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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중세 유럽의 성립/북아시아 민족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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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시아 민족의 활동〔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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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중엽부터 3세기에 몽골에 세력을 편 선비(鮮卑)에 교체되어 초원(草原)을 지배한 것은 유연(柔然)이다. 그 수장(首長)은 후의 투르크계·몽골계 민족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는 가한(可汗)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5세기 초에 통치권을 확립했다. 이 유연에 맞서서 북몽골에는 일찍이 정령(丁零), 후에는 철륵(鐵勒)이라고 불리는 고(古)터키계 민족 투르크의 하나인 고차(高車)가 일어났다. 고차는 5세기 말에는 유연과 에프탈의 영역 사이에 끼인 준가리아 방면에 이동하여 세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얼마 후 에프탈의 동진에 의해 괴멸됐다.6세기 중엽이 되자 유연의 밑에 있던 투르크[철륵:鐵勒]의 한 부족이 알타이 산기슭에서 봉기, 여러 부(部)를 통합하여 독립한 후 유연을 쓰러뜨리고(556), 에프탈의 주권을 빼앗았다(565?). 583년에는 동으로는 싱안링(興安嶺)에서 서로는 아랄해(海)에 이르는 공전의 대제국을 형성하여, 멀리 동로마까지 통상(通商)했다. 이것이 중국 사서(史書)에서 말하는 돌궐(突厥)이다.

유연(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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柔然(??)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몽골을 지배했던 몽골계 유목민족. 연연은 중국에서의 이자음역(異字音譯)이다. 유연의 군주는 흉노의 선우(單于)에 해당되는 칭후로 가한(可汗)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후에 유목민들 사이에서 황제라는 뜻으로 널리 사용된 칸, 한이란 명칭의 시작이었다. 4세기 초, 선비(鮮卑)의 탁발부(拓跋部:代)에 속하였으며, 유목 수렵을 하고 있었는데, 대(代)가 북위(北魏)를 세우자(386) 이에 대신해서 몽골을 장악하고, 5세기 전반에는 중국적 제도를 정비하여 북위에 조공(朝貢)하는 반면, 북위와 서역(西域)과의 교통을 방해하고, 5세기 후반에는 그 세력이 서역 여러 나라에서부터 파미르까지 미쳤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국내는 문란해지고, 부하인 고차(高車)가 독립하여 세력이 쇠퇴되었으며, 후에 알타이 산록에서 봉기한 돌궐에 의해 멸망했다(556).

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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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車

높은 바퀴가 달린 차를 사용하는 습속에 따라서 붙여진 중국측의 관칭(慣稱)으로서 따로 고차정령(高車丁零:투르크의 音譯)이라고도 불리는 북몽골에 산거(散居)했던 유목민족이다. 485년경 여러 부족을 통합, 유연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여 알타이 산기슭의 서쪽에 자리를 옮겨, 이 지역에 투르크족 최초의 나라를 형성했다. 5세기 말 타림 분지 북동부(특히 고창)를 정복하고, 유연과 대항하여 북위(北魏)와 통교했는데, 6세기 초 준가리아에 세력을 뻗친 에프탈의 공격을 받아 와해되었다.

돌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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突厥

고차와 함께 세력을 뻗기 시작한 것은 같은 알타이산 주변에 살고 있던 돌궐이었다. 고차(高車)족의 와해 후, 각지에 산재하였던 고(古)터키족의 남은 종족은 철륵(鐵勒:수·당의 중국인이 투르크족을 지칭한 칭호로서 투르크를 음역한 것)이라 불리었고, 그 일족인 아사나씨(阿史那氏)는 6세기 중엽 준가리아의 철륵의 여러 부(部)를 정복하여, 알타이산(山) 남서에 돌궐 유목국가를 세웠다. 알타이가 금을 뜻하듯이 그 곳은 금의 산지인 동시에 철과 석탄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한 곳이기도 했다. 돌궐부족은 거기서 철제 무기를 제작하는 등 철공 일에 종사했던 것이다. 6세기 후반에 유연(柔然)을 멸망시키고, 서로는 에프탈을 격파하고, 동으로 거란(契丹)을 물리치고, 북으로는 키르기스를 병합하여 위세를 사방에 넓혔다. 그러나 이 판도도 583년에는 동서 양 돌궐로 분열하였다. 동돌궐은 막북(莫北)의 우툰켄산에 왕정(王庭)을 차리고 몽골에 세력을 폈으며, 서돌궐은 구자(龜慈)의 북쪽인 오르도스에 아성(牙城)을 설정하여 서방에 강대한 세력을 떨쳤고, 비잔틴 제국과 손잡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협격하여 투하리스탄을 수중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