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중세도시의 발달/13 ~ 14세기의 동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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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14세기의 동남아시아〔槪說〕[편집]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13세기는 하나의 역사적인 전환기라 하겠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기원 이래 인도 문화의 영향은 거의 이 시기에서 종말을 맞이하고 제각기 고유의 문화 경향이 나타났다. 베트남에서는 이 왕조(李王朝)에 교체해서 진 왕조(陳王朝)가 수립되고 남방의 참파는 더욱 약체화했다.타이는 수코타이 왕조가 통일국가를 만들었고, 영토를 빼앗긴 캄보디아는 쇠퇴했다. 미얀마의 파간 왕조는 원군(元軍)에게 멸망당했다.도서 지방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유럽 사회는 십자군 시대를 통해서 아시아의 물자를 인식하여 향료(香料)에 대한 수요가 급속히 증가되었다. 지금까지 금·은을 찾아서 수마트라나 말레이 반도에 왔던 배는 향료를 찾아서 자바 동부·몰루카즈 제도에 오게 되었다.이들 상인은 주로 인도의 구자라트 지방 등을 근거로 한 이슬람 상인이었기 때문에 이슬람교는 서서히 동남아시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의 자바 원정[편집]

元-遠征

13세기 동남아시아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원(元)군의 원정이다. 세조 쿠빌라이는 각지에 사신을 보내어 종속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군대를 보냈다. 이에 따라 미얀마의 파간 왕조는 1287년에 멸망되고 또한 진 왕조는 세 번에 걸친 정벌을 받고서 명목만의 나라를 겨우 유지했다. 참파도 수로로 침공한 원군에게 시달렸다. 자바섬에서는 이보다 앞서 동부의 케디리 왕조가 13세기 초에 싱고사리 왕조로 바뀌었다. 이 왕조도 케르타나가라 왕이 즉위하기까지는 각지에서 빈발하는 반란 때문에 완전히 피폐해 있었다. 그런데 이 케르타나가라왕은 자바 국내에서 정치적 통일을 회복한 다음 밖을 향해서 차츰차츰 정복전을 감행, 스리비자야 왕국에 이어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 반도의 일부까지도 평정(平定)했다. 싱고사리 최후의 왕 케르타나가라 때는 자바 전체에 세력을 가져 그의 치세 말기에는 원조가 종속을 요구하는 사신을 파견했다. 왕이 이를 쫓아보냈기 때문에 원은 대군으로써 자바를 공격했다. 이것은 왕의 죽음 직후의 일로서 왕위는 케디리의 토후(土侯)에게 빼앗겼으나 케르타나가라왕의 사위인 비자야는 원군을 이용하여 왕위를 되찾고 동시에 원군을 배반하고 이를 쳐서 대패시켰다. 그리고 싱고사리 왕가를 재흥시켜 마자파히트 왕조를 세웠다.

진 왕조(찬 왕조) 베트남[편집]

陳王朝- (1225

1400)

진씨는 이 왕조 말기에 외척의 지위를 이용하여 실권을 장악하고 드디어 제위(帝位)를 물리쳤다. 여러 제도는 이 왕조의 기초를 이어받아 계속 발전시키고, 다시 송(宋)의 영향을 받아 과거 제도(科擧制度) 등도 실시되었다. 국력은 차차 충실해지고 민족적 자각도 높아져서 자기 나라의 역사 서적도 몇 가지 집필되었는데 그중 『대월사기(大越史記)』는 유명하다. 또한 베트남 문자인 추놈(字?)이 만들어졌다.1257, 1282, 1287년의 세 번에 걸쳐서 원군은 베트남에 침입하여 세 번 모두 하노이를 함락시켰으나 진 왕조는 산악 지대를 근거로 잘 싸워 끝내 독립을 유지했다. 또 남쪽의 참파를 예속시켜 후에 지방을 병합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 이후에는 국위가 쇠퇴해져서 종종 참파의 침입을 받아 정치적으로 혼란했다. 마침내 중국의 명조(明朝) 영락제(永樂帝)는 진왕조의 부흥을 구실로 삼아 개입하여 군대를 파견, 베트남 전토를 점령했고, 교지 포정사(交趾布政司)를 두어 지배하게 되었다.

수코타이 왕조[편집]

-王朝 Sukhothai (1257

1350)

타이 최초의 통일 왕조. 타이는 이전에는 캄보디아 왕국의 영토 속에 속해 있었는데 12세기경부터 타이인의 토후국이 북부 타이에 할거하여 수코타이 왕조가 일어났다. 타이인(人)으로 형성된 이 나라는 13세기 후반의 라마 캄행 왕의 치정하에서 전성기를 맞아 오늘의 타이국 대부분을 영토로 한 대국으로 성장했다. 라마 캄행 대왕은 메남강 중·하류 지대를 합치고 말레이 반도의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원조(元朝)와는 밀접한 관계를 가져 대왕은 스스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이때 중국의 도공을 데리고 와서 이후 스완칼로크 자기로서 알려져 있는 타이의 도자기가 발달했다. 또한 미얀마에서 발달한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가 들어왔고, 캄보디아로부터는 예술 ·행정 조직에 영향을 받는 등 주위의 문화가 풍부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타이 자체의 민족 문화가 싹틀 무렵이기도 하여 타이 문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라마 캄행 대왕의 사후 왕국의 세력은 쇠퇴하였고, 남쪽의 메남강 하류지역인 아유타야를 수도로 하는 아유타야 왕조가 번성해갔다. 이 아유타야 왕조는 1347년에 수코타이 왕국을 정복하고 타이 전토의 통일을 꾀하였다.

마자파히트 왕조[편집]

-王朝 Majapahit (1293

1520?)

자바 중부에 번영하였던 최후의 인도식 왕조. 이 마자파히트 왕국은 자바해 전역을 지배할 정도의 대함대의 위력을 지녀 단시일 동안에 지배권을 주변으로 확대해 갔다. 14세기 후반 제4대 하얌 우루크 왕의 시대에는 현 인도네시아 공화국 전역과 말레이 반도의 일부까지 지배하에 두고, 또한 중국이나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와 밀접한 외교관계를 맺어 최성기를 맞았다.궁정시인(宮廷詩人) 프라판차의 서사시 「나가라 케르타가마」는 그 번영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왕이 죽자 왕조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 마침내 15세기 말에 멸망하였다. 그 배경에는 왕위 계승 분쟁에 따른 국내의 혼란과 속국의 이반(離反), 재정의 궁핍화 등이 계속되었음을 들 수 있으나, 그 밖에도 중국의 해군력이 증강되어 위협을 받게 되었고, 서방에서 이슬람 세력과 포르투갈 세력의 침투가 시작된 것 등 국제적인 동향도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