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이란의 쇠퇴와 아프간족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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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쇠퇴와 아프간족의 독립〔槪說〕[편집]

사파비 왕조의 번영기가 지나자, 이란은 20세기까지 긴 쇠퇴의 시대로 들어갔다. 18세기는 페르시아 문학이나 문화에 있어서 가장 불모(不毛)의 시기였다. 사파비 왕조 제9대 왕 후세인(재위 1694

1722)은 재정 궁핍에 고민하여 농민에게 중세를 부과했기 때문에 불만이 고조하였다. 이 국정의 어지러움에 편승하여, 1722년 아프간족이 침입하여 이스파한을 빼앗고 1729년까지 이란을 지배했다. 재기를 꾀하는 사파비 왕조의 왕을 도와서 아프간족을 격퇴시킨 나디르 쿨리는 1736년 스스로 왕위에 올라 나디르 샤라 칭하고 아프샤르 왕조를 수립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을 복종시켜 북인도에 침입하였고, 또한 중앙아시아의 보하라 한국과 히바 한국을 복속시켰다.

그러나 1747년에 그가 암살당하자, 이란은 또다시 분열상태에 빠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흐마드 샤 두라니가 자립하여 아프간족의 민족적 독립을 실현했다. 이란에서는 카림칸(汗)이 호라산을 제외한 전국을 통일하여 젠드 왕조를 창건하였다. 그러나 젠드 왕조의 지배는 반세기도 가지 못하였고, 1779년에 자립한 카자르 왕조가 18세기 말에 젠드 왕조와 아프샤르 왕조를 멸망시켜 이란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또한 중앙 아시아에서는 18세기 초 우즈베크족에 의해서 코칸트 한국이 성립되었다.

나디르 샤[편집]

Ndir Shh (1688

1747, 재위 1736

1747)아프샤르 왕조의 창시자. 이란을 지배하고 있던 아프간족을 무찌르고 오스만 투르크와 싸워 서방 국경의 실지(失地)를 회복했다. 1736년 사파비 왕조에 이어서 즉위했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북인도에 침입하고 1739년 델리를 점령하여, 시민의 학살을 자행했다. 1740년에는 보하라, 히바의 두 한국(汗國)을 항복시켜서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러나 그의 공포정치로 인심은 이탈되고 1747년 진중(陣中)에서 암살되었다.

아프샤르 왕조[편집]

-王朝

나디르 샤가 시작한 왕조(1736

1796). 그 이름은 그가 속하고 있던 투르크계 아프샤르(Afshr) 족에 유래한다. 나디르 샤가 죽은 후 호라산 지방에 모여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796년에 카자르 왕조의 공격을 받아 4대로서 멸망했다.

두라니 왕조[편집]

-王朝

아흐마드 샤 두라니(Ahmad Shh Durrani, 재위 1747

1773)가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의 왕조(1747

1842). 나디르 샤가 죽은 후, 부장(部將)이었던 아흐마드는 칸다하르에서 독립하여 아프간인(人)의 민족국가를 건설했다. 그의 사후 왕위 계승 싸움이 계속되고, 19세기에는 재상인 바라크자이가(家)에 주권이 옮겨졌다.

젠드 왕조[편집]

-王朝

이란에 일어났던 왕조(1750∼1794). 아프샤르 왕조의 나디르 샤가 암살된 후 라크족(族)의 한 분파(分派)인 젠드(Zend) 부족의 카림칸은 여러 지방에 할거하는 군웅(群雄)을 제거하고 이란 전토(全土)를 통일하였다. 그는 선정(善政)을 베풀고 수도(首都)의 미화(美化)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1779), 동족(同族) 중에 왕위쟁탈전이 격화되자 1794년 카자르 왕조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카자르 왕조[편집]

-王朝

투르크계 카자르(Qjr) 족의 아가 무하마드(재위 1779

1797)가 젠드 왕조 카림칸이 죽은 후 독립하여 창건한 왕조(1779

1925). 테헤란에 수도를 두었다. 왕조 초기에는 러시아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국위(國威)를 해외에 떨쳤으나 러시아와의 두 번째 싸움에 패하여 치외법권(治外法權)을 인정하고(투르크만차이 조약:1828), 이것이 열강(列强)들에게도 적용되어 이란의 식민지화(植民地化)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하여 바브교(敎)나 아프가니에 의한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나, 1906년에는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가 채택되었다. 영국·러시아의 제국주의 침략은 계속되어 1912년에는 정식으로 영국·러시아의 이란 분할협정(分割協定)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반(半)식민지화 되었다. 그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혼란을 수습할 수가 없어 1925년 국민의회에 의해서 폐위되었다.

코칸트 한국[편집]

-汗國

우즈베크족이 중앙 아시아에 세운 3한국 중의 하나. 18, 19세기에 고래의 페르가나의 땅을 영역으로 한 나라이다. 수도는 코칸트(Kokand). 이 도시는 서투르키스탄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도시이며, 유명하게 된 것은 이 한국(汗國)의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17세기까지의 페르가나에는 호자가(家)의 정권이 분립되어 있었는데, 1709∼1710년 우즈베크족의 수장이 그들을 평정하여 코칸트 한국을 세워, 그 후계자에 의하여 페르가나 전역이 통일되었다. 그러나 준가르부·회부(回部:위구르부)를 지배한 청조(淸朝)의 세력이 미치자, 1759년에는 그 종주권을 인정하고 반세기 동안 공물과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그동안에 국세(國勢)가 확충되어 북방으로 영토를 넓혔고, 동시에 청조에 대해서도 공물과 사신의 파견을 폐지하고, 1831년에는 청조로부터 무역의 면세특권을 얻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들어 내란의 빈발, 보하라 한국의 압박과 러시아의 진출로 쇠퇴 일로에 있다가, 1875년 한국(汗國)내에서 일어난 반란을 구실로 출병한 러시아의 투르키스탄 총독 카프만 휘하의 군대에 의해 수도 코칸트가 함락되었다. 그후 러시아에 병합된 뒤, 투르키스탄 성의 한 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