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시민혁명과 신대륙/사파비 왕조의 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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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비 왕조의 성쇠〔槪說〕[편집]

사파비(Safavi) 왕조는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서 아바스 1세의 즉위로 가장 빛나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는 힘과 교묘한 외교로 동(東)이란과 메소포타미아에 영토를 확대하고, 국내적으로는 중앙집권을 강화하였다. 수도 이스파한은 장려(壯麗)한 모습으로 유럽 여행자를 놀라게 했고, 페르시아어는 서아시아의 국제어가 되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을 적대시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는 서로 줄지어 이란에 사절을 보내어 우호 관계를 희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파비 왕조의 번영은 아바스 1세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왕이 죽은 후 10년도 되지 않아서 메소포타미아는 재차 투르크에 빼앗기고 왕조는 쇠망의 일로를 더듬었다.

아바스 1세[편집]

-世 Abbs Ⅰ (1571

1629, 재위 1587

1629)사파비 왕조 제5대의 영주(英主). 즉위 후, 당시 국내에서 위세를 떨치던 투르크계(系) 키질바시족(族)의 군단(軍團)을 누르고, 이란인 관료를 육성하여 중앙집권에 노력하고 또한 영국인 셜리 형제의 협력을 얻어 새로운 포병대(砲兵隊)를 편성했다. 동이란에 있어서는 우즈베크족(族)을 쳐서 헤라트나 메셋을 합치고 서쪽으로는 오스만 제국과 싸워 아제르바이잔, 쿠르디스탄, 바그다드 등을 회복했다. 또한 1620년에는 호르무즈에서 포르투갈인을 구축(驅逐)하는 데 성공했다. 수도를 카즈빈에서 이스파한으로 옮기고 각지에 도로, 다리, 대상숙(隊商宿)을 건설하여 이란의 경제 발전에 노력한 점이 많았다. 그가 수도를 정한 이스파한은 그의 치세 아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봉건 제후들의 세력은 제왕에도 필적할 정도의 영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삭감하는 데에 성공한 아바스는 자신의 군대 재편에 착수하여 여러 부족으로 구성되었던 종래의 군단 대신에 상비군을 설치하고 그들에게 대포를 장비시켰다. 나아가서 그는 영국인 여행자의 중개로 오스만의 적국인 러시아, 에스파냐, 포루투갈 등 유럽 나라들의 군주들에게 사절을 파견하였다.

이스파한[편집]

Isfahan

이란 고원 위의 교통의 요지에 있는 도시. 이 도시의 존재는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10세기에는 이미 이스파한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슬람 이후에는 특히 상업도시로서 번영, 칭기스칸, 티무르에게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 1600년 아바스 1세에 의하여 사파비 왕조의 수도(首都)로 선정되고 나서부터 크게 번영했다. ‘이스파한은 세계의 반쪽’이라는 이란의 속담으로까지 남아 찬사를 받았다. 이란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 되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많은 역사적 유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