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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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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Republic of Afghanistan 정치체제:공화제 수 도:카불(Kabul) 인 구:2,681만명(2001) 면 적:64만 7,500㎢ 소 득:1인당 GDP 800달러(2003) 공 용 어 :푸슈투어, 페르시아어 화폐단위 :아프가니(Af) 주생산물 :견과류, 모피, 양고기 / 양탄자, 구두 / 석탄, 천연가스
아프가니스탄의 자연
[편집]Apghanistan-自然
파미르 고원에서부터 남서로 뻗은 힌두쿠시 산맥이 국토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여러 개의 지맥을 파생시키고 있다.전산계(全山系)는 5,000m의 고봉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고도는동부의 6,000m에서 서부로 가면서 차츰 낮아져, 가장 낮은 곳은 1,500m 이하로 이란 고원으로 이어진다. 힌두쿠시 산맥의 북쪽 사면(斜面)은 완만하나 남쪽 사면은 험준하여 파로파미수스 산맥 등의 지맥이 파생되어 있고 헬만드 강이 깊은 협곡을 형성한 다음 헬만드 사막의 헬만드 호로 흘러든다.
아프가니스탄의 기후
[편집]여름에는 혹서, 겨울에는 혹한이 찾아오는 고지대 조건 아래서 기온의 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강우량은 평균 180㎜로 건조해 있으나 북동부의 산악지대에 비가 가장 많이 오고, 남서쪽으로 표고가 낮아지면서 우량도 줄어 사막지대가 나타난다. 이 지방은 우기인 12
4월의 강우량이 약 60㎜이다.북쪽의 산악지대에서는 심한 눈보라도 드물지 않으나 봄·가을의 고원계곡의 기후는 쾌적하다. 북쪽 산기슭에는 농경, 평원에서는 유목이 특색이며, 서부와 남부에는 사막이 많다. 카불강 유역의 중앙에서 동부에 있는 지역이 주요 농경지로 되어 있다. 아무다리야강 유역에는 범·표범 등의 맹수가 살며 힌두쿠시산맥에는 곰·이리·영양이 서식한다. 삼림은 힌두쿠시의 동부에 많으며 소나무·삼목·떡갈나무가 무성하다.
힌두쿠시 산맥
[편집]HinduKush 山脈
아프가니스탄 중앙부를 차지하며 7,000m의 고봉도 있는 습곡산맥.
아프가니스탄의 주민
[편집]-住民
푸슈툰족 50%, 타지크족 25%, 북부에는 우즈베크족 9% 등이 거주하고 있어 동서 문명의 매개지인 이 나라의 복잡한 민족구성을 말해 주고 있다.아프간족의 대부분은 유목생활을 하는데, 푸슈툰이라고 자칭하며, 푸슈토어(語)를 사용한다.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타지크족은 헤라트와 카불에 거주하며, 농민, 도시 또는 오아시스의 상인이 많다.터키계(系)의 우즈베크족은 초원의 유목민이고, 몽골군 장병의 자손이라는 하자라족은 중앙 산악지대에 거주하면서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며, 병사나 노동자가 되어 도시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 밖에 소수의 누리스타니족(카빌족)과 와하니족 등이 있다.언어는 페르시아어와 푸슈투어를 사용하는 주민이 많으나 각 민족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학교교육에서도 이들 2가지 언어가 사용된다. 파슈토어는 칙령에 의하여 1936년에 국어로 지정되었다. 아프간 족은 파슈토어를 사용하고 타지크족과 하자라족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데, 그 서법(書法)은 아라비아어에서 따온 것이다.종교는 아프간족이 회교의 수니파(派), 타지크족과 하자르족은 시아파에 속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편집]-歷史 아프가니스탄 건국의 역사는 아프간족의 아흐마드샤가 칸다하르를 도읍으로 정하고 왕국을 선포한 17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흐마드샤 다음에는 그의 아들 티무르 샤가 즉위하고 카불을 수도로 정하였다. 그뒤 바라크자이족은 도스트 무하마드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1838년에 정식으로 카불의 아미르(왕)라고 칭하였으며, 이에 구왕국(舊王國)시대의 바라크자이 왕조가 성립되었다.19세기부터 아프가니스탄은 영국과 러시아의 항쟁의 대상이 되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자국의 세력하에 두려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제1차(1838∼1842), 제2차(1878∼1880) 아프간전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일부가 인도에 할양되었으며, 1893년 아브도르 라흐만 칸 때 인도와의 국경선이 확정되고 1901년에는 연금을 받기로 하고 외교권을 인도에 일임하게 되었다. 1905년 하비브알라가 이 조약을 비준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1919년 하비브알라가 반(反)영국주의자의 손에 암살된 후 같은 해 후계자가 된 아만알라는 반영국적 의견에 동감하여 인도 정부에 대해 적대행위를 취했으나(제3차 아프간전쟁)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8월에 라왈핀디 화평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인도 정부로부터의 연금이 폐지되고 외교지도권 폐지가 약정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왕은 국내 통일과 서양문화 도입에 힘썼으나 보수세력의 반대로 퇴위한 뒤 망명하였다. 뒤를 이어 헌법을 제정하고 의회를 연 나디르한까지 33년 암살당하자 그의 아들 자히르 샤가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후 오랫동안 왕위를 유지하였으나, 1973년 7월 국왕의 외유중에 쿠데타가 일어나 모하마드 다우드 칸 전(前) 총리가 실권을 쥐고 공화제를 선언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편집]-政治
2001년 미국은 9·11 테러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고 2001년 12월 과도정부가 수립되었다. 2002년 6월 22일 하미드 카르자이가 임정대통령에 취임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산업·무역
[편집]-産業·貿易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유목민인 푸슈툰족이 지배하는 나라이나, 생태적으로는 양과 염소의 유목과 오아시스 농업이 산업의 두 지주가 되어 있다.남부에서는 면화, 카불 계곡에서는 밀·보리·옥수수·사탕수수, 북부의 암강 유역에서는 밀·보리 등이 재배된다. 그러나 경지면적은 국토의 불과 몇 퍼센트로, 그 대부분은 상류계급의 푸슈툰족과 투르크멘족의 소유이다.지하자원의 종류는 많으나, 현재 채굴되고 있는 것은 석암·암염(岩鹽) 정도이다. 면방적공업, 제당공업, 양모공업의 공장들이 외국원조로 카불, 자랄라바드, 칸다하르 등지에 각각 건설되었다.수출품은 과일과 밤이 주요 수출의 주종을 이루는 외에 양피·면화·융단 등이 미국과 영국으로 수출되며 공업제품이 많이 수입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편집]-社會
아프가니스탄 사회상의 중요한 특징은 지배민족인 아프간족(파탄족 혹은 푸슈툰족)이 지니는 ‘파슈툰와레이(파슈툰 정신)’라고 하는 독특한 도덕·관습법이다. 이는 용기·자유·독립을 숭상하며 이슬람교 이상으로 그들을 규제하고 있다. 3차에 걸친 아프간전쟁에서 영국군을 괴롭히고,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소련군을 애먹인 것도 이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이 정신의 순수성을 크게 나누면 폐쇄촌락, 개방적 촌락, 도시의 3단계가 된다. 외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폐쇄촌락에서는 이 정신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다툼이 끊이지 않는 반면 자존심과 독립심을 지니고 질박하면서도 강건한 생활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남녀의 권리도 비교적 평등하다고 한다. 개방적 촌락에서 도시로 개화해감에 따라 순도가 낮아지는데, 도시에서는 이 정신을 지키는 한편으로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남자는 일반적으로 터번을 두르며 상류계급의 여자는 외출할 때 반드시 차도르라는 길고 검은 베일을 착용하게 되어 있었는데, 1959년부터는 착용이 자유화되었으며, 지금은 양장차림의 여성도 있다. 그러나 농민과 유목민 여자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며 집에 칩거하는 경향이 많다.주거는 돌이나 흙벽돌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유목민은 천막에서 생활한다. 모든 교육이 무료로 이루어지는데, 초등학교는 전국적으로 급속한 증가를 보이는 반면 중등 이상의 교육시설은 도시에 집중해 있다. 대학은 카불대학과 잘랄라바드의 낭그라하르대학이 있으며, 사범·공업·상업·농업·미술 등의 전문학교도 있다. 그러나 문맹률은 아직도 81.8%나 된다.신문·통신·출판물은 정부의 통제하에 있으며, 국영방송 1개국, 일간신문 13개가 있다. 스포츠는 근대경기 중에서는 하키가 성행한다. 지리적으로 동서교통의 요지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문화의 유적이 많으며, 조각·상아제품·유리단지·청동·입상·화폐·세밀화 등의 발굴이 빈번하다.
아프가니스탄의 교통·도시
[편집]-交通·都市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상 동서문명의 십자로 역할을 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인도에 이르는 길목 구실도 했는데, 근년에는 인도양 항로의 발달 및 국제항공의 발달로 유라시아 대륙 중앙에 위치하는데서 오는 종래의 우위성은 없어졌다. 카불-칸다하르사이, 64년 구소련의 원조로 개통된 카불에서 힌두쿠시 산맥을 관통하는 살랑터널 등의 간선도로는 좋으나, 그 외는 사막도로이다.
카불
[편집]Kabul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인구 176만(1994). 동쪽으로 흐르는 카불강 연변에 발달한 농산물의 집산지. 면공업, 양모공업의 시설이 있다. 북쪽에 힌두쿠시산맥을 바라보는 고원에 위치하여 다하르에서 파키스탄에, 파라를 거쳐 이란으로 통한다. 기후는 건조하며(연강수량 338㎜), 7월 평균기온 24.7
, 1월 평균기온 -2.8
이다.시가는 카불강(江)에 의해서 신·구 두 시가로 나뉜다. 우안의 구시가는 전체적으로 미로상(迷路狀)을 이루며 차하르차타라고 하는 큰 시장이 있다. 좌안의 신시가에는 고급 주택가와 관청·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아프가니스탄 건국의 시조 아흐마드 샤의 아들 티무르 샤가 1774년 수도로 정하였다.고대부터 동서 교통의 요지이며 교외 다르라만의 국립박물관에는 동서교류의 역사를 말해주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 6세기에 카불에서 인도로 쳐들어가 무굴왕조를 세운 바부르의 묘(廟)가 시의 서쪽 교외에 있고, 영국의 탐험가이며 고고학자인 O.스타인의 묘가 외인묘지(外人墓地)에 있다. 시장에서는 농산물과 수입물자의 거래가 활발하며 직물·식료품·금속가공 등의 소규모 공업이 이루어진다. 인구 271만 6,000명(2000).
칸다하르
[편집]Kandahar
남동부에 위치하는 카불 다음의 주요도시이다. 건국 당시의 수도이며 최근에는 헬만드강 유역 개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바미안
[편집]Bamian
카불 북서. 힌두쿠시 산맥 중의 소분지에 있으며 3∼5세기에 만들어진 높이 53m의 불상과 35m의 벽화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