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중세도시의 발달/투르크족의 북인도 지배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투르크족의 북인도 지배〔槪說〕[편집]

북인도는 10세기 말 이래 아프가니스탄에 본거지를 둔 가즈니, 고르 두 왕조의 침공을 받아왔는데, 1206년에 고르 왕조의 한 부장(部將)이 델리에서 독립하여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노예 왕조)가 수립되었다. 그 후 약 3세기에 걸쳐서 델리를 중심으로 할지 왕조, 투글루크 왕조, 사이이드 왕조, 로디 왕조와 술탄 정권이 교체됐다. 이상의 다섯 왕조는 델리 제왕조 또는 델리 술탄 왕조 등으로 총칭된다(파탄 왕조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확함). 델리의 술탄들에 의해서 인도 정복 사업이 착실히 진행되어 드디어 인도 아대륙(亞大陸)의 대부분이 이슬람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슬람의 지배자는 애당초 힌두교를 사교(邪敎)로서 박해하였는데 차차 태도를 누그러뜨려서 힌두 교도와의 공존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따라서 소위 인도 특유의 카스트 제도와 그것을 근저로 하는 폐쇄적인 촌락 공동체는 거의 변화하는 일이 없었다.

노예 왕조[편집]

奴隸王朝

델리에 있었던 인도 최초의 투르크계 이슬람 왕조. 고르 왕조의 무하마드 부장(部將)으로서 노예 출신의 쿠트부딘 아이바크(재위 1206

1210)가 임금의 사후 독립하여 왕조를 창시했다.아이바크가 왕으로서 다스린 기간은 짧았다(1206∼1210). 그는 정복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예술분야의 보호자로서 유명하였다. 그는 델리에 웅장한 궁정과 모스크, 첨탑 등을 지어 왕조의 기틀을 다졌는데, 이 건축물들은 이란적 예술요소와 인도적인 예술요소를 교묘하게 종합한 점을 특징으로 하는 인도 이슬람 양식을 나타낸다.심한 갈등 끝에 겨우 일투트미시가 계승권을 손에 넣어 마물루크 왕조 3대째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뛰어난 행정력과 국제감각으로 술탄 왕위를 찬탈하고 벵골·신도 등을 정복하여 인도 최초의 이슬람왕조를 이룩했다. 13세기 중엽 7대 술탄인 기야스 발반은 독재군주제를 강화하고 국방을 굳건히 하였다. 발반은 먼저 몽골로부터 북서의 국경을 범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러한 여유를 배경으로 내정문제의 해결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그러나 이와 같은 너무나 노골적인 중앙집권정책은 모든 진영으로부터 반감을 사는 결과가 되었다. 이 때문에 군대에서는 고급 장교들이 굴욕을 당했다고 느끼는 한편, 종교계에서는 국왕이 신격화(神格化)되는 게 아닌가 우려하기도 했다. 이후 내분과 분열의 연속으로 힐지왕조에 의해 멸망하여 투글루크·사이이드·로디 왕조로 맥을 이었다.

할지 왕조[편집]

-王朝 Khalji

델리 술탄 왕조 두 번째 이슬람 왕조. 노예 왕조를 쓰러뜨린 잘랄웃딘 할지(재위 1290

1296)에 의해서 창시되었다.1287년에 발반이 죽자 투르크인 귀족들 사이에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큰 반란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노예왕조가 정치무대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자, 군 지휘자 잘랄웃딘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된다. 즉, 잘랄웃딘은 1290년 델리에 입성하여 술탄이라 칭하고 새로운 할지(힐지)왕조를 개시했다.즉위 때 이미 70세였던 잘랄웃딘은 불과 6년 간의 통치 끝에 권력의 자리를 노리던 조카 알라웃딘 할지의 손에 살해되었다.알라웃딘(재위 1296∼1316)은 전에 몽골의 위협을 받고 있던 북변의 국경방어와 남쪽의 힌두제국의 정복을 노려서 대규모 작전을 전개했다.그 결과 알라웃딘은 유능한 장군 기야스웃딘 투글루크와 힌두교에서의 개종자(改宗者)의 협력을 얻어 서북 국경의 방어선을 인더스 강까지 넓혔다. 이어서 데칸 지방의 정복에 전력을 기울여 힌두 여러 왕국에 대한 군사적 권위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할지 왕조의 영토로 병합된 것은 구자라트, 말와, 야다바 왕국뿐이었다. 그 이외의 곳에는 술탄의 주권과 공물(貢物)헌상의 의무를 정식으로 인정한 뒤 종래의 왕가에 의한 통치를 용인했다.알라웃딘은 인도의 풍족한 여러 도시에 대해서는 심한 약탈행위를 하였고, 또 힌두교도 및 이슬람교도에 대해서도 엄격한 전제 군주적 태도로 임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는 델리 술탄 왕조 시대에서 가장 주목되는 왕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군사적 수완과 더불어 예술가나 문인(文人)의 보호자라는 점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인도 이슬람 양식(樣式)의 건축활동이 성하여, 건물의 외부장식에 색채효과를 곁들여 화환형(花環型)의 프리즘으로 꾸민 첨두(尖頭) 아치를 세우는 등 특수한 면이 나타나게 된 것도 그 시대의 일이었다. 그러나 알라웃딘의 사후 내분이 격화하여 투글루크 왕조가 이와 대치되었다.

투글루크 왕조[편집]

-王朝 Tughluq

델리 술탄 왕조 세 번째 투르크계 이슬람 왕조. 알라웃딘이 죽은 뒤 왕위계승을 두고 내분이 계속되었는데, 최종적인 승리자가 된 것은 기야스웃딘 투글루크였다. 그는 1320년에 왕위에 올라 새로이 투글루크 왕조를 열었다.투르크인의 해방노예를 아버지로 하고 인도인을 어머니로 한 새 국왕(재위 1320∼1325)은 스스로의 출생에서 투르크인 귀족의 인도화와 토착 힌두교도의 이슬람화라는 양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제국의 국경을 벵골과 안드라 두 지방, 반도 남단부의 마두라 지방에까지 넓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델리의 지상권(至上權)을 인정하는 수많은 힌두계 소왕국을 통합해서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하려 했다.이 왕의 친아들 무하마드 이븐 투글루크(재위 1325∼1351)는 제국 영토의 확대와 통치의 강화를 위해서 일련의 과감한 정책을 실시했다. 즉, 그는 국고의 안전확보를 목표로 재정개혁을 실시하여 엄격한 지조(地租)징수제도의 실시와 신용화폐의 도입에 의한 화폐개혁 등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정책은 결국 처참한 실패로 그치고 말았다.1334년에서 1344년에 걸쳐 마두라, 벵골 등의 힌두 왕국이 다투어 독립을 선언하고, 그 직후에는 데칸지방과 구자라트 지방에서 이슬람 장교들 자신이 반기를 들었다. 투글루크 왕조는 구자라트의 반란진압에는 성공했으나 데칸지방의 경우는 그 제압에 실패하여, 그 지방에서는 이슬람계의 바흐마니 왕조가 성립하게 되었다.결국 무하마드 이븐 투글루크는 신드 지방의 반란군 제압을 위한 원정 중 1351년에 암살되어, 투글루크 왕조는 새로 얻은 영토를 하나하나 잃어 갔다. 이리하여 그 후계자 피로스샤 투글루크(재위 1351∼1388)가 통치하는 땅은 북인도만이 남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무렵에 겨우 델리를 중심으로 한 북인도에 이슬람 문화가 깊이 정착됨으로써 주변 나라에 비하여 비교적 안정된 통치가 전개되어 갔다. 그러나 피로스샤가 죽은 후 국력이 쇠퇴하고 1398년 말부터 다음해 초에 걸쳐서 티무르가 이끄는 군대가 결국 1414년에 델리를 습격하여 사이이드 왕조를 창건한 티무르 부장 히즈르칸에게 점령당해 멸망하였다.

데칸 지방의 이슬람 왕조[편집]

-地方-王朝

벵골 지방과 함께 장기간에 걸쳐 독립을 유지한 또 하나의 이슬람 정권은 1247년 투글루크 왕조에서 독립하여 건국된 데칸 지방의 바흐마니 왕조로 이 왕조는 델리술탄국의 투글루크 왕조에 대항하는 왕조였다. 바흐마니 왕조는 카이로의 칼리프로부터 공식승인을 받은 데다가 서방과의 문화적·상업적인 관계를 맺는 데 편의까지 제공받았다. 또 이 왕조는 정치적으로는 지극히 유연한 정책을 취하여 여러 민족의 이슬람교도나, 먼 나라 사람까지도 관료에 등용했다. 이 때문에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출신의 이슬람교도의 자손이 데칸 지방에 많아지게 되었다. 왕들은 페르시아 문화를 애호하여 페르시아인의 세력이 정치·경제·문화면에 침투하고, 도로와 관개(灌漑) 설비가 정돈되었으며, 세제(稅制)도 조직화되었으나, 조세의 중압에 국민이 시달렸다.당초의 수도는 이전부터 이슬람 문화의 한 중심지로서 알려진 굴바르가였으나, 1423년 이래 얼마쯤 동쪽의 비다르로 천도하였다. 이들 두 개의 도시에는 페르시아 풍의 궁전, 모스크, 묘묘(廟墓) 등의 건축물이 줄지어 오늘날에도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 왕국은 델리 정권과 유사한 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델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뒤에 가서 분열을 초래하게 되었다. 즉, 국가의 규모가 현저히 확대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네 방면으로 분할하여 각각 총독을 두고 통치를 위탁했기 때문에 각 총독은 기회 있는 대로 독립해 나가려고 했다. 그 결과 왕국의 분열이 완전히 이루어져 결국에는 바흐마니 왕조 본가를 포함해서 5개의 소왕국이 생겨났다. 베라르, 아흐마드나가르, 비자푸르, 골콘다, 비다르 등 5왕국이다.이 시대에는 이상과 같은 데칸 지방의 이슬람 여러 왕국에 접속한 칸데시와 구자라트, 말와 등 각 지방에도 이슬람 정권이 성립해 있었다. 또한 비하르 지방 북부, 그리고 카슈미르 지방에도 델리에서 독립한 이슬람 지방 정권이 성립하여 마치 전국(戰國)시대와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