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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기의 자연과학〔槪說〕
[편집]시민계급의 경제활동의 전개와 함께 실험과 관찰을 기초로 한 경험이 중요시되었고 새로운 과학적 정신으로 발전했으며 낡은 자연관·세계관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알려졌고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은 로마 교회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지동설(地動說)을 제창하였다. 소위 ‘르네상스의 3대 발명’(화약·나침반·활판인쇄)은 반드시 발명이라 할 것까지는 없어도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전환기에 있어서 사회의 변화를 크게 자극하였고 문화의 발전에 현저한 공헌을 했다.
지동설
[편집]地動說 Heliocentric Theory
지구의 자전 및 공전을 인정하는 우주관. 중세적 우주관의 기초를 이룬 것은 지구는 부동(不動)하며 다른 천체가 그 주위를 회전한다는 천동설이었는데, 이 지동설이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중세적 우주관으로부터 근대적 우주관으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즉 천동설에서는 우주는 중심과 주변의 구별이 있어, 천체의 운행을 지배하는 신적 존재를 구상해 냈으나, 지동설에서는 우주는 무한하여 어디에도 중심이 없으며, 그 질서는 천계(天界)도 지상도 다같이 동일한 역학적 체계에 속하는 평등한 법칙성에서 구해지며, 또 운동의 역학적 본질이 명백해진 결과 천체를 지배하는 힘은 필요없이 되고, 신은 우주의 시동자(始動者)라는 설도 부정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간에 걸쳐서 점차적으로 이룩되었으니, 곧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튼 등을 경유하여 확립되었다.
코페르니쿠스
[편집]Nicolaus Copernicus (1473
1543)
지동설을 주장한 폴란드의 천문학자. 당시 로마 교회의 공인학설로 되어 있던 것은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메우스의 학설인 천동설의 체계였다. 15세기 중엽 독일의 철학자 니콜라우스 쿠사누스(1401
1464)같이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부르짖는 사람도 나왔지만, 프톨레메우스의 학설이 수리적으로 완성된 체계이므로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지동설 그 자체도 수리적으로 체계가 서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성취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주요 저서 『천구회전론(天球回轉論)』은 1530년경 완성되었으리라 생각되나 죽기 직전인 1543년에 출판되었다.
조르다노 브루노
[편집]Giordano Bruno (1548
1600)
이탈리아의 철학자. 도미니쿠스파(派)의 수도사였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을 받고 범신론적인 입장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여 로마 교회에서 추방되었으며, 스위스, 프랑스, 영국, 독일로 피해 다녔으나 후에 잡혀 8년간 옥중에서 지낸 후 1600년 2월 9일 이단자로 로마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편집]Galileo Galilei (1564
1642)
이탈리아 피사의 과학자. 수학·물리학·천문학에 통달하고 진자운동·낙하의 법칙을 발견, 수량적으로 물리현상을 포착하는 방법을 확립했다. 망원경을 고안했고 천체 관측 결과에서 지동설을 제창, 1616년 로마 교회로부터 금지당했으나 관측을 계속했다. 후에 『천문대화(天文對話)』(1633)를 출판하자, 이단 심문소에서 재판을 받고 지동설의 포기를 서약했다. 70세에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말한 그의 과감한 저항은 유명하다.
케플러
[편집]Kepler (1571∼1630)
독일의 천문학자. 1594년 그라츠 대학의 수학(數學)·천문학(天文學) 교수가 되었다. 1600년 프로테스탄트라는 이유로 오스트리아로부터 프라하로 옮겨 천문학자 티코 브라에의 조수가 되었다가, 이듬해 스승의 뒤를 이어 독일 제실(帝室) 수학자로 취임하였다. 30년 전쟁 전기(前期)의 종교적 분쟁중에 생애를 보냈다. 그는 지동설(地動說)에 흥미를 가지고 스승이 이루어 놓은 관측의 축적(蓄積)을 이용하여 유성(遊星)의 타원궤도설을 구상하여 ‘케플러의 3법칙’을 수립하였다. 이것은 천체의 원궤도(圓軌道)에의 전통적 신념으로부터의 해방으로서, 우주의 조화에 관한 근본관념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비주의의 사상이 짙게 박혀 있는 중세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중세적 세계관에서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과도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주저에 『신천문학』이 있다.
그레고리오력
[편집]-曆 (1582)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재위 1572
1585)가 정한 태양력(太陽曆). 기원전 46년 카이사르(시저)가 설정했던 율리우스력이 로마 교회에 의해서 사용되어 왔지만 그 착오가 명백해졌기 때문에 개정되었으며, 그 결과 400년에 3일의 윤년을 폐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채용되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
[편집]-活版印刷
독일 사람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
1468)가 발명했다고 전해지는 활판인쇄. 활자에 의한 인쇄는 벌써 11세기 중엽에 중국에서 고안되어 있었는데, 유럽에서는 동방으로부터 종이의 제조법이 전해져 옴에 따라 보급되었으며 네덜란드 사람 코스타에 의해서 행해졌다고 전해지지만, 구텐베르크가 금융업자 후스트의 출자를 얻어 마인츠에서 1445년경에 시작했다. 1470년대에는 유럽 각지에 전파되어 르네상스·종교운동의 추진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