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문명의 형성/고대 이집트의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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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통일〔槪說〕[편집]

선왕조 시대의 뛰어난 문화를 계승하고 서아시아 문화의 자극을 받아,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역사시대를 맞이한다.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과 그것을 규제하기 위한 치수·관개의 필요에서 노모스가 점차로 상·하 이집트의 두 왕국에 통합되어 초기 왕조시대에 들어갔다. 고왕국 시대에는 왕권이 강화되어 신왕(神王)이 출현했다. 이 시대의 정치·경제·종교·건축·미술은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제1 중간기의 혼란 뒤에 나타난 중왕국(中王國)은 ‘서민 국가’라고 불린다. 이 시대에 이집트는 시리아에 진출하여 비블로스에 유적·유물을 남기고 있다. 그 뒤에 이집트는 다시 약체로 떨어지고, 아시아계의 힉소스(Hyksos)가 침입하여 약 100년간 델타를 중심으로 지배했다.제18왕조부터 제20왕조에 이르는 신왕국시대에 이집트는 가장 찬란한 시대를 맞이했다. 신왕국은 상류의 누비아를 정복하고 시리아·팔레스티나는 물론 미탄니·히타이트와 싸워 아시아에서 최강국을 이룩했다. 다시 지중해·홍해에서 무역에 종사하여 거대한 치부를 이집트에 안겨주었다.아멘호테프 3세·4세의 시대는 아마르나 시대라고 불리고 이집트와 여러 다른 나라 사이의 우호 관계가 수립되었다. 그 후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 카데시에서 싸웠고, 다시 강화 조약을 체결하지만 나중에 해상 민족의 침입에 의하여 히타이트는 멸망하고 이집트는 해상 민족을 간신히 격퇴하였다. 제20왕조의 말기부터 이집트는 쇠퇴하기 시작하여 제21왕조 이후의 왕조 말기 시대에 들어간다.

나일강[편집]

-江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 할 만큼 나일강 유역, 폭 10

35㎞의 ‘검은 나라’만이 거주 가능한 지역이다.이 강의 정기적 범람에 의하여 상류의 옥토가 흘러들어 비료를 쓰지 않고도 다량의 곡물을 거둬들일 수 있다. 나일강의 관개·치수를 행하기 위하여 막대한 노동력과 훌륭한 지도력이 필요하게 되어 국가가 생긴다. 고대의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하여 제1급단(第一急端)의 이북의 상이집트와 이남의 하이집트(델타 부근)로 구분된다.

셈·햄어족[편집]

-語族

고대 이집트인은 현재 북아프리카에 분포하고 있는 햄어족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햄어족에 비하여 현저하게 셈어족과 유사하다. 고대 이집트어의 대명사, 어형 변화, 동사의 활용, 문장론, 하나의 단어가 세개의 자음으로 되는 것 등으로 보아, 고대 이집트인은 역사 시대에 들어가기 직전에 서남 아시아의 셈어족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선왕조 시대[편집]

先王朝時代

신석기시대부터 금석병용기까지이다. 하이집트에서는 파이윰(Faiyum) A의 문화, 메리무데의 문화(文化), 상이집트에서는 타사기(期)의 문화가 신석기시대에 속하며, 곡물의 재배, 토기의 제작, 유체(遺體)의 매장이 행해졌다. 상이집트에서는 바다리기(期)·니카다Ⅰ기에 금속병용기로 들어가서 동제품·채문토기가 제작되었다. 역사시대에 이어져 게르제기에는 정교한 석제의 옹기·화장판(化粧板)·칼종류·배의 문양을 넣은 채문토기가 만들어졌다.

노모스[편집]

Nomos

나카타Ⅰ기 무렵부터 이집트에는 토템 씨족으로 이룬 촌락이 형성되어 게르제기에는 몇 개의 촌락이 모여 노모스(州)를 만들고 그 중심이 되었던 촌락의 토템이 노모스의 주신(主神)이 되었다. 선왕조기 말기에는 상이집트에 22, 하이집트에 20의 노모스가 존재했다고 한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편집]

上-下-

역사시대 직전에 히데라콘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상이집트 왕국과, 동델타와 서델타의 노모스를 합친 부토를 중심으로 한 하이집트 왕국이 형성되었다. 상이집트는 매를, 하이집트는 뱀을 상징으로 하고 있었다. 상이집트가 하이집트를 정치적으로 통일했다.

『이집트지』[편집]

-誌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이집트 신관 마네토(Maneto, 전3세기)가 지은 책. 메네스에 의한 이집트의 통일부터 알렉산더 대왕에 이르는 이집트의 역사를 30의 왕조로 나누어 기록했다.

초기왕조 시대[편집]

初期王朝時代

제1·제2왕조 시대(전 3100

전 2700?)를 말한다. 메네스(Menes, Narmer) 왕의 상·하이집트 통일에 이르러 이집트는 역사시대에 들어간다. 멤피스(Memphis)가 수부(首府)가 되고 파라오(왕)는 최고신, 태양신, 세계의 창조자로 보았다. 아비도스(Abydos)에는 나르메르왕의 분묘가 만들어져, 이 왕의 돌로 만든 화장판(化粧板)은 시나이 반도를 정복한 기념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고왕국 시대[편집]

古王國時代

제3

제6왕조(전 2700

전 2200?) 시대를 가리키는데 피라미드 시대라고도 한다. 제3왕조의 시조 조세르(Djoser)는 계단식 피라미드를 사카라(Saqqara)에 건조했는데, 그 규모는 동서 121m, 남북 109m, 높이 60m이다. 피라미드 밑 암반에는 수많은 통로와 방이 만들어졌다. 제4왕조의 스네프로(Snefr)는 시나이나 시리아에 원정(遠征)했으며 쿠푸(Khufu)는 기제(Gizeh)에 큰 피라미드를 세웠다. 이집트의 모든 피라미드 중에서 최대인 이 피라미드는 크기뿐만 아니라 외관상의 아름다움과 복잡한 내부구조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제5왕조 시대에 헬리오 폴리스의 태양신 리아의 신앙이 두터워지고, 제6왕조 시대 말기에 국내는 혼란 상태에 빠졌다. 고왕국 시대에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인 통일이 완성되고 종교·사상·예술에 있어서도 후대의 전형이 될 만한 것이 완성됐다.

제1 중간기[편집]

第一中間期

제7

제11왕조(전 2200

전 2050?) 시대를 가리킨다. 고왕국의 전통이 붕괴되고, 왕의 폐립(廢立)이 빈번하며, 주지사(州知事)는 토호(土豪)로 화했다. 제11왕조 시대부터는 테베가 이집트의 수부가 되었다.

중왕국 시대[편집]

中王國時代

제12왕조(전 2050

전 1800?) 시대. 아메넴헤트 1세(AmenemhetⅠ)가 이집트를 다시 통일하고 누비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그 후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누차 원정하여 누비아를 정복하고, 푼트나 에게해의 여러 지역과 교역하였다.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귀족의 횡포가 억제되고 서민의 세력이 신장되었다.

제2 중간기[편집]

第二中間期

제13

제17왕조(전 1800

전1570?) 시대를 가리킨다. 200년에 걸친 암흑시대. 제15, 제16왕조 시대에 말을 가진 아시아계의 힉소스(Hyksos:외국인의 지배자)가 시리아로부터 침입하여 델타의 아바리스(Avaris)를 중심으로 약 100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했다. 힉소스는 말과 전차를 이용할 수 있는 민족이었으나, 이집트는 말과 전차에 무지했고, 이에 저항할 만한 세력도 형성하지 못하였다. 힉소스 왕조는 하이집트는 직접통치 했고, 상이집트에 대해서는 지방 호족의 통치를 인정하는 간접통치 형태를 취하였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테베에 본거를 둔 영주가 세력을 뻗어 제17왕조를 열었다. 이 때의 이집트 왕조는 힉소스 왕조와 병행하였으나, 이후 제18왕조 때에는 힉소스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후 신왕국 시대를 열었다.

신왕국 시대[편집]

新王國時代

제18

제20왕조(전 1570

전 1090?) 시대. 제18왕조의 아모스 1세(Ahmos Ⅰ)는 아바리스를 공략하여 힉소스를 국외로 추방하고 다시 아시아에 원정했다. 제18왕조는 힉소스 지배 후에 생겨난 왕조이기 때문에 새로운 성격의 국가를 형성하였다. 이집트 본래의 수세평화(守勢平和)적 성격에서 공격적인 군사국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전쟁의 수단으로는 힉소스가 가지고 온 말과 전차가 중시되었다. 또한 테베의 지역신 아멘을 힉소스 세력의 추방을 실현시켜 준 최고의 국가 신으로 여겨 이 국가 신을 위해 많은 신전을 구축하였다.투트모세 3세(Thutmose Ⅲ)는 상비군 제도를 실시, 관료 제도를 정비하고 아시아에 19회나 원정하여 시리아, 팔레스티나 여러 나라를 지배했다. 아멘호테프 3세 때에는 모든 외국의 공납물(貢納物)이 이집트에 들어와 왕은 룩소르(Luxor)에 아멘 라아의 신전이나 ‘멤논의 거상(巨像)’을 세웠다. 투트모세 3세부터 아멘호테프 3세의 시대에 걸쳐 이집트는 오리엔트에 있어서의 가장 강력한 제국이 되었다. 이집트는 여러 외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종교를 개혁하고 아시아 정책에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집트의 국위는 점점 떨어졌다. 람세스 2세(Rameses Ⅱ)는 시리아·소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동맹한 히타이트 왕인 무와탈리스와 카데시에서 싸웠으나(전 1286) 시리아의 패권을 빼앗지 못하였다.왕은 기원전 1269년 히타이트의 하투실리스 3세와 화의(和議)를 맺음으로써 오리엔트에 평화가 찾아왔다. 제20왕조의 람세스 3세는 해상 민족이나 리비아인의 침입을 막았으나, 이후 이집트의 정치적 지위는 저하되고 왕권도 아멘 제사단(祭司團)에 굴복되어 점차로 약체화되어 갔다.

아멘호테프 3세[편집]

-世 Amenhotep Ⅲ

제18왕조 제9대 왕(재위 전 1417∼전 1379). 투트모세 4세와 무테무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이집트 번영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다. 그의 치세는 전쟁이 거의 없는 시대였고, 문화의 시대로 문예와 학문의 사람인 서기(書記)가 특별히 존중되었다. 이 당시 공납·교역 등으로 각국의 부(富)가 이집트에 유입되어 호사스러운 궁정생활과 대규모 건축활동을 이루었다. 왕은 각지에 신전과 기념물을 건립하고 왕의 조상(彫像)을 그곳에 두었는데, 그 중에서 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신전, ‘멤논의 거상(巨像)’, 장제전(葬祭殿) 등은 현존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특히 장제전은 이집트 건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또한 다신교를 신봉하면서도 아톤신에도 관심을 가져 이크나톤의 ‘종교개혁’의 길을 열었다.

아멘호테프 4세[편집]

-世 Amenhotep Ⅳ

제18왕조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 이크나톤이라 개명하고 태양신 아톤을 받들었다. 아멘의 제사로 큰 세력을 가진 테베를 버리고 도읍을 텔 엘 아마르나(Tell el Amarna)로 옮기고 아톤을 찬양하는 조각품과 예술품을 많이 남겼다. 아톤신(神)의 신앙은 투탕카멘이 다스린 초기까지 계속되었으나 그는 아멘의 신앙으로 다시 돌아왔다.

네페르티티[편집]

Nefertiti

이집트 제18왕조의 왕 이크나톤의 왕비이다. 이집트 귀족 출신으로 왕과 같이 태양신 아톤을 찬미했다.‘미녀는 오라’라는 의미의 이름대로 1914년에 페루에서 발견된 석회석 채색 흉상(베를린 달렘 박물관 소장)은 사실의 화려함을 잘 나타낸 당대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미완성의 두상(이집트 박물관 소장) 또한 그의 화려한 미모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기원전 1367년에 왕의 총애를 잃고 왕궁에서 물러났다.

람세스 2세[편집]

―世 Ramses Ⅱ

제19왕조 3대왕. 아버지 세티 1세 이후 팔레스티나 정복을 계속하였고, 동아시아로부터 남하하려는 히타이트왕국과 16년간 전쟁을 계속하다가 평화조약을 맺고 우호의 표시로 히타이트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 재위기간 동안 국위를 선양하기 위한 전쟁과 거대건조물에 정열을 기울여 모든 중요 도시에 아부심벨 신전과 같은 많은 신전을 세웠다. 왕의 시대에 이집트왕조의 융성기는 막을 내리고, 제20왕조의 왕들은 그를 모범으로 삼았다.

아마르나 문서[편집]

-文書

19세기 말 아마르나의 유적(遺蹟)에서 발견된 주로 아카드어로 기록된 점토판 문서(粘土板文書). 이집트와 여러 외국(카사이트, 미탄니, 히타이트, 페니키아 등의 여러 도시)과의 사이에 교환된 아멘호테프 3·4세의 외교 문서. 기원전 14세기에 있어서의 이집트의 국제적 지위를 짐작케 하는 문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