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매스미디어와 미래사회/매스 커뮤니케이션/영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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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개설〕[편집]

映畵〔槪說〕

한국에서는 과거에 활동사진(活動寫眞)이라고 부른 일이 있지만 요즘은 일반적으로 영화라 부르고 있다.영화는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이 1894년 4월 14일에 그의 과학연구소에서 마치 실물과 같이 움직여 보이는 사람과 사물을, 약 15초 동안 필름을 사용한 장치를 통하여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종의 영사기(映寫機)인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1889년에 발명)를 공개함으로써 처음으로 출현하였다.그 후에 키네토스코프를 기초로 하여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뤼미에르(Louise J. Lumiere, 1864-1948)형제가 파리에서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e)라는 영사기를 사용하여 최초의 영사회(映寫會)를 열었다. 이 영사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영화를 구경한 최초의 관객(觀客)이며, 따라서 이것이 영화 대중화의 시초라 할 수 있겠다. 그 후 1896년 4월 23일 뉴욕의 코스터(Koster) 음악당에서 개최되었던 버라이어티쇼에서 에디슨의 영사기인 바이타스코프(vitascope)가 공개됨으로써 대성공을 이루었는데, 이것이 영화가 대중오락의 매체(媒體)로서 각광을 받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영화는 그 자체내에 문학·연극·미술·음악을 포괄적으로 융합하고 있지만 그 기본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카메라 예술이라는 점에 있으며, 카메라의 기록성(記錄性)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표현의 특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매스 미디어로서의 영화는 또한 다음과 같은 기능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영화는 대중에게 위안(慰安)·오락(娛樂)을 제공한다. 물론 영화는 뉴스의 보도, 기록영화를 통하여 보도성(報道性) 및 광고의 기능을 발휘하지만 그런 것들은 오락성에 비하면 제2차적이다. 둘째, 영화는 시청각적(視聽覺的) 미디어이다. 눈으로 봄과 동시에 귀로 들을 수 있는 미디어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주는 효과가 직각적(直覺的)이고 인상적이며 구체적이다. 영화의 효과는 생동적인 영상(映像)과 음향효과(音響效果)가 융합한 것이므로 표현력이 우수하고 강한 설득력과 박진력(迫眞力) 및 현실성(reality)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영화는 그 오락의 기능과 더불어 관객을 심리적으로 포착하는 심리적 침투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두운 객석에서 스크린에 비치는 밝은 영상에 접하는 관객들은 심리적으로 흡수되어져 현실을 도피하고 백일몽(白日夢)을 얻기도 한다. 셋째, 영화는 다수의 관객이 시간적·공간적으로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자극을 받게 되므로 스크린을 보고 박수를 치거나 울고 웃는 등 집단심리(集團心理)의 요소가 작용한다. 넷째, 영화는 영상에 대한 직접적 지각반응(知覺反應)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문맹자(文盲者)도 이해할 수 있는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이상에서 언급한 특성 이외에 영화가 다른 매스 미디어와 공통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초창기의 영화는 사건의 보도, 풍경의 소재, 단순한 구경거리의 사실(寫實) 등이 그 대부분이었지만 그 후 점차 스토리를 가진 극영화(劇映▩)가 출현하게 되었다. 초기의 사실영화에 환상(幻想)의 세계를 가미하여서 스토리화한 일종의 극영화를 구성하여 영화기술 및 표현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프랑스 사람 멜리에스(G. Melies, 1861-1938)였다. 그의 대표작은 1902년에 상연된 과학공상영화 「월세계 여행」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극장에서의 영화 상연의 전망이 밝아졌다. 이후 영화는 문학적 심리묘사와 자연묘사를 융합한 프랑스 영화, 대규모의 이탈리아 사극영화(史劇映畵), 낭만주의적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 미국의 액션영화 등의 출현에 의하여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마침내 1920년대에 이르러 무성영화(無聲映畵)의 예술성이 극도로 발달하게 되었다. 한편 1926년에는 미국에 토키 영화가 출현하여서 이른바 토키 시대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어서 1935년에는 토키를 색채화한 색채영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 1952년의 대형영화(大型映畵), 1953년의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및 입체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영화기술은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鄭 喆 洙>

영화음악[편집]

映▩音樂

영화를 위하여 작곡·편곡·선곡(選曲)된 음악. 이것은 종합예술인 영화의 한 요소이지만 영상(映像)을 주체로 하고, 다시 대사(臺詞)에 의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나 사상성(思想性)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제약과 특수성을 지녔다.작품의 테마에 어울리는 클래식음악의 명곡을 전 작품에 사용한다거나(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사용한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 단독 악기의 연주로 인상 깊게 한다거나(안톤 칼라스의 치터 연주에 의한 케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 에페스의 기타 연주에 의한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 등) 하는 일도 하고 있다. 뮤지컬영화의 주제곡을 비롯하여 소위 영화음악이 대중음악 가운데서 늘 인기를 유지하고 선전매체로서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음악을 매체로 하여 공통적인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게 한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역사적으로는 무성영화시대에도 각 영화관에서는 임의로 여러 가지 반주음악이 연주되었으며 또 무성영화의 스타일이 완성됨에 따라 화면의 몽타주 그 자체가 하나의 정해진 템포와 리듬에 적합한 음악을 요구하게 되었다. 에인젠슈테인이 현대음악의 거성 프로코피예프의 협조를 받아 제작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1938)는 '시청각 몽타주 '의 이론을 구체화시킨 웅대한 소리와 영상의 심포니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루이스 부뉴엘의 「하녀의 일기」 「메꽃」 토니 리처드슨의 「마드므아젤」 등처럼 현실음만으로 반주음악을 배척한 시도가 반대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도 영화음악의 앞으로의 방향을 시사한 것으로 흥미진진한 데가 있다.

영화이론[편집]

映▩理論

영화 영상 전반에 걸쳐 공통된 본질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영역. 사회적·경제적인 관점보다는 예술적·미학적 관점에서 영화작품(또는 영상)의 성립 근거 및 구조를 탐색하려는 입장이 강하여 초기에는 미학·문예학·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았다.영화를 이론적으로 생각해 보려는 시도는 여러 입장이 있는데, 즉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논하였고,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표현과 구성이론에 대해, 또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기본적인 문제와 학문에 대해 연구방향을 모색하였다. 1910년 영화상영 시간이 길어지고 작품으로서의 체계를 갖추어감에 따라 비평도 활발해져 이론적인 견해를 발표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은 프랑스에서 활약한 이탈리아 시인 R. 카누도인데 영화를 전체예술로 자리매김하였다. 포토제니론이나 리듬론은 무성영화기 때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된 주제인데, 같은 시기에 소련에서 제창되고 세계에 큰 영향을 준것으로 '몽타주' 이론이 있다. L. 클레쇼프, D. 베르토프, V. I. 푸도프킨 등은 각각 지론이 다르다. 가장 유명한 것은 S. M. 에이젠슈테인의 이론이다. 화면결합을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그의 생각은 해박한 지식과 예술가적 발상이 결부되어 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흥미있는 전개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유성영화기에 이르러 리얼리즘의 미학(美學)이 우세해졌으며 영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운동이 일어나 J. 그리어슨을 선두로 사회적인 주제를 파헤치는 기록영화이념이 대두되었다. 70년대에는 영상인류학(映像人類學)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었다. 학문으로는 '영화학'이 대두되고 60년대 이후 언어학·기호학·구조주의 등의 도입과 함께 영화이론과 연구는 더욱더 정밀화되었다.

영화학[편집]

映▩學

영화에 관한 제현상(諸現象)을 구명하고 그 이론체계를 지향하는 학문. 처음에는 기성(旣成) 또는 유사(類似) 연극이나 문학에서 독립된, 영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다음에는 영화 기술의 발달·완성에 따라 표현기법에 관한 이론이 주류를 차지하고 영화사의 연구가 여기에 덧붙여졌다.영화학에는 미학·예술학·예술 심리학과의 관련 외에도 사회학·사회심리학·경제학과의 관련에서 영화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입장이 있으며, 최근에는 특히 매스 미디어의 한 가지 수단으로서 영화를 파악하여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에 입각한 해명이 활발해졌다. 영화가 탄생한 지 미처 20년도 안 된 1911년에 리치오토 카뉘도는 '제7예술선언'이라는 연제(演題)로 파리에서 강연하였고, 13년에는 허만헤프카의 『영화의 예술』이 베를린에서 간행되었으며, 15년에는 버질 린제이의 『영화의 예술』이 뉴욕에서 출판되었다. 이것은 모두 영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업적들이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하는 포토제니 이론과 소련의 몽타주 이론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루이 데뤼크의 '포토제니'를 비롯, 장 엡스탱, 레옹 무시나크 등에 의해 제시된 포토제니 이론은 화면 내의 풍부한 영상 표현력을 체계화한 것이며, 영화예술만이 지니는 독자적인 자질(資質)로서 그 이후에도 프랑스영화의 큰 특질이 되었다.몽타주 이론을 미학적으로 뒷받침한 저술로서는 독일의 루돌프 아른하임이 쓴 『예술로서의 영화』, 헝가리의 벨라 발라지가 지은 『영화의 문화』 등이 있다. 그러나 토키영화시대의 도래(到來)는 기술·산업·예술의 측면에서 영화의 존재양식을 크게 변화시키는 한편, 이론적인 연구는 정체를 면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학적인 영화 연구는 모두가 다른 장르의 과학을 원용(援用)함으로써 영화를 논의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즉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분석과 통합으로 영화미학을 논한 질베르 코앙세아, 사회학적 고찰을 주창하여 영화의 기능을 '사이런트 몽타주론(論)'에서 분리시킨 앙드레 바쟁, 영화예술의 기본적 법칙을 사회심라학에 의한 새로운 해석으로 파악하고자 한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에르 등의 경우가 모두 그와 같다. 영화사학(映▩史學)은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분적 서술이 나타난 데 불과했으나, 종전 이후에는 전면적이고도 과학적인 추구가 시작되었다.영화산업의 연구, 매스 미디어로서의 영화, 관객의 반응 등에 관한 연구는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하지만 아직 체계화된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영화학은 대학의 교과로도 채택되어 다른 제과학(諸科學)과의 관련을 유지하면서 그 존재가 명확하게 인식되어가고 있다.

전위영화[편집]

前衛映畵

프랑스어의 film avante-garde를 직역한 말. 일반적으로 종래 영화의 경향을 탈피하여 혁신적 경향을 취한 영화를 가리키지만, 영화사상으로는 무성영화 말기에 프랑스·독일 등에서 대두한 새로운 실험적 영화를 모두 전위영화라고 부른다. 즉 1924-1927년 전후에 프랑스에서 순수영화가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파리 미술계의 초현실주의운동과 결부되어 이른바 초현실주의 영화라고 일컬을 수 있는 작품이 나타나게 되었다.이러한 종류의 영화들을 총칭하여 전위영화라 부른다. 전위영화는 1924-193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하였지만 그 후의 영화에 계속적으로 미친 영향이 크다.

순수영화[편집]

純粹映畵

프랑스어로 cinema pur라 한다. 무성영화 말기 영화의 성격에 관한 이론적·실제적 연구가 성행하였는데 그것을 시각적 리듬 또는 '빛과 그늘의 심포니'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문학에서 빌린 언어 혹은 연극에서 빌린 배우와 연기 등을 불순한 것이라 생각하여 이것들을 영화에서 배제하고, 영상(映像)의 몽타주(montage)만으로서 영화를 구성하는 방법을 택하였는데 이를 순수영화라고 부르며, 전위영화의 일파에 속한다. 순수영화 중에서도 모든 구체적 영상을 버리고 추상적인 영상의 움직임의 리듬만을 다룬 것을 특히 절대영화(絶對映畵, absolute flim)라고 말한다.

몽타주[편집]

montage

원래는 '조립(組立)한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 말, 이를 맨 처음 영화에 도입한 것은 프랑스인데 프랑스에서는 영화의 화면(畵面)을 교묘하게 조립·연결함으로써 화면에 리듬을 주는 기술을 몽타주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 이 말은 소련의 유명한 감독 아이젠시타인(Sergei M. Eizenstein, 1898-1948)과 푸도프킨(Vsevlov I. Pudovkin, 1893-1953) 등이 몽타주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이론을 구성하여 세계 영화계에 널리 영향을 미침으로써 일반화하게 되었다. 이들이 뜻하는 몽타주라는 것은 마치 시인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예술성을 가지지 않는 낱말을 배열·구성·조립함으로써 시라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영화예술가가 단편적인 화면을 취사선택 혹은 재구성함으로써 예술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므로 영화란 결국 '촬영'되는 것이 아니고 '조립·편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펙터클[편집]

spectacle

월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감독의 70밀리 영화 「벤허」, 세실 B.데밀(Ceclie B. Demile) 감독의 「십계」와 같은 영화를 스펙터클한 영화라 부른다. 즉 호화찬란한 대규모의 작품.

세미 다큐멘터리 영화[편집]

semi-documentary映畵

반기록영화. 전후 미국에서 생긴 영화제작 방법으로 원래 기록영화에서 발전한 것인데, 여기에다 극적 구성을 가미한 일종의 기록영화적 극영화이다. 즉 이 종류의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현장에 가서 실경(實景)을 배경으로 하여 극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후 약 10년간 유행하다가 쇠잔해졌지만 수법은 모든 영화에 침투되고 있다.

액션영화[편집]

action映畵

전후에 생긴 영화계 용어이며, 과거에는 활극이라고 불리었다. 이른바 액션(action, 행동, 동작)을 위주로 하는 범죄영화, 탐정영화 등을 가리킨다.

하드 보일드[편집]

hard boiled

비정(非情)이라는 뜻으로 주인공의 성격이나 영화의 줄거리가 냉혹하고 비정적이며, 직선적인 수법과 강렬한 박력으로 일관되어 있는 형태의 영화.

프로듀서[편집]

producer

영화제작자. 자기자신이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배우 등과 계약하여 각기 담당 업무를 위촉하는 한편 자본가에 대해서는 그 영화를 완성할 때까지 시종 모든 책임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로케이션[편집]

location

촬영소 밖에서 자연의 정경(情景)을 이용하여 촬영하는 것으로, 촬영에 앞서 그 장소를 찾으러 나서는 것을 로케이션 헌팅(locatuon hunting)이라 한다.

스탠드 인[편집]

stand in

대역(大役)을 가리키며 위험한 장면의 촬영에 스타를 대신하여 출연하거나 혹은 원경촬영(遠景撮影)시 스타의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 않아도 좋은 장면을 촬영할 경우에 대역을 하게 된다. 구미 각국에서는 스타 자신이 자기의 신체적 조건과 유사한 전속의 스탠드 인을 고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동물 스타도 스탠드 인이 있다.

크랭크[편집]

crank

원래 카메라의 회전장치의 손잡이를 뜻하며, 크랭크 인(crank-in)은 촬영개시, 크랭크 업(crank-up)은 촬영완료를 뜻한다.

나라타주[편집]

naratage

내레이션(narration)과 몽타주(Montage)의 합성어로써, 시간적 순서를 변경하여서 과거의 사건 장면을 연결하는 영화의 독특한 기교의 하나이다. 주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 사용되며, 회상하는 사람 또는 과거를 설명하는 사람의 소리를 화면 밖으로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1931년 「힘과 영광」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이 기교가 사용되었다. <鄭 喆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