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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정치와 생활/정치와 국가/정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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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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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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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意義

통속적(通俗的)·관용적(慣用的) 의미로서의 정치(politics) 또는 정치적이란 말은 '어떤 힘에 의하여 사람의 의사 또는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한 사람이나 소수인의 의사 또는 행동이 아니고 다수자의 그것이며, 가장 전형적인 것은 국민과 같은 경우이다. 타인의 의사나 행동을 움직여서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거나 어떤 방침에 따르게 하는 경우에 '정치력(政治力)'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또 일반적인 경우 통상(通常)의 관계로는 쉽게 타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 '그것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하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힘이 작용하거나 어떠한 수단에 의해 해결된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정치나 정치적이라는 말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또는 그런 말에 대해서 연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태도나 반응을 나타낸다. 이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긴 하나 일반적으로 한국의 경우도 포함하여 정치나 정치적이라는 것은 추악한 것, 저열(低劣)한 것, 불결하고 불성실(不誠實)한 것 등의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정치나 정치적이란 말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이요, 진실을 왜곡한 위선(僞善)·부정직(不正直) 투성이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정치가 모두 이렇게 간주되거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정치가의 행동이나 행상(行狀)에서 받는 느낌은 결코 고상한 것이라고는 하기가 어렵다.

이런 통속적·관용적인 어의(語義)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정치라는 것은 기타 사회현상과는 다른 일종의 특별한 현상이다. 국민은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종사하고 정치라고 하는 활동에 의해 그 평면(平面)에 있어서 통일되어 있다. 정치에 대해서는 직접·간접 또는 적극·소극의 차이는 있으나 국민은 항상 이에 참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들의 생활과 활동에는 정치생활이라는 공동의 것이 있다. 정치생활은 국민생활의 중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들이 선출한 국회의원이나 그 국회의원에 의해 지명 선출된 수상 또는 대통령(직접선거의 경우도 같다)만이 정치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국민이 정치생활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 등은 직업 혹은 전문적으로 정치생활에 참가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 지위는 일반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므로 정치생활은 결코 정치가만의 생활은 아닌 것이다.

정치 및 정치생활이 모든 국민에게 공통된 활동이고 생활이라는 사실은 근대민주정치가 시작됨으로써 비로소 분명하게 되었다. 봉건사회(封建社會)에 있어서는 일반백성 즉 상민(常民)의 신분에 있었던 사람들은 오로지 영주(領主) 혹은 지주(地主)나 기사계급(혹은 양반계급)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에 소극적 의미에서는 피치자(被治者)로서의 정치생활은 있었으나 참정권(參政權)은 없었다.

그러나 참정권이 없는 정치생활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정치생활이란 어떤 형태에 있어서는 그 생활에 참가하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하여 참정권이 인정되고 있는 것만으로서 정치생활의 존재방식이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정치생활은 나라에 따라 그 존재양식이 각양각색이다. 정치생활과 다른 사회생활과의 관계는 그 나라의 경제생활이나 예술생활을 정치생활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그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 나라에 따라서는 정치생활을 공통으로 의식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음악생활을 공통으로 의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즉, 19세기의 독일인들은 정치생활에 대해서는 음악만큼의 공통된 의식을 갖고 참가하지 않았다. 또 나라에 따라서는 갖가지 생활이나 활동이 고립적·할거적(割據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정치생활에 있어서 그 중심이 있고 거기에 통일생활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경우조차 있다. 이에 반하여 영국 등과 같이 국민의 생활활동에 정치가 침투하고 있어서 정치생활이 국민생활의 중심이 되어 있는 나라도 있다. 이런 국민을 '정치적 국민'이라고 하는데 정치 생활의 존재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정치생활의 존재방식이 갖가지인 것은 그 국민의 역사가 각기 다른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와 역사는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국민의 역사 과정에는 그 국민의 행(幸)·불행, 운(運)·불운이라는 것이 얽혀져 있다. 그리하여 국민생활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으로서의 정치생활의 역할이란 비상하게 크다. 정치를 경멸하거나 무시한 국민은 대부분 불행을 초래하였다. 또 정치에 졸렬하고 무능한 국민도 행복을 얻지 못한다. 또 정치의 성질을 잘못된 생각으로 독단하거나 관념화하거나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취급한 국민도 여러 가지 실패와 고난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이 나타내는 바에 의하면 정치에는 반드시 어떠한 목적이 있으나 그 목적에 정치의 본질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목적의 실현에 도움이 될 방법이나 수단에 정치의 본령(本領)이 있다. 그러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나 수단은 정치가 아니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부도덕한 짓을 하는 것이 정치이고 정치가이다"라는 말이 자주 쓰여지나 역사는 그러한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수단으로서의 정치가 실패한 수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란 '목적과 수단을 접합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목적과 수단을 잘 접합시키는 능력·재간·기량(技量)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정치적 국민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민은 그러한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하여 그런 재능이 길러졌을까. 어떤 국민이라도 최초부터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인처럼 정치적 재간이 있는 국민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정치적 능력을 가진 사람은 최초에는 언제나 소수였다.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는 귀족계급이 정치적 재능을 갖고 있고 일반 서민에게는 정치적 식견을 기를 만한 기회가 계급적·신분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제한은 점차 제거되어 오늘날에는 교육의 기회균등(機會均等)과 참정권의 평등이 인정되고 있어서 정치적 능

정치와 개인과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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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個人-大衆

개인에게는 각각의 자질(資質)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개인에게 정치적 재능이나 역량(力量)을 바랄 수는 없다.

그리고 또 그럴 필요도 사실상 없다. 어떤 사람은 취미나 기질(氣質)에서 정치에 맞지 않는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이 보면 정치는 고상한 취미가 아니기에 오히려 혐오할지도 모른다. 또 정치는 도덕이 아니므로 도덕적 우월 혹은 윤리적 결벽(潔癖)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 수단인 일면이 경시 또는 무시당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는 정치적 능력은 양성될 수 없다. 또 지식인도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식적 입장은 자칫하면 정치에 대하여 냉소적(冷笑的) 태도를 취하기 쉽기 때문에 방관자나 비판자로서는 적당할지 모르나 정치적 행동에 필요한 능력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개인적 자질은 천차만별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국민을 구성하고 있으므로 국민적 자질로서의 정치적 능력이라는 것은 극히 복잡하여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정치 국가에 있어서 그 교육·훈련의 여하에 따라 그 국민에게 정치적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치교육의 임무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특수한 개성(個性)에 있어서 정치가 가장 잘 포착되어 정치적 천재라고 말해지는 인간이 출현하는 경우가 있다. 캐사르·나폴레옹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그런 천재가 아니더라도 정치가 개성에 의하여 좌우됨은 정치사(政治史)가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다. 정치가 개성의 지배의 영향을 받기 쉬운 것은 정치가 사회적 통일의 중심력일 뿐 아니라 그 중심력은 일종의 판단력 또는 기략(機略)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사려판단(思慮判斷)은 개인적인 것에서 집단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천재적 개인의 판단력에 의하여 정치가 움직여진 경우가 아주 많다. 특히 정치과정이 변혁적(變革的)일 경우에는 기략이 뛰어나고 인심(人心)을 교묘히 사로잡는 개인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대의 진전과 함께 그리고 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정치적 개성은 점차로 정치적 집단에 의해 교체되고 개인적 판단은 집합적 판단으로 옮겨갔다. 정치적 판단이 개성적인 것은 플라톤(Platon, B.C. 427?-347?:그리스의 철학자)의 '철인정치(哲人政治)'의 이론이 가리키고 있는 바와 같이 정치의 본질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현대의 민주정치나 대중정치(大衆政治)의 경우에도 변하지 않았다. 변하고 있는 것은 그 모습이다.

현대정치에 있어서의 정치적 재간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가가 문제로 된다. 정당과 같은 정치집단에도 지도자는 필요하고 복잡한 과학기술을 이해할 전문적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역시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사려나 판단의 성질·내용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고 또 지도자의 모습이 변한 것일 뿐, 정치가 개성을 필요로 하고 있는 점에서는 변화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한편에서는 정치의 개성적·인격적인 일면을 부정(否定)할 수는 없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가 대중적·집합적인 일면을 갖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플라톤의 '철인정치'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그리스의 철학자)는 정치에 있어서의 민중적 판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중지(衆智)를 모은다는 말과 같이 집합적 판단 가운데는 중용(中庸)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 천재적 개인의 독단(獨斷)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위기가 닥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민중이 참가하는 집합적 판단이 공정한 안정성(安定性)이 있는 정치를 보장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 플라톤의 철인정치의 진리를 부정할 수 없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집합적 판단도 존중되어야 한다. 요컨대 정치는 개성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천재적 개인이 대중의 판단이나 이익에 위배되고 있을 때 그것은 실패하게 될 것이며, 대중적 판단이 과오를 범했을 때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든가 혹은 중우정치(衆愚政治)로 되고 만다.

정치적 책임과 정치적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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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的責任-政治的成熟천재적 개성에 의한 독재정치(獨裁政治) 또는 대중의 집합적 판단에 의한 민주정치도 궁극에 있어서는 같은 정치로 되는 것은 정치에는 능력이나 재간이나 술책(術策) 등의 일면이 있는 외에 다른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임이라는 것이다. 정치가 힘이고 그것에 의하여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힘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폭력은 사람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는 권력이지 폭력이 아니다. 헌법정치(憲法政治)는 권력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일정한 조직구성을 통하는 권력의 존재방식이나 행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합법적인 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의 힘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힘에는 복종하지 않는다. 정치의 힘이 인정되는 것은 그것이 헌법적·법률적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만일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된 정치가 행해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무책임(無責任)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정치는 무효(無效)이고 국민이 그것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치에는 반항한다. 이처럼 책임은 정치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다만 헌법이나 법률에 형식적으로 해당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진실한 의미에 있어서의 정치의 책임은 도덕적·윤리적 책임이 아니면 안 된다. 법률적 책임은 최소한도의 책임에 불과하다. 만일 법률적 책임만으로 족하다고 한다면 법망(法網)에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사람을 복종시키는 정치에는 깊은 책임감이 수반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에 있어서의 권력과 책임의 균형상태(均衡狀態)는 정치적 성숙의 중요한 척도(尺度)이다. 민주정치의 성장은 긴 시간적 경과를 필요로 하며, 그 성장을 재는 척도는 권력행사에 수반되는 책임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성숙을 특정한 나라의 민주주의의 발달에 대하여 고찰할 경우에는 그 나라 특유의 역사적 조건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한국의 경우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정치적 성장이 점진적(漸進的)으로 이루어지고 급격한 변화나 좌절 등이 없었더라면 영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4반세기 만에도 상당한 정치적 성숙을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권 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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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실제적 고찰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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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力-實體的考察方法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 의사에 반하여 지배한다'는 현상이 17세기의 물리학 특히 역학(力學)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여, 지배하는 인간이 어떤 특별한 '힘'을 보유한다는 모델과 결부되었을 때 권력이라는 개념이 이루어졌다.

물체(物體)가 갖는 힘은 그 운동 혹은 위치의 에너지에서 생겨난다. 그와 꼭 같이 권력자가 갖는 힘은 '권력수단' 혹은 '기초가치(基礎價値)'의 보유에서 생긴다. 이러한 것으로서 '물리적 강제력'(暴力) 등이 '심리적 강제력(魅力)'으로 작용하여 종종 권력의 실체적 내용으로서 열거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찰이나 군대 혹은 폭력단, 부(富)나 이권(利權) 혹은 통제권(統制權), 웅변이나 인간적 어필 혹은 정치적 의식(儀式) 등이 각각의 실체적 권력에 대응한다. 이런 것을 타자에 우월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를 권력자가 되게 하고, 타인의 컨트롤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이런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의 정치권력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을 배경으로 자본가의 재력을 기초로 하는 억압적 권력으로서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사회는 지배계급(자본가)과 피지배계급(노동자)으로 나누어지고, 자본가계급은 정치권력을 소유하나 노동자계급은 재산도 권력도 심지어는 조국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엘리트와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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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te-大衆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치권력에 관한 견해는 자본제사회라는 기초사회 내의 계급분화(階級分化)를 표시하기는 하여도 현실적으로 정치의 세계에서 대립하는 여러 집단의 성립이나 역관계(力關係)를 완전히 분석하고 있지 못하다는 견해도 많다.

그 중 한 사람인 밀스(W. Mills, 1916-1962:미국의 사회학자)는 현실적으로 성립하고 있는 권력 보유집단을 '파워 엘리트(power elite)'라고 불렀다. 현대 미국에 있어서의 파워 엘리트 집단은 군부(軍部)·대기업·관료(官僚)라는 형태로 성립되어 있다. 이 파워 엘리트 집단이 상호 긴밀한 유대를 갖고 지배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가리켜 '군·산업복합체(軍·産業複合體)'라고도 한다. 또 영국에서는 지배계층이라는 의미의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라는 표현이 잘 사용된다. 어느 것이나 지배계급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인 집단이나 계층에 착안한 데에서 나온 개념이다.

파워 엘리트의 개념의 배경이 된 것은 엘리트(elite:選良) 이론이었다. 엘리트란 지위·부(富)·명성 등을 보유한 사회 안의 선택된 소수자를 의미한다. 파래토(V. Parato, 1848-1923:이탈리아의 경제학자·사회학자)는 1920년대에 어떠한 사회에도 엘리트가 존재하고, 혁명이란 단지 엘리트의 교대를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라는 '선량순환론(選良循環論)'을 제창하였고, 이 견해와 마르크스적 견해를 절충하여 행동주의적 정치학에 있어서의 권력론으로 마무리지은 사람은 라스웰(H. D. Lasswell, 1902-: 미국의 정치학자)이었다. 라스웰은 사회 내에서 쟁탈(爭奪)의 대상이 된 가치는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8개의 범주로 분류하였다. 사람들은 이들 가치의 보유를 기초로 하여 타인에게 이들 가치를 주거나 박탈하는 것을 수단으로 하면서 이들 가치 중의 어느 것을 추가한다. 이 때에 사회 내에서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컨트롤의 현상이 생겨나며 라스웰은 그것을 '세력' (혹은 영향력)이라고 불렀다. 세력 중 중대한 가치박탈을 수반하는 것이 '권력'이 된다. 세력(혹은 권력)의 여러 형태는 8×8=64의 범주에 분류·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치 보유자가 세력자=권력자이고 엘리트이며, 엘리트에 의해 수탈(收奪)되는 것이 다름 아닌 대중이다.

라스웰의 권력이론은 권력의 실체적 분석에 있어서 오늘날 하나의 극(極)을 나타낸다. 시민사회적 배경을 떠나서 오늘날 사람들은 단순한 부(富)보다도 명성·지위 혹은 권력 그 자체를 최종가치로서 추구하여 그것이 정치 세계에 경제과정의 반영(反映) 이상의 굴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스웰의 이론은 그 극에 있어서 2개의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1) 그는 '기저가치(基底價値)'의 보유가 어떻게 권력수단으로 전화(轉化)하고 또 어떻게 하여 상대방의 복종의 확보에 이르는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였다. '기저가치'에 있어서 엘리트인 것은 사이먼(H. A. Simon, 1916-: 미국의 행정학자)이 비판한 바와 같이 권력의 실효(實效)를 측정하는 근사치(近似値)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권력의 문제를 실체적으로가 아니라 기능적·인간관계적으로 취급하는 고찰방법으로 시야(視野)를 전환시키는 실마리가 된다.

(2) 라스웰에 있어서 권력이란 세력의 강도(强度)인 것이고 사회 속에 종횡으로 그어져 있는 관계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권력 그 자체도 인간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사회적 가치의 하나이고 다른 여러 가치획득의 수단으로서 병렬적(竝列的)으로 고찰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치권력 자체는 어떻게 하여 성립하는 것인가. 과연 세력과 권력 특히 정치권력은 다만 정도의 차(差)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문제는 새삼스럽게 정치권력 그 자체를 재고(再考)케 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권력의 기능적 고찰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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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力-機能的考察方法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권력은 자연계에 있어서의 물리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물리력은 그 작용하는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거기에 가해지는 힘의 양(量)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관계에 있어서는 그 실체가 영(靈)일지라도 복종하는 편이 오인(誤認)하면 권력으로서의 실효가 생긴다. 반대로 복종하는 편이 권력을 권력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경우, 그 효력은 제로와 같은 때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권력을 그 집적(集積)한 가치나 수단으로 표현함은 정확하지 않다는 견해가 생겨난다. 즉 권력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만큼의 복종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실효에 따라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기능적인 고찰방법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권력의 문제는 최소한 다음의 4개의 차원(次元)에서 분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1) 어떤 범위(분야)에서 (2) 얼마만큼의 인원에 대하여 (3) 어느 정도까지 (4) 얼마만큼의 기간 그는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조사함으로써 같은 권력수단을 갖는 엘리트도 실제의 권력은 갖가지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보면 정치권력이 그 복종을 요구하는 범위가 좁아지고(종교·교육 등의 권력으로부터의 분리), 그 정도도 가벼워지게 되었으나(여러 자유의 확립, 사형의 폐지) 그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수는 증대한(대중국가의 성립) 것 등의 변화도 또한 명료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정치권력은 권력수단의 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복종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확률(確率)로써 표현·측정된다. 이 의미에서 베버(M. Weber, 1864-1920:독일의 사회학자)는 권력을 '기회'의 문제로서 파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권력수단의 보유(保有)라는 문제에서 떠나 오로지 상황적으로 권력이 생겨나는 경우를 문제삼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4명씩의 당파로 분열되었을 때 캐스팅 보트(casting vote:결정투표권)를 쥐고 있는 사람의 권력량은 타의 2배로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늘 5명의 팀을 형성하여 5분의 1의 결정권을 쥐는 반면 나머지 4명은 전적으로 결정에서 배제됨으로써 1/5×1/2의 기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예컨대 정당 내에 있어서의 파벌의 형성을 역학적으로 해명하는 하나의 길이다.

이미지로서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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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權力

권력을 그 실효로서의 복종의 확보라는 시각(視角)에서 볼 때에 권력문제의 핵심은 그 실체보다는 이미지 특히 복종자의 심상(心象)에 있어서의 이미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의 최종적 결정요소라는 폭력도 복종자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수반하여 팽창한 폭력의 이미지를 제거한다면 복종을 확보하는 결정요소로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반항자(反抗者 )를 배제하는 데 작용하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프랑스의 시인(詩人) 발레리는 이 점을 가리켜서 권력은 은행(銀行)과 같은 '신용의 체계' 위에 있고 대중적 반역(大衆的反逆)을 만나면 일대 소동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서 표현하였다.

따라서 복종을 확보하려는 권력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 이미지 형성을 꾀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본때를 보이기 위한' 행사, 장엄한 의식(儀式) 등에 의한 '위신(威信)의 상승', '기밀유지' 등은 권력관계에 항상 따르는 것이다.

권력관계가 갖는 이러한 이미지성은 권력의 문제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론적 난제(難題)를 제출한다. 즉 권력관계가 당사자간의 명확한 복종요구와 복종의 제공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경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플라톤의 저작(著作)에 감명을 받고 행동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영향관계는 권력관계 속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예를 들면 상대방의 의사를 멋대로 추량(推量)하며 복종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행위 혹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고 선물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착한 아이가 되고자 노력하는 행위에서 산타클로스는 권력을 갖는다고 규정하여야 좋은 것인가. 정치적인 실례로서 자유당시대 일부 국민들의 국부(國父) 이승만(李承晩)에 대한 신앙감정(信仰感情), 혹은 가상적(假想敵)에의 적개심에 의하여 조종되는 국민의 경우 등은 이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이미지를 조작한 흑막(黑幕) 즉 양친이나 위정자 등이 실제의 권력자로 되는 것이나 전자의 경우에는 일의적(一義的)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권력의 기능적 고찰방법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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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力-機能的考察方法-問題點

권력의 기능적 고찰방법은 권력의 문제에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이 방법에 기초한 여러 연구는 권력관계가 범위가 달라짐에 따라 역전(逆轉)하는 수도 있다는 것(예:가장의 권력은 가사나 육아문제에선 아내와 역전된다) 혹은 현대의 파워 엘리트가 결코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전제적(專制的)인 권력행사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극히 한정된 영역에서 제한된 정도만큼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실증적으로 명백히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능적 권력관은 사회 내에서의 일원적(一元的)인 지배질서의 구성과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이라는 정치체제 전체에 대한 미시적(微視的) 분석에 대하여 충분한 사정(射程)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정치권력 및 지배체제의 성립이라는 문제로서 새로이 고찰할 수밖에 없다.

지배와 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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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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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權力-成立

권력이 다만 사인(私人)간의 역(力)관계로 그치고 정치권력으로서 성립하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구비하게 된 때이다. 즉 ① 어떤 일정한 지역 내의 주민에 대하여 어떤 집단이 그 지역 내에서 최고의 물리적 강제력을 보유하고, ② 그 지역 전체에 걸친 결정을 작성하고 집행할 통치기구를 만들어 내고, ③ 그 결정을 주민에 수용(收容)시킬 만한 권위를 수반하게 되는 때에 권력자나 권력집단은 정치권력으로서 자립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태를 권력집단의 편에서 보아 '지배'라고도 일컫는다.

물리적 강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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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理的强制力

정치권력은 자기를 그 지역 내에서의 최고의 권력으로서 수립한다. 그것은 당연히 궁극적인 제재력(制裁力)으로서의 무장력 집중, 그리고 지역 내의 다른 사회집단으로부터의 물리적 강제력의 박탈을 수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권력은 근대국가의 성립과 함께 가장 그 명확한 모습을 나타냈다고 해도 좋다.

전통사회(傳統社會)나 봉건사회에 있어서 폭력은 양반층이나 기사(騎士) 사이에 또는 봉건제후(封建諸侯) 사이에 분산되어 있었고 봉건사회가 확립되기 전에는 백성들도 무기를 잡고 자위(自衛)하였다. 교환경제의 발달을 배경으로 하는 민족사회의 성립은 민족이라는 지역주민의 규모에 있어서의 정치권력의 성립을 불가피하게 하였고 여기에 봉건귀족의 계층분화·궁정귀족화(宮廷貴族化)를 계기로 하는 중앙 정치권력에의 무장력 집중이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동시에 용병(傭兵) 및 징병제에 의한 중앙정부의 군대가 창설되어 정치권력의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총포(銃砲)를 중심으로 하는 무기의 근대화가 이 과정에 박차를 가한 것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은 또 몇 가지의 논리적 귀결을 사회에 주게 된다. 그 하나는 분쟁의 물리력에 의한 자주해결(自主解決), 즉 자력구제(自力救濟)를 금지하는 것이다. 결투나 복수는 금지된다. 동시에 정치권력이 개입할 수 없는 치외법권적 존재, 중세적인 조계지(租界地) 등은 가능한 한 인정하지 않는다. 20세기의 1920년대경에는 교회나 노동조합·대학 등은 국가와 동등한 권력을 가진 자력집단이라는 자유주의적 주장이 '정치적 다원론(多元論)'의 이름 밑에 행해졌으나 결국 이러한 정치권력의 현실 앞에 붕괴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는 국민사회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유럽공동체와 같이 보다 대규모의 기초사회 형성의 움직임이 있고 다른 편에서는 핵전력(核戰力)의 격절(隔絶)을 배경으로 한 미·러 초대국(超大國) 세력권에 의한 국제질서 형성의 현실이 있다. 국가중심의 정치권력은 이런 의미에서 그만큼 복잡한 문제를 내포해 가고 있다 하겠다.

통치기구의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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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治機構-整備

오늘날 국가기구라고 하면 곧 국회·내각(內閣)·법원 등과 같은 여러 기구를 생각하게 되나 이처럼 여러 기능이 기구적으로 분리되고 있는 것은 특유한 이데올로기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정치권력의 통치기구는 어떠한 형태이든 정보의 수집, 결정의 작성, 그것의 주민에의 전달과 집행, 주민간의 분쟁 조정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조직을 확립함으로써 완성한다.

이와 같은 기능은 권력자 개인으로서는 수행할 수 없으므로 어떻게 이 조직을 구성하고 또 어떻게 이 조직을 채울 유능하고 충실한 인간집단을 확보하는가는 정치권력의 근본 과제의 하나가 된다.

이러한 인간집단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중간층·행정막료(行政幕僚)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려지나 역사적으로는 관료제(官僚制)의 문제가 된다.

근대국가에 있어서의 관료제는 신분에 구애됨이 없이 임명되며 규칙에 의하여 행정하는 관료제를 중앙정부 밑에 둠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러나 절대주의국가하에서는 관료라는 자체가 갖가지 특권을 수반하는 계층적 신분으로서는 가장 유리한 직업의 하나였다. 이런 관료제를 '특권관료제'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관료가 특권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출세의 대상으로서 인재(人材)를 모으고 또 정치권력은 관직의 임명을 미끼로 국내 여러 정치세력을 조종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월폴(R. Walpole, 1676-1745:영국의 정치가)이 내각의 기초를 의회 내의 다수(多數)에 둔 이래, 패트러니지(patronage:관직에 情實任命)는 정당을 조종하여 다수를 확보하는 상투수단의 하나였다. 또 미국에서는 이 원리가 제도화되어 다수당이 관직을 스포일스(spoils:戰利品)로서 독점하고, 정권교체 때마다 관료의 얼굴이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자 모두 관직의 해방과 정치적 불만의 해소라는 역할을 수행하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하면 정치적 불만(혹은 이익)이 한번 정당이라는 반권력집단(反權力集團)에 흡수된 후, 최종적으로 국가에 통합된다는 정치문화의 차이가 여기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특권관료제가 시민혁명이나 대중국가화 속에서 민주화되어 갈 때에 '전문관료제(專門官僚制)'가 생겨난다. 전문관료는 정치권력에의 충성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의 봉사자라는 명분을 갖는 공무원으로서 그 임명은 행정담당 능력이라는 자격에 기초해서만 행해진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장관이나 차관 등의 정치적 특별직에 있는 자를 제외하곤 자격시험을 통해 임명되고 정치적으로 중립인 관료가 행정사무를 맡는 것이 통례로 되고 있다.

전문관료제의 성립은 현대국가가 행정국가나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것으로 변모하고 또 정치의 여러 측면 속에서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이라는 측면이 전면에 나타난 것과 대응한다. 이 단계에서 지배는 대중의 이익적 통합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부분과 권력집단의 자기 유지라는 협의의 부분으로 명확히 분화하게 된다.

중립적인 국가기구로서의 관료기구는 오늘날 3권분립·대통령책임제·연방제 등의 여러 가지 형태하에 명확한 권한의 분화를 갖고 국내에서 최대의 조직을 형성해 간다.

이러한 관료기구가 정치체제 속에서 수행하는 기본적 역할을 도이치(K. W. Deutsch, 1912-:미국의 정치학자)는 인체의 신경계(神經系)에 비유한다. 이 경우 하나의 사회가 어떻게 외계(外界)에서 제기된 문제를 받아들여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가운데서 성장해 가는가 하는 문맥(文脈)에 있어서 전체로서의 관료기구의 기능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신경계에 중추(中樞)와 말초(末梢)의 구별이 있는 것처럼 통치기구에도 결정을 맡는 부분과 정보·명령의 전달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고 또 자율신경(自律神經)과 같이 재정(財政)이나 관리(管理)를 통하여 기구의 자기유지에 임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좁은 의미로서의 지배는 오늘날 이와 같이 확고하게 성립하고 있는 관료기구의 충성을 확보하는 막료집단(幕僚集團)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하는 문제로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당이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미국에 있어서는 권력집단은 대통령 입후보자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브레인이라 불리는 참모조직을 유지해 그것을 당선시에 각료나 특별보좌관에 임명하여 정치권력의 핵심에 앉히는 것은 오늘날 미국의 상도(常道)이다. 이에 대하여 정당이 전국정당으로 확립된 영국이나 소련에서는 정당을 통해 올라온 엘리트 그룹이 관료기구를 지배한다.

권위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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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威-確立

정치권력의 결정이 국민에 의하여 심리적으로 수용(受容)되기에 이르면 권력에 권위가 부수되었다거나 권력이 권위화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정치권력이 확립되었다는 사실의 최종적 증명이다.

권위는 어떻게 하여 성립하는 것인가. 일부 정치학자는 권위를 정당성(正當性)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 및 정치의 현실은 정당성과 권위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며, 권력의 명령이 일반적으로 복종되어진다는 상태로서 족하다고 한다. 권위라는 말은 정치와 떼어놓고 생각하여도 '사회적으로 신용되고 있다'고 하는 제도화의 상태를 가리키며 권위적 행동의 정사(正邪)·당부(當否)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국가의 승인은 그 정부권력이 현실적으로 유효하게 통치하고 있는가 어떤가 하는 것만이 문제로 된다. 정치적 권위란 이와 같이 권력으로부터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이 여러 모로 내용에 대해 재음미하지 않고서 그것이 권력에서 발해졌다는 이유 때문에 납득하여 복종하는 상태를 말한다.

정치권력은 어떻게 하여 권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일까. 하나의 권력이 정치문화 속에서 시인(是認)되는 여러 특성을 몸에 익히는 것에 의해서이다. 사회도덕에 의해 윤리화 되는 것, 그 사회의 가치체계에 일치하는 것으로써 위신을 높이는 것 등 갖가지 방법이 그 때문에 취해질 수 있다. 가톨릭의 종교가 강한 곳에서는 권력은 교회의 비호자(庇護者)이고 교회에 의해 축복받았다고 가장할 것이며, 강자에게 복종하는 문화환경에서는 무력(武力)에 의한 우월을 과시하는 것이 권위의 획득과 상통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문화에 의한 시인 이외의 이유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치에 복종한 사람들의 심리를 조사한 이스턴(D. Easton, 1917- :미국의 정치학자)에 의하면, 모든 점에서 나치를 시인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독일국민 전체의 운명과 결부되는 유일한 결정기관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복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국내 질서의 확립 혹은 사회 전체를 위한 정책결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정치권력의 필요를 사회의 성원이 일반적으로 자각(自覺)하고 있을 때에는 어떠한 정치권력도 그것이 유효하게 권력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는 한 쉽게 권위화되는 것이다.

지배의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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支配-正當性

정치문화에 의한 시인(是認)의 핵심의 하나로서 지배의 정당성 문제가 있다. 정당성이란 권력이 명령을 발할 수 있는 근거를 윤리적·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권력도 반드시 그를 위한 논리를 피지배자를 향해 준비한다.

권위를 윤리화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 중간층의 특성이라고 생각한 베버는 이 견지에서 정당성의 존재방식을 3개로 분류하고 그것에 기초한 지배의 특질을 고찰하였다. 전통적 정당성은 고대부터 봉건사회에 이르기까지의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정치권력에 있는 일반적인 정당성이다. 생산력이 정체하고 사회이동(社會移動)도 사회질서도 모두 정체적인 이 사회에서는 "옛날부터 변하는 것이 없다"라는 반복성(反復性)·불변성 그 자체가 모든 것에 대한 가치판단의 근거로 된다. 관습과 전통이 다만 관습이나 전통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존중되고 묵수(墨守)된다. 과거는 성화(聖化)되고 '영원한 어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지배의 질서도 전통적으로 고정화(固定化)하고 그 속에서 행해지는 결정도 모조리 전통에 따라서 행해진다는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은 신분적으로 정해지고 결정은 반드시 선례(先例)에 따라 행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사회에 있어서는 지배자의 지위야말로 안정은 되고 있으나 그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며 참된 지배자는 전통 그 자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사회의 정체를 파괴하고 지배자에의 헌신적인 충성을 획득하자면 늘 어떤 신앙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배자 그 사람에 대한 신앙으로서 성립하는 경우를 '카리스마적 정당성'이라고 부른다. 카리스마란 천부(天賦)의 초인적(超人的)인 자질이라는 의미이나, 지배자가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는 신앙이 정치적 중간층에 일반화하였을 때 지배자가 말하는 명령은 그 카리스마 때문에 정당하다고 판단되기에 이른다.

베버는 유태민족이 오랜 세월의 이집트에서의 노예적 환경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찾아 사막에의 유랑(流浪)의 길을 떠난 것은 모세(Mose:기원전 13세기경 고대 이스라엘의 율법자·예언자)의 카리스마적 신앙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런 역사적 예는 나폴레옹·히틀러·스탈린·모택동 혹은 이승만 등 허다하다.

카리스마에 기초한 지배의 특질 중 하나는 피지배자를 분발시켜 지금까지 불가능하였던 대사업이나 대변혁을 수행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배자는 자신의 카리스마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종종 잇달은 '영광의 공적(功績)'을 추구하여 그것에 계속 성공할 수밖에 없는 파국(破局)에 스스로 뛰어든다. 거기에서는 단 한 번의 패전(敗戰)이나 좌절도 때로는 치명적이 되고 만다. 배신당한 카리스마에의 환멸(幻滅)은 쉽게 증오로 변한다. 카리스마적 지배자의 말로가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진자(振子)의 역학(力學)과 비슷하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종교적 신앙과 겹쳐진 형태로 전통사회에도 나타난다(모세의 경우). 그리고 매스컴을 탄 대중적 열광이라는 형태로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성립하기 쉽다(히틀러나 카스트로 등의 경우).

비유적으로 생각하면 카리스마는 지배자 개인에 특정(特定)하지 않고 나타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카리스마적 지배자가 새로운 정치권력을 이룩한 뒤, 그것이 전통사회 속에서 풍화(風化)되어 갈 때 일반적으로 '혈통(血統)의 카리스마'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지배의 세습화(世襲化)이다. 또 카리스마가 조직이나 기구에 고착(固着)하였을 때나 개개인의 내면에 정착하여 지배조직으로부터 정당성을 일반적으로 회수해 버리는 경우(카리스마의 내면화) 등도 있다.

베버가 생각한 제3의 타입은 '합법적(合法的) 정당성'이다. 근대사회의 성립에 수반되는 인간관계의 근대화는 인간의 행동을 속박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관습 즉 전통이나 자의(恣意) 즉 카리스마적 지배가 아니라 명시적(明示的)이고도 예측가능한 일반적인 법칙이라는 생각을 낳게 되었다. 그것은 분업과 협동에 기초하여 목적집단(사업체)을 형성해 가는 근대사회의 기본적 틀에 알맞는 것이고 계약과 규칙은 여기에서 인간과 인간을 결합시키는 방법의 원칙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에 적용되었을 때 '법치행정(法治行政)'이라는 관념이 일반화한다. 법치행정이라는 생각은 실은 '법의 지배'라는 생각과 어긋나는 측면을 갖고 있다. 영국·미국의 일반적인 '법의 지배'라는 관념에서는 법이란 '도리(道理)에 맞는 관습법'이라는 의미이며 지배자 자체도 구속하는 원칙이다. 로크(J. Locke, 1632-1704:영국의 경험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나 페인(T. Paine, 1737-1809:미국·프랑스 혁명에 활약한 영국의 사상가)은 이런 관념 위에 서서 악정(惡政)에 저항하여 궐기하고 피지배자의 법적 권리(저항권)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치행정'이란 명령이 법적 형식에 맞으면 따라야 한다는 독일적 관념으로 '악법(惡法)도 법이다'라는 사고방식에 상통하게 된다.

베버가 합법적 정당성이라는 것에서 의미한 것은 오늘날의 관료에 대한 일반적인 이 후자의 사고방식이었다. 법적 형식에 따르는 것에 정당성의 근거를 찾아냄으로써 관료는 명령의 내용을 자신의 양심이나 좋은 관습에 비추어 음미하는 의무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이 사실이야말로 지배자가 자신의 명령을 권위로서 확립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베버가 '합법적 정당성'이라는 유형을 조형(造型)할 때 그는 근대적 지배가 갖는 위험한 일면을 날카롭게 파헤친 것이다.

정당성의 문제를 베버와는 조금 다르게 '지배자라는 것의 권리'에 대한 논리로서 생각한 학자도 있다. 권리란 법적인 의제(擬制)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배경에 있는 법적 질서는 어떻게 가정(假定)하는가에 따라 논리의 형태가 달라진다.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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服從

'지배의 정통성(正統性)'은 정치적 중간층에 대한 설득의 논리로서는 기여할 수 있어도 실제로 정치권력이 일상적으로 대중의 복종을 획득하고 있는 이유는 아니다.

메리엄(C. E. Merriam, 1874-1953:미국의 정치학자)은 정치권력에 수반되는 이론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신화(神話) 등을 크리덴더(믿게 하는 것)라고 부르고 심리적 어필(호소)로서의 미란더(매료시키는 것)에서 구별하였으나 정통성은 분명히 크리덴더의 분야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복종자의 심리적 측면에서 어떻게 하여 복종이 권력에 제공되는가 생각해 보자.

먼저 권력에 대하여 가장 전면적인 복종을 제공하고 있는 타입으로서 '맹종(盲從)'이 있다. 전근대사회는 지배자와 피지배와의 신분적·가치적 차별감정을, 피지배자는 지배자를 외경(畏敬)의 생각을 갖고 맹종하는 습성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가장 보통으로 복종을 조달하는 수단은 '당근과 채찍' 즉 사회적 여러 가치를 부여한다고 하는 유혹과 박탈한다고 하는 위하에 의해서이다. 따른다는 말을 집어넣으면 '외종(畏從)'·'인종(忍從)'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라스웰의 권력론은 이 단계에서의 역학(力學)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미끼에 흔들리기 쉬운 대중은 또 쉽게 이반(離反)도 한다. 자기의 좁은 개인적 이익이나 공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중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권력이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것은 대중이 그만큼 정치권력을 정점(頂點)으로 하는 정치사회에 내면으로부터 동화(同化)하고 있지 않은 단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시민혁명 이후 정치권력과 시민과의 관계는 별도의 종류의 복종형태를 서서히 키워 오고 있다.

'찬종(贊從)'은 민주주의에 참가하는 자각을 가진 시민들의 기본적인 복종양식이다. 설득과 동의(同意)라는 데모크라시의 명분에 따라 결정이나 지배자의 명령이 내용적으로 찬성할 수 있다는 자각을 지렛대로 하여 복종을 제공한다. 이것에 대하여 '신종(信從)'은 정치적 중간층이나 하부 지도층(下部指導層)에 특유한 것으로서 결정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에서 적극적으로 복종한다. 정통성은 처음부터 이데올로기나 갖가지 이념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을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조종'(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종자는 가장 현대적인 양식의 대중적 복종조달법(服從調達法)이다. 지배자가 자기의 의도를 숨긴 채 실질적인 복종을 결과로써 획득하는 이 방법은 매스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대중과 권력자가 일방 교통적으로 직결함으로써 대중조작이라는 형태하에 일반화하였다. 이들 복종의 여러 유형은 사회 내에서 구조적(構造的)으로, 때로는 한 사람의 인간심리 속에서 겹쳐지면서 종횡으로 뻗혀 있다.

그러나 사실, 권력을 가장 근저로부터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묵종(默從)'이라는 형태로 행해지는 정치권력에의 타성적(惰性的) 복종이자 무관심인 것이다. 전통사회·근대사회·현대사회는 각각 특유한 형태의 묵종과 무관심을 키워 왔다. 그것은 각각 직업생활에 빠지는 무관심, 소비적 생활에서 정치를 보는 무관심으로 특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무관심에 의하여 지탱된 '묵종'이야말로 모든 정치권력에의 저항을 고립시켜 억압해 버린다는 의미에서 권력의 최대 자산이라고 러셀(B. Russell, 1872-1970:영국의 수학자·철학자·평론가)은 날카롭게 말한 바 있다.

지배의 상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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支配-狀況化

정치권력이 사회 내에서 광범한 복종을 확보하고 안정하기에 이르는 단계를 일반적으로 '지배의 제도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제도 전체가 '정치체제'이다. 체제라는 말은 좁게는 '닉슨 체제'라고 하는 것처럼 지배자 개인에게 착안하여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정치기구·정통성 등의 가치체계, 갖가지 복종을 조달하는 사회의 여러 기구 전체를 하나의 체계를 가진 것으로 파악하여 사용된다.

이에 대하여 체제가 밑바닥으로부터 붕괴되어 정치권력이 유동화(流動化)함을 '지배의 상황화'라고 한다. 정치권력은 완전히 유동화하는 것도 완전히 고정화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의 정치권력은 제도화와 상황화의 사이를 항상 흔들리며 오가고 있다고 하겠다.

지배의 상황화는 제도화된 지배체제 내부에서의 사람의 교대라는 형태로 늘 일어난다. 권력자의 사망·추방(追放), 선거에 의한 교체, 암살·쿠데타 등에 의하여 체제는 일시적으로 유동화한다. 그러나 이런 형태로 유동화하는 것은 카리스마적 지배자와 같이 체제가 그 사람 개인과 밀착하고 있는 경우는 별도로 하고 실제는 권력자를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사람의 집단이고 권력집단이나 파워 엘리트 군(群) 전체로서의 지배라는 체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형태의 사람 혹은 사람집단으로서의 파벌(派閥)이나 정당의 교체는 일종의 신진대사로서 체제의 생리에 스며들어 있고, 선거라는 형태에서의 교체의 제도화는 이 대사기능의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려는 발명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또 데모나 청원(請願)·진정·압력집단의 활동 등에 의하여 체제의 유동화가 일시적으로 증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은 피지배자의 불만을 선제(先制)함으로써 복종을 확보하는 지배의 방법이 관철하고 있지 않은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통치기구의 파이프가 막히든가 지배집단이 무능화하여 유효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 등이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의미에서의 상황화 자체를 체제 내부에 포용함으로써 경직화하기 쉬운 지배의 안전판으로 하는 사회가 많다. 즉 여러 가지 '자유화' 정책에 의하여 불만의 표명 방법에 제도적인 보장을 함으로써 그것들이 체제 자체에 대한 폭발로 전화(轉化)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한층 진행되면 피지배자의 불만은 혁명운동이나 불복종의 형태로서의 저항운동으로 변화되어 체제 자체를 뒤흔들게 된다. 혁명운동과 저항운동은 지배 체제에 대한 반항이라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원리적으로는 다른 부분을 갖고 있다. 혁명운동은 현존의 지배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에 대체되는 새로운 체제와 정치권력을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저항운동은 현존의 사회생활을 긍정(肯定)하고 거기에 대한 정치권력(혹은 외국세력)의 부당한 침해에 대하여 저항한다는 형태로 운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동이 계속되는 동안에 기존의 생활질서를 전적으로 긍정할 수 없다는 (왜냐하면 그 자체가 체제 내에 짜여져 들어 있기 때문에) 의식이 확대될 때에 그것은 혁명운동으로 나가려는 부분과 모든 정치권력의 과잉지배(過剩支配)에 대하여 저항하려고 하는 부분으로 분극(分極)하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혁명운동은 ① 지배권력에 대항하여 정치권력의 핵(核)이 되는 부분을 조직하는 일(전위당의 조직화), ② 정치권력이 갖는 강제력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보유하는 일(폭력·무장봉기),

③ 대중을 체제로부터 분리시켜 자기편에 서게 하는 일(선전과 이론투쟁) 등의 기본적인 스탭을 밟음으로써 지배 체제를 상황화하려고 한다. 시간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가치체계의 고취와 구체제(앙시앵레짐)의 문화 일체에의 비판운동이 어느 기간 계속되는 가운데 정치권력을 체제로서 파악하고 그것을 의문시하는 사회적 무드가 먼저 양성된다. 이어 이상사회(理想社會)에의 신앙에 불타는 전투적인 중핵집단(中核集團)이 형성되고, 다른 한편 계속되는 사건 속에서 지배권력의 권위가 실추하고 이어 통치기구가 유효하게 기능할 수 없게 되어 군대와 경찰이 이반(離反)하는 중에 정치권력은 한줌 밖에 안 되는 지배집단으로 고립화하여 타도된다는 것이 성공한 혁명의 일반적인 코스이다.

거대조직(巨大組織)과 대중소비 속의 현대사회는 체제의 상황화라는 과정에 몇 가지 요소를 첨가하였다.

(1) 피지배자의 조직화의 가능성은 지배권력에의 대항폭력으로서의 대중행동이라는 형태를 낳는다. 더욱이 지배가 제도화한 체제를 통하여 일상적으로 복종을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체제를 마비시킬 직접 행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대량으로 복종을 회수(回收)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스트라이크·사보타주·점거 등은 소렐(G. Sorel, 1847-1922: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혁명적 생디칼리슴의 이론적 조직자)이 권력의 강한 힘을 되받아 넘기는 대중의 폭력이라고 부른 것이 주요한 내용이 된다.

오늘날처럼 보다 한층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에서는 생산점(生産點)과 함께 교통이나 매스컴 등의 커뮤니케이션 마비가 보다 체제에 대하여 즉각적인 타격을 준다. 대도시에서의 대중행동이 중대시되는 이유이다.

(2) 정치권력이 체제적 안정 위에 기생(寄生)하면 할수록 위기에 있어서의 물리적 강제력의 사용에 장애가 생기는 경향이 있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대중의 감정적 반발의 물결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을 권력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평화롭고 풍요한 사회속에 폭력이 빈발하고 소수의 돌격대가 체제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여 그 붕괴에 성공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붕괴될 수 없다고 생각되던 견고한 체제가 때로는 모래성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것은 이런 종류의 역학이 작용하여 체제에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을 충분히 발휘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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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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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정치를 '투쟁'과 '통치'의 국면에서가 아니라 '자치(自治)'와 '정책'의 국면에서 볼 때에 권력과 지배의 문제는 지도와 협력이라는 문제로 모습을 바꾼다. 실제로 리더십(指導)과 지배와는 별개의 현상이 아니라 같은 사상(事象)을 시각(視角)을 바꾸어 보는 방법이며 한편에서는 집단 전체를 위한 정책결정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편에서는 지도자의 지위보전(地位保全)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위정자가 지도자로서 나타나는 데에 필요한 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물리적 강제력에 대신하여 대중을 지도자에 결부시키는 궁극적 요인은 리더십에 있어서는 지도자가 '그들'의 문제를 '그들'을 위해 해결한다는 신뢰(信賴)이다. 그러한 신뢰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것인가. 권력에 있어서의 권력수단과 같이 리더십에 있어서도 지도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자질의 보유야말로 결정적 요인이라는 견해가 있다. 선견능력(先見能力)·결단능력·책임감·웅변·대중을 위해 일하는 것 등 지도자의 자질론을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고정적인 자질이 아니라 그것이 대중 속에서 구체적으로 작용할 프로세스(방법이나 과정)인 것이다.

이 의미에서 먼저 지도자는 지금 무엇이 사회 혹은 집단 전체의 문제로서 중요한가라는 '과제(課題)'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과제를 분명히 하는 데 있어서는 지도자가 사회로부터 완전히 '감각적'으로 떨어져 있으면 불가능하다.

지도자는 황야에서 외치는 예언자나 밀실(密室)에서 사변(思辨)하는 철학자와도 다르며, '대중보다 한 걸음 앞서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지도자가 생각하는 과제가 대중의 어느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도자는 그것을 대중이 잠재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조직화한다는 형태로서 제기·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지도자는 자기만이 이 과제에 해답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책은 한 편에서는 호(好)·불호(不好) 등의 가치판단의 기준, 다른 편에서는 자원·인간·선행조건 등에 의해 규정되어 '현실적으로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것을 기존의, 혹은 경쟁하는 다른 지도자가 표시하는 대책과 '쟁점'을 분명히 하여 제시하고 정책과 한덩어리가 된 자기를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상태로 정리·완성시키는 것에 지도자로서의 생명이 걸려 있는 셈이다.

(3)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확립하는 과정이 있다. 왜 자기가 지도자이고 남은 대중인가를 어떻게 대중에게 납득시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를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지도가 늘 적절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베버는 정치적 지도자의 책임이란 일어난 모든 사태에 대한 결과책임(結果責任)이고 선의(善意)나 노력이라는 심정책임(心情責任)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논하였다. 그러나 현실의 지도자는 좋은 결과가 생겼을 때에는 모두 자기 지도의 덕분이라 하고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특수한 사정에 그 책임을 전가(轉嫁)한다. 혹은 충분한 해결이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은 쟁점에 대해서는 새로운 과제를 제기함으로써 대중의 심리적 초점을 이동시킨다. 이런 갖가지 조작이 행해지는 한편 다른 편에서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하여 온갖 신화를 만들어내든가 인기전술을 위해 대중의 귀에 솔깃한 발언이나 약속을 하게 된다.

(4) 또 지배에 있어서와 같이 지도의 안정은 궁극적으로는 ① 대중이 어떻게 납득하는가, ② 대중이 일상적으로 어떻게 지도체제 속에 포용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즉 ①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중의 판단기준에는 관용도(寬容度)가 있다고 한 미국의 행정학자 사이먼의 지적이 중요하다. 지도자에의 기대가 그다지 크지 않은 상황 혹은 공약(公約)의 효과에 대하여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문화 속에서는 크게 원하다가도 조그마하게나마 이루어지면 대중은 만족한다. 이 의미에서 지도자에 있어서 괴로운 일은 대중의 기대가 급속도로 높아지는 사회의 발전기(發展期)로서 그때에는 관용도가 감퇴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일반적으로 생활수준이 상승과정에 있다가 중단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또 ② 의 문제에서는 사회에의 동일화의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사회나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후천적인 교육을 통하여 인간은 어떠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연대감을 느끼고 소속의식(所屬意識)을 가지며 충성심을 품기에 이른다. 이것은 '정치적 사회화의 과정'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우나 이 과정은 자연적으로 일어날 뿐만 아니라 지도자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이용된다. 대외위기(對外危機)를 고취하여 일체감을 고양(高揚)시키든가 표준어나 공통의 전통문화의 보급을 꾀하여 국민의식을 높인다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도자는 간접적으로 그의 지도체제하에 대중이 참집(參集)하는 것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리더십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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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類型

리더십은 배경이 되는 사회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타입(類型)을 형성한다. '대표적 리더십'은 근대 이후의 안정된 사회에 있어서 가장 통상적인 리더십의 형태이다. 대중은 일상생활의 안정 속에 안주(安住)하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갖가지 이해적 요구(利害的要求)의 조정 혹은 충족을 지도자에게서 구한다. 그러나 대중은 현재의 사회체제 혹은 일상생활의 근본적 변혁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의미에서 대표적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보수적·부분적이다. 또 혁명 후의 사회에 있어서 체제가 안정화함에 따라 리더십이 이 유형으로 변화해가는 것은 소련 및 동구권(東歐圈)의 해빙(解氷)이나 중국의 문화혁명 이후의 대미협조(對美協調) 및 긴장완화의 추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운동형(運動型) 리더십'은 체제의 전면적 변혁을 요구하는 운동 집단의 특징적인 리더십이다. 여기에 있어서는 기성의 가치체계나 일상생활 그 자체가 악(惡)으로서 단죄되고 지지자·참가자는 운동을 좇는 중에 '혁명적 인간'으로 재생할 것이 요구된다. 지도자의 능력은 새로운 가치와 대의(大義)를 주장하고 대중에게 그 지도력에 따름으로써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에 달려 있고 현실적인 판단능력이나 결정능력은 2차적인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운동이 조직화됨에 따라 교의(敎義)가 운동의 원리로서 공인되고 운동 내의 노선(路線)의 대립은 늘 교의에 관계되는 문제로서 이론투쟁으로 전화(轉化)되고 정통과 이단(異端), 공인이론 대 수정주의라는 형태로 전개된다. 이 유형은 주장되는 가치체계가 보편주의적·창조주의적인가 아니면 자집단(自集團)의 특권적 우월을 강조하는 개별주의나 복고주의(復古主義)에 기울어져 있는가에 따라 혁명적인 것과 반동적(反動的)인 것과를 구별할 수도 있다.

'전통적 리더십'은 전통사회적 문화를 배경으로 성립한다. 지도자는 여기에서 능력보다는 신분적 자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통사회가 자연적 안정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것처럼 전통적 지도자도 일반적으로는 '대과(大過)없이 지낸다'는 것을 모토로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통적 집단을 포용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에 지도자가 취해야 할 방법은 정연(整然)한 해결책을 안출(案出)하는 것도 변론을 통해서 대의명분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사람을 찾아다니며 애로사항을 해결한다거나 혹은 '나를 따라오라'는 식으로 솔선수범하여 실행하는 것이 지도자의 '신분적 의무'인 것이다.

정치적 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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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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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image

정치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이고 그것을 왜곡시키는 것은 말과 이미지라는 견해가 있다. 경제적 이익·당파·폭력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의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거꾸로 정치의 세계를 이미지의 세계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경제의 세계와 같이 생리적인 자극에서 생겨나는 정형적(定型的)인 욕망을 기초로 하여 정치의 세계를 분석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행동은 가치체계·편견, 공포나 희망, 이론이나 이데올로기 등의 레벨을 경유하여 비로소 구체적으로 출현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세계는 물론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감각기관(感覺器官)에 전해진 단편적인 자극을 기초로 자기의 좋고 나쁨 등의 가치판단이나 선입견 등으로 컨디션을 조정하여 구성한 내면적인 심상(心象)인 것이다. 이미지의 소재(素材)로 된 직접적 체험이 적으면 적을수록 이미지는 기억 속에서 과장되든가 왜곡되든가 한다. 대중 속에서의 외국에 대한 이미지나 권력이나 지배자 등의 이미지가 때때로 전혀 사실과 동떨어져서 그런 허위(虛僞) 이미지가 개전(開戰)이나 혁명 등의 정치적 사건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일이 일어난다. 따라서 정치의 세계에 있어서는 상대방이나 대중의 이미지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외식(外飾)이나 선전에 의하여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다.

정치적 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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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的 symbol

이미지를 표현하고 상호간에 전달하는 수단이 심벌(symbol)이다. 심벌은 말인 경우도 있고 국기(國旗)나 십자가 등의 유체물인 경우도 있다. 이들이 심벌로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그것이 전달되면 상대방 속에 생생한 이미지가 소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의 밖에 있는 외국인이나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국기는 다만 모양이 그려진 천조각에 불과하다.

심벌과 비슷한 것으로서 사인(sign) 즉 기호가 있다. 사인은 마치 정오의 사이렌이 12시를 알리는 것처럼 어떤 고정적인 사물이나 사건의 대체물(代替物)로서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간의 인식 속에서는 12시의 사이렌은 갖가지 기억과 기대, 좋고 나쁜 것의 감각(感覺) 등과 결부되어 단순한 '정보(情報)' 이상의 개인적인 폭을 가진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카시러(E. Cassirer, 1874-1945:독일의 철학자)는 이러한 심벌적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특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의 인식이 지니고 있는 이 기능은 인간이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서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회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構築)시키는 것을 가능케 함과 동시에 또 인간이 심벌이 불러일으키는 개인적 경험이나 감정적 착색(着色)에 사로잡혀서 미로(迷路)에 빠지는 원인이 된다.

정치 가운데에서 심벌이 사람을 정서적으로 움직이는 기능이 있는 것은 정치가에 의해 옛날부터 인정되어 왔다. '말은 할탓'으로,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로 부르고 일본의 경우 패전을 '종전(終戰)'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치가로서의 초등기술(初等技術)에 속한다. 이처럼 사람을 감정적으로 움직이고 복종과 저항·지지와 거부의 역학 속에서의 효과를 꾀하는 심벌을 가리켜서 '조직화의 심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군기(軍旗)는 동일화의 심벌이고 데모 학생들이 두른 머리 수건은 저항의 심벌인 것이다.

그러나 심벌의 정치적 기능은 정서적인 분야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을이나 가정이라는 모델을 사용하여 정치의 존재양식을 인식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의 동향이나 집단의 조직의 존재양식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또 '힘'이라든가 '국민적 이익'이라든가 하는 심벌을 사용하여 국제정치를 생각하려는 것은 '협조'나 '계급적 이익'이라는 심벌에 따라 생각하는 것과는 별도의 결론으로 이끌어가기 쉽다. 일반적으로 '인식의 심벌'이라고 불리우는 종류의 것은 이와 같이 정치의 역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심벌과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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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bol-現代社會

전통사회에 있어서의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입에서 입으로의 직접적 전달에 의해서였다.

좁은 촌락(村落)에서 직접적인 체험을 함께 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치는 심벌과 이미지의 층(層)을 통해서라고 하기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세계에서의 사건으로서 느껴졌다. 전통사회에 있어서 심벌이나 이미지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관인(官人)들의 조복(朝服)이나 반역자의 효수(梟首) 등은 무엇보다도 웅변으로 정치적 심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거기에 말이나 이념 등이 개재하는 것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다.

근대사회는 이러한 촌락이 이촌(離村)과 분업화에 의하여 해체한다는 조건하에서 추상적인 사회조직이나 국가기구를 건설한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추상적인 관념을 조정하여 분업과 협업의 짜임새를 상호이해하고 보편적인 이념 밑에 서로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단결한다고 하는 근대의 발명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직접적 체험의 공유(共有) 대신에 심벌의 공유가 집단형성의 핵(核)으로 되고 그 통신수단으로서 신문이나 책, 팜플렛 등이 범람하게 된다. 미국독립 때 이러한 정치적 팜플렛의 심벌을 수량적(數量的)으로 분석한 정치학자 도이치에 의하면 '아메리카'라는 관념에 대한 심벌과 '인간'이나 '인류' 등의 이념에 대한 심벌이 가장 많이 출현한다고 한다.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사회단위를 '인권선언'의 원리에 서서 건설한다고 하는 정치의 움직임이 특징적으로 먼저 심벌 속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에 있어서의 심벌은 이러한 추상적인 관념이나 이념의 체계로서 사람들의 조직화가 가능하도록 한 점에 특징이 있다. 프랑스 혁명 때의 '자유·평등·박애'의 슬로건이나, 조국과 국민이란 관념, 날 때부터의 권리로서의 기본적 인권 등에 대한 이론, 혹은 3권분립이라든가 사회계약 등의 이론이 단번에 출현한다.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심벌의 체계를 넓은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가 정치사회에 있어서의 가장 기본적인 심벌의 존재양식이었다는 것은 근대사회에 있어서의 정치의 담당자가 '재산과 교양'이 있는 시민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의하며 현실적으로 지탱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디오·텔레비전·상업신문(商業新聞) 등의 매스 미디어의 발달과 대중의 정치참가에 의하여 시민사회에서 구별되는 현대사회는 정치와 심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별도의 존재양식을 나타내었다.

초등교육의 보급과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매스 미디어의 발달은 대중이 판에 박힌 이미지(스테리어 타이프)를 공유함으로써 정책 특히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 이 과정에 정치권력이 개입함으로써 권력에 의한 대중의 이미지 조작이라는 위험을 낳게 된다. 더욱이 한번 형성된 이미지는 권력의 기대를 넘어서 혼자 걷게 되고 이성적인 정책결정을 불가능하게 한다. 천황을 하나님처럼 신성한 것으로 추켜올린 전전(戰前)의 일본은 그 좋은 예이다.

대중의 정치참가는 또 대중을 감정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즉석의 정치적 효과를 꾀한다는 정치지도의 방법을 정치에 인용한다. 히틀러는 라디오를 무기로 하여 대중에게 유태인이나 외적에 대한 증오를 불어넣었고, 1956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아이젠하워는 스폿 커머셜(spot commercial:방송 프로그램 사이에 행하는 간단한 상업광고)에서 그 '성실성'을 선전했다. 이러한 대중조작의 방법에서는 때때로 감정적인 효과를 수반한 정치적 심벌이 남발된다. 한편 풍요한 사회 속에서 대표적 리더십하에 안정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화려한 광고보다는 온건한 접근방법이 심리적 저항없이 쉽게 받아들여진다. 정치와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커피 등을 마시는 휴식시간)'를 직결하는 작전이 개척되고, 의사인식적(擬似認識的)인 꾸밈을 한 심벌이 많이 사용되기에 이른다. 어떤 방법이 채택되든간에 이념이나 이론에 기초하여 대중을 새로운 조직이나 사회에로 유도하는 것은 이미 현대사회에선 유행하지 않는다. 학생과 청년노동자를 별개로 한다면 오늘날의 체제질서(體制秩序)나 복지국가 원리는 대중에게 있어서 자명의 사실로서 비쳐지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이라는 말이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