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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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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과도정부 수 도:바그다드(Baghdad) 인 구:2,333만 1,985명(2001) 면 적:43만 4,920㎢ 소 득:1인당 GDP 2,500달러(2000) 공 용 어 :아랍어 화폐단위 :디나르(dinar / ID) 주생산물 :대추야자, 밀, 보리 / 가죽제품, 정유 / 석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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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자연
[편집]Iraq-自然
국토의 반을 차지하는 시리아 사막이 서남부에 펼쳐져 있는데 그 중앙을 유프라테스강이 흐르고 북동부의 쿠르디스탄에서는 티그리스강이 발원, 이 두 하천 유역에 메소포타미아 평야가 형성된다.기후는 북부산지를 제하고는 스텝 사막성이며, 5
8월은 건조기로 기온이 50
정도로 오르지만, 11
4월은 기온이 온화하고 300㎜ 정도의 강우도 있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편집]Tigris·Euphrates 江
메소포타미아 평야의 중앙을 흘러 남부의 쿠르나 부근에서 합류하여 샤트 알 아랍강이 된다.
이라크의 역사
[편집]-歷史
세계최초의 농경목축은 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남부에서는 기원전 3500년경 원시농촌들 가운데서 우르크 등의 도시가 신전(神殿)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것이 슈메르인이 건설한 세계최초의 도시문명이다. 이어 아카드 왕조, 고(古)바빌론 왕조가 일어나 법치주의 국가를 형성했다. 북부의 아수르 왕국 및 서아시아에 일어난 최초의 세계제국 아시리아는 기원전 8세기 말부터 철제무기를 사용하여 광대한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했다. 그후 신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 등의 왕조가 일어나 정치의 중심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떨어져 갔으나 9세기말 압바스 왕조는 수도를 바그다드에 정하고 사말라의 마나레트 같은 건축·회화양식을 자랑하는 이슬람 문화를 창조했다.1258년 바그다드가 멸망하면서 오랫동안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다가 1차대전 후(1918)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들어갔다. 독립을 달성한 것은 1932년이다.
이라크의 주민
[편집]-住民
아랍인 75%, 쿠르드인 15~20% 외에 터키계인 5~10%, 아시리아인 등의 소수민족이 있다. 북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인은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 아랍인과의 융합을 거부하며, 자치권을 주장하면서 무력행동을 취하는 등 내정상의 곤란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공용어는 아랍어인데 도시에서는 영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주민의 95%가 회교도이다.
이라크의 정치
[편집]-政治
2003년 3월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의 공격으로 후세인 정권은 붕괴되었고 미국과 영국의 군인들이 이라크를 점령했다.
2003년 7월 미군정하에 25인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25인 위원은 시아파 13명, 순니파 5명, 쿠르드족 5명, 아시리아 기독교인, 1명 투르크멘족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라크의 산업
[편집]-産業
주요산업은 농업과 목축업으로,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 밀·보리·면화·쌀·담배 등이 재배되며, 세계 총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대추야자는 주요 수출품이다. 공업의 발달은 낙후된 편이나 시멘트·강·기계 등의 근대공업도 발달되어 가고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천연가스·철·석탄·망간·소금 등이 약간 매장되어 있다. 석유는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1927년부터 키르쿠크에서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석유 수출이 재정수입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매장량은 1000억 배럴. 1990년 쿠웨이트 침공 직후 유엔제재 조치로 수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라크의 교통·도시
[편집]- 交通·都市
유프라데스, 티그리스 양하천은 주요 교통로의 역할을 한다. 북부의 중심은 모술과 석유의 산지 키르쿠크이며, 중부의 중심은 바그다드, 남부의 중심은 바스라이다.주요 도시는 메소포타미아 평야, 특히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양하천 유역에 집중분포해 있다.
바그다드
[편집]Baghdad
1921년 이라크의 독립과 더불어 수도가 되었다. 인구 479만 6,000명(2000). 국토의 중앙부를 흐르는 티그리스강 연안에 위치하며 정치, 상업, 교통, 문화의 중심지이다. 762년에 압바스 왕조가 소도로 정한 후 영화를 누렸으며 '아라비안나이트'의 무대가 된 도시.전통적 건물, 주점, 시장이 상당수 남아 있기는 하지만 현대화로 인해 외형적인 특성들은 많이 변모되었다. 티그리스 강의 범람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시의 외부로 팽창하게 되었고, 이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로 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건축됐다.13세기 건축물로는 아바시드 궁과 1234년에 칼리프 알무스탄시르가 세운 이슬람법과 대학 무스탄시리알 대학이 남아 있다. 수백년 가량된 사원과 왕릉이 있으며 한때 이슬람 왕국을 건설했던 파이살 1세의 왕릉도 유명 유적지이다. 이 외에 바그다드대학(1757)과 역사·민속 박물관이 몇 군데 있고 이슬람-아랍 역사서와 문학서를 소장한 알아우카프 도서관(1928)과 바그다드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이 있다.
모술
[편집]Mosul
티그리스 강 연변에 있는 도시. 북부 이라크의 농산물 집산지. 모슬은 이라크의 다른 도시보다 사원이 많기로 유명한데, 고대 도시의 폐허된 자리에 사원을 많이 건립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고학자를 중심으로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중에 있는데, 여기에서 나온 많은 귀중품들이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바스라
[편집]Basra
남부의 중심으로 국내 제2의 도시. 무역항이며 시내에 운하망이 있다.
이라크의 관광명소
[편집]-觀光名所
고대문명의 번영지인 이라크는 유적과 옛건축물들이 많은데 특히 고대 수메르유적과 바빌론유적 등 가치가 높은 곳이 많다.
바빌론
[편집]Babylon
가장 유명한 고대도시 중의 하나로 B.C. 2000년대 초기부터 1000년대 초기까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수도였고 B.C. 7세기와 6세기의 전성기 때 신바빌로니아(칼데아)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8㎞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바빌론의 광대한 유적은 재 이라크의 알하라시 근처에 있다.현재 남아 있는 넓은 유적지는 몇 개의 흙둔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으로는 바빌(Babil:외성 북쪽에 있는 네부카드네자르의 궁전), 카스르(Qasr:페르시아 시대에 증축된 궁전)와 이슈타르 문, 에마크 신전, 메르키즈(merkez:동편에 위치한 고대 주거지역), 암란 이븐 알리(Amran ibn Ali:에사길라의 유적), 훌라(Humra:알렉산드로스가 재건을 위해 지구라트에 옮겨놓은 잡석들과 그가 지구라트의 석재로 세운 극장) 등이 있다.
이라크 박물관
[편집]Iraq 博物館
고고학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 이슬람시대에 이르기까지 개략적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시되어 있다. 모두 28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이는 중동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제1·2관에는 선사시대의 출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당시 이슬람인의 신앙을 나타낸 테라코타로 만든 대지의 여신상 등이 있으며 동으로 만든 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3관에는 황금의 장신구, 점토판, 원통형의 인장 등이 있다. 제5관에는 바빌로니아의 유적이 전시되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보다 200년 정도 더 오래전에 제작된 점토판이 있다.
공중정원
[편집]空中庭園
바빌로니아 수도 바빌론의 왕궁 안에 꾸몄던 정원으로 세계 7대 불가사리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실제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 있는, 즉 지구라트에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에 만든 옥상정원으로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반전설적 인물인 삼푸라마트 여왕(그리스어로는 세미라미스이며 B.C. 810∼783년에 앗시리아를 다스린 아다드 나라리 3세의 어머니)이 만들었다고도 하고, 네부카드네자르 2세(재위:B.C. 604∼562)가 고향의 산과 나무를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알 카디미야 사원
[편집]Al-Kahdhimain
이 사원은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중의 하나로 금으로 장식한 돔과 뾰족탑이 유명하다. 건물은 1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스스로 예언자라고 말하는 Musa al-Kadhim과 Muhammed al-Jawad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아슈타르 문
[편집]바빌론의 정면현관에 있으며 벽에 사자·황소 그리고 꼬리가 용과 비슷한 괴수 Mushhush가 그려져 있다. 현재 유적의 입구에 있는 이슈타르 문은 복원된 것이고 원문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천지창조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한 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사랑의 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리스의 아폴로디테의 전신이 이슈타르였다는 설도 있다.
하트라 사원
[편집]하트라 사원은 대리석으로 된 성문도 훌륭하지만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아슈탈테 신의 위풍은 주위를 누른다. 신전을 지탱하는 양쪽 대리석에는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고 벽과 천장을 지탱하는 양 기둥에도 무늬가 새겨져 있다.중앙의 신전을 지키기 위해 좌우의 후방에 높이 2.5m의 여성 대리석이 서 있고 신전 내부에는 높이 5m 전후의 입상이 있는데, 3세기경에 페르시아인에 의해 목 윗부분이 파괴되어서 몸체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