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예술·스포츠·취미/방송극/라디오 드라마/한국의 라디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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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라디오 드라마〔개설〕[편집]

韓國-radio drama〔槪說〕 어느 나라이건 초기의 라디오 드라마가 그러했듯이 한국의 라디오 드라마도 무대극의 중계형태, 즉 보이지 않는 연극을 방송하는 것으로서 시작되었다.

한국 최초의 방송국인 JODK(HLKA전신)가 방송을 개시한 1927년에는 이미 영국·미국·프랑스 등에서는 초기의 무대중계적인 라디오 드라마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작품들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국의 라디오 드라마는 외국에서 개발된 드라마 이론을 도입함으로써 독자적인 이론개척기를 거치지 않고 본격적인 라디오 드라마를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방송할 수 있었다.

최초로 방송된 본격 라디오 드라마는 영국의 리처드 휴즈 원작 <탄갱(炭坑)>이었는데, 이것은 갑작스런 폭발로 출구가 막힌 암흑 속의 탄갱 안에 갇힌 광부들의 절망과 공포의 심리상태를 다룬 것으로 오늘에도 라디오 드라마의 고전으로서 꼽히고 있다. 그 후 <새벽종> <춘향전> 등의 우리 작품도 발표되었다. <춘향전>은 5회로 된 연속드라마로 한국 최초의 연속드라마로 기록된다. 이때의 라디오 드라마 출연·연출자들은 '극예술연구회' '조선극우회' 등의 연극단체의 멤버들이었고, 그 뒤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연구단체인 '라디오 플레이 미팅'이 탄생되었는데 이 멤버 역시 주로 연극인이었다.

정부수립을 전후로하여 김영수(金永壽), 유호(兪湖), 최요안(崔要安), 한운사(韓雲史) 등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나섰으나, 정계의 혼란과 6·25전쟁의 전화(戰火) 등으로 1950년대 중반까지는 이렇다할 발전을 볼 수 없었다.

50년대 후반에 사회가 차차 안정되어감에 따라 일요연속극, 일일연속극 등이 방송되기 시작했고, 시리즈 드라마인 <인생역마차>가 5년 간에 걸쳐 롱런할 만큼의 성공을 거둔 것도 기억될 만한 기록이었거니와, 조남사(趙南史) 작의 <청실홍실>, 한운사(韓蕓史) 작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 이서구(李瑞求) 작의 <장희빈(張禧嬪)>, 김희창(金熙昌) 작의 <로맨스 빠빠>와 같은 본격적인 멜로드라마·사극(史劇)·상황극(狀況劇)·희극 등의 여러 분야가 개척되었다.

TV드라마가 등장한 1960년대는 라디오 드라마에 있어서는 실의(失意)와 분발(奮發)이 교착(交錯)된 시련의 기간이었다. 작가와 성우, 그리고 역량 있는 제작·연출진을 할애(割愛)당했을 뿐 아니라, 종래 연속극으로 확보했던 상당한 청취자를 TV쪽에 빼앗기는 아픔을 견디어야 했다.

60년대 후반부터 라디오 드라마는 필요한 모색(摸索)과 실험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 그 체질·개성에 합당한 방향으로 찾아들었다고 하겠다. 흥미·자극으로 치우치던 잘못을 씻고, 청취자들에게 어떻게 서비스할 것인가를, 즉 라디오 드라마의 활로(活路)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간하기에 이른 셈이다.

텔레비전 시대의 라디오 드라마[편집]

television時代-radio dr­ama

TV가 등장한 당시, 사람들은 영화산업과 함께 라디오 드라마의 시대는 사라질 것으로 알았다. 현실적으로 영화는 TV에 대항하려고 대형화(大型化)로 치닫다가 지쳐버렸고, 라디오 드라마의 청취율 또한 감퇴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종래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던 연속극 형태의 멜로드라마가 시각(視覺)을 통한 화려한 영상(映像)을 제공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여지없이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라디오 드라마의 장래를 비관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미국의 어떤 방송인의 예언처럼 텔레비전의 출연은 라디오 드라마의 존립가치를 굳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견해는 요즈음의 우리의 방송 드라마계에서 그 일단(一端)이 실증되고 있다. 즉 다큐멘터리 드라마에 있어서의 라디오 쪽의 우위성(優位性)이 그것이다. 텔레비전 방송이 등장한 이후 라디오를 통한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거의가 4개월 이상에 걸쳐서 롱런했고, 비록 열광적인 붐을 일으킨 단위 프로로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망정 엄청난 청취율을 확보하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본다. 각 라디오 방송국에서 성공리에 방송된 또는 방송중인 연속 다큐멘터리 드라마만을 열거하더라도 다음과 같다.

MBC:<북한 7천3백일> 김동현 구성, 김포천 연출·이원복 구성, 민상근 연출.

DBS:<한국전쟁> 김중희 구성, 윤활식·이강우 연출, <정계야화(政界夜話)> 김기팔 구성, 안평선 연출, <특별 수사본부> 오재호 구성, 이병주 연출.

TBC:<광복 20년> 김교식 구성, 박용기 연출, <일제 36년사> 박양원 연출, 이이재 구성.

이 밖에도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연속 사화(連續史話)>(TBC), <전설따라 3천리>(MBC), <한국찬가>(DBS) 등이 모두 종래 범람한 멜로드라마에 식상(食傷)한 청취자들을 폭넓게 흡수하고 있다. 이와같은 성공은 라디오 드라마가 텔레비전의 물결에 밀려나는 현상에 당혹(當惑)한 나머지 연출진이 개척한 새 분야인 점에서 아이러니컬한 수확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기록성(記錄性)은 값진 것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역사적 사실의 기록 나열(羅列)에 그치는 것으로는 불구(不具)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안목(眼目)·비평 정신이 사회의 공감(共感)을 얻어야 하고, 드라마틱하게 구성되어야 하며, 강한 주체의식(主體意識)으로 호소·설득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 단순한 서술이나 등장인물의 독특한 음정 묘사로 꾸려나가는 안이(安易), 또는 적당한 판매주의로 얼버무리는 타락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그것과 비교하여 라디오가 지니는 메커니즘은 텔레비전 발달의 시대에도 라디오 드라마가 독자적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영역을 확보한다는 것이 전문적 정설(定說)이다. 그 논거(論據)를 살피자면, 라디오는 수신 세트의 이동·휴대가 간편하다는 것이다. TV가 대개 안방이나 응접실에 고정(固定)되어 그 다이얼권(dial圈)이 가족의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지는 데 비하여, 라디오는 서재·침실·작업장·자동차·야외(野外)로 간단하게 이동되며 또 다이얼권의 쟁탈(爭奪)이 벌어지는 일도 드물다. 그리고 학습·작업을 하면서도 청취할 수 있는 점, 이것은 시간에 쫓기는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아주 유리한 강점(强點)이 아닐 수 없다.

텔레비전은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지만, 라디오는 그렇지 않다. 또한 드라마의 제작도 훨씬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TV드라마는 제작비 때문에 야외 세트를 피해서 옹색한 실내 세트로 드라마의 장면을 제한해야 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데, 라디오의 경우는 녹음 테이프의 조작으로 웅대한 야외 풍경의 전달이 가능할 뿐더러 시간적 이동도 매우 손쉬운 것이다. 텔레비전에서의 다큐멘터리 드라마와 라디오의 그것을 비교할 때 라디오 쪽이 압도적 성공을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TV는 결코 라디오 드라마 고유의 영역을 빼앗지는 못한다. 다만, 여태까지 라디오 드라마가 지나치게 차지했던, 영토를 돌려받아 그곳에서 스스로의 성장에 바쁠 따름이다.

라디오 드라마의 지표[편집]

radio drama-指標

우리나라에는 약 1,200만대의 라디오가 보급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구에 대한 보급률로 볼 때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순위에 들어간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라디오 수신기가 소형화되어 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되고, 청취행위가 개인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또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는 라디오 드라마의 지표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를 묵시(默示)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국민의 대부분이 듣고 있는 라디오 방송이고 보면 이땅과 우리 겨레를 위한 공기(公器)로서의 서비스를 우선(優先)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또한 민족의 한 성원(成員)으로서의 청취자에게 무엇을 버리고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느냐를 제시(提示)할 당위성(當爲性)을 뜻한다. 저속한 흥미나 노출로써 청취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따위는 일종의 배신행위이다. 이 너무도 자명(自明)한 일이 일부 관계자들에게 도외시(度外視)당했던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청취율의 유지만을 노리는 기획·제작 때문이었다면 문제는 실로 다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라디오 드라마의 예술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다'라는 그릇된 견해에 편승한 작가의 무성실 또는 안이한 제작태도가 빚은 결과였다는 점에서 자책(自責)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라디오 드라마에는 지난날 음향 효과에 의성(擬聲)을 쓰던 당시에도 청취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 많은 걸작을 남겼다. 선진국에 비해서 제작 시설의 부족은 있을 망정 강한 주제의식(主題意識)으로 알맞는 소재를 향기높은 드라마로 빚어낸 작품의 질이나 양은 손색이 없다. 같은 풍토에서 저질(低質) 드라마가 한동안이나마 우리의 귀를 어지렵혔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수요를 커버치 못한 공급 쪽의 남작(濫作)과 자학(自虐)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디오 드라마쯤은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오해, 어차피 예정된 시간에 방송되게 마련이고, 그 시간만 넘기면 그만이라는 공급 태도는 깡그리 불식(拂拭)되어야만 하겠다. 라디오 드라마가 희곡이나 소설에 비해서 쓰기 쉽다는 생각처럼 맹랑한 것은 없다.

청취자에게 선택성(選擇性)이 덜한 만큼 영화나 연극에 비하여 감상층(鑑賞層)은 넓고 다양(多樣)하며, 이들에게 고루 건강한 감동을 줘야 한다는 점에서 라디오 드라마는 도리어 그 어려움이나 제약(制約)이 갑절 많은 장르인 것이다. 그러므로 라디오 드라마의 앞날을 위해서는 몇몇 분야에 걸치는 보다 대담한 지양(止揚)·보완(補完)이 요청되고 있는 것으로 첫째, 인기 작가에게만 치중(置重)하는 작품 선정의 타성이 깨끗이 불식되어야 한다. 작극술(作劇術)의 숙련이 드라마의 생명까지 창조하지는 못함을 알면서도, 작품의 구성이나 집필 계획에 대한 이해·검토도 없이 작품을 선정하는 안일(安逸)은 많은 관객을 다른 장르로 추방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건전한 모랄과 치열한 주제의식으로 붓을 드는 성실한 작가를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작품의 공급난(供給難)을 없애야 한다. 현상모집에 의한 신인 작가의 공개 모집과, 채택 작품에 대한 상당한 보수로써 이 문제의 해결은 가능해질 것이다.

둘째, 제작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사정이 허락되지 못해서 집필이 늦어진 경우라면 미리 비축했던 다른 단막물로써 대체할 정도로 신념있는 제작진의 자세가 유지되어야 한다. 방송 당일에 녹음되는 폐단은 하루속히 사라져야 한다.

셋째, 새로운 연출가와 새로운 성우(聲優)의 양성 등장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경주(傾注)되어야 한다. 자신의 숙련을 믿는 나머지 녹음 직전에야 작품을 읽어보는 불성실한 성우는 마땅히 추방되어야 한다. 청각(聽覺)에만 호소하는 라디오 드라마는 그만큼 자세하고도 철저한 작품의 이해가 전제(前提)되기 때문이다.

넷째, 드라마 형태의 검토(檢討)이다. 일일연속드라마를 장기간에 걸쳐 한 사람이 계속 집필한다는 것은 작품의 밀도(密度)를 해치기 쉽다. 연속드라마에서 드러나기 일쑤인 늘어진 부분은 작가의 겹친 피로나 타성에서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대형 프로에 의한 단막물 또는 여러 작가가 같은 주제를 추구하는 시리즈드라마로의 전환(轉換)이 기대된다. CBS의 장수(長壽)프로인 <루터란 아워>나 KBS의 <즐거운 우리집> 등이 성공한 예(例)는 절실한 교훈으로 살려져야 마땅할 것이다.

작품 감상[편집]

장마루촌의 이발사[편집]

-村-理髮師

박서림(朴西林) 작, 최요안(崔要安) 각색. 정부수립 10주년 경축 방송소설 현상모집 당선작품을 각색한 것으로, 1958년 8월부터 KBS에서 방송되었다.

<내용> 소박하고 다정한 마을, 애절한 사랑의 전설을 지니고 있는 '사랑바위'가 있기에 이 마을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마음씨는 갑절 아늑하다. 그러나 그 '사랑바위' 앞에서 불 같은 사랑으로 마을 처녀와 내일의 행복을 다짐했던 젊은 이발사의 태도는 몰라보게 냉담해져 있었다.

6·25때 공산군에게 납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마을에 돌아온 이발사, 그는 반가움에 떠는 애인의 눈길에도 전혀 무관심하기만 한 엉뚱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목숨처럼 사랑하고 기다리던 애인의 그같은 변모는 배신당한 아픔으로 여주인공을 울렸다. 그러나 이발사의 냉담은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원하는 데서 온 가장(假裝)으로, 단장(斷腸)의 슬픔을 간직한 냉담이었다. 그는 공산군에게 끌려다니던 전선에서 부상한 끝에 성기능(性機能)을 잃은 폐인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여주인공은 이발사를 이끌고 '사랑바위' 앞에서 전날보다도 더욱 간절하게 서로의 사랑을 다짐하는 것이다.

<감상> 6·25가 할퀴고 지나간 상흔이 서민의 생활주변에서 차츰 아물어 갈 무렵, 전쟁의 후유증을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증언하여 성공한 작품으로, 육체를 초월한 정신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포화 속에서 거칠대로 거칠어진 사랑의 풍토에 경종을 울려준 작품이다.

청실 홍실[편집]

靑-紅-

조남사(趙南史) 작, 이경재(李慶載) 연출. 1956년 10월부터 KBS에서 방송된 일요연속극.

<내용> 주인공 나기사(羅技師)는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하고도 건실한 청년기술자. 전쟁 미망인인 애자는 그에게로 쏠리는 애정으로 번민한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나기사의 마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스스로의 처지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발랄하고도 앳된 동숙은 나기사를 몹시 따른다. 그녀는 나기사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 딸이다. 그러나 호강스레 자란 동숙에게 깊이있는 애정이 느껴질 수 없는 나기사였고 그럴수록 동숙에게는 애자의 존재가 미웠다.

그러던 어느날 뜻하지 않은 일로 회사는 파산하고, 여태까지 혼자 가꾸어 오던 동숙의 꿈도 산산이 부서진다. 동숙은 밀어닥치는 패배의식에 자신을 가눌 수가 없어서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는 동숙을 죽음 직전에서 구해 준 사람은 애자였다. 지난날 부잣집 딸로서의 어리석음을 말끔히 씻은 동숙을 나기사에게 안겨 주고 애자는 조용히 떠나간다.

<감상> 6·25의 상처도 거의 가시고 수복된 서울에 새로 지은 주택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 이제는 애정물에도 귀를 기울일 여유가 생긴 청취자들을 흠뻑 매료시켰던 멜로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라디오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영화화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한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편집]

玄海灘-

한운사(韓雲史) 작, 문수경(文秀京) 연출. 1960년 8월부터 1961년 1월까지 KBS에서 방송된 일요연속극.

<내용> 서울의 명문 집안 출신인 주인공 아로운은 그의 학우(學友)들과 함께 학병으로 끌려 간다. 부민관(府民館) 폭탄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일본 군대 안에서까지 아로운에게 협박을 더해 주었다. 가뜩이나 내성적인 인텔리 청년인 아로운은 짐승들의 세계보다도 조잡하고 난폭한 내무반 생활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한 아로운에게 대범하고도 행동형 성격의 리노이에라는 친구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어 준다. 절망적인 태평양전쟁을 강행하는 당시의 군국주의 일본, 그 패망의 징조는 사방에서 차차 드러나고 있었다. 민간에서의 식량사정이 심각했고, 그러한 일본 국토는 미국군의 폭격에 더욱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로운을 사랑하는 히데코, 그녀는 일본인이다. 막다른 전국(戰局)과 어머니의 반대도 아랑곳없이 아로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뜨겁게 타오르기만 한다. 그녀의 민족을 초월한 티 없는 사랑에 아로운은 은수(恩讐)를 초월한 애정을 알게 된다. 비록 물 한 그릇 떠놓고 어머니의 축복 속에 올리는 결혼식이었으나 그들은 행복했다.

군대 내무반에서 아로운이 받는 차별과 고통은 날로 심해갔다. 일본인 동료병까지도 아로운을 동정하고 나설 정도였다. 도망을 계획했으나 감시의 눈길은 살벌했다. 폭격을 틈탄 탈출에 성공했다가도 끈질긴 추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붙들리기가 일쑤였다. 대학 때의 은사가 그를 옹호하다가 난처해지기도 한다. 그러한 남편 아로운을 따르고 섬기는 히데코의 헌신은 눈물겹도록 지성스러웠다. 무서운 폭격 끝에 드디어 일본이 항복하는 날 아로운과 히데코는 풀려난 기쁨에 흐느낀다.

<감상>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서 이민족(異民族)의 전쟁에 억울한 희생을 당한 우리 청년들의 이야기를 작자의 체험을 살린 리얼한 감각으로 재생한 작품으로, 나중에 영화화해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고 소설 형태로 출판되기까지 했다. 민족간의 반목(反目)을 초월한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곁들임으로써 우리 민족이 간직한 슬픈 세월을 증언하는 이 드라마는 호전적(好戰的) 제국주의의 죄악성을 고발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젊은 남녀의 티없고도 애절한 사랑을 부각하는 데도 성공했다.

남과 북[편집]

南-北 한운사(韓雲史) 작, 박동근(朴東根) 연출. 1965년 8월에 KBS에서 방송된 일일연속극.

<내용> 휴전을 앞둔 중동부 전선에서는 피아(彼我)의 공방(攻防)이 더욱 치열했다. 이 무렵 괴뢰군의 영관급 장교하나가 아군 전초진지로 건너온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남하한 그의 아내를 찾아 죽음을 무릅쓴 것이다. 그의 아내는 마침 그곳을 지키는 국군의 중대장 이대위의 아내가 되어 있었던 것. 그녀는 월남한 후 육군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던 중에 이대위의 오랜 동안에 걸친 성실한 청혼을 받고 재혼했던 것이다. 그녀가 낳은 전남편의 소생까지도 친자식처럼 사랑할 만큼 이대위의 사랑은 극진했다. 시가(媤家)의 모든 사람들도 그녀를 아껴 주었다. 그녀의 태중에는 이대위의 핏줄이 자라고 있엇다.

한편 투항해 온 장소좌의 기억에도 그녀는 더할 수 없이 맑고 따뜻한 순정의 아내였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그녀에 대한 애정은 북한 땅에서 그토록 다짐하며 키운 이데올로기로도 막을 길이 없었다. 장소좌의 '아내를 한번 만나보게 찾아 달라'는 호소에 이대위는 남모르는 번민을 해야 했다. 사단에서는 장소좌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기대하고 이대위의 아내를 전남편 장에게 상면시키기로 한다. 한 여인에 대한 두 사나이의 순박하고도 뜨거운 애정.

사단본부의 천막에 들어선 그녀의 앞에는 이대위가 아니라 괴뢰군복을 착용한 전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경악(驚愕)은 컸다. 그러나 그보다 장소좌의 가슴을 뒤흔든 감동은 더 거세고도 뜨거웠다. 국군 장교들이 보여준 신의와 동포애, 그리고 자기의 아내가 행복한 모습으로 티없는 아름다운 그대로 남한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이 모두가 놀랍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정보를 쏟아 놓은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도 분명했다. 괴뢰군의 총공격이 시작되고 이 작전을 미리 알 수 있었던 아군의 요격(邀擊)은 큰 전과를 거두고 있었다. 막바지 격전이 다가오고 총포성과 함성도 차차 드높아 갔다. 이때였다. 문득 격전의 능선을 향해 장소좌는 미친 듯이 외치면서 치닫는 것이었다. 유탄(流彈)에 맞아 쓰러진 그의 외침을 알아들은 사람은 없으나 그것이 결코 그의 아내가 현재 이대위 바로 그사람의 아내로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비난하는 그런 외침은 아니었을 것이다.

<감상> 6·25전쟁 때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하여 동족 상잔의 아픔과 처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강렬한 휴머니티로 짜임새있게 엮은 연속드라마로서 민족적 수난인 6·25를 다룬 여러 장르의 창작 속에서도 한결 돋보일 만큼 성공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영화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거듭 방영된 바 있다.

강화도령[편집]

江華道令

이서구(李瑞求) 작, 이상만(李相萬) 연출. 1962년말 KBS에서 방송된 일일연속극.

<내용> 주인공은 조선왕조 말엽의 철종(哲宗). 그는 왕가(王家)의 직계손(直系孫)이면서도 강화섬의 농가에서 땅이나 파고 사는 촌부(村夫)로 자라야 했다. 조정의 권력싸움이 끊임없던 시대라 권세를 쥔 척족(戚族)이 왕위를 노릴 만한 반대세력의 종친(宗親)을 모조리 죽였기 때문에 간신히 난을 면한 주인공 이원범에게는 이응범과 단 두 형제뿐 혈육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같은 동네의 마음씨 착한 복녀의 사랑과 복길의 따뜻한 우정 속에서 이원범의 나날은 그런대로 밝고 흐뭇할 수 있었다.

그럴 무렵 조정에서는 후궁의 소생으로 왕위에 올랐던 헌종(憲宗)이 3년만에 승하한다. 조대비(趙大妃)는 강화에 묻혀 사는 이원범을 맞아 왕통(王統)을 잇게 한다.

원범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강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없어한다. 조대비는 마침내 강화의 복녀를 궁중으로 들어오게 한다. 철종, 전날의 촌부 이원범은 복녀를 시녀(侍女)로 하여 가까이 있게 하고, 응범을 불러 영평대군(永平大君)으로 봉하는 한편, 복길에게는 대전별감(大殿別監)의 벼슬을 맡기고서야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복녀는 때묻지 않은 총명으로 철종을 도와 선정(善政)을 베풀게 한다. 흩어졌던 핏줄을 찾고, 그리운 넋을 위로하고 고마운 이에게 은혜를 갚아도 철종의 꿈은 매양 소박하고도 다정한 강화의 들판을 찾아가기만 한다. 격식을 앞세우는 궁중의 법도(法度)가 따분했고 벼슬아치들의 끊임없는 실랑이에 진력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던 나머지 왕위에서 꿈과 현실 사이를 몸부림치다 길지 못한 생애를 마친다.

<감상> 피비린내 나는 척신들의 세도싸움의 제물이 된 무력한 왕실, 자신들의 영화와 번영을 위한 꼭두각시로 내세운 철종의 소박한 인간성을 통해 조선왕조 말엽의 조정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왕위보다 고귀한 것이 있음을 보여준 작품으로, 5·16 군사정변 직후 부패와 부정을 몰아내려는 기운이 팽배하던 당시의 사회형편과도 잘 매치된 작품이었다.

눈사태[편집]

주태익(朱泰益) 작, 백전교(白典敎)연출. 1970년 1월 'KBS무대' 프로로 방송되었다.

연극 본래의 수법으로 한 여인의 애정심리와 모랄을 추구한 향기높은 성공작이다.

<내용> 흰눈에 덮인 외딴 산중에서이지만 여주인공 옥주에게는 그지없이 행복한 나날이었다. 남편 철우의 극진스러운 사랑이 옥주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철우는 어떤 사고 끝에 몸을 피하고 있으나 성실한 사람이다.

이들의 오두막에 옥주의 옛애인 영식이가 나타나는 데서 드라마는 막을 연다. 영식은 옥주를 못잊어 데리러 왔노라고 했다. 옛날로 돌아가 서울에서 편하고도 즐거운 살림을 꾸미자고 조른다. 옥주의 전신(前身)은 바걸, 영식이와 동거생활 하다가 그의 배신을 비관한 나머지 머리깎고 중이 되려고 이 산중을 찾아들었던 여인이다. 철우는 그러한 옥주의 과거를 알고 있다. 철우는 옥주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기에 인색하지 않다. 산돼지를 잡아다 손님에게 대접한다면서 엽총을 들고 나간다. 영식과의 충분한 대화를 마련해 주려는 심산에서였다.

영식의 능란한 권유에 옥주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휘황한 서울의 밤거리, 그 환락에 흠뻑 젖던 지난날이 옥주를 손짓하며 부른다. 그러나 옥주는 허영에 들뜬 물거품 같은 애정 유희보다는 고적한 산중에서나마 한 사나이의 성실한 사랑에 생애를 맡기는 참된 행복에 보람을 찾기로 한다. 그러한 옥주에게 철우는 새삼 감동받고 영식은 산돼지고기 대접도 뿌리치고 오두막을 떠난다. "길목에 눈사태가 내리면 큰일"이라면서……

<감상> 화려하나 경박한 도시와 단조로운 가운데 소박하고 믿음직한 산골을 대조적으로 설정하고, 거칠고 메마른 도시생활에 지친 주인공의 눈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진실한 인간미를 묘사한 작품이다. 도회가 안겨준 상처를 대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치료받고도, 또다시 도회의 화려한 유혹에 망설이는 인간의 약점 등이 리얼하게 그려진 가작이다.

정녀[편집]

이철향(李哲鄕) 작. 1976년 10월에 방송된 일일 연속극. MBC 라디오에서 모집한 사랑의 수기를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극화한 드라마다.

<내용> 대학교에 다니던 정녀는 악성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약수가 좋다는 진도 근처의 작은 진달래 섬으로 내려와, 위가 좋지 않아 먼저 휴양와 있던 남자 대학생 강국을 만난다.

외로운 섬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후에 두 사람은 모두 건강이 회복되어 서울로 올라와서 정녀의 부모에게 결혼을 신청한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정녀의 부모는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고 난선다. 끝내는 정녀를 어디론가 감춰버리기까지 한다.

강국은 정녀를 찾아 헤매다가 과로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병원에서 위암의 진단을 받는다.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린 강국의 간절한 요청 때문에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정녀는 양성 나병환자였던 것이다.

<감상> 현실은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하다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사실에서 취재한 사랑의 이야기는 그렇게 눈물겨울 수가 없다. 한국방송이 픽션물에서 어떤 벽에 부딪친 느낌이 드는 때 다큐멘터리에서 활로를 찾아 보려 했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쥐띠 부인[편집]

이재우(李栽雨) 작. TBC­라디오. 1970년 1월에 방송된 일일연속극 멜로드라마 일변도의 방송극에 사회의 지탄이 쏟아질 무렵, 정석을 깨고 갑자기 튀어나와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문제작.

<내용>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막내딸로 귀엽게 자란 쥐띠 처녀 연주는 중매 끝에 엄청나게 복잡한 장손의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시대에 맞지 않게 지금까지도 양반의 체통을 운운하고 있는 시집 식구들의 고루한 의식구조와 부딪쳐 연주는 고군분투하지 않을 수 없다.

쥐띠부인 연주는 무섭게 변모하여 이 집안의 재건을 위하여 발벗고 나선다. 전세방 신세이면서 언제나 체면을 세우기에만 급급한 시아버지, 옛날 행세하던 시절의 추억에 매달려 도무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시어머니, 거기다가 시누이·시동생까지 모두 제멋대로 풀려 있는 집안의 재편성에 착수한 셈이다.

10년간의 각고 끝에 새 집을 짓고 문패도 달았다. 우습게 보았던 연약한 며느리 덕택으로 온 가족이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감상> 연약한 한 여자의 미소와 야무진 의지가 뻗쳐나가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그려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쥐띠 부인>은 새마을 드라마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새마을 드라마의 정석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작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