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문화·민속/한국의 연극/한국의 신극/신극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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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극의 연기〔개설〕[편집]

新劇-演技〔槪說〕

신극이란 부문이 독립되어 있는 것은 일본과 우리나라뿐이며, 이는 개화초기의 모든 문화현상에 공통된 것임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중국에는 경극(京劇), 화극(話劇)이란 희곡과 상연형태의 구별이 있고, 유럽에는 주로 고전극·근대극·현대극이란 드라마의 구별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민대중의 연극형식인 탈춤놀이(가면극)와 꼭두각시놀이(인형극)가 있고, 서구의 일인극(獨演劇:Monodrama)과 그 형태적인 면에서 일치하는 기방굿(또는 양반굿)이 있으며 개화초기 당시 지식인들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온 신파극(이 말도 일본에서 사용되는 말 그대로이다), 서구의 근대연극의 형식을 역시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신극, 또한 신극형식과 우리 고유의 극형식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를 접합시킨 창극이란 것 등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연극이라 하면 이 신극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며, 신극의 연기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에서 형성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20세기 초에 우리의 전통적 연극과 단절된 지점에서 유럽의 근대적인 연기를 번역극을 통하여 도입하게 되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과 감성적인 일체감을 배제하고 시범자(demonstrator)의 입장에서 논다(play)는 연기(우리의 전통극의 경우)와는 달리, 희곡을 자기의 신체로 독해(讀解)하고 그것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하여 창조에로 고양(高揚)시키는 것이 근대극 이후의 배우에게 부과된 임무였다.

연기자[편집]

演技者(actor)

연기자란 행동하는 인간을 말한다. '희곡이란 연기를 위한 소재다'란 말도 있다. 연기자는 연극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배우의 예술은 언어와 육체동작(mime)으로 이루어지며, 그 언어와 육체동작으로써 극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배우란 해석을 하는 예술가(interpretative artist)인 동시에 또한 해석을 위한 매개체(medium)이기도 하다. 이렇듯 배우에게는 두 가지 기능이 동시에 작용된다. 배우는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이다. 배우의 창조는 회화작품과 같은 정지적 창조가 아니라 완전 실체적 창조(creation of a complete entity)를 뜻한다. 생동하고 변하고 뛰어난 완전한 창조를 한다. 배우는 이러한 창조를 표현성 있는 동작과 해석력 있는 음성을 통해서 이룩한다. 그의 표면적 행위는 한 인간의 내적 생활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한 인간의 표면적 행위의 모방이어서는 안 된다.

연기의 기초훈련[편집]

演技-基礎訓鍊

연기자, 무대의 연기자란 것은 공중(公衆)의 면전에서 즉 사람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신체적 행동으로 표현하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고 있는 데서 그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고 무엇이라도 신체적 행동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 연기자의 첫번째 과제이다.

우리는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때 자신의 독특한 버릇이 없어지고 지금 하고 있는 동작에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밖에 사용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긴장은 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단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버릇을 포함하여 여기저기서 불필요한 긴장이 일어나고 중요한 행동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연기자와 같이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게 되면 그것이 배가(倍加)된다. 이 불필요한 긴장으로부터 자기를 해방하는 것이야말로 연기자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육체를 부드럽게 함으로써 신체의 움직임이 자유롭게 되고, 합리적으로 발성(發聲)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심리작용이 자유롭게 됨으로써 상상력과 관계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서로 관계되는 것이고, 한쪽이 자유롭게 됨으로써 다른 한쪽이 해방되고 한쪽이 해방됨으로써 다른 한쪽이 보다 자유롭게 되어 가는 등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연기의 기초훈련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사람 앞에서 혼자가 되는 것 - 연습장 또는 무대에서 교사나 동료들 앞에서 서거나 앉아서 2-3분간씩 앞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의식되지 않게 하는 훈련이다. 이것은 수치심을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앉아있는 동안에 주의를 자신의 내부나 외부에 두고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든가, 평상(平床)의 나무마디라든가 무엇을 차차로 연상하든가 하여, 흡사 자신이 방 안에 혼자 느긋하게 있을 때와 같은 상태를 단절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⑵ 주의의 집중훈련 - 심리학적으로 주의력이라 하는 것은 파고들면 확산된다는 뜻이다. 즉 어떤 흥미와 관심을 갖고부터 하나의 사물에 주의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연기의 경우에는 의지력으로 더욱이 전혀 일상적인 자연스러움과 같이 주의력의 집중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주의의 지속이란 것은 늘 순간적인 교환과 적당한 분배를 필요로 한다. 이 교환과 분배의 연습 또한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⑶ 사물을 사용하지 않고 행동하는 훈련 - 연기자는 감각의 말단과 근육의 말단으로 모든 것을 생각한다고 한다.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묘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그것은 대상없는 행동의 끊임없는 반복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물을 사용하지 않고 행동하는 훈련을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람 앞에서 혼자가 되는 연습 - 무대 바닥에 주저앉아서 거기에 초원이나 잔디밭 등을 자신의 시각·촉각, 그리고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마음의 눈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된다. 최초에는 발끝 또는 손톱끝의 한 그루의 풀이 상상되면 좋다. 그 적은 주의점은 관찰이 반복됨에 따라 조그만 영역을 만들고 조그만 영역은 중간정도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드디어는 큰 영역, 그리고 수주일 뒤에는 초원이 한 사람의 인간을 완전히 둘러싸게 된다는 영역에 이르도록 사람 앞에서 혼자되는 연습을 되풀이해야 된다. ② 사물 없이 있는 것과 같은 실지행동의 연습 - ㉠ 테이블만을 놓고 물체(도구)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그릇에서 물을 컵에 따라 마신다는 등의 연기를 되풀이한다. ㉡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세면기에 받고 얼굴을 씻은 후에 수건으로 닦고 세면기를 들면 치워버린다. ㉢ 성냥을 켠다. ㉣ 걸레질을 한다. ㉤ 편지지와 펜을 사용하지 않고 편지쓰기 등이다.

이것은 팬터마임(pantomime:默劇)은 아니다. 즉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배우가 자기 자신에 대한 임무(자기지각<自己知覺>:자신의 느낌)를 기르는 방법으로서 말하자면 미술가의 데생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자가 일생동안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⑷ 교류(交流) - 연기자가 정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최대의 허구는 상대역이다. 한 극단, 한 그룹의 동료를 어떤 희곡에서는 불구대천의 적으로 또한 거의 호감이 가지도 않는 사람을 연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무대에 등장하고 있는 동안에는 상대역과의 사이에 생생한 관계를 그대로 계속시켜야 한다. 이것이 성립하기 위해 처음에는 예컨대 공원의 벤치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끼리 우연히 합석하게 되고, 따라서 서로 관찰하여 가는 가운데서 연습을 시작하게 되는데 애매한 순간을 먼저 발견하고 맛보는 데서부터 교류란 무엇인가를 체득하여 가는 것이다.

희곡이 구하고 있는 인간의 행동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연기자의 기초훈련은 수없이 많다. 말하기(speech)·낭독·발성·가창·체조·무용 등등이다. 연기자는 무용과 가창(歌唱)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리듬감각을 기르는 데 소용되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의 근저에 있는 것이 육체의 해방이다.

연기연습[편집]

演技練習

연기란 것은 원칙적으로 극히 단순한 신체적 행동으로부터 그 역에 대하여 주어진 시간적·공간적 환경에 작용해 가는 것이다. 그 주어진 환경을 하나하나 추가하고 팽창시킴으로써 역에 접근하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연습의 단계에서는 이것을 행하는 것이다.

연습이란 연기자가 대본을 읽고 파악하여 자신의 창조로 그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연출자가 그것에 대하여 지적(指摘)과 시사(示唆)를 주어서 다시 다음 과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합독[편집]

合讀 (reading)

연습의 제일보가 합독(合讀)이라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대본 읽기와 착각하여 연습에 열성을 다하지 않고 대사를 암기하는 것이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대사란 것은 하나하나 생각하여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야말로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연출가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사만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게 되는 복잡한 여러 동기를 분명히 파악하여, 그 여러 동기로부터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되어 가는 것이 연습인 것이다. 물론 기억이라는 조작은 있지만 왜 말하는가 하는 동기가 자신 속에 정당화되고, 그 필연적인 동기에서 말(대사)이 나오는 그러한 방향으로 형성해 가는 것이 진정한 역의 형상화이다.

이리하여 말이 지닌 논리에 조리가 서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의 눈에 보이도록 되고, 그에 따라 상대에게 작용해가는 것이 필요하며 더욱이 동기가 확실히 파악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작용한다는 것에는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그때마다 파악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자신의 느낌이라든가 자기지각이란 말이 종종 사용되지만, 그것은 '만일 자신이 그 주어진 역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하는 것이 자세하게 정당화되어서 타인의 언동(役의 言動)이 흡사 자신의 행동처럼 즉 자신의 느낌으로 이야기해 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연극은 배우의 창조를 통하여 비로소 예술작품이 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연기자가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허구를 혼자서 더욱 자신의 신체 전부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자신이 자기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어떻게 관객을 신뢰시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신뢰한다는 것은 최면술에 걸린 것 같은 무아몽중(無我夢中)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또 어딘가에 다른 한 사람의 자기자신이 있어서 원격조정되고 있는 것 같은 기계적 행위도 아닌 것이다. 연기자가 한 발이라도 무대에 들여 놓았을 때에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허구인 것이다. 희곡이 제출한 상황과 무대 위에 이루어진 공간, 그리고 최대의 허구가 상대역인 살아 있는 인간인 것이고, 허구에 작용해 가는 최대의 무기가 말인 것이다. 합독(合讀)의 단계에서 희곡을 분석하면서 합독을 통하여 상대역에의 작용이 시작된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상대의 눈을 향해 작용하고 상대의 눈에서 그 작용을 읽는다. 그리고 상대의 말을 자신의 눈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상대역의 얼굴을 직시하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상대의 눈의 반응을 신체의 어느 부분인가로 의식하여 파악하고 있다. 자신이 자신의 행동을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역과의 사이에 생긴 연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겨난 연관이란 것은 상대역끼리가 서로의 허구를 정당화시킬 수 있어 우리의 일상적인 차원에서와 같은(결코 동일하지는 않은) 연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최소한도에서 발생한 교류가 성립한다는 것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분석의 조작, 목적을 향해서 그 경우 자신의 대사속의 중심적 센텐스의 중점, 구절의 중점 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연기자의 여러 가지 습벽을 시정함에도 소용되는 것이다. 이 습벽이란 이야기에서 중요점을 빠뜨린다든가, 어미(語尾)를 묵음(默音)하거나 또는 제2어를 아무 의미도 없이 강조하기도 하고, 어미에만 절을 붙여 큰 소리로 말하는 것 등이다.

이상으로 알 수 있듯이 합독은 어떤 감정상태를 예상하여 자신 속에 그 필연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슬픈듯 또는 기쁜듯 대사를 노래하듯 하여 그 결과 필연성이 없는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을 통해서 대사를 이해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인간의 어떤 감정상태란 어떤 욕망에 기초를 둔 행동의 결과로 도달된 것이다.

역을 형상화한다는 것은 극의 흐름(action)을 정성을 들여서 탐구하고 그 반복의 결과로서 그와 같은 감정상태에 도달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며, 그것이 연습의 내용인 것이다. 따라서 합독의 단계에서 자신의 대본은 비록 눈앞에 있어도 그것은 단지 프롬프터(prompter)의 역할과 같은 것이어서 이미 상대역에의 작용과 상대역의 눈에서 파악된 연관이 미약하게나마 성립되어 있지 않으면 연습은 되지 않는다. 대사를 암기한다는 조작은 그 동기를 분명히 하면서도 연기자가 연습장 아닌 자택에서 해야 할 임무인 것이다.

역의 행동에 있어서의 템포와 리듬의 디테일에 있어서의 정밀함은 소위 동작 연습에 들어가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테이블 연습의 단계에서도, 특히 합독을 시키는 과정에서 맹아(싹) 형태로 파악되어 있어야 한다. 리듬이란 작용의 반향이고 템포란 속도이며, 이 두 가지가 하나로 조화되어서야 비로소 대사의 완급(緩急)도 생기는 것이다. 즉 희곡이 가진 템포와 리듬, 그 희곡의 흐름 속에서의 템포와 리듬 ―― 역의 고유한 템포와 리듬, 그 상황에 대해서의 템포와 리듬 ―― 의 변화가 합독(合讀) 단계에서 이미 윤곽 정도로는 파악되어 있어야 된다.

합독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연기자가 역의 주관에서 행동하는, 즉 희곡 안에 쓰여져 있는 1인칭(저·나·우리 등)으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작가가 압축하여 제출한 부분, 예컨대 극전 상황(preliminary situation)이 희곡에 씌어져 있는 부분에서 유추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연기자의 상상 속에 생생한 기억으로서 존재하고, 그 동기가 흡사 자신의 것으로 파악되어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동작연습[편집]

動作練習 (acting)

합독함에 있어서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극의 흐름과 역의 성격 등을 이해한 후에 대사와 일치시켜 동작을 붙여가면서 행하는 연습을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연기자는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역을 자신의 생래(生來)의 모습 그대로 형상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희곡 속의 역(役)에로 육화(肉化)하여 자신을 변화시켜 감을 의미한다.

역의 외적 형상(外的形象)이란 것도 역의 내면적인 자기지각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더욱이 역의 외적 형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수한 외적 형상 가운데 당연히 역의 논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 예컨대 역의 성격으로 언제나 상대의 상태를 추측하는, 즉 서로 쳐다봄으로써 상대의 안색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에는 단순한 신체적 행동의 극히 최초의 단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번역극의 경우는 특히 그 민족적인 특징, 예컨대 서양인의 경우 어깨를 우쭐한다든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손가락을 자기편으로 구부려 사람을 부르는 동작은 그것만 따로 연습시키고, 그것이 내면적인 자기지각을 수반하게 되는 상태로 들어설 때 비로소 합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연기자가 자기신뢰 없이 연기하는 것만큼 흥미없는 것도 없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배우가 기초훈련의 단계에서 모든 시대의 모든 민족의 대표적인 무용을 일면 마스터하고 있다면 13세기의 베네치아라든지, 조선왕조의 궁중풍습이라든지, 그 시대 그 국가의 춤과 활동에서 기본적인 동작 형태를 인출하는 것은 용이하겠지만, 그런 것까지 가르치고 있는 연극 학교는 아직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일관연습[편집]

一貫練習 (running rehearsal)

연습이라고는 해도 일관연습의 단계에서는, 이미 연기자는 그 역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역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는 것은 극의 흐름에 몰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기자는 일관연습에서 비로소 자신의 역을 형상화하는 데서 흠점을 의식하게 되는 수가 많다. 그것은 전체의 흐름 가운데서 자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는 작은 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출연 시각이 적은 배우뿐이다.

등장 장면이 짧은 역일수록 극전 상황, 거기에 등장하지 않는 제 인물과 자신의 관계, 등장한 그 장에서의 자신의 과제 등에 유의하여 성실히 행동하도록 명심할 일이다.

총연습[편집]

總練習 (dress rehearsal)

무대연습은 관객이 없을 뿐, 본 공연과 동일하게 행해진다. 진정으로 중첩된(충분한) 연습 위에 이루어진 무대라면, 연기자는 전신으로 파악한 기본선을 통해 왜곡됨이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다.

연극이란 오늘의 무대에서 완료되는 예술이다. 동일한 내적 체험은 오직 1회적일 뿐이다. 연기자는 무대에 표현된 동작 형태로, 이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되면, 무대에 나가기 직전에 '만일'을 다시 한번 되뇌어 하루하루 역을 성장시켜 간다. 그것이 매일의 무대를 신선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