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남북전쟁과 제국주의의 발전/19세기 후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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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문화〔槪說〕[편집]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자연과학이나 자본주의의 발달, 시민 사회의 성립에 수반하여 사람들은 냉철한 눈을 가지고 자연이나 인생·사회를 응시하게 되었다. 예술면에서는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낭만주의의 비현실적 경향에 불만을 가지게 되어 사실주의(寫實主義)나 자연주의처럼 현실을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졌다. 사실주의는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하고, 자연주의는 그 경향을 더욱더 추진, 자연과학의 영향 밑에서 현실을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진실에 이르고, 또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심각해진 사회 문제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여 사회악이나 추한 사회상을 사실대로 파헤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조 아래서 많은 문학가와 미술가가 제각기 개인적 및 국민적 특색을 보인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았다. 사상계에 있어서도 현실주의적 경향이 강해 실증주의(實證主義)·공리주의(功利主義) 등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계적인 진화론적 우주가 과학적으로 해명된 것처럼 생각된 데서부터 이 시기의 사상은 전체적으로 유물주의(唯物主義) 경향의 특색을 강하게 띠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면 사회의 모순이나 국제 관계의 긴장이 격화되고 문화 영역 전반에 걸쳐서 현실주의는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절망감을 느끼게 되어, ‘세기말(世紀末)’이라고 하는 퇴폐·권태 의식이 생겨났다. 문학에서는 이러한 정신 상태를 반영하여 현실을 도피하고 외적 세계를 고독한 개인의 내면적 고뇌의 표현으로 잡아보려고 하는 상징주의나, 미(美)를 위한 미를 추구하는 탐미주의(眈美主義) 등 초현실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다. 사상·철학 면에서도, 세기말에는 유물론을 배척하여 개성의 복권(復權)이 기도되어, 새로운 주관주의(主觀主義)·비합리주의가 생겨났다.

문학[편집]

文學

사실주의·자연주의 문학은 프랑스에서 가장 성하여 「보바리 부인」의 플로베르, 「나나」의 졸라, 「여자의 일생」을 쓴 모파상 등은 과학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사회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한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다. 영국의 디킨스나 대커리, 독일의 하우프트만 등도 같은 경향의 작가라고 하겠다. 사회 발전이 늦은 북유럽에서의 자연주의 경향은 사회적 성격이 강한 문학을 낳았다.

러시아에서 투르게네프는 신구 세대의 대립을 그렸으며,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의 작자 도스토예프스키, 「부활」 「전쟁과 평화」로 유명한 톨스토이는 어두운 현실에서 혼(魂)의 구제를 추구하고, 고리키는 한층 심각하게 현실과 대결했다. 스웨덴의 스트린드베리와 노르웨이의 입센도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또한 세기말의 초현실주의적 사조는 프랑스에 있어서 「악의 꽃」을 쓴 보들레르에서부터 시작하고 말라르메, 베를렌 등의 상징주의 시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영국에서도 와일드가 탐미주의를 주장했다.

미술[편집]

美術

19세기를 통하여 미술의 중심을 이룬 것은 프랑스, 특히 파리였다. 회화(繪畵)로는 세기 중엽에 사실주의 경향이 강하여 밀레, 코로, 쿠르베 등의 뛰어난 화가가 나타났다. 1870년대 무렵부터 인상파가 일어나 마네, 모네, 피사로, 드가, 르누아르 등 화가는 외계의 빛과 밝은 색채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화법을 시작했다. 마네, 모네 등은 사물의 진실한 모습은 색에 있다고 생각하여 순간적인 색채의 현실을 추구하고 드가, 르누아르는 색채가 풍부한 독자적인 인물화에 솜씨를 보였다. 세기말에는 세잔, 고갱, 고흐 등 후기 인상파라고 불리는 화가가 나타나고 인상파 수법을 종합하여, 인상파에 의하여 부정된 사물의 형태나 양식의 재건을 시도, 개성적인 미를 표현하려 했다. 르네상스 이래 진전이 없었던 조각에서는 로댕이 철저한 사실(寫實)과 깊은 내면적 표현에 의하여 근대 조각의 발전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음악[편집]

音樂

19세기 후반에도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해 바그너의 장대한 악극(樂劇)으로 정점에 달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각지에서 민족적 성격이 강한 음악이 작곡되어 근대 음악에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러시아의 무소르크스키·차이코프스키, 체코의 드보르작 등은 대표적 작곡가였다. 또한 세기말에는 프랑스의 드뷔시가 낭만주의 형식을 깨뜨리고, 섬세한 음향을 통하여 감각적 세계를 표현, 근대 음악에의 길을 개척했다.

니체[편집]

Friederich Wilhelm Nietzsche (1844

1900)

세기말적 허무적인 정신 상황을 극복하여 독특한 세계관을 세우려고 한 독일의 사상가. 고전 학자로서 출발하여 바그너의 음악,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더하여 갔다. 특히 그리스도교를 약자의 종교라 하여 부정하고 생명 있는 자의 근저(根底)에 존재하는 ‘힘에의 의지’를 중시하여 ‘영겁회귀(永劫回歸)’와 ‘초인(超人)’의 사상을 외치고, 모든 가치를 전환시키려 했다.

그의 사상은 기계 시대나 대중의 존재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존철학(實存哲學)의 한 원류(源流)가 됨과 함께 나치스 사상에도 관련이 되었다. 주된 저서로는 「비극의 탄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피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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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Stuart Mill (1806

1873)

영국의 철학자·경제학자. 어릴 때부터 아버지 제임스의 천재교육을 받고 14세로 프랑스에 유학, 17세에 동(東)인도회사 사원이 되어 1858년까지 재직, 후에 하원의원에도 당선되었다.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출발하여 열렬하게 인간의 자유를 주장함과 동시에 사회적 행위에 대해서는 단순한 자유방임의 원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적으로는 대의정체(代議政體)를 최량(最良)의 형태로 했으나 비례대표제 등 개혁안을 제출하고 또한 여성의 해방을 주장했다. 경제면에서는 생산의 법칙은 불변한 것이지만 분배의 법칙은 인위적·가변적(可變的)인 것이라 하였고, 사회 정책의 가능성 이론을 세웠다. 주된 저서로는 『경제학 원리』 『자유론』 『대의정체론』 등이 있다.

스펜서[편집]

Herbert Spencer (1820

1903)

영국의 철학자·사회학자. 비국교도(非國敎徒)의 가정에서 성장하여 정치·종교·사회의 권위에 강력한 불신을 품고, 마침내 개인주의·자유 방임론의 급진적 주장을 전개했다. 사회유기체설(社會有機體說)의 입장에 서서 진화의 원리를 생물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통하는 원리로 생각했다. 사회 진화의 도달점으로서 무정부적 사회를 이상(理想)으로 하고, 진화의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라 하여 국가의 간섭을 배제했다. 주요 저서로 『종합 철학 대계(綜合哲學大系)』 등이 있다.

랑케[편집]

Lepoold von Ranke (1795

1886)

엄밀한 사료 비판(史料批判)에 기초를 둔 근대 사학을 확립한 독일의 사학가. 베를린 대학에 봉직, 『로마 교황사(敎皇史)』 『종교개혁 시대의 독일사』, 미완성인 『세계사』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그의 연구 대상은 정치사로서 문화사나 경제사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의 역사관은 독일 관념철학에 관계되지만, 헤겔처럼 이념의 자기 발전 법칙을 부정하고 “모든 시대는 신(神)에 이어진다”고 하여, 어떤 시대도 각각 독특한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또 역사가는 “본래 그것이 어떻게 있었는가”를 알리는 것만을 의도해야 한다고 하여 객관주의를 지켰다. 그의 문하(門下)에서 인재가 배출되어 독일 사학의 전성기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