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현대 세계의 새 질서/세계를 뒤흔든 세계대전/베르사유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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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체제〔槪說〕[편집]

제1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과 독일간에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로 성립된 전후의 국제 질서. 국제연맹의 설치, 각종 평화회의나 군축회의(軍縮會議) 개최 등 국제 협력의 정신도 많이 보였지만 조약 성립 당초부터 이미 얼마간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함이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즉 윌슨의 14개 조약에서는 ‘무병합(無倂合)·무배상(無賠償)’을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영국·프랑스 등 전승국의 이익이 우선하여 패전국 독일 등에 전쟁 책임을 총체적으로 지워 국민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유럽 파급을 두려워하여 대소방위 체제(大蘇防衛體制) 성격도 띠었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대소간섭 전쟁의 실패 후, 소비에트 연방의 승인, 도즈안(案)·영안(Young 案)에 기초를 둔 독일 경제 부흥의 전조(前兆)가 보인 것 등으로 일시적 안정을 맞이한 시기도 있었다. 1929년에 시작한 세계공황(世界恐慌)에 의하여 블록경제가 성립했고, 나치스가 대두할 무렵 일본의 대륙침략정책에도 영향을 입어 이 체제는 붕괴됐다.

베르사유 조약[편집]

-條約 Treaty of Versailles

베르사유 조약은 파리 강화회의의 내용에 기초를 두고 연합국과 독일의 사이에 조인된 강화조약(1919)이다. 이 조약의 특징은 독일의 전쟁 책임을 가혹할 정도로 물은 것이다. 내용은 (1) 평화유지 기관으로서 국제연맹의 설치, (2) 민족자결주의에 의한 알사스·로렌을 프랑스에게, 서(西)프로이센·포젠을 폴란드에게,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덴마크에게 할양, 단치히와 자르는 국제 연맹의 위임 아래 둔다. (3)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있는 독일 식민지의 몰수, (4) 육해군비의 제한, (5) 배상의 의무 등이다.

국제연맹[편집]

國際聯盟 League of Nations

1920년 2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慘禍)에 비추어, 미국 대통령 윌슨의 제창에 의해 창설된 세계 최초의 국제평화기구. 이미 대전 발발 당초부터 영국의 정치가 사이에서 국제조직창립의 필요성이 주창되었으며, 전쟁 중에도 영국과 프랑스에서 연구되었다.

스위스의 제네바에 본부를 두었으며, 총회(總會)·이사회(理事會) 및 사무국(事務局)의 3기관을 중심으로 다수의 보조기관(補助機關)과 상설(常設) 국제사법재판소(國際司法裁判所) 및 국제노동기구(國際勞動機構)의 외부기관(外部機關)이 있다. 총회는 모든 연맹 가입국의 대표로 구성되며, 6개의 전문위원회(專門委員會)의 보조로써 문제의 심의에 임했다.

연맹은 192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존속했으나, 처음부터 미국, 소련, 독일이 참가하지 않았음이 큰 결함이었으며, 그후 독일과 소련은 참가하였으나, 그 반면 1933년에는 일본 및 독일이 탈퇴하고, 또 1939년에는 소련이 제명되어 연맹의 실질은 상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이 조직됨과 더불어, 1946년 연맹은 자연 해체되고, 그 재산은 국제연합에 승계되었다.

생제르맹 조약[편집]

-條約 Treaty of Saint Germain

프랑스의 생제르맹에서 맺어진 연합국과 오스트리아와의 강화조약(1919). 구(舊)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帝國) 내의 소수 민족 독립의 승인, 남(南)티롤, 트렌티노, 트리에스테 등을 이탈리아에 할양, 징병제의 금지, 군비제한, 독일과의 합병 금지, 배상부담(賠償負擔) 등을 내용으로 한다.

뉘이 조약[편집]

-條約 Treaty of Neuilly

뉘이 조약은 연합국과 불가리아와의 강화조약(1919).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루마니아에게 각각 영토 일부를 할양했다. 징병제 금지와 군비제한, 배상금 부담 등을 내용으로 한다.

트리아농 조약[편집]

-條約 Treaty of Trianon

트리아농 조약은 연합국과 헝가리와의 강화조약(1920). 헝가리의 오스트리아로부터의 완전 분리,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슬로바키아 지방을 할양, 유고슬라비아에게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지방을 할양, 군비제한 등을 내용으로 한다.

대소간섭 전쟁[편집]

對蘇干涉戰爭

러시아의 11월혁명 후 성립된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에 의한 간섭 전쟁(1918

22). 시베리아에 포로로 잡혀간 체코슬로바키아 병사의 구출을 명목으로 출병. 실제로는 백계(白系) 러시아군을 지지하고, 러시아의 공산화를 방지하려고 한 것. 소련 정부는 전시 공산주의를 취하여 이에 저항하고 혁명군도 분전, 1922년 일본의 퇴각으로 연합국은 물러났다.

워싱턴 회의[편집]

-會議

미국의 주도(主導)로 영국·중국·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포르투갈·일본이 참가하여 미국의 워싱턴에서 개최된 해군 군축회의(1921

22) 주력함(主力艦) 보유율을 미국·영국 5, 일본 3,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1.75의 비율로 정한다. 동시에 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과 현상유지를 내용으로 하여, 4개국 조약이 미국·프랑스·영국·일본 사이에 체결되어 극동 문제에서는 중국의 주권 존중·영토 보전·문호 개방·기회 균등 등을 내용으로 하는 9개국 조약이 회의 참가국 사이에 체결된다. 이 회의에서 일본은 대전중 일본의 진출에 반감을 가진 열강들의 통일 전선에 의하여 고립되고, 이후 국제정치면에서의 후퇴는 어쩔 수 없게 되었다.

부전조약[편집]

不戰條約 (켈로그-브리앙 협정)

1928년에 프랑스 외상 브리앙(A. Briand)과 미국 국무장관인 켈로그(F. B. Kellogg)의 제창으로 파리에서 미국·프랑스·이탈리아·영국·일본 등 15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서 파리 부전조약이라고도 한다. 전쟁 부정을 이념으로 했으나 구체적 전쟁 방지 수단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일본의 만주 침략,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전쟁 등으로 무력해졌다.

로카르노 조약[편집]

-條約 Treaty of Locarno

1925년 10월 16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의 대표가 스위스의 로카르노에서 체결한 일련의 국지적안전보장조약(局地的安全保障條約). 5개의 조약과 2개의 협정으로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5개국간의 집단안전보장조약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독일과 벨기에 및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안전보장(國境安全保障) 및 라인란트의 영구 비무장화(永久非武裝化)를 규정하고 있다. 1924년의 제네바 의정서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집단안전보장조약으로서 최대의 성과라 말할 수 있으며, 조약의 효력발생과 함께 독일의 국제연맹(國際聯盟) 가입이 승인되었다. 그러나 이 조약도 1936년 3월 히틀러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으며, 독일군의 라인란트 침입과 재무장(再武裝)이 실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