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문 화 재/중요 문화재/대전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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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정사[편집]

南澗精舍

대전광역시 가양동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강학당이다.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송시열이 말년에 강학을 위하여 지은 별당건물이다. 2층 누각식 건물로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가의 암반 위에 세웠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가운데 기둥은 연못 가운데에 세웠고, 나머지 기둥은 바위 위에 세워 계곡의 물이 건물 대청 밑을 흐르도록 설계하였다. 이곳에서 송시열이 전국의 유림과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하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북벌책을 강구하던 곳이기도 하다.

계족산성[편집]

鷄足山城

회덕 장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산성으로 둘레 약 1,200m이다. 높이 399m의 계족산 위에 있는 테뫼형 산성으로서 현존하는 성벽의 안쪽 높이는 3.4m, 외벽 높이는 7m, 상부 너비는 3.7m이다. 금강 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백제시대 토기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이 산성을 근거로 한때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시키기도 하였고, 조선 말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성내에서 백제시대는 물론 신라·고려·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조각이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목은 이색 영정[편집]

牧隱李穡影幀

보물제 1215-4호. 중구 옥계동 84번지 대전영당. 고려말 삼은(三隱) 가운데 한 분이었던 목은 이색(1328~1396)의 영정으로, 헌종 10년(1884)에 그려졌다. 앞이마를 덮고 있는 게발형태의 사모 부분은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회색줄을 사용하였고, 살색 바탕의 얼굴과 이마, 코, 뺨 등에는 옅은 붉은색을 넣어 생동감을 나타내었다. 그 외에도 얼굴주름을 나타내기 위해 갈색선을 사용하였고, 단순히 먹선으로 표시한 눈, 부드러운 선으로 잘 묘사한 얼굴, 그리고 옅은 먹선의 덧칠효과로 나타낸 옷주름 등은 일류화가의 솜씨임을 잘 보여준다.

회덕 동춘당[편집]

懷德同春堂

보물 제209호. 대덕구 송촌동 192. 송촌(宋村:예전에는 백달촌이라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은진 송씨가 번창하면서 송촌으로 불려짐)의 한복판에 있는 이 건물은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1606∼1672)의 아버지(송이창, 1561∼1627)가 세웠다. 건물의 일부가 허물어져가자 선생이 48세 때인 효종 4년(1653)에 헌 목재를 그대로 써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다시 지은 것이다. 동춘당은 조선시대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별당(別堂) 건축으로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오른쪽 2칸은 대청, 왼쪽 1칸은 온돌방이다. 머름, 중방, 창호의 구성이 단아하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同春堂”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