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시민혁명과 신대륙/명·청 교체기의 동남아시아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명·청 교체기의 동남아시아〔槪說〕[편집]

청의 중국 지배가 시작된 17세기 중엽, 베트남은 명목상으로는 여(黎) 왕조(1428

1791)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실질적으로는 남북 대립이 한창인 때였다. 수도 하노이에서 여 왕조의 실권을 잡은 정씨(鄭氏)와 남방 위에(Hu)에서 이에 대항하는 완씨(阮氏)와의 대립으로 명·청 교체 무렵에는 특히 격렬한 교전이 계속되다가 17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겨우 휴전하고 이후 100년 동안 남북 2개 베트남의 형세가 고정되었다.

시암(지금의 타이)에선 아유타야 왕조(1350

1767)가 종래의 부진(不振), 특히 미얀마의 침입을 배제하여 안정되고, 유럽 여러 나라와의 교섭을 열어 베트남 등과 더불어 화교(華僑)가 증가하는 등 외국인의 왕래가 많아졌다.

미얀마는 퉁구 왕조(1531

1752) 시대였는데 네덜란드·영국의 동인도 회사와의 교섭도 시작되었다. 특히 명·청 교체 때에는 명의 영명제(永明帝)가 미얀마로 도피하여 오삼계(吳三桂)가 인솔하는 청군의 손에 인도되었다.

여 왕조 베트남의 남북 대립[편집]

黎王朝-南北對立

여 왕조(1428

1791)는 레러이(黎利)가 명의 지배에서 독립하여 하노이에 세운 베트남의 왕조인데, 16세기 전반에 내란이 일어나 권신(權臣) 막등용(莫登庸)에게 나라를 빼앗겨 한때 중단되었다. 이 때에 정씨의 힘에 의하여 부흥되었으므로 이후 여 왕조의 실권은 정씨에게 돌아가고, 정씨에 반대하는 완씨는 남쪽 위에(Hu)에 독립하여 이 때부터 여 왕조 베트남은 정·완 양씨의 남북 대립의 형세로 되었다. 이 대립은 1627년부터 약 반세기 동안 특히 격심하여 양자 교전 상태가 계속되다가 1674년 겨우 휴전되었으나 그 후에도 무장 평화에 따른 남북 대립의 상태가 약 100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1773년 타이손(西山) 당(黨)의 난이 일어나자, 완씨(1777)와 정씨(1786)는 다같이 멸망하였다. 이 때 여조만은 얼마간 그 명맥을 이어갔으나, 얼마 후에 일어난 정봉(鄭?)의 난(亂)에 민제(愍帝)는 청(淸)에 청원하고, 이에 따라 베트남에 진격한 청군이 완문혜(阮文惠)에게 대패하자, 민제가 청으로 망명함으로써 여조는 멸망하였다. 여조 전기에는 조정의 장려로 문교(文敎)가 성하고 뛰어난 학자·문인이 배출되었으나, 후기에는 유럽 선교사가 들어와 예수교를 전했다. 또 화교(華僑)의 내왕도 이 때부터 많아져 주로 상업에 종사하였다.

정씨(친씨)[편집]

鄭氏

16세기부터 18세까지 여 왕조(수도 하노이)의 실권을 잡고, 난방의 완씨와 대항한 베트남의 명족(名族). 16세기에 권신 막등용(莫登庸)에게 한때 나라를 빼앗긴 여 왕조의 부흥에 진력하여 실권을 잡고 17세기 초부터 이를 반대한 위에에 근거한 완씨와 오랫동안 투쟁, 대립했다. 18세기 후반 완문악(阮文岳)을 수령으로 하는 타이손당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에 편승하여 숙적 완씨를 타도하게 되었으나(1775), 자신도 타이손당에 패하여(1786) 멸망했다.

완씨(구엔씨)[편집]

阮氏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위에에 있으면서 베트남의 남반부를 지배하고 여 왕조를 옹호하는 북방 하노이의 정씨와 대항한 베트남의 명족. 여 왕조의 부흥에 힘썼으나, 주도력(主導力)을 정씨에게 빼앗기고부터 위에를 근거지로 독립하여, 나라를 광남(廣南)이라 칭하고,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특히 17세기 초 이래 오랫동안 정씨와 항쟁 대립했다. 18세기 후반 점점 정치가 부패하여 타이손당의 난을 초래, 난에 편승한 정씨의 남정(南征)으로 정씨에게 멸망했다.

광남국[편집]

廣南國

16∼18세기에 베트남의 남반(南半)을 점령하였던 완씨(阮氏)의 나라. 1558년 완황(阮潢)이 여조(黎朝)로부터 위에지방의 통치를 위임받은 데서 비롯된다. 그 후 1570년에는 광남(廣南)도 겸령(兼領)하고, 다시 17세기 이후에는 완씨는 영강 부근을 경계로 정씨(鄭氏)와 대항하는 한편, 남강(南疆)의 개척에 힘써 코친차이나 지방까지 범위를 확대하였다. 이즈음 명목상으로는 아직 여조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국과 마찬가지였다. 1775년 타이손당의 난 중, 정군(鄭軍)의 침입에 의하여 위에·광남을 빼앗기고 망하였다. 그러나 완씨는 코친차이나로 도망가 재기를 꾀하다가, 완복영(阮福映)이 1802년 완조를 창립하고 그 목적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