된 첫 출발을 이룬 기점이며 봉건제 사회를 급속도로 해체시키는 계기를 이루었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에는 구미(歐美)의 신문화가 수입됨에 따라 개화사상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개혁이 시도되었고, 이에 따라 개국을 반대하고 쇄국을 주장하던 수구파(守舊派)의 반발이 일어나서 신·구(新舊) 사상의 갈등을 빚어냈다. 새로운 사상이라는 것은 서구의 근대적 국가이념을 본받아 국가체제를 서구 민주주의적 형태로 개조하여 국력을 기르고 국가적 독립을 달성하자는 것이요 이에 대해서 보수주의자들은 급진적인 개혁을 반대하고 구태의연한 사대사상(事大思想)에 사로잡히고 있었는데 그러한 신·구의 대립은 국가의 운영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서구식의 개화사상이 뜻을 펴지 못하고 좌절당하자 이번에는 전통적 사상에 기반을 둔 개혁사상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이 동학사상이다. 서구식의 개화사상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이념에,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동학사상은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대신에 한국의 고유 신앙을 대치시키면서 민주주의적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근대사상의 두 가지 조류를 이루고 있는 민주주의 사상과 민족주의 사상은 국내 정치가들의 세력다툼과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발전을 보지 못하고,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적 제도도 실현시키지 못하였으며, 민족주의적 단결도 달성하지 못하고, 드디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주권을 빼앗기고 나서 비로소 민주적 자각도 강해지고 민족적 단결도 튼튼해져서 3·1운동과 같은 현대적 형태를 갖춘 민족독립운동과 민주적 혁신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의 근대는 사상적으로는 대단히 활발스러운 때였으나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불행한 시기였다. 오랜 봉건적 미몽(迷夢)을 늦게야 깨쳐서 미처 근대적 사상을 제대로 형성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현대로 돌입하고 말았다. 그 짧은 근대의 시기에서 마련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사상은 오히려 현대에 이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까지도 현대라는 시기를 갖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우리는 근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현대로 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우리는 아직도 근대나 현대라는 시대를 가지지 못하고 봉건적이고 중세기적인 시대 속에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한국의 근대의 시기를 말할 때에 어느 때를 근대의 기점(起點)으로 삼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듯이 한국의 근대사상을 말할 때에도 특히 현대의 사상과 무엇을 가지고 구별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李 恒 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