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십자군 원정과 투르크족의 발흥/11 ~ 12세기경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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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2세기경의 세계〔槪說〕[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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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의 유럽 세계에서 특기할 사건은 노르만의 영국 정복을 비롯하여 세속적 왕권 대 교황권의 대립과 회교도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교 국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는 것 등이다.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던 게르만계(系)의 노르만인은 그들의 발달된 항해술과 약탈 행위로 유럽 여러 나라를 괴롭히더니, 1066년에는 영국을 점령하고 이어 대륙에서의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빈번히 대립하였다.한편 중국사에서 흉노(匈奴)로 알려진 훈족(族) 계통의 마자르족이 헝가리 왕국을, 서(西)슬라브족이 폴란드 왕국을 건국했던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또한 이 시기에는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가톨릭 교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종교계의 지배자인 가톨릭 교황의 권력이 강대해졌으며, 이에 세속계의 최고 권력자인 신성로마 황제와의 사이에 권력투쟁이 전개되었다.성직의 서임권(敍任權)을 둘러싸고 법황(法皇) 그레고리 7세와 헨리 4세 사이에 벌어졌던 정면 충돌은 그 두드러진 예(例)였다. 이 충돌의 결과로 헨리 4세는 카노사에서 그레고리 7세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다음부터는 교황권이 절대적인 것으로 된 반면에 속세의 황제권은 점차 쇠퇴되었으며, 이와 같이 강대한 교황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 교권국가가 회교권의 국가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 십자군의 원정으로 나타났다.회교도들에게 점령된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과 동(東)로마 구원의 명분을 가졌던 십자군 원정은 1096년에서 1100년에 이르기까지 3회에 걸쳐서 단행되었으며, 이 십자군 원정은 후세의 정치·경제·교통 등 여러 면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여러 영향은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설립된 살레르노 대학과 이어서 설립된 볼로냐 대학, 파리 대학, 옥스퍼드 대학 등이 끼친 여러 방면의 영향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한편 이 시기의 중국 대륙은 송(宋)의 진종(眞宗) 이후부터 칭기즈칸의 금(金)제국이 멸망되는 시기에 해당된다.송은 건국자인 태조 자신이 절도사(節度使) 출신의 군벌(軍閥)이었던 까닭에 군벌정치의 폐단을 고려하여 건국초부터 무력으로써 통일을 유지하는 대신 번거로운 행정제도를 채택하여 정치권력을 분산시키는 한편 문인정치(文人政治)를 실시했다.송은 군비에 있어서도 병무(兵務) 집중의 방침을 세웠다고 하나 쓸모있는 군대의 양성을 소홀히 하여 국방면의 허약성을 노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약체의 군사력으로 말미암아 송은 국초(國初)부터 요(遼)의 위협과 서북으로 서장(西藏)계 탕구트족의 무력적 위협을 받게 됐다. 그러나 송은 이를 물리칠 국력이 없어 고식적인 평화책으로 당면한 난관을 호도했다. 신종(神宗) 때는 왕안석(王安石)이 신법(新法)을 고안하여 부국강병을 기하려 했으나 사마광(司馬光) 등 보수파 관료의 반대에 부딪혀 이로부터 정권을 둘러싸고 신구 양파가 치열한 파쟁을 전개하였다.12세기에 이르러 그들 스스로가 고려인 함보(函普)를 시조로 자랑삼는 여진족 완안부(完顧部) 추장 아골타(阿骨打)가 송과 동맹하여 요를 멸망시키고 금을 세웠는데, 이 때부터 금은 송의 새로운 대적(大敵)으로 동양사의 표면에 등장하였다.금은 송이 대(對)요 전쟁 때 맺은 약속의 불이행을 구실로 1126년에 수도인 부경(?京)을 함락시키고 휘종(徽宗)·흠종(欽宗) 등 2제(帝)와 많은 볼모를 잡아가는 등 소위 정강(靖康)의 난을 일으켰다. 이에 송의 일족은 화남으로 피하여 임안부(臨安府, 杭州)에서 겨우 사직을 지켰다. 이 남천(南遷) 이후의 송을 남송(南宋)이라고 한다.송대에는 당말까지도 중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엄격한 신분 계층이 무너지고, 형세호(形勢戶)라고 불리는 신흥 지주층이 대거로 관료계에 진출하였다. 문화면에 있어서는 서민의 의취(意趣)에 맞는 문화가 새로 대두하는데, 특히 이 시대의 주자학은 그 후 한국의 정신계를 지배하는 철학이 되었다.한편 이 무렵의 서아시아 및 중앙아시아는 10세기에 이어 11세기에도 투르크계 민족의 전성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 일파인 셀주크는 메르브에 건국의 터전을 마련하고, 이란에 침입하여 바그다드를 점령, 전제군주라는 뜻을 가진 ‘술탄’ 칭호를 가지고 그들이 믿게 된 회교도 세계의 정치적 지배자가 되었다. 이 셀주크의 문물제도는 아라비아·이란계(系)의 요소도 충분히 흡수한 정복왕조의 성격을 띤 것이었으나, 11세기 중엽에 이르러 역시 투르크계로서 아랄해(海) 동남에 있던 호라즘 왕조가 일어나 이 지역에 대한 정치적 지배자로 등장하였다.이 시기의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이 중심이 되어 세운 투르크계의 여러 왕조가 북부 인도를 침입함으로써 회교 세력이 떨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