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상/서양의 사상/현대의 사상/현대의 사상〔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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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현실을 진단하고 해석하는 원리인 동시에 현실을 개조(改造)하고 변혁하려는 원리다. 사상은 현실에서 출발하여 현실로 돌아온다. 현대의 여러 사상체계는 현대에 대한 진단과 해석의 원리인 동시에 현대에 대한 변혁과 개조의 원리다. 중요한 현대 철학사상의 조류로서 신칸트 학파, 현상학(現象學),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 프래그머티즘, 분석철학, 생(生)의 철학, 실존주의 등을 들 수 있다. 근대의 철학사조는 진보주의와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는 합리주의적 관념론의 체계이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헤겔의 관념론 철학이다. 그러나 현대의 철학은 그렇지 않다. 아이디얼리즘의 철학에서 리얼리즘의 철학으로,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삶과 유리된 철학에서 삶과 직결되는 철학으로, 합리적인 관념론에서 구체적인 실재론으로, 이데아와 로고스의 철학에서 리얼리티와 파토스의 철학으로, 이것이 현대 철학사상의 일반적 방향이요 두드러진 특색이다. 다음에 현대의 중요한 사상을 약설(略說)하기로 한다.

프래그머티즘[편집]

1878년은 미국 철학의 획기적인 해이다. 즉 프래그머티즘의 선구적 사상가인 퍼스가 실용주의(實用主義) 철학을 제창한 해이다. 실용주의는 미국인의 세계관이요, 국민철학이요, 생활신조다. '프래그머'란 말은 그리스어 Pragma에서 유래한다. 행동(行動)이란 뜻이다. 프래그머티즘은 행동의 입장에서 진리와 지식을 새로 해석한 철학이다. 실용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지식과 진리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다. 진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한 철학자가 윌리엄 제임스다. 제임스에 의하면 어떤 관념이나 이론이나 사상이 진리냐 진리가 아니냐를 결정하는 표준은 그 관념이나 사상이나 이론을 우리 행동에 옮겨서, 좋은 실제적 결과가 생기면 그것은 진리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진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유용성(有用性), 공리성(功利性=Utility)이 진리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반대와 비판이 나왔다. 유용하니까 진리인 것이 아니라 진리이니까 유용하다고 제임스의 진리관(眞理觀)을 반박하는 이론이 나왔다. 제임스의 명저 <프래그머티즘>은 실용주의의 근본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지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한 것이 존 듀이이다. 듀이에 의하면 개념은 도구(道具)이다. 바로 이것이 듀이의 개념도구설(槪念道具說)이다. 즉 개념이나 지식이나 사상이나 이론은 모두 우리의 생활과 행동을 위한 도구로서 인간의 생(生)에 봉사하여야 한다. 듀이는 그의 프래그머티즘을 도구주의(道具主義, Instrumentalism)라고 칭한다. 듀이는 창조적 지성을 강조한다. 지식의 도구적 성격과 수단적 기능을 역설한다. 우리는 왜 사고하는가, 어떤 문제나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사고한다. 사고는 문제 해결의 노력이다. 인간의 창조적 지성이 모여서 사회적·집단적 지성이 된다. 우리는 창조적 지성, 사회적 지성을 가지고 사회를 점진적으로 개혁하고 형성해 나가야 한다. 프래그머티즘은 인간의 지성의 복음을 신봉하는 낙천적인 철학이다. 프래그머티즘은 퍼스에게서 싹이 트고 제임스에게서 개화하고 듀이에게서 결실을 맺은 미국의 국민철학(國民哲學)이라고 할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편집]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제창한 유물론의 철학은 레닌에 의해서 계승되어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마르크시즘은 하나의 방대한 세계관이다. 그 정치이론은 계급투쟁이요, 그 역사이론은 유물사관이요, 그 경제학은 잉여가치설(剩餘價値說)이요, 그 철학이론은 소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서 이 여러 이론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마르크시즘에 관해서는 사르트르의 비판이 가장 예리하게 그 정곡(正鵠)을 찔렀다. 즉 유물론은 실증주의를 가장(假裝)한 하나의 형이상학이요, 변증법은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는 논리요, 유물변증법은 혁명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마르크시즘은 세계해석의 철학을 반대하고 세계변혁의 철학을 강조한다. 그러나 오늘날 최근까지도 마르크시즘은 공산주의의 전투적 이데올로기로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해 오는 혁명의 철학이었다. 그들의 유물론은 전투적 유물론이요 실천적 유물론이었다. 이 점이 종래의 유물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생의 철학[편집]

독일의 하이네만 교수는 현대철학의 방향을 "정신에서 생으로, 생에서 다시 실존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했다. 생의 철학은 현대의 중요한 조류 중 하나이다.

우리는 네 사람의 중요한 생의 철학자를 들 수 있다. 쇼펜하우어, 니체, 베르그송 그리고 슈바이처이다. 이것은 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발전한 철학이다. 거의 모든 생의 철학자들이 인간을 생(生)으로 하나의 '의지(意志)'로 파악하려고 했다. 인간의 생은 헤겔이 주장한 것처럼 합리적인 것이나 주지적(主知的)인 것이 아니다. 의지적인 것이요, 주의적(主意的)인 것이다. 생의 철학은 대체로 방법에 있어서 직관적(直觀的)이요, 비체계적(非體系的)이다. 생의 철학의 시조(始祖)라고 볼 수 있는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근본실재는 살려고 하는 맹목적(盲目的) 생명의지(生命意志= Blinder Wille zur Leben)요, 인간도 이 의지에 지배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극단한 염세주의(厭世主義) 철학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생의 의지를 오히려 부정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니체는 생의 본질을 권력의지(Wille zur Macht)로 보고 권력의지의 구현자(具現者)를 초인(超人)이라고 주장하여 일체의 가치평가(價値評價)의 전도(轉倒)를 외쳤다. "생물이 존재하는 곳에 나는 권력의지를 발견한다"는 그의 명제는 그의 철학의 핵심을 갈파할 수 있는 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강조하고 생의 비약을 역설한다. 그는 우주 전체를 창조적 진화의 체계로 보았다. 슈바이처는 인간의 생을 종교적·윤리적 방향으로 심화했다. 그는 일체 생명의 외경(畏敬)을 강조한다. 생명은 신성하기 때문에 생을 존중해야 한다. 물질적 진보 의지만 강조하고 윤리적 진보 의지를 등한시하는 현대문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윤리적 세계, 즉 생의 긍정을 핵심으로 하는 생의 외경의 세계관이라고 그는 말한다.

분석철학[편집]

실존철학과 서로 대립 반발하는 현대철학의 하나의 주류로서 우리는 과학철학 또는 분석철학(分析哲學)을 들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실존철학과 분석철학은 현대철학의 2대조류(二大潮流)라고 할 수 있다. 실존철학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주로 발달했지만 분석철학의 한 줄기 연원(淵源)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고, 또 한 줄기의 원천은 영국에서 비롯하여 미국에서 발전했다. 분석철학은 또 논리적 실증주의라고도 일컫는다. 엄밀히 말하면 그 개념 내용이 다르지만 대체로 같은 계열에 속한다. 1922년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교 교수인 슐리크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1929년에는 빈 학단(學團=Vienn circle)이 형성되고, <과학적 세계파악(世界把握)>이라는 팜플렛의 간행으로 시작하여 논리적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가 탄생했다. 이 그룹은 하나의 국제적 철학운동으로서 여러 계통의 학자들이 포함된다. 한편 20세기 초에 미국의 G. E. 무어와 버트런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등이 중요한 핵(核)이 되어 분석철학 ―― 케임브리지 학파라고 한다 ―― 의 조류를 형성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論考)>는 분석철학의 기념비적 저술이다.

나치스 집권 이후에 미국으로 망명한 빈 학단의 여러 철학자들 ―― 카르납, 라이헨바흐, 파이글, 괴델 ―― 이 중심이 되어 미국은 과학철학의 풍요한 철학적 토양을 이루었다. 분석철학의 일반적 특색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반(反)형이상학이요, 둘째는 논리주의(論理主義)요, 셋째는 언어분석(言語分析)이다. 분석철학은 형이상학을 불신하고 반대한다. 서양철학의 전통은 실체개념(實體槪念)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데카르트의 실체(實體), 칸트의 물(物) 그 자체(自體),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근대 과학기술의 발달과 경험론적 실증주의의 사고방식은 철학으로 하여금 실체개념을 포기케 했다. 분석철학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지식의 환상을 줄 뿐이다. 형이상학은 무의미하고 기만적이다. 그것은 지식의 영역 밖에 있다. 철학은 이성을 존중한다. 이성의 존중은 구체적으로 논리의 존중이다. 분석철학에 의하면 철학은 과학의 논리학이요, 철학의 임무는 논리적 분석에 있다고 주장한다. 분석철학은 언어분석을 역설한다. 철학은 개념이나 명제의 의미를 밝히는 동시에 언어의 논리적 분석(logical analysis of language)을 해야 한다. 분석철학이 실증주의적 정신을 강조하고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중시한 것은 귀중한 철학적 공헌이지만, 분석철학이 그것으로 그친다면 한낱 과학의 노비(奴婢)로 전락하고 인간의 사회에 실천이나 가치관이나 주체적 행동이론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이것은 분석철학의 치명적 결점이 아닐 수 없다.

실존주의[편집]

현대철학은 근대철학에 대한 하나의 비판과 도전에서 시작한다. 이성과 현실의 일치를 주장하고 개체를 무시한 절대자의 이념(理念)을 강조하며, 너무나 추상적·논리적 사고를 역설한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는 데서부터 실존주의(實存主義)가 탄생했다. 덴마크의 고독한 천재적 사상가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주의의 시조다. 그는 실존을 발견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하나의 구체적인 단독자(單獨者), 남과 대용(代用)하거나 대치할 수 없는 독자적 의의와 가치를 지니는 개별자(個別者)를 그는 실존이라고 했다. 인간의 실존의 구조와 본질을 밝히려는 것이 실존주의이다. 실존은 인간의 현실존재를 의미하는 동시에 진실존재를 의미한다. 그래서 실존이다. 실존은 참된 나요, 본래적(本來的) 자기(自己)이다. 그러면 어떤 나가 참된 나요, 어떤 자기가 본래적 자기인가. 실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실존주의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실존주의요, 또 하나는 무신론적(無神論的) 실존주의다. 전자는 신(神) 앞에 서는 실존을 강조하고 후자는 신과 무관한 또는 신을 부정하는 실존을 역설한다.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이 전자에 속하고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가 후자에 속한다. 신을 긍정하는 실존이건, 신을 부정하는 실존이건, 실존주의는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하나는 주체성(主體性)의 원리요, 또 하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다. 실존은 도구나 물건이 아니다. 주체적인 자각과 자유로운 결단의 행동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실존주의는 객관과 대상을 조용히 바라다 보는 객관주의나 관상주의(觀想主義, 테오리아)의 철학이 아니다. 실존적 사고(思考)는 주체적 자각에 의해서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기를 강조하는 행동주의의 철학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결단의 문제"라고 한 야스퍼스의 말이나, "과학에 있어서는 엄밀하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철학에 있어서는 엄숙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하이데거의 말은 실존주의의 정신과 태도를 잘 나타낸 말이다. 실존주의는 객관적 진리에 대해서 주체적 진리를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을 합리적 로고스의 면에서만 파악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파토스의 면에서도 분석한다. 실존주의는 또 현대의 문명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날카로운 분석을 가하고 현실재건(現實再建)과 인간의 자기 회복(自己回復)을 역설한다. 현대의 위기적 상황 속에서 자기가 자기를 상실하고 소외되고, 인간이 비인간화(非人間化)되기 쉬운 병리(病理)를 지적하면서 인간이 자기 환귀(還歸)와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실존주의의 특색이다.

나는 이상에서 현대철학의 중요한 조류를 약설했다. 이 모든 철학들이 1831년에 별세할 때까지 전 유럽의 사상계에 군림했던 헤겔의 관념론 철학에 대한 비판, 도전, 극복의 이론으로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실존철학은 헤겔 철학의 주체성을 망각한 추상적 이론에 대해서, 분석철학은 그 형이상학에 대해서, 유물론은 그 관념론에 대해서, 생의 철학은 그 주지주의에 대해서 각각 반대하고 비판하는 데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은 현실해석의 원리인 동시에 현실개혁의 원리이다. 현실의 사상이 앞으로 어떻게 현대와 대결하고 현대를 이끌고 나아갈 것이냐, 이것은 미래에 속하는 과제이다.

<安 秉 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