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문 화 재/중요 문화재/강원도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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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사[편집]

正陽寺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내금강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표훈사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내금강 가운데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어서 예로부터 금강산 탑승을 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탐방처였다.이 사찰은 600년(신라 진평왕 22년)에 창건하였고, 그 후 어러 차례 개수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반야전과 약사전은 조선 초기에 다시 세워진 것을 조선 후기에 각기 부분적으로 고쳐 지은 건물이다.정양사에는 반야전, 약사전, 헐성루, 영산전, 나한전 등 여러 채의 건물들과 3층돌탑 등이 있었으나 6·25 때 헐성루, 영산전, 나한전은 소실되고 반야전, 약사전도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되었다.정양사의 중심건물인 반야보전은 앞면 3칸(11.13m), 옆면 3칸(8.7m)이며 두공은 바깥 5포, 안 7포이다. 흘림식 기둥에, 천장은 작은 널조각을 井자형으로 잇대어 짜서 평평한 딴 천장인 소란반자를 만들고 합각지붕을 씌웠다. 건물 전면에 걸쳐 화려한 금단청을 장식하였고 그리 크지는 않으나 단정하고 그윽하며 아름다운 주변경치와 잘 어울려 아담한 건축미를 나타내 조선 후기 건축양식의 전형물로 평가된다.반야전 마당 한복판에는 모가 여섯인 둥그스럼한 건물인 약사전이 있는데, 약사전은 6각형 건물로서는 유일한 것으로 6각 평면에 6모 지붕을 얹은 정각형식의 희귀한 건물로서 들보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기둥 위 안팎으로 연꽃과 연잎모양의 제공을 붙인 포식 두공만을 여러 겹으로 짜올려서 화려하게 천장을 대신한 특이한 건물이다.그 외에도 3층탑과 석등이 있는데, 이 석등은 신계사, 장연사의 탑돌과 모습이 같다.

정양사 삼층석탑[편집]

正陽寺三層石塔 정양사 3층석탑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정양사의 약사전 앞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석탑으로, 정양사와 함께 600년에 세워졌으며, 금강산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건물이다.당대 최고의 수준으로, 탑의 총 높이는 약 4m이다. 아래위 두 부분으로 된 기단이 있고, 탑 몸체는 1층의 길이가 55㎝, 2층의 길이는 20㎝, 3층의 길이는 16.5㎝로 위로 가면서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지붕돌 역시 균형을 맞추어 가로 넓이가 1층은 102㎝, 2층은 94㎝, 3층은 76.5㎝로 좁아들었다. 그리고 탑 몸체돌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기고 지붕돌은 얇고 직선을 띤 처마에 네 귀 추녀는 보기 좋게 약간 들어올려져 경쾌하다.이 탑은 드물게 탑 머리부분까지 잘 남아 있는 신라 때의 탑으로, 균형이 잘 맞고 잘짜인 조화를 보여 모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구조가 완전한 것으로서 현재 전하는 옛 탑들 중에서도 신라시대 탑의 특징을 밝히는 중요한 유물로 간주되고 있다.

금장암 사자탑[편집]

金藏庵獅子塔 금장암 사자탑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금장골의 금장암터에 있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 석탑이다. 불교가 크게 성행하던 고려 초기 금장암과 함께 세운 것으로, 탑축조형식에 대한 구상과 기교가 매우 기발하여 옛날부터 희귀한 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이 탑은 돌사자 네 마리가 3층석탑을 떠받들고 있어 사자탑이라고 하는데, 균형잡힌 몸매로 고려 초기 석조예술의 기교와 축조술을 잘 보여 준다.굳은 화강석을 섬세하게 잘 다듬어 쌓은 이 탑의 높이는 3.87m이다. 탑몸 부분과 바닥단 부분으로 이루어졌으며 바닥단 꾸밈새를 독특하게 하여 탑의 장식적 효과를 높였다. 바닥단은 아래위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아랫바닥은 바른사각형 대돌로 되어 있고, 윗바닥단은 환각조각상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랫바닥단 대돌 위의 한복판에는 낮은 대 위에 앉은 보살(자장보살)이 놓여있고, 네 모서리에는 낮은 대 위에 앉은 사자가 갓돌을 떠받치고 있다. 사방을 향해 뻗치고 사납게 이빨을 드러낸 사자는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하게 형상되었으나 맹수의 형태적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다.2단씩의 고임을 준 탑몸들에는 모기둥을 굵게 돋우새기었고 처마를 짧게 뽑은 지붕들에는 처마받침을 4단씩 굵게 주었다. 처마밑선을 곧게 하고 윗선 추녀모서리만 가볍게 들어준 들추녀 지붕은 산뜻한 감을 준다.또한 노반과 보륜 위에 꽃망울형 보주를 올려놓은 탑머리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탑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바닥단을 특이하게 꾸민 이 탑은 신비함과 아름다움, 균형미가 조화롭게 조성되어 있다.금장암 사자탑은 고려 건축가, 조각가들의 뛰어난 조형예술적 솜씨가 깃든 특수한 형의 탑으로, 중세 우리나라의 발전된 석조건축의 일면을 보여주며, 고려시대 탑건축 형식과 기교, 건축장식 조각술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묘길상[편집]

妙吉祥 북한 국보급 문화재 제45호.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금강산의 만폭동 골짜기 높은 곳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磨崖佛).높이 40m의 붉은 성벽에 양각으로 새긴 마애미륵불좌상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로 앉은 높이 15m, 무릎 넓이 9.4m, 얼굴 높이 3.1m, 눈길이 1m, 귀길이 1.5m, 발길이 3.2m, 손길이 3m이다.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고려말) 나옹조사가 큰 바위벽을 그대로 다듬어 조각했다고 하는데, 손가락 하나의 크기가 사람보다 크며 두 다리를 포개놓은 높이가 사람키를 훨씬 넘는다. 삼 단으로 불담을 쌓아 만들고 위에는 지붕처마를 만들어 석굴암 형태의 구조를 띠고 있다. 석상 왼쪽에 “妙吉祥”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경주 석굴암 불상에 비해 정교하지는 않지만, 그 크기가 어마어마할뿐더러 그 표현수법이 소박하면서도 능숙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금방 웃는 듯한 눈매와 입맵씨는 생동하고 미묘한 느낌을 준다.묘길상이란 미륵불의 별칭으로, 묘길상 앞에는 돌로 쌓은 축대가 있었는데 옛날에는 여기에 묘길상암이 있었으나 현재는 석등(높이 3.7m, 북한 국보급 문화재 제47호)만 남아 있다.

보현사[편집]

普賢寺 강원도 연변군 영신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사찰. 737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세 차례나 화재를 당했고, 보수도 여러 차례 행해졌다. 보현사는 중심건물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10여 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 버리고, 현재는 건축연대가 분명치 않은 보광전·응진전·극락전·명부전·일주문·점화실(조향각)·홍예다리등이 남아 있다.1 1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기둥 사이의 거리 3.24m)으로 받쳐 지은 건물인데, 보현사의 건물 중에서 제일 오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일주문 서쪽에는 이 절의 본전인 보광전이 있다. 보광전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는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은 정면 3칸(8.1m), 측면 2칸(4.65m)인 배집이다. 보광전 앞의 서남쪽에 있는 응진전은 정면 7칸(13.54m), 측면 1칸(4.3m)의 2익공 바깥도리식 두공을 한 겹처마배집이다.보현사의 왼쪽계곡에는 자연석을 다듬어 무지개형으로 놓은 홍문교가 있는데, 이 다리는 우리나라에 보기 드문 돌다리로서 우리 선조들의 돌다루는 재능을 잘 보여준다.

금강산 삼불암[편집]

金剛山三佛庵 북한 보물급 문화재 제42호. 단원 김홍도의 화집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에도 나오는 삼불암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동래동 내금강에 있다. 높이 8m의 대형 마애불로 길이는 9m이고 바위모양은 삼각형이다.세 부처의 조각은 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한 수법이 독특하며 잘 짜인 균형에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맛을 내고 있는데, 거대한 체구, 굵고 시원시원한 선처리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인다.보통 세 개의 상(像)을 조각하는 경우에는 중앙에 여래(如來), 좌우에 보살(菩薩)을 두는데 반해 이 금강산 삼불암은 모두 여래인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바위 앞면에 새긴 부처는 크기 3.7m에 가슴넓이 1.3m이며, 왼쪽 옆면에는 그보다 작은 두 불상이 새겨져 있고, 바위 뒷면에는 60구의 작은 좌불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바위 정면 우측에는 “三佛岩”이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다.

표훈사[편집]

表訓寺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내금강 만폭동 어귀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금강산 4대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절이다. 676년 처음 세워 신림사라 부르다 1778년 완전히 새로 지었다.670년(신라 문무왕 10년) 표훈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 세종대왕이 재건한 후 수차례에 걸쳐서 중수한 것이다. 1778년(조선 정조 2년)에 크게 보수했다.표훈사는 그 중심건물인 반야보전뿐만 아니라 능파루·탈선망·극락요·동승당·서승당·함영루 등 여러 불전과 어실각·통파루와 같은 누각·산문 등의 여러 부속건물들이 즐비했다. 또 무게가 500근이나 되며 40말의 밥을 단번에 지을 수 있는 커다란 놋시루와 53개의 부처를 새긴 철탑 등 수많은 보물과 유물이 있으나 이런 희귀한 문화재는 분실되거나 일제치하에 일본인들이 약탈해갔다. 국보급 문화재였던 53불을 조각한 철탑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표훈사 반야보전[편집]

表訓寺般若寶殿 표훈사의 중심건물. 높이 1m 정도의 축대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앞면 3칸(14.1m), 옆면 3칸(9.4m)이다. 또 바깥 7포, 안 9포의 두공을 복잡하게 짜올렸으며, 합각지붕에 금단청을 하였다. 기둥은 위가 약간 홀쭉하게 오므라든 두리기둥이고 네 모서리 두공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내밀게 하였다.전체의 균형이 잘 잡혀 굵직하고 힘차 무게가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화려한 꾸밈새를 자랑한다.

장안사터[편집]

長安寺-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에 있는 내금강 입구에서 만폭동 골짜기 계곡의 맑은 물을 따라 2㎞ 정도 가면 만천교가 나오고 그 너머에 장안사(長安寺)터가 있다.신라시대인 551년 처음 짓고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1731년 조선시대에 다시 지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건물구역과 사성전을 중심으로 한 건물구역으로 나누어지며 6전, 7각, 2루, 2문과 그 밖에 10여 동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진 대단히 큰 절이었다.크고 작은 수십 채의 건물 등 장엄함과 화려함을 자랑했던 역사깊은 고찰로 표훈사·신계사·유점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사찰로 손꼽혔으며 유점사 다음가는 대찰이었다. 특히 조선왕실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왔으며, 은으로 만든 상과 구리향로, 자수병풍을 비롯하여 궁중으로부터 보내온 여러 가지 귀중한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임진왜란 때 손실된 것을 다시 몇 차례 걸쳐 증축 재건하였는데, 1951년 6·25 전쟁 때 완전 소실되었다. 현재는 옛 건물의 축대와 주춧돌, 그리고 부근에 몇 개의 비석과 부도만 남아 있다.

보덕암[편집]

普德庵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에 있는 절. 조선왕실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고 귀중한 유물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구려시대에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며, 현재 건물은 1675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절벽에 높게 걸린 암자로 그 아래에 구리쇠 기둥 하나를 받쳐 놓았는데 그 길이가 약 7m이고, 절벽의 높이는 20m가 넘는다. 구리기둥 위에는 사가집·배집·합각지붕을 섞어서 지은 3층 암자를 앉혔다. 크기는 맨 아래층 합각 집의 앞면이 3.35m, 옆면이 85㎝이다. 겹처마에 천장은 소란반자를 하고 중단청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옆으로 붙은 구름다리를 내려 맨 아래층 널마루를 낀 집안에 들어서면 뒷벽이 절벽인데 그 한가운데에 깊이 5.3m, 넓이 1.6m, 높이 2m 되는 굴이 절벽 바위벽에 뚫어져 있다. 이것을 보덕굴이라고 한다.보덕암은 황해도 장수산에 있는 현암(懸菴)과 더불어 절벽에 의지하여 지은 희귀하고도 특이한 다락건물로 구리기둥으로 3층이나 되는 집을 떠받들고 있는 건축기교와 지붕을 만드는 데 전통적 건축양식인 배집, 사기집, 합각식 지붕 등을 보기 좋게 배합한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