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봉건제도와 이슬람 문화/이슬람 세계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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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의 분열〔槪說〕[편집]

아바스 왕조의 성립과 함께 이슬람 세계의 분열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9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권력이 쇠퇴함에 따라서 각 지방에 여러 왕조의 독립을 보게 되었다.동이란에서는 벌써 9세기 전반에 호라산의 총독 타히르가 사실상의 독립 정권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후반이 되면 이란계의 사파르 왕조(867

903)나 사만 왕조(874

999)가 독립하여 공공연하게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에 적대 행위를 했다. 사만 왕조는 이란인의 민족적 부흥을 실현했으며 이 왕조에서 근세 페르시아 문학이 시작되었다. 또 10세기에는 부와이 왕조(932

1055)가 나타나 이란 중부에서 이라크를 정복, 바그다드의 칼리프로부터 실권을 빼앗아 지배했다.이집트에서도 9세기 후반부터 투룬 왕조(868

905), 이흐시드 왕조(935

969)가 성립되어 있었지만, 969년 튀니스에서 진출한 파티마 왕조(909

1171)가 이흐시드 왕조를 타도하고, 곧 새 도읍 카이로에서 칼리프를 호칭함으로써 이집트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슬람 세계의 일대 중심지가 되었다.아프리카 서북부의 모로코에서는 일찍부터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지배에서 분리되어 이드리스 왕조(788

985)가 성립하고 있었다. 한편 에스파냐에서는 후기 옴미아드 왕조의 압둘 라흐만 3세가 929년에 칼리프라 칭하고 코르도바 회교국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사만 왕조[편집]

-王朝Smn

중앙아시아의 이란계(系) 이슬람 왕조. 사산 왕조 이래의 이란계 귀족이라고 칭하는 사만의 증손(曾孫) 나스르 1세는 타히르 왕조의 쇠약을 틈타 트란스옥시아나에 의거하여 독립하였다. 그 아우 이스마일(892∼907)은 열렬한 순니 파(派)의 보호자로서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이교도 투르크족의 방위를 임무로 하여 탈라스 읍의 크리스트 교도에게 지하드(聖戰)를 감행하는 한편, 호라즘을 그 수중에 넣고, 사파르 왕조를 격파하여(900) 호라산을 병합하였다. 이 때가 그 전성기였고, 그 후는 쇠퇴 기미였으나 나스르 2세(913∼942) 때까지는 아직 여세(餘勢)가 왕성하여 이란 본토로 영토를 넓히고, 이슬람 세계 동방의 대표적인 세력으로서의 지위를 보존하였다. 이 왕조의 서울인 보하라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트란스옥시아나의 경제적인 번영은 대단하여 비단이나 양모(羊毛)의 직물(織物)과 동철(銅鐵)제품, 종이 따위의 제품이 유명하였는데, 유목(遊牧) 투르크족과의 교역도 매우 활발하였다. 남러시아와 북유럽에 걸친 지역에서 이 왕조의 화폐가 다량으로 발견되어 그 당시의 번영을 말해 주고 있다. 한편 문화의 발달도 현저하여 이란의 문예부흥이 시작되었으며, 루다키와 다키키 등의 민족적 서사시인이 나타났는데, 아라비아어와 아울러 학문·문예에 페르시아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다만 귀족계급의 횡포, 투르크족 용병의 대두, 시아 파(派) 교도의 암약(暗躍) 등으로 점차 쇠퇴, 10세기말 카라한 왕조의 투르크족에게 본거지를 빼앗기고 멸망하였다.

사마르칸트[편집]

Samarkand

중앙아시아(우즈베크 공화국)의 도시. 동부 이란 변경의 중심적 도시로서 일찍부터 개발되어 알렉산더의 동정(東征) 무렵에는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중국에서는 남북조 이후 수(隋)·당(唐) 시대에 걸쳐 실만근(悉萬斤)·살말건(薩?建), 특히 강국(康國)으로서 유명하였다. 8세기 전반 칼리프 정권하에 들어가 이슬람화하였으며, 9∼10세기에는 이란계(系) 이슬람정권인 사만 왕조하에서 번영하였다. 그 후 카라한 왕조, 카라키타이 왕국, 호라즘 샤 왕조 등의 지배하에 점차 투르크화하였다. 요(遼)·원(元)의 사서(史書)에 심사간(尋思干)으로 보이는 것은 투르크명 Semizkend의 음을 사음(寫音)한 것이다. 13세기 전반, 몽골족의 정복 이후에는 약간 쇠퇴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티무르의 서울이 되어 크게 번영하였다. 16세기초 이래 보하라 한국의 영유가 되었고, 19세기 중엽에는 러시아가 점령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