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문화·민속/한국의 연극/한국의 인형극/한국 인형극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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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형극의 연혁〔개설〕[편집]

韓國人形劇-沿革〔槪說〕인형의 원초적 형태를 찾는 데는 먼저 신성물(神聖物)인 정적(靜的) 인형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자기확대(自己擴大)를 위한 소박한 창의로 해석할 수 있는 인간에 의한 조작적 우인물(偶人物)이 신앙의 대상으로 숭상되었음은 원시신앙의 단계를 볼 수 있는 하나의 보기가 되기도 한다. 신앙적·상징적 대상으로서의 우인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발전과정에서 정물(靜物)에서 동물(動物)로의 발달을 보게 되었을 것은 짐작이 가는 것으로, 이와 같은 예는 고대인형의 간단한 손발의 동작부위들로 실증되는 것이다.

한국 인형극의 계통[편집]

韓國人形劇-系統

우리나라 인형극(人形劇)의 계통을 이 땅의 독자적 소산으로 규정하기에는 주변국가인 중국·일본 그 밖의 동남아 여러 나라의 인형극들과 그 극형식이나 인형의 구조에 너무도 일관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의 인형극이 무대를 높이 만들고 사방에 투명한 유리를 두른 다음 그 속에서 조종자가 인형을 놀리는 것과, 일본의 인형무대가 난간을 만들어 포장을 치고 그 속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민속인형극 '덜미'의 연출방식과 비슷한 동계(同系)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어의(語意)나 발음상의 동일성을 들어 중국·한국·일본에서 쓰이는 명칭이 '곡독(郭禿)'·'꼭두'·'구구쓰(クグシ)'로 불리고 있음은 중국의 '곡독'에서 한국의 '꼭두'가 되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구구쓰'가 되었다는 동양 인형극의 전이과정(轉移過程)까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전해진 중국에서 온 인형극은 중국 고유의 것이 그대로 전래한 것인가, 혹은 중국 이외의 다른 지역의 것이 중국을 거쳐서 유입된 것이냐가 문제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오는 민속인형극이 곧바로 중국에서 온 것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것이냐 하는 것도 가려내야 할 일이다.

세계인형극사 및 동양의 인형극사를 다룬 전적들을 보면 중국의 인형극이란 서역계의 유입물임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자료와 문헌들에 의하면 일단 수긍이 가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전까지로 소급되는 옛 문헌에 보이는 인형 및 인형놀이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추론(推論)을 펼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에까지 소상(遡上)되는 인형에 대한 문헌적 기록을 시원(始源)으로 하여, 그 후 고려·조선을 거치는 동안 어느 때부터 오늘날 놀고 있는 덜미와 같은 형식의 인형놀이가 형성되었느냐 하는 실증적 단언을 내리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 민족의 자생적 필연성에 의하여 발생한 정적 또는 동적 인형이 먼저 생겨나고, 그 위에 우리나름의 토착적 민중의지가 첨가되어 발전하던 중에, 삼국시대 중엽 이후로부터 고려 초 이전에 걸치는 시기에 서역계의 인형극이 중국을 거쳐 들어와 그것이 기존의 인형 내지는 인형놀이와 혼합되어 오늘날과 같은 덜미의 연희 형식상(演戱形式上)의 초기적 구성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이것은 민중의 모임이나 축제 등에서 놀아지다가 점차 봉건지배체제의 중앙집권화에 따라 고려 이후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대립관계의 심화에 의하여 저항적 민중연희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 연희자 역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생활을 면치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형상은 조선조에 들어와 더욱 심화하여, 지배층으로부터의 직접적 박해를 받기에 이르며, 한편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포함한 일체의 외세에 의하여 조직적인 탄압을 받게 되자, 거의 조선조의 운명과 함께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간혹 일제 치하 이후에도 이 놀이를 놀던 남사당 패거리가 있었지만, 역시 내외의 침탈자(侵奪者)들에 의하여 그 내용은 왜곡·변질되고 민중놀이로서의 성격을 지키는데 큰 벽에 부딪혔다.

한국 인형극의 종류[편집]

韓國人形劇-種類

지금 이 시기에 우리 민속인형극의 종류를 들자면 덜미(꼭두각시놀음) 하나밖에 없다. 이 밖에도 만석중놀이(忘釋僧人形戱)나 장난감인형놀이(玩具人形戱)를 들 수 있지만, 이것들은 연극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것으로 보일 뿐 극(劇)으로서의 체계를 전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더욱이 이것들은 지금은 거의 인멸되어 버려 찾아볼 수도 없게 된 형편이다.

끝으로 부언하여 둘 것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인형극과 가면극의 선후문제와 발생지로서의 동·서양이 엇갈리고 있으나 이는 끝내 병립에 그칠 문제로서 한 문화현상의 발상이란 반드시 획일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동류(同類)·동시(同時) 발원성(發源性)이 감안된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우리 인형극의 서역계 유입설'이 유력하고 그 시원을 고구려쯤으로 잡는 것이 근간의 의견이다.

각 민족 간에는 서로 다른 민족 고유의 유희본능에 의한 연극적 요소에서 발생한 인형놀이가 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경우 토착적 각시놀이 등이 후에 상당히 발전한 서역계의 인형극놀이가 중국을 거쳐 '곡독'이란 명칭으로 들어와 내용과 명칭상 합세한 '꼭두각시놀음'으로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그림자 인형놀이'를 비롯하여 '만석중놀이' 등 전래했던 인형놀이가 모두 인멸하여 버리고 이제는 '꼭두각시놀음' 하나가 우리 민속인형극의 유일한 존재로서 남아 있는 형편이다.

<沈 雨 晟>

덜미(꼭두각시놀음)[편집]

우리나라의 민속인형극 중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속인형극으로 그 내용이나 규모에 짜임새가 있는 것으로는 남사당패놀이(풍물)·버나(대접돌리기)·살판(땅재주)·어름(줄타기)·덧보기(탈놀이)·덜미(꼭두각시놀음) 중 여섯번째 순서인 덜미가 꼭두각시놀음이란 이름으로 발굴·채록되어 있다.

그 명칭에 있어, '꼭두 박첨지놀음(이)' 외에 '박첨지놀음(이)', '홍동지놀음(이)', '꼭두 박첨지놀음(이)' 등으로도 불리고 있으나, 실제 연희자들 사이에선 그보다는 '덜미'로 통하고 있다. 간혹 고로(古老)들 중에서도 '꼭두각시놀음 잘 한다'는 것을 '덜미 잘 팬다'로 표현하고 있음을 자주 공연장소에서 듣게 되는 것이다.

남사당패 출신 연희자들에 의하면 '덜미'란 '목덜미를 잡고 논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덜미'란 남사당패의 변(隱語)으로서 머리(頭)의 표현이 아니냐 하지만 그들의 변으로 머리는 '석글통'이고, 머리(髮)는 '석글'이며, 모가지는 '석글대'이고 보면 변은 아닌 것 같다.

실제 연희자들 사이에서도 '덜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 '꼭두'이다. '꼭두패' '꼭두 박첨지' '꼭두잡이' 등이 그것이다. '꼭두각시'란 위의 '꼭두'에 '각시'가 붙은 합성어로서 앞서 말한 기존의 토착적 '각시'놀음에 밖에서 들어온 '꼭두'가 합세한 것으로 보는 데 단서가 되어 준다.

우리나라의 인형극이 문헌에 나타날 때 대부분 '꼭두'와 관련된 명칭으로 표현되어 왔고 또 이에 근거한 기록이 계속되어 온 것을 볼 때 그 어원적 고찰은 그 유래를 가늠하는 데까지 중요한 시사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만석중놀이[편집]

忘釋僧人形戱

초기적인 민속인형극의 하나인 '만석중놀이'에 관하여는 1930년대까지 개성(開城)의 '파일놀이'에 포함되어 왔음을 말하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그림자 인형놀이와 관련시켜 생각나는 것을 들자면 그 이전인 신라의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로 잡기(雜技)와 가무백희(歌舞百戱)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후일의 '만석중놀이'와 비슷한 것인지, 그림자 인형놀이였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막연히 그림자 인형놀이라고 짐작할 뿐 자세한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장난감인형놀이[편집]

玩具人形戱

초기적인 민속인형극의 하나이다. '장난감 인형놀이'의 경우 극으로서의 체계를 전하지 못한 채 인멸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시골에선 주로 어린이들이 '물곳풀'을 뜯어 남녀의 인형을 만들어 노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그림자인형놀이[편집]

影繪戱

초기적인 민속인형극의 하나. 이 놀이는 지금도 시골에 가면 그 편린이 남아 있다. 즉 등잔불을 이용하여 손으로 짐승이나 사람의 형태를 그림자로 그리는 것인데, 초보적인 그림자인형놀이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각시놀이[편집]

초기적인 민속인형극의 하나. 소나무 껍질이나 호박·감자 등 적당한 자료를 선택하여 인형을 만들어 노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각시놀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발탈[편집]

足假面

초기적인 민속인형극의 하나. 발탈(足假面)은 포장무대(布帳舞臺)와 같은 형식에서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을 탈놀이로 보느냐 인형놀이로 보느냐 하는 것은 생존한 연희기능의 보유자가 없어 알 수 없다. 이 놀이는 지금부터 50∼60년 전까지는 간혹 놀았던 것으로 직접 구경했던 고로(古老)들의 회고에 의하면, 발탈의 구조가 덜미에서의 상좌(上佐)인형과 같이 포대괴뢰(布袋傀儡)임을 말하고 있음은 주목되는 것이다.

<沈 雨 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