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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의 교육[편집]

宗敎改革期-敎育

마틴 루터에 의하여 이루어진 종교개혁은 종교운동인 동시에 교육운동이기도 하였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모두가 교육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으로 새로 나타난 신교를 포교함과 동시에 교육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을 통하여 교회 자체가 큰 교육기관화되어, 종교개혁 시대의 신교 교육은 교회 옆의 학교에서 담당했다.

신교주의자들에 의하여 표방된 교육의 목적은 내세의 빛나는 생활을 보증하기 위하여 항상 현재의 생활을 가치있는 것으로 하게 하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하면 자유롭고 합리적인 신앙과, 한편 사회적 도덕을 지닌, 성속(聖俗)이 통합된 생활을 조화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근대적 기독교도를 양성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교육은 가정·직업·교회·국가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충분히 훈련하는 것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고, 종교적 도덕주의, 내세와 현세를 위한 준비, 가정과 교회와 직업과 국가에 대한 임무와 봉사를 중시하였다. 신교주의 교육자들은 교육을 교회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국가에 대한 훈련이라고 본다. 따라서 신교의 목적은 현세적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인류의 행복을 강조하여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 봉사하고자 하였다.

신교주의 사상에 입각한 교육의 내용을 살펴보면 초등학교에서는 독서(모국어)·성서·라틴어·습자·산수·도덕·음악·체조 등을 배우게 하고, 그 중에서도 성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또한 성서 다음으로 음악도 중시하였다. 중등학교의 교육내용은 대부분이 인문주의적 교과목이었다. 즉 라틴어·그리스어·히브리어·변증법·수학·수사학·웅변학이 중시되었으며, 대학에서는 중세의 스콜라 신학 대신에 성서주서(聖書註書)가 요구되었다. 그리고 법학·의학·철학·과학도 중요한 교육과정이었다.

신교의 교육방법은 키케로의 <웅변론>, 퀸틸리아누스의 <웅변교수론>의 형식적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학습지도에 있어서는 형식주의·암기주의·주입주의적 교육을 하였고, 때로는 교육에 있어 체벌과 엄격한 훈련을 가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인 의미에서 볼 때 종교개혁기의 신교의 교육방법은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주입식 교육이었다.

종교개혁은 서양교육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신교는 성서를 해석하는 것도 양심의 자유와 이성의 권위를 토대로 하였고, 따라서 교육에 있어서는 합리적인 이성의 개발에 중점을 두었다. 이것이 교육에 있어서의 이성주의다. 이 이성주의를 기초로 해서 다시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발달하게 된다.

(2) 종교개혁에 의하여 성서가 일반 평민에게까지 개방되었으며, 이에 따라 참된 기독교를 알리기 위하여 교육의 보급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보통교육이 진흥되었는데, 특히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보편적인 대중교육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3) 종교개혁에 의한 신교의 새로운 직업윤리 때문에 교육내용에 있어 실과교육이 강조되었다.

(4) 종교개혁운동을 통하여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상이 더욱 확고해졌으며,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는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개개 시민의 권리가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종교개혁에서 이루어진 교육은 민주적 특색을 갖게 되었다.

(5) 루터는 종교개혁에 대한 그의 과업의 성취를 위하여 학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종교개혁에 의한 학교제도는 독일 교육제도의 신기원을 이루게 되었고, 이러한 제도는 차츰 각국에 보급되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을 계기로 서양의 교육제도는 중세적인 학교교육으로부터 근대교육의 전제가 되는 세속적 학교제도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학교가 장차 종교와 분리하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 것이다.

마틴 루터의 교육사상[편집]

Martin Luter-敎育思想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1483-1546)는 신교를 대표하는 교육사상가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그는 종교개혁자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 당시의 교육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의 교육이념 중에는 한편으론 종교교육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론 도덕교육, 곧 아동들을 기독교적 신사와 숙녀로 육성하고자 하는 두 가지의 명확한 관점이 있다. 그는 학교를 기독교 중심적인 생활방법을 장려하는 곳으로 보고, 교육은 성서를 모든 생활과 직업에 응용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가 생각한 교육목적은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그의 위치를 정하고, 개개 학생이 제각기 맡은 사명을 담당할 수 있는 유용한 인간이 되게 양성하고 훈련시키는 데 있었다. 또한 성품을 도야하고, 가정과 국가와 교회를 위하여 각자가 지닌 상이한 기능을 활용케 하려고 했으며, 전인적(全人的)인 인간의 완성을 도모하고, 가정에 있어서는 유용하고 행복한 일원이 되게 하며, 교회에 대한 봉사와 국가에 대하여 책임있는 시민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개개인을 양성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보았다.

그의 교육사상을 집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정교육을 국가발전의 기초로 삼았다. 그에 의하면 교회와 학교가 아동의 교육을 보충할 수는 있으나, 그것들이 결코 교육에 있어서 가정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아동의 교육적 책임을 주로 가정에 맡겼다고 했다.

둘째, 루터는 학교의 필요성을 전제로 국가가 학교 설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가정의 교육적 책임이 크다고 하였으나, 부모는 대체로 교육에 대하여 성의는 있되 이를 만족스럽게 수행할 능력과 성실성이 없다는 점과, 또 자녀에 대한 교육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유치한 정도라는 점, 그리고 설사 교육방법에 관한 훌륭한 지식은 있어도 이를 실천에 옮기기에는 너무도 세속의 일에 쫓기고 있다는 점 등의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학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한 학교의 설치는 세속 정부와 도시행정부 당국의 책임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루터는 의무교육을 주장한 최초의 현대교육의 개혁자로 인정받고 있다.

셋째, 학문의 보존을 위해서 각 도시에 도서관 설치를 요구하였다.

넷째, 여자에 대한 학교교육을 주장하였다. 그는 여자는 매일 한 시간씩 학교에 가서 공부한 다음 집에 와서 그들의 일에 열중해야 하고, 능력과 재능을 가진 여자에게는 특별한 교육의 특전을 주어, 교사의 지위까지라도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루터는 여성교육의 향상을 위한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교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특히 가르치는 교사의 직무를 중시하였다. 그는 교육자의 직책과 그 지위는 존경을 받을 만한 것이라고 하였다.

루터는 이와 같은 교육사상에 입각하여 독자적인 교육제도를 구상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모국어 초등학교(Vernacular Principal School)-읽기·쓰기·체육·음악·성경·직업·가사를 교육내용으로 한다.

(2) 라틴 중학교(Latin Secondary School)-라틴어·그리스어·수사학·문법·변증법(논리학)·역사·과학·수학·음악·문학·체조 등을 가르친다.

(3) 대학-대학의 주요 교육내용은 전문 직업훈련과 언어학 및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등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그의 교육사에 있어서의 위치는 보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그 결과로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학교제도를 확립케 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구교의 교육[편집]

舊敎-敎育

종교개혁을 계기로 신교가 포교에 힘쓰는 한편, 교육의 개혁과 진흥·보급에 주력하고 그 세력을 확장해 감에 따라서 신교의 세력이 신장된 반면에, 상대적으로 구교는 점차 위축되어 갔다.

이에 구교를 옹호하고 구교 자체의 재정비를 단행하여 신교에 대항하고자 하는 '반종교개혁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운동의 선봉에 나섰던 사람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ala, 1491-1556)였다. 그는 1540년 제수이트 교단(Jesuit order)을 창설하여 구교의 포교에 힘썼으며, 포교에는 언제나 교육을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제수이트 교단은 구교주의 교육의 대표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제수이트 교단의 교육[편집]

Jesuit敎團-敎育

이 교단의 교육목표는 구교주의에 입각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있었다. 그들은 교도의 정신적·도덕적 훈련을 기도하고, 교도를 구교의 교의(敎義)와 교회규정에 맞도록 교육함으로써 종교적으로 사고하며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이 있는 기독교적 신사와 기독교적 지도자 내지는 학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제수이트 교단의 교육은 너무 종교적이고, 라틴어를 중시해서, 결과적으로 모국어를 무시하는 경향을 가져왔다.

제수이트 교단의 교육방법은 강의와 반복의 두 단계의 방법을 통하여 교사는 먼저 학과를 학생에게 강의했고, 다음에 이를 반복토록 하였다. 또 학생의 개인적 능력을 존중하였고, 학습자에게 학습동기를 유발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는 한편, 군대교육과 같이 상벌제(賞罰制)를 만들어 절대적인 권위 속에서 학생들에게 고도의 경쟁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들은 훌륭한 태도교육을 실시하여, 기사도적인 운동·게임 및 연주를 시키기도 하였다.

교육제도는 하급과(Studia inferiora)와 상급과(Studia supe­riora)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전자는 중등교육 정도이고, 후자는 대학교육이었다.

대학의 교육기관은 7년 내지 9년 간이었다. 즉 처음 3년 동안은 철학부에서 논리학·형이상학·심리학·수학·기하삼각법·미적분·자연과학을 공부하였다. 자연과학에는 천문학·물리학·지질학·생리학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완전히 이수한 사람에게는 석사학위와 함께 중등학교 교사자격증이 수여됐다.

석사학위를 받고서 제수이트 교단의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4년간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해야 헸다. 이때의 교육내용은 성경·히브리어·교회사·교회법·동양어 등이었다. 이 과정을 마친 후 다시 2년간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여 논문을 제출하고, 공개시험에 합격하면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중등학교의 교육기간은 5년 내지 6년으로, 10세부터 14세까지의 학생이 입학할 수 있었다. 교육내용은 라틴문법·그리스어·역사·고전문학·수사학 등이었다.

제수이트 교단의 교육은 가톨릭교가 전파되는 곳 어디서나 구교주의에 입각한 교육을 주로 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존속하면서 유럽뿐만 아니라 동양에까지도 전파되어, 오늘날에는 전세계에 걸쳐 80여 개에 달하는 대학과 600여 개에 달하는 중등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300여 종의 학술-문화잡지를 간행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교육사상[편집]

Ignatius Loyola-敎育思想구교의 교육단체였던 제수이트 교단을 창설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1491-1556)는 신교에 대항할 종교적인 무기는 교육적인 훈련이라고 보고 구교주의에 입각한 교육에 힘썼다.

그의 교육이념은 학생들로 하여금 덕에 대한 실천을 가르치고 그들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로욜라는 제수이트 교단의 격언인 '사랑에 의하여 항상 다스리라'라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합일하는 것에 교육적 수단을 두고, 모든 인간이나 민족이 차별 없이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의 번영을 위하여 학문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 그는 피교육자의 인격도 잊지 않았다.

교육내용은 라틴어·인문과학·철학·신학이었다.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처음에 라틴어와 인문과학을 배우게 하고, 그 다음으로 철학과 신학을 연구케 하였다.

첫째, 자발성과 훈련을 강조하고 둘째, 학습에 있어서 습관·노력의 지속과 반복을 주장하였다. 이 원리는 주요한 학습경향을 계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그 축적 효과를 얻자는 것이다. 셋째, 그는 가끔 학문적 논쟁을 육성시키기 위하여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중요시하였다. 넷째로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표현력을 향상케 하기 위해 유희나 극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사상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명상만이 아니고 활동적인 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나 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제수이트 교단의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더욱더 신체적 훈련에 힘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