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동양미술의 흐름/일본의 미술/일본의 근대·현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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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편집]

近代美術

오랫동안의 에도바쿠후 정치에 의한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메이지 정부도 서양근대문명을 흡수하는 정책으로 나왔기 때문에 서양미술의 영향이 점차로 강하게 나타나, 미술계는 서양의 감화를 강하게 받아들일 양식미술과 재래의 동양계의 일본미술의 흐름을 발달시키려고 하는 일본식 미술의 양면이 전개되었다.

예를 들면 말기 이래의 관전(정부 주최의 미술전람회)에서 회화 부문에 일본화부와 양화부가 병치되어서 그대로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 양자는 유래, 태도, 성질, 수법이 훨씬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바로 융합될 수 없고 서로간에 자극되면서도 병렬적인 두 흐름이 되어서 오늘날 미술의 배경을 만들고 있다.

쇼와 시대의 미술[편집]

昭和時代-美術

쇼와 시초에는 세계적인 불경기의 영향이 일본에도 미쳐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이 드러났다.

미술 특히 회화 부분에서도 사회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추상주의나 초현실주의와 같은 새로운 미술의 양상도 수입되어 왔다.

이윽고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후로부터 종전까지의 사이는 이러한 경향의 적극적인 진전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동안에도 일본의 전통미술을 다시 보는 움직임이 뿌리깊어서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던 일본건축이나 민예품에도 커다란 존재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일본 미술협회[편집]

日本美術協會

근대로 접어들어 유화(油畵)가 크게 유행하고 있던 무렵 일본화단의 재편성을 노리고 1879년에 류치카이(龍池會)가 결성되었는데, 고서화감상회(古書畵鑑賞會)를 합병해서 1887년에 일본 미술협회가 발족되었다. 나중에 협회파, 구파(舊派)로 불리게 되었다. 도사(土佐)·스미요시파(住吉派), 마루야마(圓山)·시조파(四條派)·문인화파(文人畵派)의 후예들로 조직되고, 야마나쓰 라요시(山名貫義)·시바다 제신(柴田是眞)·다자키 소운(田崎草雲)·가와바다 교쿠소(川端玉草), 노구치 유코쿠(野口幽谷), 다키 가테이·가와베 미타테(川邊御循)·모리 간사이(森寶齋)·기시 지쿠도(岸竹堂) 등이 그 중심이었다.

도쿄미술학교[편집]

東京美術學校

1887년 오카쿠라텐신(罔倉天心)이 설립한 학교인데 이로써 개성주의가 싹터 일본 미술회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분텐[편집]

文展

신·구를 병합해서 1907년 문부성(文部省) 전람회가 개최되었다.

여기를 거친 화가에 와다 산조(和田三造)·나가자와 고코(中澤弘光)·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郎) 등이 있다.

니카카이[편집]

二科會

1913년 분텐(文展)에 대립하는 재야 단체로서 수립되었다.

멤버로는 아리시마 쇼마(有島生馬)·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郞)·쓰다 세이후(津田淸楓)·이시이 하쿠테이·우메하라 류자부로(梅原龍三郎)·고스기 호안(小杉放庵)·사카모토 한지로(坂本繁二郎) 등이 있다. 동회(同會)는 야에서 자라난 강력한 단체로서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전후의 미술[편집]

戰後-美術

종전(終戰) 이듬해에는 이미 니카카이가 전람회를 개최하였고 니카카이에서 분파(分派)한 무카이준키치(向井潤吉) 등이 행동미술협회를 발족하였고 미야모토 사부로(宮本三郎) 등이 제2기회(第二紀會)를 발족하였다. 일본화 세계에서는 신선한 화풍을 목표로 한 야마모토 큐진(山本丘人)·후쿠다 토요시로(伏田豊四郎)·요시오카 겐지(吉罔堅二)·우에무라쇼코(上村松篁) 등이 창조미술을 결성, 나중에 신제작파협회(新制作派協會)의 일본화부(部)에 합동하고 있다.

한편 닛텐(日展)은 민주화의 여세로서, 관전(官展), 반관전(半官展), 사단법인과 주최(主催)의 곡절(曲折)을 보이면서 개최는 계속되고 있다.

민주화의 가장 뚜렷한 표상으로서 전후의 새로운 전람회 형식의 앙데팡당전(Independants 展)을 잊을 수는 없다.

또한 각 신문사가 적극적으로 주최하는 현대 일본미술전·일본 국제미술전·수작(秀作)미술전·일본 국제판화 비엔날레전(Biennale 展) 등도 전후에 탄생하였다.

동시에 근대미술관, 지방미술관의 건설도 성해지고 아울러 해외작가전은 물론이고 프랑스 미술전을 비롯하여 해마다 대규모적인 국제미술전이 열려 국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으로 되어 왔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제적인 교통의 발달,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서로 어울려 일본 화단을 더욱더 국제화단과 동위치에 놓고서 생각하게끔 되었고, 국내라는 한정된 무대가 아니라 점차로 파리·뉴욕 등에서 당당히 발표하여 평가를 받는 양상도 갖게 되었다 유화의 오카다 겐조(罔田謙三), 스가이 쿠미(菅井汲), 판화의 무나카타시코(棟方志功)·하마구치요조(濱口陽三) 등이 그것이고 다만 회화의 세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이나 근대건축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일본의 개성을 몸에 지니면서 근대미술의 세계적인 시장 속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작가도 출현하게 되었다.

현대의 판화[편집]

現代-版畵

우키요에 판화는 바쿠후 시대 말기의 형식화를 좇아서 메이지 초기에는 단절되지만 양풍 기법을 쿠산(松田綠山)의 동판화·석판화가 유행한 다음 3공정(三工程:畵·彫·받아들여 빛(光)의 효과를 포착한 고바야시 기요치카(小林淸親, 1847∼1915)의 신판화(新版畵)나 마츠다로刷)을 화가 혼자서 도맡는 이른바 창작판화가 생겼다. 메이지 40년(1907) 창간된 문예·미술지 '방촌(方寸)'의 삽화가 처음으로 목판·석판·동판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다이쇼 7년(1918)에는 일본 창작판화협회가 결성되었고 이것이 쇼와 5년(1930), 새로이 일어난 양풍판화회와 1936년에 합병하여 일본판화협회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