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아시아 문학/일본 문학/근 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근세의 문학[편집]

近世-文學

근세란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약 250년간, 이른바 에도(江戶) 시대를 말한다. 토쿠가와 막부(德川幕府)에 의해서 중앙집권적인 봉건제도가 확립되고 유지된 시대로, 충효(忠孝)의 유교 도덕이 강요되어 신분제도와 가족제도,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사회질서가 유지된 시대이다. 그러나 근세에 도래한 평화는 상업의 발전을 초래하여 상인(商人)계급이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고 이 시대의 문화 담당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전통적인 와카(和歌)나 한시문(漢詩文)의 융성도 있었으나, 근세를 대표하는 문학인 소설이나 하이카이(俳諧) 등은 완전히 조닌(町人) 계급을 대표하는 서민의 문학이었다. 문학이 이렇게 되는 데는 인쇄기술의 확립과 교육의 뒷받침이 있었다.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서 활자 인쇄기가 수입되었고, 조선에서 동활자(銅活字)가 수입되어 인쇄기술이 일반화된 것이다. 또한 서민(庶民) 교육기관으로서의 데라코야(寺小屋=私熟)가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읽기·쓰기·주산을 가르치게 되어 민중은 비로소 문맹으로부터 해방되기에 이르렀다.

근세의 문학이 장르의 다양성과 양(量)의 풍부성에 있어서 현란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사실에 의한 것이었다. 서적의 대량 출판은 서점을 낳았고, 직업적인 작가를 탄생케 했다. 이리하여 문학은 급격하게 대중화·통속화하게 되었고, 오락적인 대중소설을 낳았다.

근세라는 시대가 개인의 가치나 존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문학에도 커다란 제약을 가하였다. 불합리한 사회적 속박을 탈피하는 것으로 자아(自我)를 해방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1644-1694)에 의해서 전통적 미의식(美意識)이 대성(大成)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식 미의식의 규범이 되어 있는 반면, 민중시(民衆詩)로서의 하이카이는 자연시(自然詩)로서의 성격을 짙게 하였고 연애에 관한 솔직한 서정은 미의식이 결핍된 비속한 속요(俗謠)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소설에서는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 자신을 적극적으로 긍정한 시대가 도래하여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의 인간해방의 문학이 탄생하였으나 끝내 인간을 묘사하여 개성을 추구한 작품은 나오지 못했다. 또한 정치적인 탄압으로 인해 문학을 취향(趣向) 본위의 오락물로 타락시킨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의 하나이다.

이상은 시대의 조건이 근세 문학에 끼친 부정적인 면으로,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즉 근세라는 시대는 화폐경제(貨幣經濟)의 시대이며, 모든 것이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시대였다는 사실이 새로운 문학정신을 낳아, 현실주의적인 산문(散文) 정신이 확립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근세의 소설[편집]

近世-小說

급속히 발달된 인쇄기술은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친 서적을 넓은 계층에 보급시켰다. 현재 가나조시(假名草紙)라고 불리는 잡다한 서적은 순수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서민의 체취를 담기 시작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중기(中期)에 이르러 문화의 중심이 에도로 옮겨지고, 소설류도 새로운 형식의 것이 시대 변천에 따라서 탄생되었다. 즉 샤레본(酒落本)·요미본(讀本)·닌죠본(人情本)·기뵤시(黃表紙)·고칸(合卷) 따위인데, 서민의 생태를 여실히 그린 우키요조시(浮世草子)에서는 작가의 독자적인 안목이 있어 추종을 불허하는 개성적인 문학성을 엿볼 수 있는 반면, 시간이 흐르면서 작자가 상업자본과 위정자, 그리고 독자와 영합하여 안이하고 지성(知性)이 없는 작품이 씌어지기에 이르렀다.

가나조시[편집]

假名草子

교훈적인 것, 실용적·계몽적인 것, 외국 문학의 번안으로 오락을 주로 한 것 등 내용이 잡다한 소설이지만 문자(文字)를 대해 보지 못했던 서민은 이 가나로 된 인쇄 서적을 가문 땅의 단비(慈雨)같이 애독했다.

명소(名所)의 안내서적인 성격에다 각지의 세상(世相) 풍속을 담은 <지쿠사이(竹齋)>, 비련(悲戀)을 묘사한 <우라미노스케(恨之介)>, 아사이 료이(淺井了意, ?-1691)의 괴이(怪異) 소설인 <오토기보코(御伽婢子)>, 그리고 유녀평판기(遊女評判記)인 <나니와도라(難波鉦)> 등이 대표작이다.

우키요조시[편집]

浮世草子

1682년에 간행된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의 <고쇼쿠이치타이오토코(好色一代男)>라는 획기적인 작품의 출현 이후 약 80년간 교토(京都) 지방을 중심으로 출판된 현실주의적인 서민문학이며, 이 시기의 소설계의 중심이 된 작품들이다. 내용은 서민의 향락생활이나 경제생활을 다룬 호색물(好色物)과 서민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나, 이 밖에도 무사(武士)의 무용담·진담(珍談)·괴이담을 중심으로 한 잡화(雜話), 고전 연극을 번안한 것 등이다.

사이카쿠(西鶴)는 우키요죠시의 개척자로서 <고쇼쿠고닌온나(好色五人女)> <고쇼쿠이치타이온나(好色一代女)>(1686) 등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1693년 그의 사후는 애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쓴 야쇼쿠 지분(夜食時分, 생몰년 미상)의 <고쇼쿠만킨탄(好色萬金丹)>(1694), <고쇼쿠하이도쿠산(好色敗毒散)>(1702), 전기(傳奇)적인 <기케이키(義經記)>를 향락적인 서민생활로 번안한 <고젠기케이키(御前義經記)>(1700)의 니시자와 이프(西澤一風, 1665-1731), 문명비평적인 <겐로쿠타이헤이키(元祿太平記)>(1702)를 대표작으로 하는 미야코 니시키(都錦,1675- ?) 등의 작가들에 의한 우키요조시의 세계가 펼쳐졌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하치몬지

야지조(八文字屋自笑, ?-1745), 에지마 키세키(1666-1735)의 협력으로 <하치몬지 야혼(八文字屋本)>이 등장하고 사이카쿠(西鶴)의 호색물을 모방한 <게이세이 이로쟈미센(傾城色三味線)> <게이세이킨탄키(傾城禁短氣)> 등을 출판하여 우키요조시의 중심이 되었다.

샤레본[편집]

酒落本

주로 유곽(遊廓) 생활에서 제재(題材)를 택한 소설·교분(狂文) 따위이다. 산토 교덴(山東京傳, 1761-1816)의 <게이세이카이시쥬하츠테(傾城買四十八手)>, 우메보리

고쿠가(梅暮里谷峨, 1750-1812)의 <케이세이카이 후타스지미치(傾城買二筋道)> 등이 있다.

닌죠본[편집]

人情本

1820년경부터 1870년경까지 유행한 근세소설의 한 분야이다. 샤레본과 요미혼(讀本)을 통속화하여 강석(講釋) 등을 혼합한 일종의 통속소설인데 타메나가 슌스이(爲永春水, 1790-1843)의 <슌쇼쿠우메고요미(春色梅兒譽美)>가 호평을 받아, 에도 시정(市井)의 남녀 치정(痴情)관계를 그린 풍속소설로서의 닌죠본이 확립되었다.

곳케이본[편집]

滑稽本

근세 후기 에도에서 씌어졌던 소설의 일종. 익살 가운데 교훈이나 풍자를 섞은 대중오락문예이다. 짓펜 샤잇쿠(十返舍一九)의 <도카이도추히자쿠리게(東海道中膝栗毛)> 등이 유명하다.

요미본[편집]

讀本

에도 중기의 소설의 일종. 삽화(揷畵)를 주로 하는 구사조시에 대해서 문장을 주로 하는 책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쓰가 테이쇼(都賀庭鐘, 생몰년 미상)의 <하나부사조시(英草紙)>, 타케베 아야타리(建部綾足, 1719-1774)의 <니시야마모노가타리(西山物語)>(1768),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1734-1809)의 <우게츠모노가타리(雨月物語)> 등이 전기(前期) 요미혼의 대표작이며, 후기 요미혼에서 산토 교덴(山東京傳)의 <사쿠라히메젠덴아케보노조시(櫻姬全傳曙草紙)>, 교쿠테 이바킨(曲亭馬琴, 1767-1848)의 <난소사토미하켄덴(南總里見八犬傳)> 등이 대표작이다. 모두가 지식을 고금(古今)의 전적(典籍)에서 망라하여 고도의 지식계급을 독자로 상정(想定)한 문학이었다.

구사조시[편집]

1673년경부터 에도에서 출판된 그림책을 총칭한다. 원칙으로 한 권의 매수가 5매, 각 면마다 그림과 설명이 있다. 시대순으로 적본(赤本)·흑본·청본·황표지(黃表紙) 등 표지 색으로 구분되며 근세 말기에는 제본상의 변화에 따라 고칸(合卷)이라고 불렀다.

하나시본[편집]

에도 시대의 짧은 소화집(笑話集). 이 시대를 통해서 약 천 부나 발행되었다.

근세의 와카[편집]

近世-和歌

근세의 와카는 초기에는 보수적이고 지식계층의 것이었으나, 17세기 말엽 이후에는 국학자(國學者)들의 고전연구의 진전에 따라 와카도 일반 서민층에까지 침투되었다.

근세 와카의 특질은 고전 연구에서 발전한 점과 또한 종래의 보수 전통적인 면에서 탈출하여 개성적이고 인간적인 가풍(歌風)을 노래하려는 데에 있다. 예컨대 같은 고전을 연구했으나 가모

마부치(賀茂眞淵, 1697-1769)는 만요풍(萬葉風), 가다 아리마로(荷田在滿, 1706-1751)·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신고킨풍(新古今風), 오자와 로안(小澤蘆庵, 1723-1801)·카가와 가게키(香川景樹, 1768-1843)는 고킨풍(古今風)을, 그리고 가토 지카게(加藤千蔭, 1735-1808)·무라다 하루미(村田春海, 1746-1811)는 고킨과 신고킨의 절충적인 가풍을 노래했다.

말하자면 고풍한 정신을 부흥시킴과 동시에 그 속에서 진실한 자기 노래를 읊으려고 했다. 또한 가인(歌人)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어느 가풍에도 의하지 않고 독자적인 가풍을 수립한 다지바나 아케미(橘曙覽, 1812-1868), 오오쿠마 고토미치(1798-1868), 료칸(良寬, 1758-1831) 등이 배출된 것도 이 시대의 특색이다. 이와 같이 전대에 비해서 폭넓은 발전을 보였으나 근세에 발생한 하이카이(俳諧)나 교카(狂歌)보다는 우아하고 고상한 것이었고,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서민에게는 인연이 먼 것이었다.

근세의 시가[편집]

近世-詩歌

와카를 제외한 하이카이·교카·센류(川柳)를 대상으로 한다.

근세에 있어서는 한시문(漢詩文)·와카·연가 등의 전통적 분야인 제1문예(文藝)에 대해서 이러한 제2문예는 때때로 실용성과 오락성에 치중되었다. 또한 제1문예에서는 볼 수 없는 골계·비속(卑俗)·풍자 등의 성격이 나타나 있다. 초기 하이카이인 데이몬하이카이(貞門俳諧)에서의 하이곤(俳言)의 사용은 전통문예에서는 볼 수 없는 한어(漢語)·속어에 의한 익살미(味)를 꾀한 것이다. 교시(狂詩)에서는 전통 한시문에서 볼 수 없는 방어(邦語)를 섞고 제재 면에서 비속성을 보인 것도 그것이며 교카(狂歌)나 센류(川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근세의 시가가 단순히 실용성과 오락성에 치중한 것은 아니다. 하이카이에서는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노력이 계승되어 독자적인 미(美)가 확립되었다. 이에 대해서 교카·교시·센류에서는 경묘(輕妙)·풍자·폭로(暴露) 등의 근세적인 성격은 구비하지만 하이카이에서와 같은 문학으로서의 자각 운동은 일어나지 못하고 놀이로서 일관했다. 드디어 센류는 교쿠(狂句)로 타락하였고, 교카·교시도 거의 절멸하고 하이카이만이 하이쿠(俳句)로서 재생하였다.

근세의 한시문[편집]

近世-漢詩文

근세의 한시문은 일정 범위의 시민사회에까지 침투한 양적 확대의 시기였으나 그것이 곧 질적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근세 한시문은 중국 고전양식의 문학으로 간주한다면 중국어의 리듬과 악센트의 모방적·비개성적(非個性的)인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훈독(訓讀)을 전제로 한 일본문학의 한 분파라고 생각한다면 오랫동안 고전학의 역사에 의해서 연마된 지성과 미감(美感)과 함께 훈독체(訓讀體)라는 일종의 시원한 리듬을 가진 특수 문예양식으로 발전한 것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근세의 극문학[편집]

近世-劇文學

근세 이전의 노오(能)·교겐(狂言)·무곡(舞曲) 등의 연극도 행해졌으나 이미 창조력이 고갈되었고, 가부키(歌舞伎)와 조루리(淨瑠璃)가 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양자에 촉발(觸發)되어 생긴 도키와즈(常磐津)·도미모토(富本)·기요모토(淸元)·나가우타(長唄) 등의 극장 가요도 광의(廣義)의 극문학에 포함된다.

근세의 가요[편집]

近世-歌謠

중세 말기의 류큐(琉球)에서 수입된 샤미센(三味線)은 가부키오도리(歌舞伎踊)·조루리·유리가(遊里歌)의 반주 악기가 되어 근세의 악기를 대표하며, 샤미센 음악을 반주하는 가요가 서민의 환락장으로서의 유곽과 극장에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