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현대 세계의 새 질서/유엔과 전후의 세계/20세기 후반의 세계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0세기 후반의 세계〔槪說〕[편집]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으나 그 후의 세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승리 자체에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의 전체주의적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서 싸운 자유세계가, 가장 철저하게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소련을 자기편으로 삼았던 사실이 1945년 이후의 세계를 또다시 불안과 불신과 공포의 먹구름 속으로 끌고 간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소련은 동독을 위시하여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여러 나라를 위성국가로 삼았고, 아시아에서도 공산주의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른바 냉전이라고 불리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국제적 긴장상태에서 득을 본 것은 자유진영이 아니라 공산진영이었다.

냉전의 시대가 가고 드디어 열전의 불길이 한반도의 38선에서 치솟았다. 최선의 수비는 필사의 공격이라는 병법의 원리를 무시하고 미국은 전전의 상태(the status quoante bellum)를 고집하여 휴전선은 한반도에서 항구적 경계선으로 고정되었으며, 1953년 동독에서, 1956년 헝가리에서 공산정권에 저항하는 민중운동이 대규모로 발생하였으나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평화공존’이라는 슬로건 밑에서 오히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방대한 식민지를 근거로 풍요한 삶을 유지해오던 서유럽의 여러 나라는 전후의 세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발언권조차도 점차 희미해졌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나서 지구의 판도가 달라지면 모르거니와 서구의 몰락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독일 학자 슈펭글러에 의하여 예언된 바 있었다.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통치를 벗어나 새롭게 독립을 쟁취한 아시아·아프리카의 신생국가들이 제3세계를 표방하고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라들에 있어서 미국의 입김보다는 소련의 입김이 거세다는 현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60년대의 월남전쟁에서 미국이 서유럽의 의견을 묶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 내의 여론조차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지 못하였던 불찰은 역사의 엄청난 비극으로 남을 것이고, 이를 계기로 하여 세계는 더욱더 공산주의의 위협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실리주의에 입각하여 동·서 해빙 무드를 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자부하던 미국의 전 국무장관 키신저가 1978년 정월 어느날 베를린 벽(Berlin wall)을 바라보면서 데이비드 브링클리에게 말하기를, 이 벽이 한때 공산주의 침략을 저지하는 일선으로 간주되었지만 7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는 이 벽을 뚫고 유럽에 침입하여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유권자 셋에 하나 꼴로, 프랑스에서는 다섯에 하나 꼴로, 포르투갈에서는 일곱에 하나 꼴로, 에스파냐에서는 열에 하나 꼴로 공산당에 투표하게 되었다고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무력으로가 아니라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은 유럽세계에 그만한 기반을 잡은 셈이다.

미국의 입김이 서린 나라치고 제대로 자유민주주의가 발을 붙인 곳은 서독과 일본뿐이었고, 그 밖의 모든 나라에 있어서는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앉아 자유나 민주주의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책임이 반드시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도 하지 못할 것이다. 빈곤의 극복이 통제나 강제를 통하여 보다 신속하게 처리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진정한 번영으로의 길은 되지 못한다. 왜? 한 국가나 민족의 위대함이란 그 국경선 안에 사는 사람들의 자유의 정도로써 측정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동물원의 우리 속에 갇혀서 사는 호랑이에게는 조국의 위대함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세계가 그리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중국의 팽창은 자연 소련을 견제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고, 두 나라의 반목은 아시아의 세력균형에 뜻하지 않았던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공산주의는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호소할 만한 지도력을 상실하고 다만 자국의 이익만을 도모하기에 급급하니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새로운 말이 나오게도 되었을 것이다.

인구폭발,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그리고 새로운 세계대전의 가능성 등은 우리들의 숙제로 계속 남아 있지만 아직도 인류의 멸망을 확실하게 예언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포착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래의 충격’은 하나의 뚜렷한 가능성이지만, 사람을 달나라에까지 다녀오게 한 인간의 용기와 슬기와 집념이 ‘미래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리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후반도 계속 계몽주의적인 낙관론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