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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한국의 현대사상/한국의 현대 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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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 철학사상〔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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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국의 현대 철학사상의 성격을 규명해야 비로소 언제부터 현대 철학사상이 시작되었고,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현대에 이르러 형성된 독특한 한국적 철학사상을 한국의 현대 철학사상이라고 규정한다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공정할 것이다. 주체성이 제고되는 이 시점에도 사실상 우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사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철학사상을 갖는다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긴급한 과제이지만 아직은 그 준비 단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현대 철학사상은 외국 사상의 수용(受容)이라는 면에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문호 개방을 강요당한 한말(韓末)의 선각자들에 의해 서구의 문물이, 그것도 대부분 일본이라는 중계지를 거쳐서 수입되기 시작했을 때, 서구의 정신문화의 수입도 불가피한 것이 되었고, 이때부터 서양의 철학사상도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상적 풍토가 다른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구체적인 형태를 갖고 서양 철학사상이 상륙하기까지는 그 나름으로 상당한 준비 기간을 거쳐야 했던 것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일본이나 영·미, 또는 서구에 유학하여 서양 철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학계에서 활약한 한국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본다면 한국에서 본격적인 서양 철학의 수용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철학이 불교와 유교라는 긴 전통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구의 철학 사상과 조우(遭遇)하여 서양의 근대를 호흡하기 시작한 것은 앞에서 말한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1920년대 말 내지는 1930년대 초라고 하겠다. 주로 일본이지만 외국에서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들이 국내에 돌아와 활동을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철학자들의 관심은 당시의 사조(주로 일본의)에 따라 독일 철학, 특히 칸트와 헤겔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무렵에 나온 철학자로서 그 후에 사상적 변신(變身)을 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칸트와 헤겔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들에 의해 집대성된 연구서가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근년에 이르러 당시(해방전까지를 말한다)의 철학자로서 최재희(崔載喜)가 칸트와 헤겔에 대한 연구서를 내고 박종홍(朴鍾鴻)이 <인식논리학>에서 신(新) 칸트학파까지를 다루고 <변증법 논리>에서 (애석하게도 그의 죽음으로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헤겔의 변증법을 다루기는 했지만, 이것은 서양 철학 수용의 초기에 있어서의 업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현대 문학은 암중모색의 시기, 또는 외국 사상을 소화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곧 이어 불어닥친 일제(日帝)의 정신적 압박정책도 커다란 요인이었다. 1945년 해방은 한국 철학사상에도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철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양적으로 증대하고 이 수요에 따라 철학 교수가 증가한 물량적 면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을 중개지로 하지 않는 서양 철학사상의 직수입, 그 관심의 다양화 등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미군 진주라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영·미 철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인 프래그머티즘(實用主義)이 논의되었고, 특히 한때는 한국의 교육철학의 기근이 되기도 했다. 종전부터 칸트·헤겔을 연구하던 철학자들 중에서는 종전의 연구를 더욱 깊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재빨리 서구의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변신(變身)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본격적인 철학 연구서는 출현하지 않았다. 대학 강의에 필요한 입문서 내지는 해설서가 나왔을 뿐이었다. 비극적인 6·25를 겪으면서 한국의 현대 철학은 또한번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스스로 전쟁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었던 한국의 현대 철학은 전쟁에 의한 절망과 무력감을 실존주의(實存主義)에 의지하여 발산했다. 1950년대 말기에 활발히 수입된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는 이 나라를 휩쓴 열병이라는 감조차 있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주로 문학자들에 의한 실존주의가 소개되었으며 전문적인 철학자가 실존철학을 연구하여 그 성과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조가경(曹街京)의 <실존철학>은 이 무렵에 거둔 수확이다. 한편으로는 영·미의 주류를 이룬 과학철학(科學哲學) 내지는 분석철학(分析哲學)에 관한 관심도 이 무렵에 깊어졌고 한때는 이러한 경향이 한국 현대철학의 주류가 된 듯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 방면에서 집대성된 업적은 없다. 또 한 가지 특기할 것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철학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를 선도한 것은 박종홍이었으며, 그의 영향에서 주로 소장 철학자들에 의해 한국 사상의 체계화 내지는 발굴 작업이 차츰 활기를 띠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특기할 것은 이러한 연구를 통해 한국 사상 연구의 방법론이 쇄신되고 있다는 점이다. 종래의 훈고학적 연구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인 방법론을 도입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한국 사상 연구의 업적이라고 하겠다. 한국철학회가 펴낸 <한국철학사>는 이러한 연구에서 거둔 성과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동학(東學), 퇴계(退溪), 율곡(栗谷)에 집중되던 연구도 이제는 그 범위가 확산되는반가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 철학 연구도 정지 작업 단계(整地作業段階)라고 하겠다.

지금 한국 현대 철학의 과제는 구호에 그치는 주체성의 획득이 아닌 진정한 주체성의 획득에 있다. 우리 눈으로 우리 현실을 인식하는 바탕은 역시 철학에 의해 다져진다고 볼 때, 외국 사상의 희비(喜悲)에 따라 같이 울고 같이 웃는 유행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 대한 통찰에서 나오는 절박하고 절실한 우리의 철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박종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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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鍾鴻 (1904∼1976)

서양철학가. 서양 철학을 전공했으나 한국 사상에 대한 연구도 깊다. 경성 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일본 철학계의 영향을 받아 칸트와 헤겔 철학을 연구했다. 한편 일찍부터 한국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한국 미술사를 잡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해방 후부터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하여 <일반논리학> <인식논리학> <철학적 모색> <한국철학사>(미완) <변증법 논리>(미완)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1960년 <부정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독일 관념론에서 출발하여 해방 후에는 실존철학, 분석철학, 한국철학 등 광범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의 철학적 입장은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찾으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37년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 서울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서 철학을 강의했고 만년에는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서 정치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김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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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斗憲 (1903∼1981)

윤리학자. 일본 동경제국대학교 문학부 윤리학과 졸업(1929년). 그 후 이화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 서울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에서 윤리학을 강의했다. 그는 한국의 가족제도 연구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실인 <조선 가족제도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1952년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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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雨 (1903∼1974)

일본 경도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졸업(1931). 칸트와 헤겔을 전공했으나 해방후에는 실존철학 특히 야스퍼스를 연구했으며 이론보다는 실천을 강조한 점에 그의 이상적 특색이 있다. 저서로는 <야스퍼스론> <하늘과 땅 사이에> 등이 있다. 그는 1939년 이후로 숙명여자대학교, 보성여자학교, 고려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으며 고대 총장을 역임했다. 잠시 문교부 장관으로서 교육행정을 책임지기도 했다.

안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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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浩相 (1902∼1999)

명예 철학박사. 독일 예나대학에서 <헤겔의 판단론(判斷論)>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29년). 그는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저서로는 <논리학> <인생과 철학과 교육>

<민주적 민족론> 등이 있다. 그는 헤겔 전공자였으나 해방 후에는 정계에 투신하여 문교부장관 등을 역임했고, '일민주의(一民主義)'라는 이데올로기로 재창하기도 했다. 그 후로 한국 사상에 관심을 돌려 한국 고유 사상의 발견을 강조하고 있으나 관념론적인 그의 방법론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손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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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明鉉 (1914∼1976)

경성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 졸업. 그 후 고려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에서 그리스 철학 연구의 기초를 다졌다. 저서로는 <철학논공> <철학입문> 등이 있고, 역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이 있다.

현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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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相允 (1893∼ ? )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 졸업. 해방전에는 3·1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중앙고등보통학교장 역임. 해방 후에는 경성대학 예과부장, 보성전문학교장을 거쳐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재임중 납북되었다. 1949년에 발표한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는 한국 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1953년, <조선유학사>로 고려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경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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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敬琢 (1906∼1970)

동양철학자. 중국대학 철학과 졸업(1924) 후 와세다 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그후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등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그는 노장철학(老莊哲學)을 연구하였으며, 노장의 연구를 통해 <생성철학(生成哲學)>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입장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한국 철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특히 율곡 연구에 전념했다. 저서로는 <중국철학사상사>, <율곡연구>, <생성철학적재구성> 등이 있고 역서로는 <공자> <맹자> <중용> 등이 있다.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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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殷 (1905∼1977)

중국 북경(北京)대학 철학과 졸업. 1934년부터 보성전문학교, 고려대학 등에서 철학을 강의하며 주로 공맹철학(孔孟哲學)을 전공했다. 한편 그는 한국 사상에 대해서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 그는 <맹자 성선설(孟子性善說)의 연구> <중국철학사> 등을 통해 공맹 철학의 현대적 해석에 힘을 기울였고 한국 사상사를 강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