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서양미술의 흐름/현 대 미 술/현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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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조각가[편집]

畵家 彫刻家

화가 조각가란 가령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 샤갈, 드랭, 미로, 모딜리아니 들과 같이 본디는 회화를 제1의적인 작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때에 따라서 조각에도 손을 대어 기성의 개념에 구애되지 않는 조형작품을 만든 미술가들을 가리켜 말한다. 19세기 말의 로댕, 부르델, 마욜의 뒤를 계승한 금세기의 조각은 잡다한 미적 이념의 융체(隆替)와 보조를 맞추어 진전하여 온 과정에서, 종래의 개념에서 보는 조각이란 장르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를 지니게 되었지만, 전기한 미술가들도 여태까지의 조각이나 회화라는 기성의 테두리를 넘어서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넓은 시야와 자유로운 입장에서 조각에 접근하여 갔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시야의 넓이와 자유로운 입장과 그 위에 선 대담하고 솔직한 표현은 아카데믹한 조각가들조차도 감히 이르지 못한 곳이고 그들의 개척자적인 의의도 여기에 있다.

바를라흐[편집]

Ernst Barlach (1870∼1938)

독일 표현주의 시대환경 가운데서 유니크한 제작을 진전시킨 조각가이자 판화가 및 시인이기도 한 에른스트 바를라흐는 홀시타인의 웨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888년부터 1891년까지 함브르크 공예학교에서 배운 뒤에 1898년 아르 누보에 따른 잡지 <위겐트>의 동인이 되는 한편 소묘(素描)와 도예(陶藝)를 시작하였다.

그의 제작에서 결정적인 체험이 된 것은 1906년의 러시아 여행인데 이 여행을 마치고서는 흙에서 사는 농민과 학대받는 영세민, 거지, 기도하는 사람과 인고자(忍苦者) 등을 주요한 테마로 다루었다. 소박한 목조(木彫)를 주로 한 이들 인간상은 이따금 긴 망토로 몸을 감싼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그 완만하나 힘있는 무브망을 가진 금욕적인 형태에서는 내부에 도사린 깊은 정신성을 암시하고 있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전후에 많은 기념비를 만들었으나 1938년 나치스가 퇴폐예술가라는 오명을 붙여 그의 작품도 400점 남짓하게 파괴해 버렸다.

현존하는 조상 가운데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쾰른의 안토니타 교회에 있는 무명 전사묘의 기념비로 묘비 위에 매어달린 조상(彫像)은 그 형식도 매우 특이한 것이다. 그는 북구의 전통을 순수하게 계승하여 현대에 보기 드문 영혼의 조형자라 하겠으며 1938년 로쉬톡에서 사망하였다.

렘브루크[편집]

Wilhelm Lembruck (1881∼1919)

바를라흐와 같이 독일 표현주의에 친근성을 가졌던 렘브루크는 마이데리히에서 출생했고 1901년부터 1907년까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배웠으며 1910년에서 1914년까지 파리에 체재하면서 마욜, 로댕 및 브랑쿠시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고 또 아르키펜코와 친교를 맺어 그 우정은 평생 계속되었다. 렘브루크의 특색은 특히 마욜에 가까운 명석한 형태감을 고딕풍(風)의 수직의 질서에 따라 조형한 점이다.

독일의 젊은 세대나 친구인 아르키펜코도 그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가 실제적으로 제작 활동에 종사한 것은 1911년 이후 겨우 9년간에 불과하였는데 그는 많은 가능성을 남긴 채 1919년 베를린에서 가스 자살로 세상을 떴다. 그는 바를라흐와는 대조적으로 형태에 있어서 독일 조각을 근대의 레벨까지 끌어올린 공로자이기도 하다.

뒤샹 비용[편집]

Raymond Duchamp Villon (1876∼1918)

입체파 조각의 선구자가 되는 뒤샹 비용은 단윌에서 출생하였다. 입체파 화가인 마르셀 뒤샹과 자크 비용과는 형제간이다. 레이몽은 처음 의학을 공부했으나 1900년경 조각가로 전환하여 1901년에 파리로 나와 최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로댕의 강한 영향하에 있었지만 1910년경부터 형태의 대범한 처리를 특색으로 하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1911년 이후 그는 퀴비슴 운동에 가담, 그 유력한 멤버로서 활약하면서 기계가 가진 구성미에 가까운 작품을 발표하여 조각의 양상을 시사하였다.

1914년의 작품 <말>(파리 근대미술관)은 그 제작의 정점을 이룬 작품으로 유명하며, 그는 1918년 칸느에서 사망하였으나 그의 작품은 자크 리프시츠, 앙리 로렌스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아르키펜코[편집]

Alexandre Archipenko (1887∼1964)

북구의 표현주의적 요소에 퀴비슴의 원칙을 가미하여 독특한 조형에 도달한 아르키펜코는 키예프 출신 조각가이다. 1902년부터 1906년에 걸쳐 그곳 미술학교에서 배웠고 1908년 파리로 이주하였다. 1910년 파리에서 사숙(私塾)을 개설하여 현대조각의 이념적인 탐구를 하는 동시에 퀴비슴의 원칙에 서서 제작을 하였다. 그것은 대상의 볼륨을 부정하여 그 양감을 자유롭게 선택한 네가와 포지의 형식으로 환원하여 재구성해 가는 작업인데, 예를 들면 인체 각 부분의 부푼 부분을 반대로 오목하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것으로써 그는 유려(流麗)하고 신선한 하나의 양식에 도달하였다. 1923년 미국으로 이주, 1928년 시민권을 얻어 미국 각지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39년에는 또다시 뉴욕에서 사숙을 개설하여 후진의 지도를 담당하였으며 1964년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자킨[편집]

Ossip Zadkine (1890∼1967)

키예프 출신인 그는 퀴비슴의 이념에 입각하여 자기의 스타일을 완성한 조각가이다. 1906년 영국으로 가서 회화를 공부하고 1909년 파리로 나와 미술학교에 적을 두었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하였던 것은 피카소와 샤갈 및 리프시츠 등과의 교우였으며 특히 피카소를 통하여 퀴비슴을 알게 되었고, 회화에서 진전하고 있던 그 원칙을 조각에서 부연하였다. 1920년경부터 퀴비슴은 이미 원칙으로서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의식되기에 이르러 여기에 자킨 특유의 스타일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항상 인간상을 주제로 하지만 간결한 데포르메에 의해 야성미(野性味)·환상성을 혼합한 힘있는 표현력을 가진 작풍이다. 1954년 작인 <파괴된 도시를 위한 기념비>(로테르담)는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로랑스[편집]

Henri Laurens (1885∼1954)

아르키펜코, 자킨과 함께 입체파 조각을 추진한 앙리 로랑스는 파리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석공(石工)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공부하였다. 1911년 브라크와 사귀어 퀴비슴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의 그는 분석적 퀴비슴과 보조를 맞추어 대상을 해체하고 기하학적인 원형태(原形態)를 추출하는 작풍을 보여 주고 있었으며 또한 콜라주의 기법에 의하여 채색한 조형까지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1927년경부터 그는 이러한 작풍을 고쳐 유기적인 형식으로써 서정적인 요소를 강조하게 되었다.

1919년의 작품 <클라리넷을 가진 사나이>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퀴비슴의 조각가로서 자크 리프시츠(1891∼1973)를 빼놓을 수가 없다. 폴란드 출신 리프시츠는 퀴비슴의 원칙에 따라 인간적인 정감이 감도는 추상적 조형을 시도하였다.

가보[편집]

Naum Gabo (1890∼1977)

러시아의 브리안스크에서 출생한 그는 구상주의에서 추상조각에의 길을 개척한 조각가이며 화가이자 조각가인 앙투안 페브스너의 동생이기도 하다. 처음 뮌헨에서 의학·수학·물리학 등을 수학하였으나 1914년 파리에 체재하면서 아르키펜코를 위시한 파리 전위미술가와 사귀게 되어 조각으로 전환하였고, 1915년에서 1917년에 걸친 스톡홀름 체재중에 퀴비슴의 원칙에 입각한 최초의 조각작품을 제작하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그의 모국에서 말레비치와 더불어 구성주의를 추진, 1920년 형과 함께 구성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리얼리스트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키네틱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1922년 베를린에서 바우하우스에 협력하였고, 1932년 파리에서는 압스트락숑 크레아숑에 참가하였다. 이 시기의 작풍은 금속과 글라스 등을 사용한 공간 구성이 특색이며 1946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브랑쿠시[편집]

Constantin Brancusi (1876∼1957)

루마니아의 조각가. 추상조각의 유니크한 개척자인 그는 루마니아의 왈라키아 지방의 농촌 페스티사니 고뤼 출생이다. 오바에서 태어났다.

목수가 되기 위한 수업을 쌓았으나 1898년 부쿠레슈티의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배우게 되었고 1902년에 파리 미술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는 최초에 로댕을 사숙하였지만 1906년 초 개인전을 가졌던 무렵부터 독자적인 길로 접어들어 1907년 국민미술협회의 살롱 전시회에 출품한 것이 계기가 되어 로댕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아틀리에를 제공하겠다는 호의를 거절한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1908년경부터 그는 형태의 단순화로 지향하여 존재의 핵심으로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구상적인 요소를 신중하게 제거하여 갔다. '실재감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핵심에 있다'는 신념에 따라 그는 가끔 원형(圓形)인 형태 속에서 사물의 원존재(原存在)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1924년의 작품인 <세계의 시초>는 설명적인 요소를 일체 버린 단순한 달갈형일 따름이다. 더욱이 그의 작품은 기하학적인 구성을 의도한 것이 아니고 대리석·나무·브론즈 등의 소재를 정성어린 수공으로 깎고 다듬어 내는 작업에 의하여 소재의 표면은 비물질화되어 무명의 형태는 내부에 충실감을 품고 있다. 재질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그의 독무대 위에서 쇠퇴할 줄 모르는 그의 표현력의 기둥이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파리에 살면서 추상조각을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르프[편집]

Jean Arp (1887∼1966)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조각가, 화가, 시인. 독일과 스위스 및 프랑스에 있어서의 20세기의 주요한 전위운동에 업적을 남기고 있는 아르프는 스트라스브르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에 서정시집을 출판한 후에 1908년까지 바이마르와 파리에서 그림공부를 하였다. 1912년에 뮌헨에서 청기사(靑騎士) 운동에 가담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취리히에서 다다에 참가, 전후는 쾰른에 파급한 다다이슴 운동에 투신하였다. 조각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의 일인데 1924년에는 파리에서 재차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참가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그가 조각과 부조에서 세운 작풍은 곡선과 곡면에 의한 단순 명쾌한 추상 형태인데 그는 그 형태를 '과일이 스스로 성숙되는 것처럼 형을 만든다'라 말한다. 파리 유네스코 본부(本部)의 부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형태는 기능적인 현대건축에도 매치하는 드문 유기성을 느끼게 한다. 1966년 바젤에서 타계하였다.

콜더[편집]

Alexander Calder (1898∼1976)

모빌의 창시자로 알려진 콜더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다. 처음 공학을 배웠으며 뉴욕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6년 런던을 거쳐 파리로 유학, 여기에서 처음으로 목조에 손을 댔으며 철사조각도 제작하였다. 이윽고 구성주의와 신조형주의(新造形主義)의 영향을 받아 추상조각으로 전환하였고, 또한 미로를 위시한 쉬르레알리슴의 회화에서 이미지를 계발하게 되었다. 갖가지 금속 소재를 사용하게 된 데에는 자코메티가 시사한 바를 따랐다는 말도 있다. 1932년에 그는 철사와 쇠조각을 사용, 입체를 구성하여 이것을 공중에 매달아 공기의 진동에 의하여 움직일 수 있는 조형물을 제작했다. 이것이 모빌이며 이 제작에 의하여 그는 조각은 부동한 것이라고 하는 종래의 사고방식을 한꺼번에 역전시켰다. 그는 또한 스태빌이라 부르는 움직이지 않는 금속판의 구성물을 만들었다.

자코메티[편집]

Alberto Giacometti (1901∼1966)

쉬르레알리슴의 이념에서 많은 시사를 얻은 그는 스위스의 스탄파에서 출생했으며, 일찍이 조형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1919년에서 1920년까지 제네바에서 그리고 1922년에서 1925년까지를 파리에서 수업하였고 파리에서는 부르델에게 배웠다. 처음에 그는 조각과 회화의 결합을 기도하여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었으나 1925년경부터 입상(立像)으로 옮아갔고 1929년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관여한 후부터는 특히 무브망의 탐구에 관심을 쏟았다. 그가 결정적인 작풍을 확립한 것은 1945년 이후인데 그것은 인체의 매스를 극한에까지 없애고 이것을 공간적으로 처리하는 유닉한 방법이었다. 그가 만들어 낸 세장(細長)하고 홀쭉한 자태는 물질화될 수 없는 인간존재의 극화(極化)가 표현되어 있다. 회화와 데생 이외의 그의 초현실적인 시작(詩作)도 있다.

마리니[편집]

Marino Marini (1901∼1980)

그는 이탈리아의 피스토이아 출신이며 휴머니스틱한 전통을 계승한 조각가이다. 피렌체 미술학교를 졸업 후 1928년 파리에서 조각을 연구하였다. 나중에 유럽 각지와 그리스를 여행하며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는 금세기의 전위운동에 관여하는 일도 없이 오로지 고대 이탈리아의 에트르스크 미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여겨진다. 1931년 레슬러나 서커스의 곡예인(曲藝人)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고 전후에는 세계 여러 곳의 국제 전시회에 출품하여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소박하면서 힘있는, 그리고 사실적인 형태와 형태의 말단을 절단하여 빚어내는 긴박한 표현력은 현대조각에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여 이채를 띠고 있다. 한때 스위스에서 제작을 하였지만 현재는 밀라노에서 정주, 최근에는 말이나 말탄 사람을 다룬 작품이 많다.

무어[편집]

Henry Moore (1898∼1986)

현대 영국 조각의 개척자로 알려진 그는 요크셔의 가슬포드에서 탄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 그는 장학금을 받아 교직과정을 이수하여 초등학교의 교사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원으로 참전하였고, 전후인 1919년부터 조각을 배우기 위하여 1921년까지 리즈 미술학교에서 배웠다.

1925년 유학생으로서 이탈리아로 여행, 귀국하여서는 왕실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가르쳤다. 1928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어 주목을 받았고,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첼지아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전후에는 모교인 리스 미술학교의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1945년 이후부터 그는 미국·에스파냐·이탈리아 및 발칸 제국(諸國)을 방문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비롯한 많은 국제전에서 상을 탔고, 그의 작품 전시회도 세계 각지에서 개최하여 현대 영국조각에 있어서 제1인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무어의 초기 작품에는 퀴비슴의 영향을 볼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특히 아르키펜코와 브랑쿠시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된다. 도잇에 그리스·이집트 그리고 프레 코론비어의 원시미술도 그의 제작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30년경 그는 독특한 작풍을 세웠는데 그것은 인간상-특히 가로 누운 자태가 중심적인 테마가 되었다. 추상적인 형태와 구상적인 형태는 그의 작품에 있어서는 혼연 일체를 이루며 드물게 보는 강한 표현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상(彫像)의 내부가 이따금 뚫어진 공동(空洞)인데 이른바 이 허(虛)의 형식이라고나 할 공동이 억센 구성과 유기적인 선의 흐름을 가진 실상(實像)에 무한한 변용(變容)을 주고 있다. 특히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서는 노산프턴의 성 마타이 교회를 위한 <성모와 그리스도상(像)>과 다린턴 기념관의 조각 등이 유명하다.

헤프워스[편집]

Barbara Hepworth (1903∼1975)

무어와 더불어 영국 조각을 대표하는 여류 조각가인 그는 요크셔의 웨이크필드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왕실 미술학교를 졸업, 1924에서 1925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조각을 연구한 후 귀국하여 1928년 런던에서 개최한 최초의 개인전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녀는 처음 무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허의 형식으로써 소재의 양감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나 뒤에는 몬드리안, 가보, 브랑쿠시, 아르프의 작품에서 시사하는 바를 터득하여 기하학적인 형태와 그 구성에로 진전하여 갔다. 1934년 이후에는 구상의 형식을 버리고 추상적 작풍으로 옮아갔고, 전후는 영국 현대조각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국제전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영국 추상회화의 제1인자 벤 니콜슨(1894∼1982)은 그녀의 남편이며 죽을 때까지 남편과 함께 영국 서남부의 어촌인 세인트 아이위스에서 제작활동을 하였다.

프라이머리 스트럭처[편집]

Primary Structure

기본구조라는 의미이다. 프라이머리 스트럭처는 1966년 주이시 뮤지엄의 막사인이 기획한 전시회의 명칭에서 개념화된 영국 및 미국에 있어서의 조각의 경향을 가리킨다. 소재에서 새로운 공업용 재료를 사용하여 직사각형·원형·구형(球形) 등 단순하고 기본적인 형태를 주로 한 대규모의 공간구성을 의도하고 있다. 대체로 단색 또는 소수의 색으로 선명하게 칠하여져 있는 것이 특색인데 그 목표는 소재의 재질감이나 중량감의 경감(輕減)을 꾀하려는 데 있으며, 동시에 빛깔 그 자체를 공간적으로 조형하려는 데에 있다. 영국의 안소니 카로의 1959년 이래의 작품을 선구로 하여 영국의 윌리엄 터거와 미국의 로버트 그로스브너 등이 그 뒤를 잇는다. 더욱이 팝 아트와 누보 레알리슴 또한 키네틱 아트 등 최신의 경향을 통하여 회화와 조각의 경계는 더욱더 애매하게 되었다.

세자르[편집]

Baldaccini Cesar (1921∼1998)

프랑스의 추상조각가로 마르세유에서 출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대표적인 조각가로 마르세유 미술학교와 파리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였다. 1947년 이후에는 금속에 흥미를 갖게 되어서 금속을 소재로 한 추상조각을 발표하였다. 처음에는 연판을 이용하였으나 차차 철사, 철근, 볼트, 스프링, 쇳조각 등의 폐품을 이용하여 오브제적인 조각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제르맹 리시에의 영향으로 표현주의적 곤충과 인간의 브론즈상을 제작하였다.

1965년 이후부터는 자동차를 압축하여 만든 '프레스 조각'과 폴리우레탄, 폴리에스테르 등의 플라스틱을 녹여서, 액체를 부어 응고시킨 독특한 수법을 사용하여 물체와 인간 사이의 긴장관계를 전위적인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미티지[편집]

Kenneth Armitage (1916∼ )

영국의 조각가로 리즈에서 출생하였다. 리즈 미술학교와 런던의 슬레이드 학교에서 공부하고 1939년부터 7년간 군에 복무하였다.

현대 영국 조각계를 대표하는 조각가로 1952년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고, 1956년 크레펠트 전승기념비 제작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1958년 베니스 국제미전에 입상하였다. 그는 헨리 무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데포르메 인체에 의한 표현주의적 작품을 만들었다. 1960년 후반부터 팔, 등, 몸의 부분으로 인간을 표현하려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2인의 좌상> 등이 있다.

파올로치[편집]

Eduardo Luigi Paolozzi (1924∼)

영국의 조각가로 에든버러에서 출생하였다. 양친은 이탈리아인이다. 에든버러 미술학교, 런던 슬레이드 미술학교를 나온 후 1949년 센트럴 미술·디자인학교 옷감 디자인 교사로 재직하였다. 1947년 런던에서 개인전을 처음 갖기 시작하여 구미에서 자주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195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전(展) 이후 수많은 국제전에 출품하였으며, 세인트마틴 미술학교 조각교사, 왕립미술대학 도예강사로 있으면서 미술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그의 작품은 기계와 로봇에 관심을 쏟아 SF적 이미지를 입체화한 것이 특색이다. 1981년 이후 뮌헨 조형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원과 사각을 지닌 도시> 등이 있다.

카로[편집]

Anthony Caro (1924∼)

영국의 조각가로 런던에서 출생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왕립미술원 학교를 졸업한 후 1951년부터 2년간 헨리 무어의 조수로 일하였다. 1953년부터 1979년까지 세인트 마틴 미술학교 강사로 재직하였다.

그는 1950년대에는 인체상을 제작하였으나 1959년부터 미국에 체류할 때 현대회화에 강한 자극을 받고 귀국 후에는 철재를 조립하고 채색하는 구성적인 작품을 하였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베닝턴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6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조각상을 수상하였다. 1970년대에 와서는 채색을 하지 않고 철의 거친 면을 강조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저 곳> 등이 있다.

뷰리[편집]

Pol Burry (1922∼)

벨기에의 조각가로 에느 상 피에르에서 출생하였다. 몬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그는 화가로서 출발하였지만 후에는 키네틱 아트에 속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5년 파리의 운동전(展)에 출품한 이래로 많은 키네틱 아트의 국제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의 특징은 작품 표현양식이 매우 자유롭고 다양하며, 작품은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시각(視覺)으로는 그 움직임이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정지하고 있는지 잘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룹 코브라의 창립회원의 한 사람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흰점>이 있고, 1988년 우리나라에서 서울올림픽 기념으로 열린 국제 야외조각 심포지엄 및 국제 야외조각 초대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팅겔리[편집]

Jean Tinguely (1925∼1991)

스위스의 조각가로 프리부르에서 출생하였다. 바젤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1952년 이후로는 파리에서 거주하였다. 1955년부터 고철폐물을 조립하여 이를 모터로 움직이게 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강력한 파괴적인 운동 속에서 인간적인 비애를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고, 1960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거대한 기계더미로 만든 작품인 <뉴욕 찬가>를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

현대의 폐물 조각과 키네틱 조각의 일인자로 꼽히고 있다.

생 팔르[편집]

Niki de Saint Phalle (1930∼)

프랑스의 여류조각가로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미국에서 살다가 1951년 파리로 돌아왔다.

1955년경부터 아르누보풍의 인형을 색칠을 하거나 아니면 물감을 채운 총으로 인형을 쏘는 등 <나나>라는 인형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66년에는 스톡홀름 미술관에서 팅겔리와 합작하여 <혼(그녀)>란 인형작품을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은 종이세공의 극채색 여체상으로 대지모신(大地母神)의 생명력이 흐르고 있고, 그 표현은 여자의 음부로 관중들이 들어가서 태내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플래니건[편집]

Barry Flanagan (1941∼)

영국의 조각가이다. 그는 작품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 다양하게 채택한 작가로 1966년부터 1968년 사이 개인전에서는 로프나 천을 사용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대 전반에는 이질적인 소재의 조합에 의한 형태의 결정체를 추구하여 거치른 마포를 커다란 원통형이나 원추형으로 끼워 맞춘 것에 모래를 담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모래를 사용하여 만든 작품이 다수 있는데, 1969년 베를린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태도가 형태로 바뀔 때' 전과 1970년 일본에서 열린 '인간과 물질'전 등에 모래를 이용한 작품이 출품되어 랜드 아트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다.

1973년부터는 개념미술이 비판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부터는 대리석 조각, 에칭, 도자기 등의 작품도 만들기 시작하였다.

타키스[편집]

Takis (1923∼ )

프랑스의 조각가로 실제는 그리스인으로 아테네에서 출생하였고 프랑스로 귀화하였다. 키네틱 아트의 조각가로 파리로 가서 자코메티, 세자르 등과 교제하면서 키네틱 아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54년 빛이 점멸하는 시그널 조각을 만들었으며, 1958년 전자기구를 응용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철선이나 구(球)가 이상한 움직임을 만드는가 하면 철가루가 자력의 회전에 따라 여러 가지 패턴을 만든다. 그는 '조각의 비밀은 개인의 천분이 아닌 자연의 힘 안에 감추어져 있다'라는 조각관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