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세 유럽과 아시아/르네상스와 종교개혁/서구 제국의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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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제국의 르네상스〔槪說〕[편집]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알프스를 넘어 북방 서구 여러 나라에 파급되고, 제각기 나라별로 독자적인 형태를 취하면서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탈리아의 단순한 모방 따위는 아니다. 네덜란드나 남독일과 같이 도시를 기반으로 하면서 때로는 프랑스·에스파냐·영국처럼 왕권에 의한 국가 통일을 배경으로 르네상스는 싹터 가고 있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의 경우와 같이 벌써 15세기 초에 반 아이크 형제(형 1370?

1426, 동생 1390?

1441)에 의한 사실적인 풍경화·초상화가 뒤의 플랑드르파(派)의 기초를 만들고 있었으며, 반대로 형제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유화법(油畵法)은 베네치아의 화가를 통하여 이탈리아로 전해졌다. 영국에서는 위클리프의 성서 영역, 초서(1340?

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통해서 영국 국민문학의 밑바탕은 닦여 있었다. 더욱이 서구 여러 나라의 르네상스는 깊은 종교성 속에서 전개되었고, 특히 그 휴머니즘은 그리스어·헤브라이어 원전(原典)에 의한 성서 연구를 통해서 종교개혁 운동으로 연결된다.

남북 유럽을 연결시키는 상업의 중심지이며 모직물 공업이 왕성한 네덜란드에서는 농민의 생활을 밝게 묘사한 브뤼겔(1520?

1569)이나 시민의 세계를 묘사한 루벤스(1577

1640), 렘브란트(1606

1669) 등이 있다. 16세기 최대의 휴머니스트라고 불린 에라스무스는 신약성서를 그리스어 원전으로 연구하고 『치우신 예찬(痴愚神禮讚)』에서 교회의 부패를 풍자했다. 독일에서 르네상스는 종교성으로 짙게 채색된다. 로이힐린(1455

1522)·멜란히톤(1497

1560)의 인문주의적인 성서 연구, 뒤러(1471

1528)의 회화가 그렇다. 프랑스에서는 궁정의 보호 아래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이야기』나 몽테뉴의 『수상록(隨想錄)』 등 예리한 풍자 정신으로 일관된 작품이 만들어졌다. 국가 통일과 해외의 발전을 추진하고 있었던 에스파냐에서는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에서 몰락해 가는 기사계급을 풍자하며 인간을 추구한다. 절대주의 체제하의 영국에서는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썼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이 경험론 철학의 기초를 만들어 놓았으며, 셰익스피어가 많은 걸작을 썼다.

에라스무스[편집]

Erasmus (1466?∼1536)

네덜란드의 인문주의. 로테르담에서 출생. 일찍 고아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그 재능을 인정받아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리스와 라틴의 고전문학을 연구한 후 영국에 있는 친구 토머스 모어의 집에서 유명한 ‘우신예찬(愚神禮讚)’(1509)을 써서 현학자(衒學者)나 무지(無知)한 수도사 등을 가차없이 공격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1513년 이후는 독일에 정주하였다. 당시 종교개혁의 물결에 말려들어 처음엔 개혁파에 동정적이었으나, 이지적이며 개인주의자인 그는 행동적이며 열광적인 루터와 맞지 않아 유명한 논쟁을 벌인 후, 신구 양파로부터 공격을 받고, 또 병으로 고생 끝에 사망하였다. 그의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서의 번역 등은 유명하며 프랑스와 라블레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에라스무스의 「치우신 예찬」[편집]

-痴愚神禮讚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휴머니스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5?

1536)의 1509년 작품. ‘행복한 섬’에 태어나서 ‘도취’와 ‘무지(無知)’한 님프의 젖으로 자란 ‘치우(痴愚)의 여신’이 자만(自慢)이나 추종이나 나태나 방탕 등의 한패를 데리고 등장. 이 ‘치우신(痴愚神)’의 자화자찬 중에 인간적인 자연에의 동경과 소박한 신앙을 추구하는 휴머니스트의 염원과 그것을 왜곡케 하는 중세적 형식주의에 대한 분노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편집]

영국의 정치가이면서 휴머니스트인 모어(Thomar More, 1478

1535)의 1516년 작품. 모직물 공업의 발전과 함께 원료인 양모(羊毛)의 생산이 이익 높은 장사가 되었으며, 지주들은 농민들을 내몰고 토지를 둘러 울타리를 만들어 나갔다. 내쫓긴 농민의 비참한 상태에 가슴 아파한 모어가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토지(理想鄕)를 주제로 하여 이야기한 평화와 사회정의의 이상적 국가상이 「유토피아」이다. 히스로디라는 가공적인 여행가가 이야기하는 이 가공적인 나라에서는 놀고먹는 귀족이나 승려는 없으며, 국민은 모두 일하고 재산의 사유권이 없으며 공산주의적이다. 교육이 보급되고 신교는 자유이다. 영국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사회주의적인 사회를 이야기했으므로 사회주의의 선구로 알려졌는데 가공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상적이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편집]

William Shakespeare (1564

1616)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 극작가. 중부 스트라트포드에서 출생하였으며 1580년대 후반에 런던으로 나와 배우로서 이름을 나타내고 1590년경부터 극작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1611년의 「폭풍우」에 이르기까지 약 20년 간에 36개의 희곡과 7편의 시를 썼다. 그의 작품은 영국 르네상스의 황금시대를 대표하였으며, 문학사적으로 보면 그 비극은 고대 그리스 비극과 함께 여전히 비극 정신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베이컨[편집]

Francis Bacon (1561

1626)

영국의 법률가·철학자. 왕을 섬겨 검찰총장, 추밀고문관, 대법관을 역임했지만 1621년에 오직(汚職) 사건에 연좌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대법관 재임중인 1620년 주요 저서 『신기관(新機關)』을 출판하였고, 철학·과학의 연구 방법으로 귀납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과오를 범하기 쉬운 추상을 배격하고 확실한 경험에서 출발하도록 제창했다. 영국 경험론 철학뿐만 아니라, 널리 근대 학문의 시조라 일컬어진다.

라블레[편집]

Fransois Rabelais (1484

1553)

프랑스의 휴머니스트. 『가르강튀아 이야기』 5권의 저자. 가르강튀아 왕과 그 아들 팡타그뤼엘 거인 부자의 공상적인 얘기는 ‘원하는 대로 하라’를 유일한 법규로 하는 「데레므의 승원(僧院)」에 의해 대표되듯이 인간의 자연을 긍정하고 신학자·수도사를 비롯한 이지러진 인간이나 역사의 발전을 방해하는 제도·습관에 대한 예리한 풍자와 희화의 걸작이다.

노스트라다무스[편집]

Nostradamus (1503∼1566)

르네상스 시기의 프랑스의 점성술가·의사.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써 의학·수학·점성학·그리스어·라틴어 등을 배웠으며,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1529년 의학박사가 되었다. 프랑스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페스트나 풍토병(風土病) 등의 치료에 종사하며 의술을 베풀었다. 그는 의학·약학 지식에 점성학을 더해 ‘점성의 의사’라 불리었으며, 1555년에 발표한 예언집 『제세기(諸世紀)』로 명성을 얻었다. 앙리 2세의 죽음,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의 등장 등을 예언하였고, 현존하는 예언시가 1970년대에 번역되어 나오면서 오늘날까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몽테뉴[편집]

Michel de Montaigne (1533

1592)

프랑스의 휴머니스트. 『수상록(隨想錄)』(1580)을 썼으며, “나는 무엇을 알고 있나”를 묻고 철저한 회의주의의 입장에서 인간의 내면성을 깊이 파면서 예리한 인간 관찰에 의한 불변의 인간성을 추구했다. 인간의 성격이나 심리의 변화, 인간 집단의 습성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프랑스 모랄리스트의 대표적 인물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편집]

에스파냐의 소설가인 세르반테스(Saavedra Cervantes, 1547

1616)의 1604, 1615년의 작품이다. 미친 시골 신사 돈 키호테가 기사가 되었다고 믿고 농민 산초 판사를 데리고 무사 수업에 나서서 여러 가지 모험과 실패를 거듭하는 이야기이다. 몰락해 가는 기사도를 풍자해 가면서도 애정의 눈으로 인간을 추구한 르네상스 문학의 걸작. 근대문학의 시조라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