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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학의 발전과정[편집]

韓國政治學-發展過程

한국 정치학의 발전과정은 한국 정차학자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가, 왜 그러하였는가, 상황이 어떠하였는가를 중심으로 고찰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정치학은 비교적으로 명백하게 구분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3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쳐 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학의 발족기(제1기)[편집]

韓國政治學-發足期(第一期)

이 시기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로 8·15해방, 이데올로기의 극심한 대립과 투쟁, 대한민국의 수립, 6·25동란, 부산 임시천도를 거쳐 서울에 환도할 때까지이다. 대체적으로 이 시기를 한국 정치학의 발족기 또는 초창기(草創期)라고 볼 수 있고 이 시기의 특징적인 현상은 대개 다음과 같다.

(1) 많은 대학에서 정치학과 또는 정치외교학과가 분리된 독립학과로서 창설되었다. 1946년 8월 국립 서울대학교 개교에 따라 동교 문리과대학에 정치학과가 창설되었다. 이 해에 보성전문학교·연희전문학교가 각각 고려대학교·연희대학교로 개편됨에 따라 정치학과가 설치되었고 1964년 이후 많은 전문학교가 대학교로 점차 개편됨으로써 대개 정치학과 또는 정치외교학과가 창설되었다. 비교적 여자대학에서의 정치학과 창설은 늦어 이화여자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가 정치학과를 창설한 것은 각각 1950년·1952년이다.

(2) 이 당시의 중요한 지도적 정치학자는 대개가 일본 정치학의 훈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관료적인 국가학이나 법률학의 일익(一翼)으로서 정치학을 생각하였던 일본 정치학의 학풍·학적 경향에 지배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편성된 교과목에서 잘 나타나 있다. 법학과목이 많았고 또 철학적인 '주권론'·'국가론' 등이 중요과목으로 지목되었다.

(3) 이 시기에서는 훌륭한 훈육을 받은 정치학 교수의 부족, 정치학과 교과목 편성에 대한 고민 및 연구서적·참고자료에 많은 곤란을 느꼈던 때였다.

(4) 법적·역사적·철학적 접근법이 일반적이고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당시 법학자 특히 헌법학자·행정법학자·국제법학자 등은 정치학에서도 중요한 담당자였다. 또한 사상·이데올로기·특수 국가 또는 어떤 문제연구에 있어서 역사적 고찰이 유행되었다. 따라서 역사가 특히 정치사 또는 외교사를 연구한 사람도 정치학의 중요한 담당자였다.

(5)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농후하였다. 건국이념, 정부수립을 위한 극력한 투쟁은 그 중요한 표현수단으로서 이데올로기가 강조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 중에서도 1945-1947년은 사상적 혼란기였다. 따라서 각종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찬·반'이 의도되었고 여기에 입각한 논문이 많았다. 그러나 1948년-1953년은 민주주의 가치관의 확립시기라고 볼 수 있다.

(6) 6·25동란은 국제정치 분야에 대한 관심과 개척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유엔 군의 한국참전은 유엔, 나아가 국제정치에 대한 분야의 연구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오히려 제2기에 있어 강력한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그 계기는 제1기에서 발생된 한국동란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말하여 이 시기에는 정치학 자체는 혼미상태였고 정치학과는 독립된 학과로서 존재하였으나 그 교과과정·연구 방향에 혼란을 겪었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학의 전문화 및 정치학 분야의 분화는 문제로서 제기조차 될 수 없었다.

한국 정치학의 아화기(제2기)[편집]

韓國政治學-芽花期(第二期)

이 시기는 1954년부터 1961년까지로 서울 환도 후 이승만 박사의 자유당 시절과 1960년의 4·19학생의거, 제2공화국 수립을 거쳐서 1961년 5·16쿠데타까지를 말한다. 대체적으로 이 시기를 한국 정치학의 아화기 또는 준비기(準備期)라고 볼 수 있고 이 시기에 나타난 특색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계몽적인 정치학의 입문서·개론 등을 위시하여 다방면에 걸친 저서·역서·논문이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제1기에 비하면 놀랄 만하게 많은 정치학서적이 출판된 것이다. 즉 제1기를 포함한 1945년-1955년 사이에 발간된 정치학 분야에 속한 저서·역서는 약 305권이었다. 이중 1953년에는 28%가 간행되었다. 그러나 환도 후인 1954년-1955년에는 그 전체 발행권수의 반수가 넘는 52%가 간행되었다. 그 후 계속 정치학 분야의 저서·역서·논문의 간행은 활발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환도 후 정치학계가 점차로 안정되어 갔다는 것과 각 대학의 기념논문집 및 학술논문집·학보와 특히 1957년 이후 늘어난 각 대학의 석사논문 등을 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또 『사상계』·『자유세계』·『새벽』·『사조』·『한국평론』·『세계』 등등의 월간잡지에 게재되는 정치학 교수의 논문은 그 실제 내용은 고사하고 정치학 연구에 적지않은 자극제가 된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에 있어 발간된 정치학 입문서 중에는 저자의 주된 관심이 정치학의 정의·범위 및 방법 등에 표시되어 있었다는 것은 특히 주목할 점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이데올로기적 경향이 농후하였던 한국 정치학이 점차로 과학적인 정치학으로 이전되는 싹이라고 볼 수 있다.

(2) 한국 정치학에서 많은 분야가 수입·개척되고 정치학 분야에 대한 관심 및 연구가 전보다 훨씬 넓혀져 갔다는 것이다. 이미 국제기구 및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이 제1기 후반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말하였으나 이 분야의 개척 및 연구에 대한 관심은 환도 이후 급격화되었다. 또 비교정부론이 환도 후에 설강(設講)되어 비교정치 또는 지역 연구에 대한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3) 정치학 교수들의 충원이 광범하게 이루어졌다. 1945년 이전의 대학출신·정치학 교수들은 대다수가 일본 대학 출신이었다. 그러나 구제(舊制) 즉 일본 대학제도에 따른 최후 졸업연도인 1949년 및 신제대학의 최초연도인 1950년을 전후하여 많은 서울대학 졸업생과 연대 및 고대 졸업생이 정치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또 '순수국산'이라고 볼 수 있는 1953년-1956년을 각각 전후한 대학 졸업생이 강단에 서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정치학계는 연령적으로 젊은 층이 이 시기에 충원되기 시작한 것이다.

(4) 한국 정치학계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 학회구성과 활동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로 활기를 띠어 간 정치학계는 이 시기의 후반기에 이르러 즉 1956년 7월에 '한국정치학회'를 정식 구성하였고 1959년 4월에는 『한국정치학회보』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이 외에 이렇다 할 활동은 없었다.

(5) 정치학 접근법은 여전히 철학적·법적·역사적·서술적이었고 따라서 당위적(當爲的)·처방적(處方的)인 경향이 강하였다. 그러나 이미 미국 정치학계의 동향이 이 시기 말기에 소개되었다.

총체적으로 말해서 이 시기에는 정치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특히 깊어져 갔고 그 분야도 굉장히 넓혀져 갔다. 그러나 여전히 그 연구방법과 경향에 있어서는 전통적 방법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라스키·메리엄·매키버 등 다원주의 이론의 보급 및 풍미 등은 현대정치학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터전을 마련해 준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정치학의 난만기(제3기)[편집]

韓國政治學-爛漫期(第三期)

이 시기는 1962년부터 5·16군사쿠데타로 인해서 제2공화국이 붕괴되었고, 군사정부시대-민정이양-제3공화국 수립 등을 경과하는 60년대 초기부터 70년대 초기까지를 주로 말한다. 대체적으로 이 시기를 한국 정치학에 있어서 분야별 연구 등에 대한 관심은 정치학 방법론·체계적 정치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구미(歐美) 각국 특히 미국에서 광범하게 현대정치학의 소개·도입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 정치학은 그 역사상 일찍이 보지 못하였던 정치학의 찬란한 개화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치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한국 정치학의 성립을 위한 모색이 새롭게 대두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논문 및 서적상으로 또는 그 질적 내용에 있어 참으로 한국 정치학의 격동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있어서의 중요한 특색은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 이 시기에 정치학 교과과목은 점차 팽창되었고 세분화되어 갔다. 또 그 연구대상도 내용적으로 지역적으로 점차 확대되어 갔다. 정치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으로써 정당론·의회론뿐만 아니라 정책결정론·여론·선전론·정치심리 등의 교과목이 새로이 나타났다. 이 외에도 방법론 및 분야별 연구에 대한 관심은 정치학 방법론·체계적 정치학·이론정치학과 후진국 정치론 및 특수지역(아시아·중동·남미·중국·아프리카 등) 정치론의 과목이 설강되었다.

(2) 정치학 연구 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경험적인 연구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이 시기에 한국 정치학의 각 분야에 걸쳐 여러 가지로 영향을 준 것은 '행태주의'(Behavioralism)의 도입 및 보급이라고 볼 수 있다.

(3) 한국 정치학은 점차 각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갔고 또 더 세분된 분야로 전문화되어 갔다. 특히 이 시기에 행정학은 놀랄 만한 팽창을 이루었다. 그 외에 국제정치·비교정치 또는 지역적·문제적 연구(Area studies)에도 많은 진전과 관심이 표시되었다.

(4) 소위 '한국학'의 수립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이 시기 후반기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정치사·한국 정부, 또는 한국 정치의 연구진전을 비롯하여 정치이론·국제정치·행정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나타났다.

(5) 1960년대 특히 후반기부터 구미 여러 나라의 유학생이 많이 귀국하여 학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장기적인 유학 후 박사학위를 얻고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었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많은 원로·중진 또는 소장 정치학자들이 정치학에 관한 논문으로써 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6) 대학원 교육이 일반화되고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대개 대학교의 대학원에서는 정치학과와 행정학과가 설치되었고 이 시기 동안에 많은 정치외교학, 행정학에 관한 석사논문을 산출시켰다. 물론 대학원의 실제 교육내용 및 그 효과 등에 관해서는 새로운 정치학의 교육문제를 야기시켰다.

(7) 1960년대 후반기부터 점차로 한국 정치학회도 활동하게 되었다. 하여튼 그 동안 20여 차에 걸친 연구발표회와 수회에 걸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또한 그 동안 한국 정치학회는 『현대의 정치학』·『영문 현대정치학』을 편저 간행하였고, 정치학계 26명의 공동집필로서 『민주주의론』이 간행되었다. 1967년에 학회보가 복간되고 1969년부터 매년 학보가 발간되었다. 이러한 학회활동은 국제정치학회·행정학회에서도 이 시기에 그 활발성을 볼 수 있다.

총체적으로 말하여 이 시기에는 한국 정치학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하였던 다양한 이론과 접근법이 수입 소개되었다. 따라서 정치학 각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촉진되었고 또 그 연구에 많은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반면 정치학 연구에 있어 많은 개념의 차이를 나타냈었고 총체적인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하였으며 또 압도적으로 우월한 접근법도 수립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정치학은 그 수립을 위한 '몸부림'기였고 종합적인 것을 위한 모색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종합훈육(Inter-disciplinary)과 공동연구가 말로서는 강조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행해지지 않은 특수한 저해요인을 돌파하지 못한 단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