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계몽적 전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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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적 전제정치〔槪說〕[편집]

18세기의 절대주의, 특히 동유럽의 절대주의는 계몽적 전제정치로서 특징지어진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프레더리크 2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마리아 테레사)와 요제프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의 통치는 그 전형이라 하며, 그들은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개명적(開明的)인 사회 개혁을 실시하고 정치·경제의 근대화를 수행하여 강력한 근대 국가 건설을 기도했다. 그와 같은 위로부터의 개혁은 봉건적 여러 관계가 강하게 남아서 자본주의의 발달이 미숙한 동유럽 여러 나라가 서유럽의 선진국에 대항할 필요에서 실시된 것이었다. 따라서 봉건 귀족적 세력을 유지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국력의 증대를 꾀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으며, 개혁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 본질적으로는 절대주의임에 변함이 없었다.

독일에서는 30년전쟁의 황폐 속에서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확대를 개시하였고, 18세기에는 계몽적 전제정치 아래 강화된 양국이 독일의 지도권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대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융커의 나라인 프로이센은 그 성격을 최대한으로 살려서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로 발전하였으며, 프리드리히 2세 통치시대에 두 번이나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강국의 지위를 확립했다. 18세기 후반 3회에 걸쳐서 폴란드를 분할하여 더욱더 강대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국내에 많은 이민족(異民族)이 있어 마리아 테레지아, 요제프 2세에 의한 개혁도 별로 효과를 올리지 못하여, 차차 독일 통일을 지도하는 입장을 잃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프레더리크 윌리암 1세)[편집]

-世 Friedrich Wilhelm Ⅰ (1688

1740, 재위 1713

1740)

군국주의(軍國主義) 국가 프로이센의 기초를 확립시킨 왕. 프로이센은 에스파냐의 계승전쟁에서 황제군편에 들어 1701년에 정식으로 왕국으로 인정받았는데, 그 2대째의 왕이다. 그는 국내를 절대주의적 체제로 편성하여 왕권의 강화를 꾀함과 동시에 소국으로서는 과분하다고 할 만큼 군비 확장에 노력하였고, 따라서 재정을 긴축시켜 국고의 충실을 도모했다.

프리드리히 2세 (프레더리크 2세)[편집]

-世 Friedrich Ⅱ (1712

1786, 재위 1740

1786)

계몽적 전제군주의 전형이라 하며 프로이센을 강국의 지위로 확립한 왕. 그가 즉위하던 해에 일어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 이어서 7년전쟁에 있어서 오스트리아를 격파하여, 자원이 풍부한 슐레지엔(실레지아)을 획득함과 동시에 프로이센을 독일에 있어서의 지도적 세력으로 만들고 유럽의 강국으로서 지위를 확립했다. 그 후에도 제1회 폴란드 분할에 참가하는 등, 영토 확대에 노력했다. 또한 프로이센의 국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하여 왕령지(王領地)의 농민 해방, 산업의 육성, 사법제도의 개혁, 육군의 증강, 종교의 관용(寬容) 등 개명적 정책을 수행했다. 볼테르 등의 계몽사상가와 친교를 맺고 ‘군주는 국가 제일의 심부름꾼’이라 칭했으나 본질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 군주였다. 로코코식 건축의 대표인 상수시 궁전을 조영(造營)한 일로도 유명하다.

융커[편집]

Junker

프로이센의 지배 계급을 형성한 보수적인 토지 귀족. 동부독일 지방은 중세 말의 식민운동에 의해 개발되었고 농민의 부역 노동에 의한 상품 생산을 위하여 대농장이 경영되었다. 이와 같은 대농장을 소유·경영한 토지 귀족을 융커라 불렀다. 그들은 융커끼리만 결혼하여 폐쇄적 사회를 형성한데다 소박하고 사교성이 없었으며, 예술에 대한 이해는 없었으나 왕가에 대한 충성심은 두터웠다. 농업 경영을 함과 동시에 프로이센의 행정 기구의 중요한 자리나 상급 장교의 지위를 독점하였고 큰 세력을 휘둘러서 특권을 유지했다. 그 세력은 통일 후의 독일에도 존속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부 독일의 농업 개혁에 의해서 소멸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마리아 테레사)[편집]

Maria Theresia (1717

1780, 재위 1740

1780)

오스트리아 여황제. 프로이센에 대항하여 국력의 유지 강화에 노력했다. 즉위 때 열국(列國)은 여자의 제위 상속에 이의를 제기하고 오스트리아의 분할을 기도하여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을 시작,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을 점령했다. 그녀는 영국과 동맹을 맺고 싸워, 1748년 아헨 조약에서 제위(帝位)를 확보했으나 이탈리아에 있던 영토와 슐레지엔 등을 상실했다. 그 후 재정개혁과 상공업의 진흥에 주력하였고, 프랑스·러시아와 동맹하여 슐레지엔의 수복을 목표로 7년전쟁을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만년에는 제1회 폴란드 분할에 참가하여 영토를 확대하고, 법전의 개정, 교육 제도의 정비 등에 의해서 국력 회복에 노력하여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를 확보했다.

요제프 2세[편집]

-世 Joseph Ⅱ (1741

1790, 재위 1765

1790)

오스트리아의 계몽적 전제군주이다. 처음에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공동 통치하였고, 1780년 그녀의 사후 여러 개혁을 단행했다.

즉 관용령(寬容令)으로 가톨릭을 누르고, 예민령(隸民令)·형벌령(刑罰令)·폐지령(廢止令) 등을 발표하고, 세제(稅制)개혁(1789)을 단행하여 영주의 세력을 누르고 중앙집권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1785년에는 네덜란드, 헝가리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교회정책은 성직자들로부터 반항을 받았으며, 외교면에서도 1785년 러시아와 결탁하여 바이에른 침입을 획책하였다가 제후(諸侯) 동맹의 반대로 좌절되었고, 1788년 투르크 전쟁에서도 패하는 등 실패가 많았다. 그의 개혁을 일관하는 내정면의 진보성은 ‘요제프주의’로서 19세기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