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음악/서양음악가와 작품감상/미국·중남미
미국
[편집]포스터
[편집]Stephen Collins Foster(1826-1864) '미국 민요의 아버지' 또는 '미국의 슈베르트'라고 칭송되는 가곡 작곡가이다. 1826년 7월 4일 펜실베이니아주의 로렌스빌(피츠버그 근교)에서 태어나 1864년 1월 13일 뉴욕에서 별세하였다. 어릴 적에 플루트를 배운 일이 있으나 순전히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고, 18세 때 같이 노래부르던 친구들을 위하여 최초의 가극 <루이지애나의 미녀>를 작곡했다. 포스터의 가곡수는 189곡으로 가사도 대부분이 자작한 것이다. 1852년에 포스터는 백인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민스트럴 쇼의 단장 크리스티와 교제했으며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불우한 그는 즉시 50만 부가 매진되었다고 하는 <고향 사람들>을 단돈 15달러에 판권을 양도하였다. <오, 수재너>, <켄터키 옛집>, <주인은 찬 땅 속에>, <금발의 제니>, <올드 블랙 조>, <밴조를 울려라>, <캠프타운 경마> 등의 명가(名歌)가 나왔으나 생활은 매우 어려웠다. 1850년에 포스터는 피츠버그에서 의사의 딸인 제인 맥다우엘과 결혼, 딸을 낳았으나 결혼생활은 불행하였다. 아내와 별거한 포스터는 홀로 뉴욕으로 가서 술과 방랑의 파멸적인 생활에 빠져들어갔다. 1864년에 최후의 가곡이 된 <뷰티플 드리머>를 작곡하고 벨뷰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가난뱅이였다고는 하지만 그의 수입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으며, 1846-1860년 사이에 받은 인세는 1만 5천 달러에 이르렀다. 포스터는 파멸형의 천재였던 것이다. 새가 노래하듯이 가곡을 작곡한 포스터는 멜로디에 대한 놀라운 직관력(直觀力)을 지녀, 틀에 박히지 않은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진정한 민요라고 생각될 만큼 자연스럽게 발생된 것이다.
포스터의 가곡
[편집]Foster-歌曲 포스터가 작곡한 가곡을 분류하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그의 명성을 높인 <프타운 경마>, <올드 블랙 조>, <오, 수재너>와 같이 '민스트럴쇼'의 스타일로 된 남부의 농원에서 노래된 흑인의 노래(플랜테이션 송)에 속하는 것과 <금발의 제니>, <뷰티플 드리머>, <연인이여 창을 열어다오>와 같은 객실의 노래(룸 송)에 속하는 서정의 노래가 있다. 포스터는 가사도 대부분이 자작이듯이, 남부에 간 일도 없으면서 흑인의 정감을 잘 포착한 명곡을 창작했다. 그 서정적인 선율의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천성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맥도웰
[편집]Edward(Alexander) Mac Dowell(1861-1908) 유럽에서 배운 최초의 유력한 미국 작곡가이다. 1908년 1월 23일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15세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27세 때 귀국할 때까지 그는 유럽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으며, 1882년 리스트가 그의 곡을 연주했을 만큼 명성을 떨쳤다. 귀국 후 보스턴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때 자작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초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뒤 컬럼비아대학 음악교수로 근무하였으나 만년에는 뇌연화(腦軟化)로 폐인과 같은 비참한 생애를 보냈다. 그는 본질적으로 시인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라단조>(1885)는 현재도 반 클라이반과 같은 미국의 피아니스트에 의하여 연주되고 있으며 유럽에서 배운 건실한 구성 속에 시취(詩趣)를 담고 있다. <들장미에 부친다> 등 아름다운 소품을 포함하는 피아노곡집 <숲의 스케치>도 지금까지 애호되고 있다.
아이브스
[편집]Charles(Edward) Ives(1874-1954) 미국이 낳은 최초의 급진적 작곡가. 1874년 10월 20일 코네티컷주 댄버리에서 태어나 1954년 5월 19일에 뉴욕에서 별세하였다. 예일대학 졸업 후 "불협화음 때문에 굶어죽는 것을 피한다"라고 하여 보험사업계에 투신, 아이브스 마이릭사(社)를 설립하여 미국 굴지의 보험사업가가 되었다. 아이브스는 바쁜 하루가 끝난 밤중이나 주말 또는 점심시간마저 이용해서 작곡에 열중했다. 신문도 읽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고, 음악회에도 다니지 않으면서, 오직 그의 독특한 혁신적인 작곡에 몰두하여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보다도 앞서 대담한 기법을 쓰기 시작하였다. 다년간의 이중생활의 모순 때문에 그는 53세로 회사도, 작곡도 버리고 은둔생활로 들어가고 말았다. 완전히 세상을 버린 아이브스의 <제3교향곡>이 42년 만인 1946년에 햇빛을 보고 초연되어 다음해 퓰리처상을 받았을 때 내뱉듯이 이렇게 말했다. "흥, 상이라고! 그런 것은 속물들이나 부러워하는 간판이지." 아이브스의 <제4교향곡>이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에 의하여 초연되어 비상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1965년의 일이다. 27개의 다른 리듬이 동시에 연주되는 복잡한 곡이어서 스토코프스키는 두 사람의 보조 지휘자를 기용하여 연주했다. 그 복잡한 리듬이나 놀라운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세기적 전환기의 종교적 노래나 민요가 가득찬 특유의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초연 후 즉각 컬럼비아 레코드에 의하여 녹음되었으므로, 아이브스의 명성은 그가 죽은 후 10년이 되어 겨우 정착하였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카라얀에 의해서도 연주되어 아이브스의 부활은 눈부신 바가 있다.
블로흐
[편집]Ernst Bloch(1880-1959) 유태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한 특이한 작곡가이다. 1880년 7월 24일 제네바에서 블로흐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올림다단조>가 초연되었을 때, 이 곡을 들은 로맹 롤랑은 블로흐에게 편지를 보내어, "당신의 교향곡은 현대 악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이겠습니다. 본인은 이다지도 풍요하고 힘찬, 그리고 열정에 넘쳐 흐르는 작품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격려했다. 블로흐는 유태계 작곡가로서의 신념을 당당하게 선언하였다. "나는 유태인이다. 내가 유태음악을 쓰고 싶다고 갈망하고 있음은 결코 자기 선전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이탤리티에 넘치는 음악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블로흐의 일생의 걸작은 <셸로모>(1916)이다. 셸로모라는 것은 위대한 솔로몬 왕을 말하며, 블로흐는 구약성서 '전도서'에 따라 솔로몬 왕을 해석 헤브라이 정신의 상징으로 장려(壯麗) 호화한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첼로를 위해 작곡된 가장 웅대한 명곡이며, 오늘날에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유태적인 작품으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된 모음곡(組曲) <발 솀>(1923)도 유명하며, 특히 제2번 <니군>은 바이올리니스트에 의하여 애주(愛奏)되고 있다.
바레즈
[편집]Edgar Varese(1885-1965) '전위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실험적 작곡가이다. 1885년 12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나, 스콜라 칸토룸과 파리 음악원에서 배운 파리장이나 1915년부터 뉴욕에 영주하며 20세기에 있어서 가장 대담한 창의에 넘쳐흐르는 혁신적인 작곡가가 되었다. 현재의 전위음악의 교조라 해도 좋다. 1933년에 니콜라스 슬로니무스키의 지휘로 뉴욕에서 초연된 <이오니제이션(電離)>은 41개의 타악기와 사이렌 2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세인들은 즉시 '작곡계의 이단자'라고 떠들었다. 당시 미국의 평론가 P. 로젠펠트는 "폭발적인 화음은 불가사의한 리듬과 결부되어, 극단적인 단순화로 발생하는 놀랄 만한 박력은 진정 공간의 물체를 모두 원소로 환원시키는 것 같은 감명을 준다. 높은 음, 심히 거친 음, 저력이 있는 음량은 과학으로는 이해가 안 되며, 다만 감각으로써만 감지할 수 있는 어떤 힘의 진행을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고 논평하였다. 또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그와 같은 자유분방한 작곡가는 오늘날 쇤베르크가 있을 뿐이다. 이 두 작곡가야말로 음악 진전의 전초라고 하겠다"라고 격찬하였다. 스토코프스키의 예언은 적중하였다. 바레즈의 작품수는 적지만 그 영향력은 쇤베르크와 함께 20세기 작곡의 지평선을 암시한 것이다. <전리(電離)> 이전의 작품으로는 <옥탄들>, <적분(積分)>, <아메리크>가 있고, 이후의 작품으로는 <적도>, <덴시티 12.5>(무반주 플루트 독주곡), <사막>이 있다. 전후에는 전자음악에도 손을 대어 1958년 브뤼셀 세계박람회의 필립스관(館)을 위하여 400개의 마이크를 사용해서 <전자음악의 시곡(詩曲)>을 제작, 화제를 낳았다. 1965년 11월 6일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그로페
[편집]Ferde Grofe(1892-1972) 1892년 3월 27일 뉴욕에서 태어난 작곡가. 폴 화이트맨 악단의 편곡자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편곡하여 유명해졌다. 다작가이기는 하나 모음곡(組曲) <대협곡(大峽谷)>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적인 음악을 특기로 하며, 모음곡 <미시시피>, <뉴욕 세계박람회> 등 대중적인 관현악곡으로 인기를 떨쳤다.
대협곡
[편집]大峽谷 그로페 작곡(1931). 미국의 유명한 국립공원 '그랜드 캐년'의 절경을 색채적인 음화(音畵)로 묘사한 모음곡. '일출', '빛깔 잃은 사막', '산길에서', '일몰', '호우'의 5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노새를 타고 산길을 내려오는 '산길에서'는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해리스
[편집]Roy Harris(1898-1979) 미국 굴지의 교향곡 작곡가이다. 1898년 2월 12일 오클라호마주 링컨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이미 10곡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는 해리스는 미국 유일의 교향곡 작곡가로 알려져 '미국의 쇼스타코비치'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이다. 자신을 '현대의 고전주의자'라고 하듯이, 긴 멜로디선(旋律線)을 전개시켜 대위법적인 수법으로 미국 서부의 대평원을 연상케 하는 광활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제1악장 형식에 의한 <제3교향곡>(1938)은 추상적으로 미국의 서정과 극적인 박력을 노래한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해리스의 음악은 말하자면 수직(手織)의 맛이 있다. 다소 거치른 곡에 소박한 인간미가 담겨져 있다.
거슈윈
[편집]George Gershwin(1898-1937) 심포닉 재즈를 불멸의 것으로 만든 천재적 작곡가이다. 1898년 9월 26일 브루클린(NY)의 가난한 러시아계 이민의 집에서 태어난 거슈윈의 이력은, 16세 때 유행가를 선전하는 피아노 주자로 악보상에 고용된 데서 비롯된다. 그의 음악교육은 전혀 일관성이 없으며, 단속적으로 교수를 받았다고 한다. 통속곡의 작곡으로 성공하였을 때도 그는 작곡이나 피아노의 개인교수를 두는 일이 없었다. 물론 그의 향학심이 마음의 지주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이름을 불후의 것으로 만든 것은 풍부한 멜로디의 재능과 신선한 리듬을 창조하는 천분의 재능 덕분이었다. 이것은 어떠한 공부로도 살 수 없는 매우 귀중한 것이다. 19세 때에 작곡한 가곡 <스와니>는 즉각 백 만부 이상이 매출되었고 레코드도 225만 장이나 팔렸을 정도로 인기를 끌어 거슈윈의 캐리어는 성공의 연속이었다. 이어 그의 이름을 클래식 세계에까지 떨치게 한 것이 바로 유명한 <랩소디 인 블루>이다. 1924년 2월 12일 뉴욕의 이오리안 홀에서 있은 폴 화이트맨의 기획·지휘로 된 발표회에서 거슈윈은 자신이 피아노 파트를 연주하였다. 이 곡은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다 재즈의 기법과 정신을 도입한 것으로, 심포닉 재즈의 최고 걸작인 것이다. 이 성공에 힘입은 거슈윈은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교향시 <파리의 아메리카인>, <랩소디 제2번>, <쿠바 서곡> 등의 관현악곡을 작곡하였다. 1935년에 초연된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는 지금도 미국이 낳은 포크 오페라의 최고 걸작의 자리에 오르고 있다. 오페라를 완성하고도 거슈윈은 할리우드로 초빙되어 프레드 아스테아, 진저 로저스가 공연한 뮤지컬 영화 <춤추지 않겠니>의 음악을 작곡하고, 다음의 영화음악을 작곡 중 갑자기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병은 무서운 뇌종양이었다. 1937년 7월 11일 아침 거슈윈은 형인 아일러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평생 독신이었던 거슈윈은 작사가인 형 아일러와 단란하게 살면서 부모와 친척도 잘 돌보았다고 한다. 취미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1960년에 회고전(回顧展)이 개최되었을 정도로 전문가 솜씨였다.
랩소디 인 블루
[편집]Rhapsody in Blue 거슈윈 작곡(1924). 심포닉 재즈로서 최초로 성공을 한 명곡.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해 작곡되었다. 그로페에 의하여 관현악에 편곡되었으나, 거슈윈의 신선한 음악성은 불멸의 생명을 지녔다.
파리의 아메리카인
[편집]An American in Paris 거슈윈 작곡(1928). 그리운 파리에서 놀던 인상을 교향시로 만든 것. 파리의 블루발(번화가)의 흥청거리는 것과 미국인의 향수가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파리 특유의 택시 경적이 악기에 가담되어 '오래고 좋은 파리'를 그립게 한다.
포기와 베스
[편집]Porgy and Bess 거슈윈 작곡(1935). 헤이워드의 희곡을 오페라화한 것으로, 앉은뱅이 포기와 그의 애인 베스를 비롯해서 게스트는 모두 흑인이다. 흑인영가와 재즈를 교묘하게 종합한 수법으로, 미국에서 최초로 포크오페라를 확립한 걸작이다.
코플랜드
[편집]Aarom Copland(1900- ? ) 순음악에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 놓은 작곡가. 1900년 11월 14일 브루클린(NY)에서 유태계·러시아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에 유학했고, 귀국 후 현대음악과 대중이 유리되어 있음을 보고 멕시코 여행의 인상을 바탕으로 한 <엘 살롱 멕시코>(1937)를 발표하여 넓은 음악층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코플랜드는 미국적인 요소를 순음악으로 살려,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클래식 작품에 심는 데 성공하였다. 이 계열의 작품은 발레곡 <로데오>, <애팔래치아의 봄>, <빌리 더 키드>, 오페라 <텐더 랜드>, 영화음악에 <생쥐와 사람들>, <빨간 망아지>, <우리의 거리> 등이 있으며, 넓은 대중층을 획득하였다. 반면 코플랜드에게는 <제3교향곡>을 비롯한 절대음악적인 작품 계열도 있어 2가지 면을 지닌 작곡가이다.
엘 살롱 멕시코
[편집]El Sal n M xico 코플랜드 작곡(1937). 멕시코 시티에 있는 유명한 카바레 겸 댄스홀을 제명으로 한 일종의 교향시이다. 멕시코 민요를 사용하여 멕시코인의 적나라한 생활감정을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애팔래치아의 봄
[편집]Appalachia-春 코플랜드 작곡(1945)의 발레 모음곡. 애팔래치아 산맥에 봄이 찾아와, 개척자의 집에서 젊은 농민의 결혼식이 거행된다. 청교도의 한 파인 '셰이커파'의 청순한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이 들을 만하다.
카웰
[편집]Henry Cowell(1897-1965) 작곡가.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뒤 베를린 유학을 한 카웰의 음악생활은 12살 때인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작곡 및 피아노 연주회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1920년대에 5차에 걸쳐 유럽을 여행하여 바르토크(B. Bartok), 베르크(A. Berg) 등과 친교를 갖게 되었으며, 1928년, 미국인 음악가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그 후 30년간 미국·유럽·아시아 등지에서 교수생활을 하였는데, 제자로는 조지 거슈윈, 존 케이지 등이 있다. 레온 테레민과 협력하여 16개의 다른 리듬형을 정확히 연주할 수 있는 전기 리듬악기 '리드미콘(Rhythmicon)'을 발명했는데, 그의 작품의 특징의 하나는 마지막 형태 또는 내용을 명확하게 완성하지 않고, 연주자 자신이 재구성 또는 연주시간의 길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탄력적(elastic)' 형태를 만든 것이다. 카웰은 현대 미국의 가장 활동적이었던 작곡가의 한 사람이며 1천 곡 이상을 작곡하였다.
카터
[편집]Elliott Carter(1908- ) 가장 창의에 찬 미국의 제1선 작곡가이다. 1908년 12월 11일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창의력을 가지고 사고하는 작곡가이다. <현악 4중주곡 제2번>(1959)은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4개의 현악기가 자아내는 상호작용, 구성, 협력 및 대립으로 곡이 발전해 간다. 1967년 1월에 보스턴 교향악단의 정기공연에서 초연된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인간사회의 대립'으로 구상하고 있다. 카터의 해설에 따르면, "피아노가 탄생한다.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 말을 가르친다. 피아노가 왼다. 드디어 피아노는 오케스트라가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이런 식으로 곡은 진행되고 양자는 싸우고, 최후에 피아노가 승리를 거둔다. 이는 또한 인류의 이상에 통한다고 한다. MIT 음악교수로도 재직했다.
바버
[편집]Samuel Barber(1910-1982) 미국의 대표적인 신낭만파 작곡가이다. 1910년 3월 9일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커티스 음악원 재학 중에 작곡한 가곡 <도버의 해변>은 영국시인 매슈 아놀드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이 밤의 바다는 고요하고 물결은 넘쳐 달은 밝은데 해협에 둥실 떠있네…"라고 낭만적인 서정을 노래한 아름다운 가곡이다. 일말의 애수를 품은 낭만적인 시정은 바버 작품에 일관하여 흐르고 있다. <제1교향곡>, <현악을 위한 아다지오>, <관현악을 위한 에세이 1, 2> 등은 토스카니니, 블루노·월터, 로진스키 등의 유명 지휘자의 눈에 들어 젊어서 일찍 악계에 등장하였다. 오페라로는 두 작품이 있으며 모두 메트로폴리탄가극장에 위촉된 작품이다. 1966년 가을 그 극장이 링컨센터의 새 극장으로 옮겼을 때 그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로 첫공연을 장식했다.
슈만(윌리엄)
[편집]William(Howard) Schuman(1910- ? ) 줄리아드 음악학교장(1945-1962)을 거쳐 링컨센터 총장의 요직을 거친 미국악계의 실력자이다. 격무의 틈을 타서 작곡활동도 활발히 하여, 8곡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작을 작곡했다. 대위법적인 구성 속에 현대성을 발양(發揚)시키는 견실한 작풍의 소유자이다.
메노티
[편집]Gian Carlo Menotti(1911- ) 이탈리아인이며 미국적인 창작 오페라의 작곡가이다. 1911년 7월 7일 이탈리아의 카델리아노에서 태어났으나 16세 때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바버와 동기로 두 사람은 지금도 친구이다. 메노티는 오페라에 대한 이탈리아인 특유의 재능을 미국의 무대가 요구하는 것에 적응하여 즉각 성공을 거두었다. <도둑과 노처녀>, <영매(靈媒)>, <전화>, <영사(領事)>, <아말르와 밤의 방문자>, <블리커 거리의 성자> 등은 비극과 희극의 양면에서 메노티의 천재적 수완을 발휘한 작품이다. 한편 그랜드 오페라에도 손을 대어, 1963년에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최후의 야만인>은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TV오페라 <미로(迷路)>를 작곡했는가 하면 <브린디지의 신부 죽음>과 같은 침통한 칸타타도 작곡한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케이지
[편집]John Cage(1912-1992) 미국 전위음악의 최초의 작곡가. 1912년 9월 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여러 사람의 급진적 작곡가에게 사사한 뒤 자기의 길을 찾았다. 우선 케이지는 피아노 현에 여러 가지 이물(異物)을 끼워 지금까지 없던 이상한 소리로 곡을 구상하여 '프리페어드 피아노'음악이라 이름하였다. 더욱더 전진한 케이지는 소음(騷音)마저 포함하고 모든 자연음과 인공음을 소재로 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음의 철학'을 전개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온 세계를 연주여행하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무음(無音)의 적막조차 음으로 생각하고 있다. <4분 33초>라고 하는 곡은 3악장으로 된 사일런트 뮤직으로 4분 33초 동안 피아니스트는 전혀 연주함이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을 뿐이다. 저서로는 에세이집(集) <침묵>이 있다. 케이지의 태도는 일종의 문명 비판가의 자세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번스타인
[편집]Leonard Bernstein(1918-1990) 미국이 낳은 최초의 명지휘자 겸 작곡가. 1918년 8월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태어났다. 1958년부터 뉴욕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였으며, 동시에 작곡가로서도 다채로운 활동을 병행하여 미국악계에서 '수퍼맨'이라 불렸다. 번스타인의 작곡활동은 정력적이어서, 순음악과 뮤지컬의 양면에 걸쳐 있다. 침통한 유태의 신앙에서 발생한 <교향곡 제1번'에레미아'>와 <교향곡 제3번 '카디쉬'> 등의 종교적 작품, 또는 W. H. 오덴의 장편시로 된 현대의 불안을 음악으로 표현한 <교향곡 제2번 '불안한 시대'> 등은 전자에 속하고 있다. 뮤지컬에서는 우선 뮤지컬적인 발레 <팬시 프리>나 <온 더 타운(춤추는 대뉴욕)>으로 성공한 뒤 온 세계를 풍미한 본격적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왕좌에 올랐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한 것은 르네상스와 20세기의 특색이나, 번스타인은 '현대의 르네상스맨'의 전형적인 천재이다. 그는 11년간 뉴욕 필하모니의 지휘자로서만이 아니라 작곡자로서의 많은 교향곡, 실내악곡, 뮤지컬 등을 발표하였다
교향곡 제2번 불안한 시대
[편집]交響曲第二番<不安-時代>번스타인 작곡(1949). W. H. 오덴의 장편시 <불안한 시대>를 바탕으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해 구상한 교향곡이다.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감을 주제로 한 불안의 철학을 음악에서 찾으려고 한 의욕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슐러
[편집]Gunther Schuller(1925- ) '서드 스트림'의 대표적 작곡가이다. 1925년 11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프렌치 호른 주자로 입신하여, 장기간 메트로폴리탄가극장의 전속관현악단의 수석 호른 주자로 있으면서 작곡활동을 해왔다. 1957년에 '서드 스트림(제3의 흐름)'이라는 슬로건을 표명하고, 고전형식에 재즈의 즉흥연주적 요소를 결합시켜, 유동적인 새로운 형태를 구상했다. 클레의 그림 이미지를 음으로 묘사한 <폴 클레를 주제로 한 7개의 습작>(1959)은 슐러의 의도하는 바가 대체로 성공한 작품으로서 호평받고 레코드에도 녹음되었다. 1966년 10월 12일 함부르크 국립극장에서 슐러의 오페라 <심판>은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오페라는 카프카의 소설 <심판>에서 모티프를 빌려 미국의 흑인이 백인 폭도 때문에 참혹하게 죽는다는 미국의 치부(恥部)를 파헤친 이색적 작품이다. 슐러는 12음음악과 재즈를 결합시킨 기법으로 처절한 현실감을 강조했고 절찬을 받고 있다. 백인 고발자가 흑인에게 린치를 가하며 최후에는 도끼로 찍어 죽이는 처참한 음악극을 통해 슐러는 미국뿐 아니라 널리 인간성의 잔혹(殘酷)함에 저항하고 있다.
중남미
[편집]폰세
[편집]Manuel(Maria) Ponce(1882-1948) 멕시코의 민족주의 작곡가. 1882년 12월 8일 프레스닐로에서 태어나 1948년 4월 24일 멕시코시티에서 별세하였다. 가곡 <작은 별>로 알려져 있으나, 20세기의 음악 텍스처(音樂書法)를 처음 채택한 멕시코 작곡가로서 중요한 존재이다. 기타곡에도 뛰어난 작품이 적지 않다.
빌라 로보스
[편집]Heitor Villa-Lobos(1887-1959) 중남미가 낳은 최초의 국제적 작곡가이다. 1887년 3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나 1959년 11월 17일 그 곳에서 별세했다. 비상한 다작가이며, 아직은 완전한 작품 목록이 되어 있지 않으나 적어도 2,000곡 이상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브라질의 토속적인 민족음악을 소재로 개성과 색채감에 넘치는 이국적인 작품을 작곡하고 있다. 바흐의 정신으로 브라질 민족음악을 작곡하였다는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소프라노 독창과 첼로 합주를 위한 <제5번>은 특히 유명하다)를 비롯하여 피아노 모음곡 <아기의 가족>(루빈스타인의 애주곡)이나 기타 독주 <전주곡집>과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남국의 향기 높은 매혹적인 엑조티시즘에 의하여 잊을 수 없는 맛을 노래하고 있다.
차베스
[편집]Carlos Chavez(1899-1978) 멕시코의 대표적 국민주의 작곡가이며 지휘자. 1899년 6월 13일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에스파냐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이미 소멸되고 만 고대 인디오 음악의 재건을 마음먹고 있었다. <심포니아 인디아>나 <심포니아 안티고나>에는 인디오의 토속악기도 가해져, 장엄하고 웅대한 고대 멕시코 문명이 오케스트라라는 매개에 의하여 음으로 재생된 느낌이 있다. 1928년 처음으로 멕시코에 교향악단을 창설하여, 현재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멕시코 국립교향악단의 기초를 만든 것도 차베스로 현대 멕시코 음악에 있어 중요한 존재이다.
히나스테라
[편집]Alberto Ginastera(1916-1983) 아르헨티나 유일의 국제적 작곡가. 1916년 4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53년부터 국립음악원 교수이며, 소프라노 독창과 53개의 타악기를 위한 <원시 라틴아메리카의 고요(古謠)에 의한 칸타타>를 비롯하여 오페라 <돈 로드리고>, <보마르소>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전자음악 이외의 모든 기법을 쓰고 있으며, 민족적인 제재를 국제적인 수법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