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서양미술의 흐름/17∼18세기의 미술/17∼18세기의 영국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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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건축[편집]

17세기의 고전주의적 경향[편집]

-世紀-古典主義的傾向17세기 중기에 두 차례의 시민혁명을 경험하고, 또 1666년에 런던이 대화재(大火災)에 휩싸였던 영국에서는 후원자를 필요로 하는 미술활동은 전체적으로 번창하지 못하였으나 그 가운데 건축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고전주의적인 경향은 강하나, 프랑스가 비뇰라의 건축론의 영향을 받는 데 반해 영국은 팔라디오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이니고 존스(1573∼1652)가 먼저 팔라디오의 명쾌하고 전아(典雅)한 작풍을 들여 왔다. 그리니치의 퀸스 하우스(1615∼1921), 런던 화이트 홀의 연회당(1620∼1621) 등이 그 대표적이다. 존 웹, 로자 프레이트가 그를 계승하나 17세기 후반에는 혁명을 피하여 네덜란드로 피신한 휴 메이가 네덜란드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벽돌 축조의 고전주의적인 건축을 도입하여, 이후 이 알찬 건축양식이 영국에 뿌리를 박게 되었다.

렌과 반브류[편집]

런던 대화재 후 천문학자·수학자인 크리스토프 렌(Sir Christophe Wren, 1632∼1723)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건축의 영향을 받으면서 영국적인 바로크 건축을 이루어 놓았다.

특히 런던의 불탄 자리에 건립된 대다수의 교회당은 그의 손으로 된 것이었다.

세인트 스티픈 성당(1672), 특히 세인트 폴 대성당(1675∼1712)이 바로크의 화려함과 팔라디오의 경쾌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의 런던시 재건 계획안도 흥미있는 것이었으나 채택되지는 못했다.

존 반브류(Sir John Vanbrugh, 1664∼1726)는 별장건축식의 하워드 성(城)과 블레님 궁전에 있어서 바로크의 가장 남성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18세기의 영국 건축[편집]

-英國建築

시민혁명에 성공하고, 18세기에는 세계 제일의 부(富)를 축적하기 시작한 영국은 신고전주의적인 경향을 가장 일찍부터 보이기 시작하였다. 팔라디오는 이미 그 기초작업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라고 하지만 로마뿐만 아니라 에트루스크나 그리스의 본원(本源)으로 복귀하는 것, 또는 이집트나 중근동(中近東) 등의 고대 유적에서 얻어진 보고(報告)에 의해 다양한 작풍이 이국 정서를 환기하여 낭만주의를 준비시켰다.

전기에는 벌링턴 경(卿)을 중심으로 하는 팔라디오풍(風)의 건축, 후기에는 로버트 애덤스(1728∼1792) 등의 작업이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존 비도 부자(父子)에 의한 바스시(市)의 집합건축과 도시계획은 프랑스 건축가 에레에 의한 낭시의 세 개의 광장 못지않게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음을 나타내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정원[편집]

영국의 정원[편집]

샤프츠베리의 범신론(汎神論)이 출현하고, 풍경화가 환영을 받던 시대를 반영하여 정원도 프랑스식(式)의 기하학적인 인공미와 달리, 자연스러움을 보이는 정원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중국풍(中國風), 모로인(人)풍, 또는 고대 유적풍의 건축물이 건축되었다. 이 영국식 정원은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식 정원 이상으로 각국에 유행하여 프랑스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영국의 회화[편집]

영국의 회화·초상화의 전통[편집]

英國-繪畵·肖像畵-傳統네덜란드와 같이 신교국(新敎國)인 영국은 바로크 화가들이 즐겨 이용하던 고대신화(古代神話)를 제재(題材)로 채택하지 않았으나 그 대신에 초상화는 유행했다. 16세기 전반에 홀바인이 와서 정치(精緻)한 초상화 작품을 남겼으며, 17세기에는 플랑드르에서 반다이크가 옮겨와 전아(典雅)한 귀족적 초상화를 그렸으나 아류(亞流)를 낳은 데에 그쳤다. 그 가운데에는 윌리엄 다그슨(1611∼1646)이 반다이크보다도 완강한 바로크적 자질을 보여주었다.

바로크적 장식화에는 루벤스에 의한 화이트 홀의 작품 이후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화가가 활동하였으나 영국인으로서는 제임스 손힐(1675∼1734)이 그리니치 병원의 대(大)홀 천장화에서 일류저니즘을 발휘하였다.

영국화파의 탄생, 호가스[편집]

英國畵派-誕生-

항상 외국인의 활약에 한 발 양보를 면치 못하였던 영국인이 국민적 화가로서 자랑할 수 있었던 최초의 화가는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이다. 다른 곳보다 자유로운 언론이 허용되었던 영국에서는 풍자문학이 성행하였는데 회화 분야에서 이 일을 행한 것이 호가스였다.

<당세(當世)의 결혼 풍속> 등과 같이 몇 장을 일조(一組)로 하는 그림이 일련의 이야기로 엮어져, 권선징악을 설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후에 나오는 그루즈에 선행(先行)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루벤스에게 영향을 받은 대형적(大型的) 필치는 그후 영국 회화의 하나의 특징을 이루었다. 동판 화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외국에까지 퍼졌다.

풍자만화 분야도 호가스의 뒤를 계승하여 지를레이나 로렌슨이 활약하였다.

초상화가[편집]

肖像畵家

18세기 후반에 전통적 초상화가를 대표하는 화가는 아카데미의 총재도 역임한 바 있는 조슈아 레놀즈(1727∼1792)와 토마스 게인즈버러(1727∼1788)와 레이반이었다.

레놀즈는 아카데미의 중진(重進)으로서 고전주의적인 이론을 주장하였으나, 그 자신은 루벤스나 렘브란트 등 비고전적 예술(非古典的藝術)의 영향을 받아 바로크적이고 당당한 초상화를 그렸다.

게인즈버러는 반다이크 혹은 프랑스 18세기의 섬세·우아한 인물화의 영향을 받아, 경묘(輕妙)한 초상화가로서 사교계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풍경화와 수채화[편집]

風景畵-水彩畵

19세기 전반의 터너와 컨스터블에 있어서 절정(絶頂)에 달하였던 영국 풍경화는 리처드 윌슨(1714∼1782)에 의해 시작되었다. 게인즈버러가 가장 그리고 싶어한 것도 풍경화였는데 당시에는 아직 순수한 풍경화를 사는 손님이 없으므로 풍경화의 개척자는 생활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스케치나 유화의 밑그림에 불과하였던 수채화는 영국에서 환영받은 바 되어 새로운 전통을 이루었는데 그 기초는 샌드비, 커즌즈 등이며 그의 아들 커즌즈와 토머스 기틴 등에 의해 기술적인 완성을 보았다. 그 어느 것이나 풍경화를 그려 터너에게 바턴을 넘기게 되었다.

영국의 조각[편집]

영국의 조각[편집]

英國-彫刻

영국의 근세 조각은 기묘하리만큼 빈약한 것이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핸드릭 드 케이세르로부터 영향을 받은 니콜라스 스톤(1583∼1647), 18세기에는 영국인으로서는 특히 예거될 수 있는 작가가 없으나 프랑스인인 루비악이 정원 등의 조상(彫像)을 만들어 유명하였다.

영국의 공예[편집]

영국의 공예[편집]

英國-工藝

영국에서는 기본즈의 목공품(木工品)이 커다란 조각 장식을 갖는 것이나 한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칠(漆)을 사용한 것이 영국의 특색이었다.

18세기에는 치펀데일(Chippendale)이라고 하는 로코코식의 가구가 전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세기 후반에는 신고전주의적 가구, 금속식기류(金屬食器類)도 각국에서 모방되어 1768년 이후에는 조슈아 웨지우드가 고대풍의 항아리를 제조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