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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봉건제도와 이슬람 문화/투르크족의 북인도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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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족의 북인도 침입〔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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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엽 이후 계속된 북인도의 정치적 분열 상태는 10세기 말부터 시작되는 이슬람 교도의 인도 침입을 용이하게 해주었다.이슬람 교도들은 8세기에 이미 인더스강 하류 신드 지방으로 진출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인도 정복은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 왕조에 의해 시작되었다. 정복자로 유명한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는 1001년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북인도로 침입하였으며 약탈과 힌두 사원의 파괴를 마음대로 했다. 이 마흐무드의 인도 원정에 의해, 이슬람 교도의 인도 지배를 향한 첫발이 내디뎌진 것이다.

가즈니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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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朝 Ghazni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에 의한 투르크계의 이슬람 왕조. 사만 왕조의 궁정노예 출신 알프테긴(재위 962

963)이 962년에 가즈니에서 독립하여 왕조를 창립하였으며, 그 후 수부크티긴(Subuktigin, 재위 976

997)이 영토를 넓혀 왕조의 기초를 견고히 했다. 그의 아들 마흐무드(재위 998

1030) 시대는 왕조 전성기였으며, 북쪽의 카라한 왕조나 셀주크 왕조의 남하를 방해하며 펀자브 지방을 완전히 영유하였으며, 그 곳을 근거지로 하여 10여 차례나 북인도 침입을 되풀이했다.마흐무드는 또 학문과 예술의 보호자이기도 했으며, 그의 보호하에 피르다우시나 알 비루니 등의 페르시아 문학가가 활약했다. 그러나 마흐무드의 사후 왕조는 쇠퇴하여 1186년에 고르 왕조에 의해 타도되었다.

마흐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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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md (970∼1030, 재위 998∼1030)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 왕조 제7대의 왕. 수부크티긴의 아들. 이슬람 교권사(敎圈史) 중 가장 위대한 통치자의 한 사람으로 전해지며, 술탄의 칭호를 얻은 최초의 왕. 투르크·아랍·페르시아 군과 접촉함으로써, 기동력이 풍부한 단련된 기병대 덕택으로 가즈니 왕조를 카스피 해 근처에서 펀자브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왕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몇 차례나 인도 침입을 감행하여 그 때마다 귀중한 전리품(戰利品)을 산더미처럼 노획하였다. 마흐무드의 거듭되는 인도 원정은 영토 획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인도 재보의 약탈과 기술이 뛰어난 인도인 포로의 획득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십여 차례에 이르는 원정은 신드지방의 아랍계 지방 정권이나 동펀자브 지방의 힌두계 왕국을 굴복시키게 되어 인도사의 전개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이리하여 펀자브 지방은 가즈니 왕조의 지배지가 되어, 라호르는 그 수도로서 당시 인도에서의 이슬람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 수용의 중심지가 되었다.그러나 마흐무드가 죽은 뒤, 똑같은 투르크계 셀주크 왕조의 공격을 받아 가즈니 왕조는 패배를 맛보았다. 가즈니 왕조는 인더스 강 하구 평야와 아프가니스탄과의 좁은 영역으로 쫓겨난 끝에 셀주크 왕조에 조공(朝貢)하는 지위로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어서 가즈니 왕조의 잔당(殘黨)은 아프가니스탄 고원의 중앙부에 본거지를 두고 대두해 온 고르 왕조와 맹렬한 싸움을 벌인 끝에 수도 가즈니가 약탈되고 불타버리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가즈니 왕조 최후의 왕자들은 라호르로 피신하여 그 지방 인도 풍토를 익히며 겨우 살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