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현대 문학/현대 후기 문학/현대 후기의 문학〔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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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後期-文學〔槪說〕8·15광복 후의 한국문학은 단체의 난립에서부터 막을 열었다. 1945년 8월 17일에 최초로 '조선문학건설본부'가 조직되었으며, 이것은 1935년 5월에 해체되었던 카프파(派)의 임화(林和)가 왕년의 동료들을 중심으로 하고, 순수파의 원로 이태준(李泰俊)을 대표로 옹립해서 만든 단체였다. 그 후 만 1개월이 지난 9월 17일에는 프로문학의 이념을 분명히 밝힌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역시 구카프파에 의해서 조직되었으며, 곧이어 이 같은 문학에 대립하는 '조선문학건설협의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해외문학파들이 중심이 되어 '중앙문화협회'를 조직했으며, 그 후 12월 13일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이 합세하게 된 '조선문학동맹'이 조직되고, 이는 다음해에 '조선문학가동맹'으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중앙문화협회'의 중심 멤버들은 '조선문필가협회'를 다시 조직하여 '문학가동맹'과 이념적인 대립을 갖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 등장한 중요한 단체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였다. 서정주, 김동리, 조연현, 최태응 등 비교적 젊은 문인이 중심으로 된 이 단체는 좌익세력과 정면으로 대립하고 투쟁해 나갔으며, 6·25 후부터는 이들이 한국 문단의 중심세력을 형성해 나간 것이다.

이같은 단체와 아울러 많은 신문과 문예지·종합지가 출현하여 문학활동의 실질적 무대를 제공해 주었다. <한성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독립신문> <예술통신> 등의 신문을 비롯하여

<예술타임> <문화창조> <신문예> <인민예술> <예술> <예술운동> <상아탑> <예술문화> <예술부락> <우리문학> <신문학> <신천지> <신세대> <민성> 등의 잡지가 광복 후 대개 1년 안에 등장했다. 그런데 이 같은 신문과 잡지도 좌익과 우익의 어느 일방적인 정치적 배경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많았다. 이로 말미암아 문단에서는 활발한 이론투쟁이 벌어지고 아울러 문학에 대한 일반적 관심이 높아진 장점은 있었지만,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 영향을 떠나서 독자적인 영역을 지키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손실도 컸던 셈이다. 그 후 6·25전쟁 직전에 등장한 <문예>는 혼란기를 지나서 어느 정도 안정된 체재로 출발한 문예지였으며, 6·25 후에 등장한 <문학예술> <자유문학> <현대문학>은 광복 후 지금까지의 현역 문인 대다수를 배출한 문예지로서 가장 공로가 큰 것이다.

이 같은 단체나 지면활동을 통해 나타난 광복 직후 3, 4년간의 문학은 다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공산주의의 정치적 배경을 지닌 문학이고 또 하나는 그것에 반대하며 정치적으로 남한의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문학이었다. 전자를 반대파 쪽에서는 '당의 문학'이라고 불렀으며 그것은 공산당의 정치적 노선과 그 지령 감독에 예속된 타락한 문학이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이쪽을 '순수문학'이라 하였으며 그것은 그처럼 비순수한 문학 외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서 완전히 독자적 영역을 지키고 문학의 순수본질만을 추구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주장한 말이었다.

광복 직후의 문학이 대충 이 두 가지 경향으로 분리되고 있을 때 '순수문학'의 대표적 이론가로 활약한 사람은 소장파의 김동리였으며, '당의 문학'쪽에선 김동석이 맹렬한 활동을 하다가 남한의 공산주의 단체들이 거의 모두 거세될 무렵에 월북해 버렸으며, '순수문학' 대 '당의 문학'의 논쟁도 이를 계기로 해서 중단된 셈이다.

남한의 공산주의 세력이 대개 월북하고 또는 지하로 스며든 후 다시 6·25전쟁을 겪고 나서 한국문학에는 극한적인 이론적 대립같은 것은 사라졌다. 일제시대부터 카프에서 활약이 컸던 문인 대부분이 월북했고, 순수파 중에서도 이태준, 정지용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전향했으며 일부는 전쟁 중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결국 염상섭, 전영택, 박종화, 박영준, 황순원, 안수길, 최정희, 임옥인 등의 소설가와 오상순, 주요한, 김광섭, 모윤숙, 서정주,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 시인, 그리고 백철, 이헌구 등 소수 평론가가 일제시대에 등장한 문단 선배로 전쟁 후의 혼란 속에서 한국문학을 정리하며 키우기에 애를 썼다. 그런데 단체를 조직하고 한국문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이 컸던 것은 <문학예술> <자유문학>을 중심으로 한 자유문학가협회의 간부들과 <현대문학>을 배경으로 한 한국문학가협회 간부들이었으며, 이들은 서로 미묘한 갈등과 마찰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지만 후진 양성의 공이 매우 컸다. 현재 활약 중인 중견급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 대부분이 여기서 배출되었고 기타 소수가 <사상계> 또는 신춘문예현상으로 배출되었다. 그런데 이 같은 문예지에 나타난 작품 경향은 대개 '순수문학'의 이론적 입장에 기울어져 있었으며 특히 <현대문학>은 그 같은 입장을 편집방향으로서 선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1년경부터 '순수문학'에 대한 재검토와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으며, 문학은 역시 사회현실에 기여해야 된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문학이 정치적인 의도에 예속될 수 없다는 '순수문학'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문학이 가장 절실한 사회문제로부터 항상 외면하는 현실 도피적 안일무사주의를 낳았으며, 그것은 문학의 타락이요, 참되고 위대한 세계문학은 모두 현실문제에 참여한 문학이라는 증거를 내세우고 '순수문학'은 한국문학만의 기형적 형태라고 주장했다. 1961년의

'파산의 순수문학'(김우종 <동아일보>) 이후 이것은 '참여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만 10년간 많은 논쟁을 거듭해 왔으며 '순수문학'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는 이로써 종식된 셈이다.

이와 같이 대립과 논쟁을 통하여 성장 발전해 온 한국문학의 오늘의 현황은 어떠하며 그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광복 후 4반세기를 마무리할 무렵에 한국의 국제 PEN본부는 한국 회원들의 협조 아래 세계 PEN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국제적 명예를 문학을 통해서 선양한 획기적인 대회였다. 그만큼 오늘의 한국문단은 크게 성장했으며, 1990년의 문단 인구는 시인이 약 600, 작가가 약 300, 평론가가 약 60, 그리고 유명 무명의 많은 수필가와 아동문학가를 합치면 1000명이 훨씬 넘는 셈이다. 이들은 대개 <현대문학> <월간문학> 등의 문예지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신동아> <월간중앙> <창조> <시문학> 그리고 일간지에 매월 지극히 많은 양의 작품을 발표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PEN클럽과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등의 단체에 소속되고 또는 작은 동인그룹에 소속되어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한국문학은 이만큼 성장하여 작품의 발표지면을 안고 있으며 한편 우리 작품의 해외소개, 그리고 작품의 양적 증대를 질적 향상으로 바꿔나가는 문제를 안고 있다.

<金 宇 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