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정치와 생활/정치와 국가/정치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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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정치의 주체[편집]

인종[편집]

人種

인종이란 인류를 생물학적 기준, 즉 피부의 색깔이나 머리 모양 등 주로 유전성(遺傳性)의 신체형질(身體形質)의 차이를 바탕으로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의 세계에는 같은 아프리카계의 인종이라도 오랫동안의 자연적·지리적 조건이나 교섭에 의하여 갖가지 상이(相異)한 유형이 나타난다. 또 미합중국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계의 흑인은 역사적 조건의 차이로 인하여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과는 다른 문화나 언어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인종간의 선천적 차이는 결코 큰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역사적·사회적 조건의 차이에 의하여 그 문화나 문명의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안 족의 선천적 우월성을 주장하고 그것을 '독일민족'의 우수성이라고 선전하여 유태인의 멸절(滅絶)이나 유럽 여러 민족의 '독일민족'에의 복종을 주장한 히틀러의 나치즘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또 '야마도(大和)'의 우수성과 민족적 사명감을 주장하여 아시아 민족을 정복하려고 한 소위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구상도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야망을 가식(假飾)한 그릇된 사고방식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격리정책(人種隔離政策)'이나 미국의 흑인차별도 하등 백인의 우수성을 설명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과학기술·예술·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흑·백·황의 피부색의 차이에 관계 없이 우수한 사람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이 이와 같은 인종론의 오류(誤謬)를 무엇보다도 잘 말해 준다.

씨족·종족·부족[편집]

氏族·種族·部族

종족은 인류의 원시공동체 제도의 시대에 몇 개의 씨족이 모여서 만든 것으로서 원시사회의 최고의 조직형태이다. 인간은 처음에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있었으나 다음의 단계에서는 혈연(血緣)에 기초한 보다 공고한 집단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수십 명으로 된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이었다. 이런 것을 '씨족'이라고 부른다. 다른 씨족간의 혼인(婚姻)이 발전됨에 따라 씨족의 인원은 수백 명으로까지 확대되고 공동노동과 공동생활의 습관이 발달하였다. 이렇게 하여 몇 개의 씨족이 모여서 종족이 형성된 것이다. 이 씨족과 종족의 중간형태를 '부족'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종족과 부족은 원시사회의 혈연을 기초로 하는 인류의 집단을 구성하는 개념이다.

국민[편집]

國民

인류사회에 국가가 출현한 뒤 하나의 국가영역에 포함되는 사람들을 '국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영토적 기초 위에서 ① 공동문화재를 갖고 역사적·정치적 공동체험을 가지며, ② 정치적 통일 조직을 갖는 사람들의 집단을 일컫는다. 국민은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의한 국민경제의 성립과 그것을 배경으로 한 근대 시민국가의 형성 즉 부르주아 혁명을 결정적 계기로 한다. 다시 말하면 국민의 형성에는 중세적·다원적인 신분제의 타파에 의한 시민계급의 정치적 등장과 통일국가 기구의 확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민족[편집]

民族

민족은 "언어·지역·경제생활 및 문화의 공통성 속에 나타나는 심리상태의 공통성을 기초로 하여 생겨난 바의, 역사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견고한 공동체"라고도 한다. 민족은 인종이나 종족과 같이 혈연에 기초한 공동체가 아니고 ① 언어나 지역·경제생활·문화 등의 공통성을 기초로 하고, ② 이러한 객관적 실재(實在)에서 생겨나는 주관적 요소인 심리·의식 등 공통성에 기초하며, ③ 근대 및 현대사회의 민족은 자본주의의 성립을 기다려 형성되었다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한다. 종래 민족의 정의(定議)에는 주관설과 객관설이 있었다. 주관설은 주로 민족정신이라든가 민족의식 등 공통의 심리·정신을 민족의 본질로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종교사가 르낭(J. E. Renan, 1823-1892)은 "민족은 하나의 혼이고 하나의 정신적 원리다"라고 하였고, 독일의 법학자 옐리네크(G. Jellinek, 1851-1911)는 '민족감정'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객관설은 문화나 언어 등의 공통성이 민족의 본질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바우어(O. Bauer)는 민족을 '문화공동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것은 일면적인 것으로 민족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명확하게 한 것은 아니다. 또 민족의 본질을 같은 피, 같은 인종에서 구하고 그 '민족'의 문화의 우수성을 과장하고 민족정신이나 민족적 사명감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은 나치스 등의 반동적 국가주의자가 이용하는 바 되었다. 그것은 인종적 증오나 타민족에의 적의(敵意)를 선동하는 침략주의(侵略主義)의 도구로 된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역사적 성격을 먼저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민족의 형성[편집]

民族-形成

민족의 형성에는 다음 4개의 공통성이 필요했다. 즉 언어·지역·문화·경제생활이 그것이다. 노예제·봉건제 시대를 통하여 언어·문화·지역 등의 공통성을 가진 갖가지 공동체가 출현하였다. 이들은 민족의 맹아상태로서 '민족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 경제생활의 통일성이 확립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성립하여 단일의 국내시장이 이루어짐으로서 비로소 경제생활도 함께 하는 민족의 형성이 가능하였다. 민족의 내부에는 계급대립을 포함하고 또 민족간에는 적대관계가 형성되었다.

복잡한 국제관계나 경제의 발전단계에 상응(相應)하는 민족의 형성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민족의 형성이다.

즉 폐쇄적인 아우타르키(Autarkie:자급자족주의)를 가진 봉건적인 제후국(諸侯國)을 동일한 국내시장을 가진 하나의 민족국가에 통합하는 경우 부르주아지는 봉건세력과 싸워서 이것을 타도하여 스스로의 헤게모니(Hegemonie:주도적 지위)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경우가 있다. 그 둘째가 독일이나 한국 등과 같이 후진적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민족 성립의 주도권을 잡은 것은 주로 봉건적 여러 세력이고 '위로부터'의 민족국가의 통일을 추진하였다.

계급·대중[편집]

계급[편집]

階級

넓은 의미로는 근대의 여러 계급뿐 아니라 고대 인도의 카스트(caste:四姓制度)나 중세의 신분까지도 포함하여 계급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카스트 제도는 복잡화하고 분화(分化)되어 현대의 인도사회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어 신분상의 구별이 엄격한 위계제도(位階制度)를 만들어 갔다. 근대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성(姓)·위계·신분 등의 특권은 폐지되고 사민평등(四民平等)이 구가(謳歌)되고 있으나 그 안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등의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다. 갖가지 종교적 신비성(神秘性)이나 특권의 베일을 벗긴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명확하게 계급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A. Smith, 1723-1790:영국의 고전 경제학자)는 사회의 전체 산물은 "국민의 3개의 다른 계급 즉 지대(地代)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 임금(賃金)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 자본으로부터의 이윤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의 소득을 형성한다"고 하고 "이들이 일체의 문명사회의 주요한 기본적·본원적(本原的)인 계급이다"라 하였다. 즉 계급의 존재를 소득을 얻는 방법과 원천(源泉)의 차이에 따라 규정하였던 것이다.

생 시몽(C. H. Saint Simon, 1760-1825: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사회계급을 '게으른 자'(기생자)와 '산업자'(초기의 자본가·노동자를 포함한 근로자)로 분류하고, 산업자가 제1계급이 될 수 있는 이상적 산업제도를 구상하였다.

프랑스의 역사가·정치가인 기조(F. P. G. Guzot, 1787-1874), 티에르(L. A. Thiers, 1797-1877) 등은 역사 속에서 이미 계급간의 투쟁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계급의 존재를 전 사회구조의 기초로 보고 계급투쟁과 사회발전의 전 법칙성을 분명히 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들은 계급을 다만 분배(分配), 즉 부(富)를 받아들이는 방법의 차이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체제 속에 있어서의 지위, 생산수단의 소유의 차이에서 구하였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지배와 복종의 정치관계, 갖가지의 사회의식이나 이데올로기가 생겨난다. 이 전 구조를 총체적(總體的)으로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여러 사회세력의 동향을 과학적으로 구명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에 대하여 계급의 존재를 심리·이데올로기의 상이(相異), 사회에 있어서의 기능의 차이에 의하여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정치가인 라스웰은 "계급이란 한 개 내지 그 이상의 특정의 가치의 형성과 배분(配分) 및 향수(享受)에 대하여 동일한 관계를 부여하는 행위에 따르는 사람들의 큰 집단"이라고 말하고 또 "계급이란 기능·지위·이데올로기를 같이하는 사회집단의 주된 것이다"라고도 하였다.

또 영국 노동당(勞動黨)의 이론가들은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이미 소유관계(생산수단의 소유·비소유)의 구별은 거의 없어지고 분배의 불평등만이 문제이며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혼합경제(混合經濟)'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계급협조론(階級協調論) 내지는 부정론이다. 또 경영자혁명(經營者革命)이라 칭하여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아니라 경영자가 회사의 실권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계급의 발생[편집]

階級-發生

원시사회의 내부에서 노동생산성이 증대하고 분업과 교환이 발전함에 따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私的) 소유가 발생했다. 이렇게 하여 전쟁포로를 노예로 하는 일이 생겨났다. 즉 폭력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복과 침략이 노예를 발생시켜 계급의 기원이 된 것은 아니다. 사회의 경제발전의 일정한 단계가 가내적(家內的)·가부장적(家父長的) 노예(본래적 노예)를 발생시키고 동시에 전쟁포로를 노예로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폭력은 재산의 소유자를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나 사적 재산 그 자체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 점에서 굼플로비츠(L. Gumplorvicz, 1838-1909:오스트리아의 폴란드 계 유태인. 사회학자·정치학자) 등의 계급발생에 관한 폭력설은 약점을 갖는다.

노예주와 노예[편집]

奴隸主-奴隸 최초의 계급사회는 노예제사회(고대사회)로서 거기에는 노예주와 노예라는 기본적 계급이 있고 그 외에 소규모의 농민이나 수공업자가 존재하였다. 노예는 주인에게 인격(人格)을 소유당하여 생산수단으로 사역(使役)되며 매매획득(賣買獲得) 등은 주인의 자유였다. 이와 같은 직접생산자가 곧 노예였으며 가축과 같이 사육(飼育)·사역되었다. 머지 않아 노예들의 저항과 반란(B.C. 77-74년에 일어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나 우리나라에서의 만적의 난 등이 유명하다)이 일어나서 노예는 점차로 해방되어 농노제(農奴制)가 생겨났다.

영주와 농노[편집]

領主-農奴

봉건사회의 기본적 계급은 영주와 농노로서 도시의 길드(gulid)에는 장인(匠人)과 도제(徒弟)의 대립이 있었다. 농노는 영주에게 인신적(人身的)으로 예속되고 토지에 속박되어서 경제외적 강제에 의해서 착취되었다. 일정한 노역을 제공하는 부역(賦役)과 일정한 생산물을 납부하는 '생산물 지대(地代)' '금납지대'가 그 착취 형태였다.

예농(隸農)이란 농노의 한 형태로서 생산물 지대 혹은 금납 지대가 과해진 것을 말한다. 부역의 경우보다도 노동시간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고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가능성이 있었다. 봉건시대 말기에는 농노의 반항이 일어났다. 독일 농민전쟁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지도하에 부르주아 혁명을 행하고 혹은 그 압력하에서 농노해방을 쟁취해 갔다.

신분과 계급[편집]

身分-階級

노예제 혹은 봉건제하에서는 계급간의 상위(相違)는 신분적 구별 속에서 고정화되고 국가에 있어서의 특별한 지위가 법률에 의하여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은 법률적으로 동권(同權)이 되고 신분상의 구별은 원칙적으로 소멸하였다. 따라서 노예제·봉건제·자본제의 3개의 사회가 사회의 계급에의 분리(分離)라는 점에서는 공통되고 있으나 자본제의 경우에는 계급은 신분으로서 고정화되어 있지 않다. 즉 계급은 신분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제3계급[편집]

第三階級

중세 말기 절대왕정의 형성기에 국왕에 의해 등족회의(等族會議)가 소집되었다. 그 시대에는 귀족(제1신분)·승려(제2신분)에 대하여 시민계급은 제3신분(또는 제3계급)이라 하였다. 프랑스혁명 당시 아베 시에예스는 『제3계급이란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책을 쓴 바 있다. 프랑스혁명에서는 이 제3계급이 독립하여 국민의회(國民議會)를 만들고 모든 낡은 특권을 폐지하였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분화한 후에는 이 제3계급은 부르주아지와 동의어(同義語)가 되었다.

제4계급[편집]

第四階級

제3계급인 시민계급에 대하여 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트)을 제4계급이라고 한다.

부르주아지는 자본가계급을 가리키는 바 이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임금노동자를 착취한다고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여 노동력을 파는 것 이외에는 생활할 길이 없는 근대적 임금노동자를 가리킨다. 이 두 개의 계급이 자본주의사회의 기본적 계급이다.

중간계급·계층[편집]

中間階級·階層

근대사회에서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2개의 기본적 계급과 함께 봉건제의 잔존물(殘存物)인 지주 등의 비기본적 또는 과도적 계급이 있다.

또 소농민·직인(職人)·소상인 등 단순상품(單純商品)생산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많은 소(小)부르주아지가 있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중간에서 동요(動搖)하므로 '중간계급' 혹은 '중간층'이라고 불리운다.

또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사무노동자(事務勞動者)나 서비스 부문의 노동자가 증가하게 되어 이들은 육체노동자(肉體勞動者), 즉 블루 칼라(blue collar)와 구별하여 화이트 칼라(white collar)라고 하며, 구중간층(舊中間層)에 대하여 '신중간층(新中間層)'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인텔리겐치아·청년·학생 등과 같이 여러 가지 계급에 소속하면서도 그 사회적 지위나 요구 등에서 공통성을 갖는 집단을 '계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현대사회는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분업도 복잡화된 결과 갖가지 성격을 가진 인간집단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중간계급층이 점차로 증대하여 계급투쟁의 완충기(緩衝器)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일종의 중간계급 국가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논자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사회의 근저(根底)에는 2개의 기본적 계급의 대립·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중[편집]

大衆

대중은 피플(people)과 매스(mass)의 2개의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대중으로서 제기되는 문제는 매스로서의 대중으로 그것은 피플(인민)에 비하여 보다 수동적·비합리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더욱이 그 매스로서의 대중의 문제성은 시민적 데모크라시의 위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즉 데모크라시의 기초인 이성(理性)과 토론을 불가능하게 하는 정치에 있어서의 비합리적 요소를 사상가는 군중(群衆) 속에서 발견하였다. 자본가는 경영에 불만을 갖고 반발하는 노동자를, 정치가는 새로이 선거권을 획득한 유권자를 대중이라 생각하고, 혁명가는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미래를 형성하는 에너지를 발견하였다. 이와 같이 대중은 뚜렷한 내용을 갖고 있지 않으나 여하튼 지금까지의 정치의 회전(回傳)에 동요를 가져오는 어떤 사회적 변용(變容)을 가리키는 것이다.

르 봉(G. Le Bon, 1841-1931:프랑스의 심리학자·사상가)은 일찍이 '군중(群衆)'의 폭발적인 비합리성·망동성(妄動性)·경신성(輕信性)을 지적하여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하였으나 현대에서는 일시적·부분적·자연발생적인 것은 아니고 국가만한 크기의 형태에서 계획적·지속적(持續的)으로 군중이 생산된다. 말하자면 대중은 군중의 기구적인 대량생산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