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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예술·스포츠·취미/영화/영화의 감상/미국영화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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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의 감상〔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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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映畵-鑑賞〔槪說〕

미국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데이비드 W.그리피스의 <국민의 창생>(1915)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미국영화는 무성영화시대에 찰리 S.채플린을 비롯한 세실 B.데밀, 루이스 B.메이어 등 천재들의 활약을 거쳐, 존 배리모어의 <돈 환>(1926)으로 토키(發聲映畵)시대로 건너뛰게 되었다. 알 존슨의 <재즈 싱어>(1927)와 요제프 폰 시테른베르크의 <모로코>(1930) 등 발성영화 초기의 걸작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발성영화에 대한 찬반 논쟁은 발성영화쪽의 승리로 굳혀지고, 골드윈, 데이비드 O.셀즈니크, 다릴 자누크, 세실 B.데밀 등이 대제작사를 창설함으로써 할리우드는 세계영화산업의 중심지로 뛰어올랐으나, 1930년을 전후한 미국의 경제대공황(經濟大恐慌)에 휩쓸려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를 발표해서 자본주의 산업사회체제 아래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동정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경제대공황은 1933년경부터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으나 1937년까지 별달리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으며, 헨리 코스타의 <오케스트라의 소녀>(1937)에 이르러 미국영화는 비로소 지난날의 낙천주의를 되찾게 되며, 또한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색다른 뮤지컬 터치로, 이후 미국의 뮤지컬 영화 발전에 큰 공헌을 남기게 된다.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이 395만 달러를 들인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내놓아 7,703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는 바람에 미국영화는 크게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같은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영화화한 <애정(哀情)>을 내놓아, 대작은 아니지만 밀도있는 작품으로 성공했다. 이어 젊은 감독 오슨 웰즈는 <시민 케인>(1941)을 발표해서 미국영화 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 획기적인 공헌을 남겼다. 팬포커스 촬영기법과 플래시 백 기법은 그 주제와 함께 큰 주목을 모았으며, 이로써 미국영화는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유럽영화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제2차대전이 발발한 뒤 마빈 르로이의 <애수(哀愁)>(1940)가 멜로드라마의 장르를 굳혔으며, 전쟁에 휘말려든 미국인들을 흥분시켰다. 다시 마이클 커티스가 <카사블랑카>(1942)를 발표, 전쟁에 휘말려든 인간심리와 레지스탕스를 그려 평가를 받았고, 이어 샘 우드 감독이 에스파냐 내란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내놓아 미국인의 정의감을 부추겨 주었다. 전쟁영화가 주류를 이루게 됨에 따라 마빈 르로이는 다시 <마음의 행로>를 내놓아 전쟁에 휩쓸린 인간의 엄청난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감싸 주었고, 1945년 제2차대전이 끝나자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5)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세 사람의 참전용사가 전쟁이 끝난 뒤 각기 사회에 복귀하면서 겪게 되는 애환을 묘사한 작품으로, 어느 나라나 직면했던 심각한 사회문제를 다룬 것이다.

전쟁과 관계없는 분야에서 1940년 영국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미국으로 건너와서 <레베카>를 발표, 공포심리를 파헤치는 서스펜스 드라마를 개발했고,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1945)은 인간의 불안정한 내면세계를 특수 촬영과 음향효과로 묘사하여 주목을 받았다.

전쟁의 승리로 자신을 갖게 된 미국영화계는 영화산업이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된 것으로 확신하고 미국영화계 자체에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왕년의 인기 여배우와 신인 시나리오 작가를 통해 인기인의 정신적 폐허를 파헤친 빌리 와일더의 <선세트 대로>(1950)와 존 시트의 <갈채>(1945)가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TV수상기의 공세를 받기 시작한 미국영화계는 사양산업(斜陽産業)으로 몰리면서 탈출구를 찾아 대작 스펙터클, 뮤지컬, 사회영화 등등 갖가지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하 각 부문별 영화를 살펴보기에 앞서 미국영화 60년사 가운데 흥행에 성공한 13개 작품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흥행 수입.

① <대부(代父)>(8,150만 달러), ②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7,703만 달러), ③ <사운드 오브 뮤직>(7,200만 달러), ④ <러브 스토리>(5,000만 달러), ⑤ <졸업>(4,830만 달러), ⑥ <의사 지바고>(4,795만 달러), ⑦ <에어포트>(4,530만 달러), ⑧ <십계(十戒)>(4,300만 달러), ⑨ <벤허>(4,075만 달러), ⑩ <마이 페어 레이디>(3,200만 달러), ⑪ <매쉬>(3,150만 달러), ⑫ <메리 폰핀스>(3,100만 달러), ⑬ <내일을 향해 쏴라>(2,930만 달러).

부문별로 따져보면 대작이 5편으로 가장 많고, 뮤지컬이 3편, 폭력 또는 사회비판작품이 4편, 그리고 멜로드라마가 1편이다. 이같은 부문별 성향을 고려에 두고 각 분야별로 살펴본다.

오락영화와 스릴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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娛樂映畵-thriller映畵

영화의 가장 큰 사회적 기능이 오락인만큼 미국영화도 오락면에 상당한 관심을 쏟아왔고, 그런 면에서 성공한 작품도 매우 많다. 그 가운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을 꼽아보면 세실 B.데밀의 <지상최대의 쇼>(1950)가 서커스단에 스며 있는 인생의 애환을 그려 감동을 주었고,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戀風)>이 아일랜드인의 기질을 재미있게 그려 평가를 받았다.

1953년 윌리엄 와일러 또한 <로마의 휴일>에서 가상국가의 공주와 미국 신문기자 사이의 깨끗한 사랑을 그려 흐뭇한 감동을 주었으며, 빌리 와일더 감독은 <아파트의 열쇠를 빌려줍니다>(1960)에서 허약한 샐러리맨의 페이소스를 그려 평가를 받았다. 그 뒤 영화가 TV산업에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하면서 아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닥터 노>(1963)가 등장, 전무후무한 인기를 모은 가운데 제임스 본드 역(役)의 숀 코넬리를 일약 스타덤에 끌어 올리면서 속편이 나오는 등 최근의 오락영화는 허무맹랑한 소재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일반 오락영화와는 다소 성질이 다르지만 오락취향이 짙은 스릴러 영화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다이얼 M을 돌려라>(1954)로 부인을 살해하려는 계획범죄를 다뤄 성가(聲價)를 올린 뒤 1960년에는 <사이코>를 발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닌 한 청년의 이상심리를 그리는 심리분석쪽의 취향을 엿보이다가, 다시 <새>(1963)를 내놓아 문명비판 또는 신비주의적 일면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히치콕 감독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64)와 <턴 커튼>(1966)을 내놓아 단순한 오락취향의 스릴러를 지향했고, 1970년 <토파즈>를 발표, 싱거운 첩보영화라는 비판을 받는 데 그쳤다. 또한 1967년 테렌스 영 감독의 <어두워질 때까지>는 장님여인과 살인범의 이색적인 대결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 스릴러의 또 하나의 측면을 전개시켰고, 잇따라 그같은 취향의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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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部劇

미국역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이며 흥미진진한 대목은 역시 서부개척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서부개척사는 미국영화에 있어서도 무진장한 광맥(鑛脈)의 구실을 했다. 1914년 <대열차 강도>로 시작되는 서부극은 미국의 독점적인 장르로 발전하면서 권선징악(勸善懲惡)과 인간애, 그리고 물씬한 시정(詩情)으로 유형화되는 가운데 무수한 서부극이 쏟아져 나왔고, 게리 쿠퍼, 존 웨인, 헨리 폰다, 제임스 스튜어트, 아란 랏드, 커크 더글러스, 버트 랑카스터 등 쟁쟁한 배우들을 내놓았다. 이같은 서부극의 발전은 또한 서부극 전문감독으로서 존 포드, 프레드 진네만, 헨리 하사웨이, 조지 스티븐슨 등 거물급 감독을 배출해 냈는데, 특히 존 포드 감독은 서부극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포장마차>(1939), <모호크 족의 북소리>(1939) 등에 이어, 1946년에 나온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는 서부의 명보안관 '와이아트 어프'와 주정뱅이 치과의사 '독할리데이'의 전설적인 우정을 바탕으로 크랜튼 일가와의 집단결투를 다뤄 명성을 재확인했으며, 이 소재는 다시 존스타제스 감독에 의해 (1957) 등으로 되풀이 영화화됐다. 1952년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눈>은 복수에 불타는 악당들과 고독한 보안관의 대결을 그려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의 인기를 높였으며, 1952년 조지 스티븐슨 감독의 <셰인>은 빅터 영 작곡의 주제가와 함께 아란 랏드의 인기를 높이는 가운데 서부극의 고전적인 작풍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어 서부극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위대한 서부>(1958)에서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새로운 측면을 보이기도 했으며, 1962년 존 포드, 헨리 하사웨이 공동감독의 <서부개척사>가 나와 지금까지 서부극 명작 가운데 인상적인 장면들을 집대성, 서부극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60년대에 접어 들면서 영화가 사양화함에 따라 서부극도 좀더 자극적인 주제 속에서 활로를 개척하려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존 포드 감독의 <샤이언>(1964) 등 전통적인 서부극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지만 서부개척사를 새로운 시각(視覺)에서 해석하는 작품들이 우세를 보였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서부극이 백인끼리의 인도주의는 강조하면서도 인디언을 대량 학살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취급해온 태도를 반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부개척사에 있어서 전설적인 영웅 카스터 장군의 인디언 학살을 비판한 아서 펜 감독의 <작은 거인>(1970), <솔저 블루> 등이 그러한 계열을 대표한다.

사회비판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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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批判映畵

영화는 오락대상이자 예술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지녔다. 예술로서의 영화는 편의상 미적 감동을 주요관심사로 하는 작품계열과 사회비판을 내세우는 작품계열로 분류할 수 있겠는데, 전자로서는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에덴의 동쪽>(1955), 존 휴스턴 감독의 <백경(白鯨)>(1956), 존 스타제스 감독의 <바다와 노인>(1958) 등 무수히 손꼽을 수 있다.

사회비판을 주요관심사로 내세우는 작품계열로서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등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을 다룬 초기작품으로 시작해서, 남부지식인의 정신세계를 추적해 본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1940), 광산촌 광원생활의 비판을 그린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등으로 이어졌고, 1954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워터 프론트>가 부두노동자 사회의 악덕과 부조리를 고발, 주목을 끌었다. 뉴욕 서민들의 생활을 그린 델버트 만감독의 <마티>(1955)에 이어, 미국의 배심제도를 비판한 시드니 루메트 감독의 <12명의 노한 사나이>(1957)가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비판적으로 잡아 보여주었다.

미국사회에서 흑백 인종분규가 열기를 올리면서부터 사회비판계열의 영화도 자연 이쪽으로 시선을 돌려 활발하게 발언을 하고 나섰다. 1958년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흑과 백>이 흑백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크게 주목을 받은 뒤, 이같은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다가, 1967년 노만 주이슨 감독의 <밤의 열기 속에서>가 다시 흑백문제를 취급,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쓸기도 했으며, 흑인들의 지위가 차츰 향상됨에 따라 <코튼, 할렘에 오다> <검은 예수>(1971) 등 흑인영화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고든 파크스 감독의 흑인 주연영화 <샤프트> 시리즈까지 나오게 됐다.

대형영화와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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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型映畵-musical

TV공세에 몰리게 된 미국영화는 스크린의 폭을 넓힌 대형영화쪽에서 또 하나의 활로를 모색했다. 1952년 3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시네라마영화 <이것이 시네라마다>라는 작품이 주목을 끌기도 했으나 제작비가 많이 들어 활기를 띠지 못하고, 1953년 <성의(聖衣)>로부터 시네마스코프가 실용화단계로 접어 들었다. 여기서 다시 70mm 대형영화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는데,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가 70mm 대형영화로 발표되어 크게 히트한 뒤 <그랑프리> <의사 지바고> <도라 도라 도라>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 70mm 대형영화가 꼬리를 물고 나왔다. 한편, 뮤지컬영화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는데, 1937년 <오케스트라의 소녀>를 시발로 하는 미국 뮤지컬은 1951년 조지 거쉬인의 음악을 채용한 <파리의 아메리카인>(빈센트 미넬리 감독)에서 활력을 얻고, 다시 미넬리 감독의 <지지>(1958)를 거쳐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공동감독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크게 성공을 거뒀으며, 조지 쿠커 감독의 <마이 페어 레이디>(1964)를 거쳐 다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은 아카데미 영화상을 석권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화니 걸>(1968)로 연결되었다.

아메리칸 뉴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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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New Cinema

프랑스영화의 누벨 바그운동에 맞먹는 새로운 사조가 미국 영화계에서도 활발히 일어나, 뉴욕파를 중심으로 한 '아메리칸 뉴시네마' 운동이 미국영화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6)가 경제공황시절의 전설적이고도 인간미 넘치는 범법자 보니와 클라이드를 따뜻하게 재평가하여 주목을 받은 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졸업>을 발표하여 낡은 사회윤리에 도전하고 나섰다. 이로부터 반체제 또는 탈체제를 주장하고 나서는 미국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과 함께 미국영화도 반체제 흑은 탈체제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데니스 호퍼 감독의 <이지라이더>(1968)가 그 대표격으로 꼽힐 수 있겠는데, 이같은 계열의 뉴시네마는 이동촬영을 중심으로 한 시네마모빌 체제와 손을 잡고 미국영화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고 있다. <張 潤 煥>

현대 미국영화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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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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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m-發展

꿈의 공장(工場)이라고 불리며 낙천주의와 해피엔드를 원칙으로 한 오락작품을 대량생산하고 있던 할리우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계기로 새로운 양상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우선 영화 제작자측도 포함시켜서 대전 후의 미국 국민의 심리적 변화의 반영,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가 세계적으로 성가(聲價)를 높인 영향 등에 의해서 리얼리즘이 커다란 조류가 되었다. 이른바 세미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 경향의 단적인 표현이다. 과거의 사건을 그 현장까지 더듬어 올라가서 로케이션함으로써 기록영화적인 드라마로 재현(再現)하는 것이다. <벌거벗은 도시>(1948)가 그 일례이다. 배우의 연기도 대전 전에 비하면 훨씬 사실적으로 되고, 미남 배우보다는 험프리 보가트, 리처드 위드마크처럼 리얼하고 개성적인 배우가 중요하게 쓰이게 되었다. 여자 배우는 꼭 절세(絶世)의 미인이어야만 했던 조건도 이제는 한물간 것이다.

휴머니즘의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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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sm-尊重

휴머니즘은 대전 중(大戰中)에도 미국 영화에 색채가 짙게 나타났는데, 대전 후는 한층더 발전하여 <십자포화(十字砲火)>(1947), <신사협정>(1947) 등 많은 인종적 편견을 비판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서부극에 있어서도 리얼리즘의 침투와 아울러서 대전 전에 용감한 주인공측에 의해서 사살되기만 하는 역할을 지니고 있었던 인디언이 인간으로서 다루어지게 되어, 백인의 박해에 괴로와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주인공이 그들과 한패가 되어 활약하기도 하는 작품이 증가하게 되었다.

뉴로티크 영화의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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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tic 映畵-流行 전쟁터의 충격에 의한 정신 장해를 위시하여 이상심리(異常心理)를 다룬 영화가 격증했다. 이들을 일괄하여 뉴로티크 영화라고 부른다. <백색의 공포>(1945), <잃어버린 주말>(1945), <뱀의 구멍>(1948) 등 작품은 매우 많으며, 이 유행은 <사이코>(1960) 등을 포함시켜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상과학영화의 흥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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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想科學映畵-興隆

전쟁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중단되지가 않고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는데, 리얼리즘의 영향으로 단순한 영웅주의를 배척하고 반전적인 작품이라든가 군대의 내막을 폭로한 작품이 증가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1957)나 <돌격>(1957)은 이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리얼리즘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여지는 장르도 일어났다. SF영화(공상과학영화)가 그것이다. <월세계 정복>(1950), <지구 최후의 날>(1951) <우주전쟁>(1955) 등의 제작자 조지 펄이 명성을 높였다. SF 영화나 소설에는 물론 상업성만을 노리는 흥미 위주의 '쓰레기(Junk)'같은 저질 작품들이 끼여들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본격 문학작품 또는 훨씬 더 나은 수준의 작품들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본격문학 작품들 속에서도 SF적 요소들이 얼마든지 발견되고 있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Science Fiction'은 우리나라에서 '과학소설'이 아닌 '공상과학소설'로 번역되어 사용되어 왔고,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SF를 그저 허황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SF가 환상적인 공상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SF는 바로 그 '환상적인' 것을 통해 '또 하나의 리얼리티'와 또 다른 현실상황을 창출해낸다.

미국의 SF 작품들은 그동안 텔레비전 시리즈나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예컨대 1960년부터 3년 동안 휴고상을 수상한 텔레비전의 <제6지대> 시리즈를 비롯해, 휴고상 수상작들만 예로 들어도 <스타트랙>, <스타워즈>, <슈퍼맨>, <에일리언Ⅱ>, <인디아나 존스>, <블레이드 러너>, <백 투 더 퓨처>,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 그리고, <가위손 에드워드>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물론 <터미네이터>와 <러닝 맨>, <론머 맨> 같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인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와 <브이> 등 주요 작품이 있다. 거대한 거미·개미·고릴라같은 대괴수가 등장하는 작품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우주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오늘날도 역시 왕성하게 제작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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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사는 1928년부터 1938년 사이에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 플루토 같은 유명한 만화 주인공들을 만들었다. 디즈니사가 만든 애니메이션영화들은 내용과 디자인, 예술적인 면에서도 애니메이션산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소리를 처음으로 사용한 애니메이션영화인 <증기선 윌리>(1928)는 <미키 마우스 시리즈>에서 탄생한 것이다.

1929년부터 1939년까지 디즈니사는 <실리 심포니> 연속물을 만들었고, 1937년에 세계 최초의 장편만화영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었으며, 그 밖에도 <피노키오>(1940), <판타지아>(1940), <밤비>(1942)를 만들어냈다.

디즈니를 비롯한 몇몇 영화사들이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애니메이션산업을 좌우했다.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사에서는 윌리엄 하나와 조셉 바버라가 고양이와 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톰과 제리>를 만들었으며, 유니버설사의 월터 랜츠는 토끼 오스왈드, 딱따구리 우디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영화를 만들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장편 애니메이션영화가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66년 디즈니가 사망한 후로 쇠퇴했던 디즈니영화사는 해마다 장편애니메이션영화 한 편씩을 제작해 전세계에 상영하고 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1986년에 첫 애니메이션영화인 <아메리칸 테일>을 개봉했으며 디즈니영화사와 합작으로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합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를 제작하기도 했다.

오늘날 애니메이션은 전세계에서 제작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컴퓨터애니메이션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영화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로 이미지를 창출하는 새로운 분야가 생겨나고 있다.

대형영화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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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型映畵-發達

미국의 텔레비전은 1947년에는 불과 15만 8천대 정도였던 수상기(受像機)가 50년 말에는 800만 대에 달하는 급격한 발전을 보여, 영화계(映畵界)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 대책으로서 고안된 것이 입체영화와 대형영화이다. 입체영화(立體映畵)로서는 2-3개의 작품이 시도되었을 뿐 실패로 끝났지만 대형영화는 순조로이 발달했다. 1952년 9월, 3대의 카메라로 3개의 필름에 촬영하고, 3대의 영사기로 거대한 스크린에 영사(映寫)하는 시네라마 <이것이 시네라마다>가 뉴욕에서 공개되어 인기를 모았다. 이어서 한층더 간단히 1개의 필름과 카메라와 영사기를 1대씩만을 가지고도 만들 수 있는 시네마스코프가 실용화되어 최초의 작품 <성의(聖衣)>가 1953년 9월에 공개됨으로써 히트했고, 이에 미국영화계는 대형영화시대(大型映畵時代)로 돌입, 새로이 비스타비전 방식 등이 생겨났으며 70mm의 대형필름을 사용하는 70mm 영화가 보급되었다.

스펙터클과 뮤지컬의 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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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acle-musical-盛況미국영화의 대형화에 따라서 영화는 쇼로서의 매력을 한층 더 발휘하게끔 되고, <벤허>(1959)와 같은 호화판 고대극으로부터 <그랑프리>(1996)와 같은 큰 규모의 자동차경주 영화에 이르기까지 각종 장르의 스펙터클이 제작되었으며, 드라마 작품으로도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처럼 장대(壯大)한 효과를 올릴 수가 있게 되었다. 뮤지컬은 토키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성대하게 발전을 계속하고 있는 장르인데, 대형시대로 돌입된 뒤 점점 더 성행되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마이 페어 레이디>(1964),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을 위시하여 많은 작품이 제작되었다.

감독계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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監督界-變遷

텔레비전의 발달은 다른 면에서도 영화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대표적 감독은 윌리엄 와일러, 존 포드, 알프레드 히치콕 외에 대전 전부터 활약해 왔던 사람들인 존 휴스턴, 로버트 와이즈, 프레드 진네만, 기타 전시 중(戰時中)부터 전후(戰後)에 걸쳐서 진출해 온 영화에서 육성된 사람들인 엘리아 카잔, 조슈아 로건, 그리고 새로이 영화에 손을 댄 유명(有名)한 무대연출가들의 3개 그룹으로 크게 나눠진다. 텔레비전의 발달과 함께 시드니 루메트, 존 프랑켄하이머 등 텔레비전 연출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계속해서 참가함으로써 우수작품을 계속 만들어 내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텔레비전으로부터 진출하는 감독은 증가 일로에 있다.

해외와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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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外-交流

1950년대의 중엽부터 서유럽 여러 나라에 있어서의 미국의 영화자본의 지배력이 강화됐고, 할리우드의 축소와 병행하여 해외에서 제작되는 작품이 많아졌으며 유럽 작품의 세계배급권(世界配給權)을 장악하는 경우도 증가되어 왔다. 또 배우의 이입(移入)도 성하게 되었다. 이 교류의 부산물로서 이탈리아가 서부극을 대량생산함으로 할리우드 서부극을 압도하는 웃지 못할 현상도 생겼다. 근년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새로운 영화제작방식의 영향으로 <언제나 타인(他人)>(1966)의 스탠리 도넨처럼 미국의 상업영화로는 보기 드문 표현 수법을 시도하는 감독도 나타났다.

영화예술운동의 새로운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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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畵藝術運動-

미국 영화는 대형화에 의해서 더욱더 오락성과 상업성을 강화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각도로부터의 영화예술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아메리칸 뉴시네마그룹 같은 운동이 1960년경부터 활발해 가고 있으나 아직은 대세력으로까지는 되어 있지 않다.

작품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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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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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e With the Wind

감독 빅터 플레밍. 주연 비비안 리, 클라크 케이블. 색채 스탠더드. 1939년 제작.

<내용> 남북전쟁이 시작되었을 즈음, 남부의 명문 오하라가(家)의 지기 싫어하는 기질의 장녀 스칼렛(비비안 리)이 사랑하는 애쉴리는 우아(優雅)·단아(端雅)한 멜라니(올리비아 데 하빌란드)와 결혼한다. 애쉴리(레슬리 하워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끊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사나이와 차례로 결혼한 뒤, 밀수 등으로 위세가 좋은 남성적인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로부터 구애를 받고 결혼하지만, 그래도 애쉴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모처럼 태어난 어린 아이도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버틀러는 떠나간다. 그때 비로소 버틀러에 대한 애정을 자각한 그녀는 황폐된 고향 농원의 재건에 노력하면서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감상> 마거릿 미첼의 베스트 셀러를 영화화한 이 3시간 50분짜리의 거작은 출연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훌륭한 연기를 보였으며, 드라마틱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애틀랜타의 염상(炎上) 등의 스펙터클 장면의 매력도 충분하며, 12부문 아카데미상을 획득, 예술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미국 영화 역사상 거대한 기념비가 되었다.

시민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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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民- Citizen Kane

감독 오슨 웰즈. 주연 오슨 웰즈. 흑백·스탠더드. 1941년 제작.

<내용> 미국의 신문왕으로 괴물이라고 불렸던 케인(웰즈)이 사망했으므로 기록영화의 제작자가 그 생애의 진실을 탐색하려고 조사를 시작했다. 6살 때 숙부의 유산을 상속받은 케인은 성장함에 따라 조그만 신문사를 매입(買入)하고, 친구 리란드(조셉 코튼)와 협력하여 비상한 방법으로 판로를 확장, 막대한 축재(蓄財)를 한 뒤에 전 미국의 신문계·출판계에서 세력을 떨친다. 대통령의 조카딸(루스 워릭)과 결혼했으나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폭군적 행동 때문에 파탄을 불러왔고, 어떤 여성과의 스캔들로 인하여 주지사(州知事)선거에서마저 참패한다. 게다가 친구 리란드에게까지 배척되는 몸이 되어서, 성과 같은 큰 저택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다.

<감상> 당시 불과 26세인 웰즈가 제작·감독·주연까지 맡은 이 작품이 대인기를 불러 일으킨 것은 모델이 신문왕 하스트였기 때문이 아니라, 상업주의에 지배되어 있었던 미국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물고 또한 대담무쌍한 예술적 표현을 시도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레그 톨란드에 의한 팬포커스 촬영을 구사하여 훌륭한 화면을 쌓아올리는 가운데 인간성이 강렬하게 추구되고 있다.

의혹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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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of a Doubt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주연 조셉 코튼, 테레사 라이트. 흑백·스탠더드. 1942년 제작.

<내용> 캘리포니아의 산타 로자에 사는 챌리(라이트)의 집에 숙부(코튼)가 머무른다. 이 숙부는 살인귀(殺人鬼)로서 쫓기고 있는 몸이다. 챌리는 조사하러 온 두 사람의 탐정 중의 한 사람인 재크(맥도널드 켈리)와 친한 사이가 된다. 비밀이 거의 탐지되다시피 된 숙부는 챌리를 죽일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드디어 열차에서부터 떠밀어내려고 했으나 오히려 자기가 떨어져서 죽는다.

<감상> 히치콕에게는 많은 우수한 서스펜스 드라마가 있는데, 예술적인 완성도(完成度) 측면에서 꼽는다면 이 작품을 첫째로 택할 수 있겠다. 숙부의 활동은 빌 가(街)에서 추적(追跡)의 눈을 어둡게 하는 조감촬영(鳥敢撮影)으로 시작되고, 무대는 실재(實在)의 거리 산타 로자가 된다. 로케이션에 의한 무드 양성(釀成)이 훌륭하다. 히치콕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속에서 서스펜스의 테크닉을 빈틈가 없을 정도로 집어넣었고, 계단이나 도어를 사용한 득의(得意)의 쇼크 연출도 섞어 넣어서 점진적으로 공포를 강화시키고, 열차라는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서스펜스드라마 내지 스릴러의 장르에서 가장 긴밀한 구성과 연출을 가진 작품이다.

나의 길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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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My Way

감독 레오 매케일리. 주연 빙 크로스비. 흑백·스탠더드. 1944년 제작.

<내용> 뉴욕 저지대(低地帶)에 있는 가난한 교회로 부임한 오마리 신부(크로스비)는 40년 간이나 이 교회를 위해서 계속 일을 해 온 늙은 신부(배리 피츠제럴드)의 자존심에 상처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근처 일대에 있는 나쁜 아이들을 착하게 인도하고, 젊은 사람들의 인생상담을 떠맡거나 한다. 그리고 이 교구(敎區)에서의 일이 일단락되자 또다시 딴 가난한 교구를 바로잡기 위해 전임(轉任)해 간다.

<감상>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회정세에 대응하여 미국적인 인도주의를 가장 단순·명쾌한 형태로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다. 매케일리의 연출은 거침 없는 탄탄대로와도 같아서 아예 기교 같은 것은 쓰지도 않고, 신부(神父)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탁 털어놓는 태도와 명랑하고도 해학적으로 행동하는 오마리 신부를 둘러싼 수많은 에피소드를 따뜻하게 전개하여 나아간다. 크로스비가 매우 연기를 잘 하였고, '거룩한 이 밤'을 비롯하여 전개되는 몇 개의 노래도 원숙해져서 듣기 좋으며, 늙은 신부인 피츠제럴드도 크로스비에 뒤지지 않는 좋은 연기 솜씨로써 친근한 맛이 넘쳐 흐르는 장면을 이룩해 내고 있다.

잃어버린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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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st Weekend

감독 빌리 와일더. 주연 레이 밀란드. 흑백·스탠더드. 1945년 제작.

<내용> 뉴욕의 아파트에 사는 무명작가 돈(밀란드)은 심한 알코올 중독자로서, 형(필립 테리)과 애인 헬렌(제인 와이만)에게 감시되고 있었으나 틈을 노려 하녀에게 지불해 줄 급료를 가로채어 갖고 나트(하워드 실버)의 술집으로 간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계속해서 또 마시게 되는데 더욱더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돈을 장만코자 거리를 헤매는 동안에 제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어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로 들어가게 된다.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게 되나 헬렌에 의해서 만류되며, 이번에는 정말 새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감상>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에서 정신이상 영화 유행의 실마리를 만든 작품으로서 제1단계(第一段階)에서는 주인공이 술을 요구하는 초조한 장면이 묘사되고, 제2단계에선 헬렌과의 친근한 사이라든가, 술을 마시게 된 원인의 회상(回想), 제3단계에선 전당포가 쉬는 날이기 때문에 돈을 마련할 수 없는 주인공이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는 긴박감에 찬 묘사를 하는데, 그 구성도 양호하고 또 주인공이 갱생을 결심하는 결말도 감미롭지만 뉴욕의 가두 로케에 의한 리얼한 효과와 심리자극적인 면밀한 연출이 융합되어 이색적인 드라마가 되었다.

황야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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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野-決鬪 My Darling Clementine

감독 존 포드. 주연 헨리 폰다. 흑백·스탠더드. 1946년 제작.

<내용> 1881년 가을, 애리조나주 톰스톤 가까이에서 소떼(牛群)의 수송 작업을 계속하고 있던 와이아트 어프(폰다)와 그 형제는 이 지방을 자기 세력권(勢力圈)으로 삼는 무법자 크랜트(월터 브레난)와 그 자식들의 습격을 받고 두 아우를 잃게 된다. 와이아트는 폐병 환자인 친구 독 할리데이(빅터 마튜어) 및 아우인 모건(워드 폰드)과 함께 OK목장에서 크랜튼 일가(一家)와 싸워 압도적인 승리를 한다.<감상> 존 포드는 많은 우수 서부극(西部劇)을 감독한 바가 있으며, <황색 리본> 등 기병대(騎兵隊)를 묘사한 작품도 유명하거니와, 이것은 대전 전의 개봉영화인 <역마차> 등과 어깨를 겨루는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서부역사상 잘 알려진 OK목장의 결투를 사실(史實)을 떠나서 자유로이 구성했다. 거리로 달려 들어오는 역마차라든가, 총소리에 놀라는 말을 길들이고 클라이맥스의 상호간의 사격장면의 연출이 훌륭할 뿐 아니라, 조용하고 유연한 거리의 생활풍경이 풍물시적(風物詩的)인 아름다움을 낳았으며, 와이아트를 심경소설적(心境小說的)인 터치로 다루고 있는 점에서도 예술성이 높여지고 있다. 폰다의 연기에도 멋이 있었다.

살인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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殺人狂時代

Monsieur Verdoux 감독 찰리 채플린. 주연 찰리 채플린. 흑백·스탠터드. 1947년 제작.

<내용> 30년 근속한 은행을 무자비하게 면직당한 베르두(채플린)는 불구인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다소의 재산을 가진 여자를 골라 접근, 교묘한 수법으로 살해하고서 그 돈을 탈취하는 식의 범행을 반복한다. 그리고 빼앗은 돈을 투자함으로서 안전하게 지내고자 하나 경제 변동으로 알거지가 되고, 아내도 자식도 다 잃으면서 체포되었다. 법정에 선 그는 두려워할 만한 대량 살인귀라고 논고하는 검사에 대하여 "전쟁으로 대량 살인을 하고 있는 세계에 비한다면 나같은 사람은 보잘것 없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고 대꾸한다.

<감상> 채플린이 과거의 상표였던 바울러모자와 지팡이, 그리고 헐랑한 큰 바지와 코밑수염의 분장(扮裝)을 버리고 중년신사 스타일로 새로이 등장하는데, 작품의 내용도 과거의 감상(感賞)이나 서정(敍情)을 버리고 기발한 개그(익살)에 의한 풍부한 웃음 속에서 사회와 문명에 대한 휴머니스트로서의 분노를 통렬한 풍자를 섞어 가면서 직접적으로 폭발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채플린의 전체 작품 가운데서는 이색적이다. 미국에서 공개되기가 바쁘게 사회일부의 사람들로부터 공산주의같다고 하는 비난 공격을 받았으며, 노발대발한 채플린은 이 작품을 끝으로 할리우드를 떠났다.

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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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金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

감독 존 휴스턴. 주연 험프리 보가트. 흑백·스탠더드. 1948년 제작. <내용> 멕시코의 거리 탐피코에서 먹고 살 수 없게 된 미국의 중년남자 돕스(보가트)는 황금찾기 작업에 착수했던 노인(老人) 하워드(월터 휴스턴)와 젊은 한패인 카아틴(팀 홀트) 등 세 사람과 함께 시에라 마드레 산 속으로 들어가 고생 끝에 겨우 금을 발견한다. 채굴한 금이 쌓임에 따라 돕스는 욕심이 커지고, 하산(下山)해서 멕시코인 부락에 머무르는 하워드와 작별하게 되자 카아틴을 사살하고 금을 독차지한다. 하지만 산적(山賊)의 습격을 받고 살해된다.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 카아틴이 하워드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와 보니 금은 모래폭풍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져 버려서 흔적도 안 보인다.

<감상> 악전고투의 노력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휴스턴 감독이 즐기는 테마가 단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이 감독의 특색이었던 하드보일드적(的)인 연출이 잘 살려져 있는 점에서도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하기에 족하다. 세 사람 다 각각 다른 성격을 대조시키면서 서스펜스를 높이며, 돕스가 욕심을 점점 크게 품어가는 모습을 내리끊는 듯한 터치로 리얼하고도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가트와 감독의 아버지 월터 휴스턴의 호연(好演)도 성공의 기둥이 되었다고 하겠다.

이브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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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Eve

감독 조지프 L. 맨키위츠. 주연 앤 박스터. 흑백·스탠더드. 1950년 제작.

<내용> 여배우 지원을 한 이브(박스터)는 대여배우(大女俳優) 마고(베티 데이비스)에게 신묘(神妙)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눈에 들게 행동하고, 결국 그녀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는데, 곧 이어 마고를 앞지르고, 극평가(조지 샌더스)를 비롯한 유력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마고의 대역(代役)을 출발점으로 하여 출세하고, 드디어 최우수 여연상(女演賞)을 획득한다. 하지만 교만한 그녀의 집에 여자 배우를 지원하는 젊은 아가씨가 나타난다. 이브와 같은 여자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감상> <세 아내에게의 편지>와 함께 맨키위츠 감독의 대표작인데 연출은 이 작품쪽이 뛰어나 있다. 상(賞)을 받는 이브를 보면서 관계자들이 각자의 입장으로부터 회상하는 형식인데,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브를 비롯하여 늙은 모습을 감추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여우 마고, 재능도 없으면서 극계(劇界)에 발을 들여놓아 분위기를 즐기는 여자 (카렌세레스티포름), 끈덕진 방법으로 지위를 유지하는 극평가(劇評家) 등 극계의 사람들이 날카롭게 묘사되었으며, 풍자극(諷刺劇)으로서도, 인간 연구극(人間硏究劇)으로서도 우수한 작품이다.

선세트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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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路 Sunset Boulevard 감독 빌리 와일더. 주연 윌리엄 홀덴, 글로리아 스완슨. 흑백·스탠더드. 1950년 제작.

<내용> 불우한 영화 각본가 조(홀덴)는 월부 돈을 낼 수 없어서 차압 단계에 들어간 자동차를 감추려고 선세트의 낡은 대저택으로 들어간다. 집사(에리히 폰 슈트로 하임)의 시중과 보호를 받으면서 전성시대(全盛時代)의 꿈을 되찾으려는 왕년의 대여배우 노마(스완슨)를 만나 각본을 의뢰받은 그는 그 집에 체재(滯在)하며 그녀의 열렬한 사랑을 요령 있게 받는 중에 촬영소의 각본부원(脚本部員)인 베티낸시 올슨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저택을 떠나려고 한다. 이를 눈치를 챈 노마는 그를 쏘아죽이고 발광하며 대스타로 되돌아간 기분으로 뉴스 카메라 앞에 선다.

<감상> 미국영화에는 할리우드를 다룬 작품이 많은데 그 대표작으로 이 작품을 들 수 있다. 세실 B.데밀 감독을 비롯하여 왕년의 유명 스타도 등장하는 등 흥미진진한 바 있으나 안달하면서 야심을 버리지 못하는 각본가 조와 늙은 얼굴을 그로테스크한 화장으로 분장해서 그 옛날의 영광을 꿈꾸어 보는 노마를 중심으로 영화계의 이면(裏面)을 묘사한 와일더 감독의 눈은 매우 신랄하며, 강렬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한다.

로마의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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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日

Roman Holiday 감독 윌리엄 와일러. 주연 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펙. 흑백·스탠더드. 1953년 제작.

<내용> 로마를 방문한 어느 나라의 왕녀(헵번)는 꽉 짜인 행동계획에 진력이 나서 어느날 밤 남몰래 숙사인 대사관을 빠져 나간다. 시의(侍醫)가 놓아 준 진정제 주사가 효과를 나타내어 벤치에서 깜박 잠들고 만다.

그곳을 지나가게 된 미국의 통신기자(通信記者) 조(펙)는 그녀를 하숙으로 옮겨 안면을 시키게 되는데 이튿날 그녀가 왕녀임을 알게 되자 즐겁게 로마를 관광하면서도 친구인 사진사로 하여금 그녀 몰래 사진찍게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은밀한 애정을품기 시작한 그는 기자회견 때 특종(特種)으로 다룰 것을 단념하고 사진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작별을 고한다.

<감상> 와일러 감독에게는 훌륭한 작품이 많이 있으나 이 로맨틱 코미디만큼 여러 젊은 관객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도 없다. 유머와 비애(悲哀)를 교착(交錯)시켜 가면서 내뱉는 말솜씨는 교묘를 극하고, 서로의 희미한 애정을 감추면서 작별하는 마지막 기자회견의 장면은 여운(餘韻)이 풍성한 연출이다. 헵번은 이 한 차례의 출연으로 최고의 인기여자배우가 되었다.

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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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e

감독 조지 스티븐스. 주연 알란 랏드. 색채 스탠더드. 1953년 제작.

<내용> 와이오밍의 푸른 들을 여행하는 건맨인 셰인(랏드)은 개척 농민(開拓農民)인 스탈레트 부부(반 헤프린, 지인 아더)의 집에 머무른다. 9살 된 아들 조이(브랜든 더피일드)의 동경(憧憬)의 표적(標的)이 되는데, 거리의 보스가 살인 청부인(재크 패런스)을 고용하여 농민들에게 행패를 굴고, 스탈레트에게도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자, 혼자서 보스가 경영하는 술집으로 쳐들어가 일당을 날쌘 사격 솜씨로 쓰러뜨리고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감상> 스티븐스 감독은 일반적인 액션 서부극과는 색다른 높은 예술성을 노린 연출을 시도하였고 또한 성공했다. 색채촬영과 세밀한 녹음효과에 의해서 대자연의 정숙(靜肅)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농민들의 생활묘사에도 시정(詩情)을 담고 있으며 드라마적으로는 셰인과 스탈레트의 아내와의 희미한 애정이라든가 셰인을 존경하는 소년의 심정을 교착시키고, 액션 면에서는 농민의 한 사람이 살인마의 도전을 받아 단 한방의 총에 사살되는 장면이라든가, 최후의 대결 장면 등에서 선명한 묘사의 솜씨를 보였으며, 서부극 장르의 굴지의 우수작이 되었다.

에덴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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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of Eden

감독 엘리아 카잔. 주연 제임스 딘. 색채·시네마스코프. 1955년 제작.

<내용> 캘리포니아의 농장주인 애덤(레이먼드 맛세이)의 2남 캘(딘)은 자유분방한 젊은이인데, 아버지가 형만을 신뢰하고 애정을 쏟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면서 형의 약혼자 에브라(줄리 해리스)와 친밀해진다. 이윽고 농장의 위기(危機)를 건져 보려고 변통해 온 5천 달러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듣고서 화가 난 캘은 거리의 술집 여주인이 자기네들 형제의 생모(生母)임을 형에게 폭로한다. 충격을 받은 형은 술을 마시고 군대에 입대한다. 이 소동으로 아버지는 졸도하여 반신불수의 몸이 되고, 겨우 캘의 심정을 이해하여 애정으로 맺어진다.

<감상> 원작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로서, 성서에 있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의 현대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무대 연출에서부터 진출해 할리우드의 대표 감독의 한 사람이 된 카잔은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를 고려한 훌륭한 구도(構圖)와 색채효과로써 한 젊은이의 고독과 슬픔과 기쁨을 드라마적으로 전개하여 풍성한 정감(情感)을 배합해서 그려내었다. 이 한 작품에 의하여 젊어서 죽은 제임스 딘의 명성은 불후의 것이 되었다.

필사의 도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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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死-逃亡者 The Desperate Hours감독 윌리엄 와일러. 주연 프레드릭 마치, 험프리 보가트. 흑백·비스타비전. 1955년 제작.

<내용> 탈옥수인 글렌(보가트)과 아우 헐(듀이 마틴), 그 한패인 샘(로버트 미들튼)이 중산계급의 평화스런 가정으로 강도질하러 들어가 요청한 돈이 올 때까지 계속 앉아 있다. 이 집은 주인 댄(마치)과 애인(마서 스코프), 딸과 아들 이렇게 넷이서만 살고 있는데, 외출이 허락될지라도 나머지 가족이 살해될 염려가 있어 일당의 비밀얘기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혼자서 도망치려고 했던 헐이 발견되어서 사살되었기 때문에 경찰은 일당의 소재를 알게 되고 댄의 집을 포위, 댄의 용감한 행동으로 잔당 두 사람도 경찰의 기관총에 의해 사살된다.

<감상> 각본은 조셉 헤이즈의 신작품으로서 장면의 태반은 댄 가(家)의 내부로 구성되어 있다. 와일러의 연출은 그의 많은 우수작품 중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교묘한 작품으로서 인물을 이동시키는 방법, 계단이나 기타의 대도구(大道具)·소도구를 살리는 방법의 훌륭함이 숨쉴 사이도 없는 서스펜스를 고조(高調)시키며, 또 한편에서는 부자(父子) 4명의 기분이나 움직임이라든가 일당 3명의 심리적 변화를 미묘하게 포착하면서 인간적인 드라마로서의 흥미도 넘치고 있다.

12명의 노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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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Angry Men

감독 시드니 루메트. 주연·제작 헨리 폰다. 흑백·스탠더드. 1957년 제작.

<내용> 어느 여름의 무더운 날, 재판소의 한 방에서 12명의 배심원이 자기 아버지를 칼로 살해한 혐의의 소년을 평결(評決)하려고 할 때, 11대 1로 단 한 사람(폰다)이 무죄를 주장한다.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안달이 나지만 그 사나이의 냉정(冷靜)한 설명을 들어보니 유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게 되어서 논란이 물끓듯 했으며, 평결을 번복할 때마다 무죄편으로 투표하는 사람이 늘어나 드디어 최후까지 유죄를 주장한 사나이(리이 J.코브)도 무죄에 동의한다.

<감상> 레지날드 로우즈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화한 것으로, 텔레비전 연출가 시드니 루메트가 영화에 진출하여 처음으로 만든 작품인데, 장면은 배심원실에 한정시키고 폰다를 중심으로 하는 12명의 남자들의 언동을 매우 치밀하게 포착했다. 더위에 쫓겨서 빨리 평결을 끝마쳤으면 좋겠다는 해이해진 공기가 한 무죄 주장자의 출현으로 갑자기 긴박해졌으며 또한 폰다의 범죄분석이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드디어 역전할 때까지 창밖에 내리는 소나기 등의 효과를 곁들인 연출은 선명하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콰이강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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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idge on the River Kwai

감독 데이비드 린. 주연 윌리엄 홀덴, 알렉 기네스. 색채·시네마스코프. 1957년 제작.

<내용> 1943년, 타이의 정글 속에 자리잡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 송치되어 온 영국 육군의 니콜슨 대령(기네스)은 소장인 사이토오 대령(하야카와)과 무사정신(武士精神)에 있어서 서로 통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한발짝도 양보치 않는다. 부하들에게 유리한 조건(처우개선)을 획득한 후에 영국군이 일본군보다 우수함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실패만 거듭하고 있는 콰이강의 급류에다 일본군용의 교량건설을 위한 설계를 작성하고 완성까지 시킨다. 그런데 수용소를 탈출하여 영국군에게 구출된 미국 해군인 시어즈 소령(홀덴)은 영국군의 요청으로 하는 수 없이 특별부대를 안내하여 영국군 포로들이 건설한 교량을 파괴하고자 포로수용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교량을 폭파하려다가 일본군 경비병에 발견되어 난전(亂戰)이 벌어진다. 이때 니콜슨 대령은 영국군 특별부대의 행동임을 알고 협력하려는데 소령이 일본군에게 사살된다. 일본의 군용열차는 교량을 향해서 달려오고 특별대원은 거의 전사하여 폭파장치 스위치를 누를 사람이 없자 현장으로 달려간다. 니콜슨 대령은 거의 현장에 도달될 무렵에 총에 맞고 비틀거리게 되나 있는 힘을 다해서 폭파장치에 쓰러지면서 교량을 폭파시킨다. 교량은 파괴되면서 열차와 사이토오 대령을 함께 삼켜버린다.

<감상> 영국군의 장교가 자기네들을 포로로 하고 있는 일본군을 오히려 지휘하면서 교량을 건설한다는 풍자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서 전쟁의 허무함을 호소한 훌륭한 작품으로서, 일본·영국·미국을 대표하는 3명의 장교의 성격이 뚜렷하게 그려졌고 또한 인간미에 넘치고 있다. 영국군 장교로서의 긍지와 자랑을 한시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으면서 유머러스한 일면도 관찰케 하는 기네스의 연기술이 그럴 듯하다. 더욱이 난공사의 교량을 자기들이 건설함으로써 영국군의 긍지를 느끼고, 또한 애착까지도 느끼게 되었으나 조국의 승리를 위하여 목숨을 던지면서 자기 스스로가 파괴해야 된다는 순간적인 운명의 변화와 인간심리의 변화 과정을 리얼하게 묘사한 것은 인상에 남는다. 주제곡 <콰이마치>는 기록적인 인기를 끌었다.

벤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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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Hur

감독 윌리엄 와일러. 주연 찰톤 헤스톤. 색채·70mm. 1959년 제작.

<내용> 예루살렘의 호족(豪族)의 아들 벤허(헤스톤)는 로마군단의 장(長)이 되어서 진주한 옛친구 멧살라(스티븐 보이드)와 대립하게 되자 반역자로서 규탄을 받고 그들의 노예의 신세가 된다. 많은 고생과 환난을 당하지만 로마함대의 사령관(재크 호킨스)을 구출한 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어 해방된다. 전차경주(戰車競走)로 멧살라를 쓰러뜨리고 늙은 노예의 아름다운 딸 에스터(하이어 할라리이트)와 가연(佳緣)을 맺고 십자가 위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에게 물을 준 사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 멧살라로 인해 문둥병 계곡에서 병에 시달리고 있던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깨끗하게 낫는다.

<감상>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의 하나인 그리스도교적 호화 스펙터클 영화의 견본으로서 이 작품을 들어둔다. 원작은 루 월리스 장군의 베스트셀러로서 이것이 세번째의 영화이지만 감독이 와일러이므로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예루살렘 성(城)의 안팎을 비롯하여 세트도 굉장히 크며 의상(衣裳)도 화려하기 짝이 없다. 70mm 영화의 볼륨을 전면적으로 발휘한 3시간 30분의 거작으로서 사극(史劇)으로서의 중후(重厚)한 연출이 작품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가장 볼 만한 장면은 전차경주의 장면으로서 훌륭한 연출과 편집으로 강력한 박진감을 보여주고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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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Side Story

감독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주연 나탈리 우드, 리처드 베이머. 색채·70mm. 1961년 제작.

<내용> 뉴욕의 저지대(低地帶)인 웨스트 사이드의 불량소년 제트단(團)의 수령 리프(러스 탬블린)의 친구 토니(베이머)는 착실한 젊은이로서 라이벌 사이인 샤크단의 수령 베르나르도(조지 차킬리스)의 누이동생 마리아(우드)와 사랑하는 사이인데, 리프와 베르나르도의 결투를 만류하려 하지만 결국은 두 사람을 죽게 하는 결과를 보게 되고, 샤크단의 치노에게 원수만 지게 된다. 하는 수 없이 마리아와 함께 도망치고자 하나 그녀가 죽었다는 오보(誤報)에 접하고서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치노 앞에 나타나서 살해된다.

<감상>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둔 뮤지컬 영화로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교묘히 현대의 젊은 세대로 바꾸어 놓고 있다. 뉴욕의 조감(鳥瞰)이동촬영으로부터 시작되는 로버트 와이즈의 연출은 산뜻하며, 두 패가 대결하는 장면을 비롯하여 젊은 출연자들을 다이내믹하게 움직인 제롬 로빈즈의 안무(按舞)솜씨도 깨끗하고 곱다.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의 가곡(歌曲)도 우수한 것이 많고, 뮤지컬 영화로서 최고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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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rence of Arabia

감독 데이비드 린, 주연 피터 오툴. 색채·70mm. 1963년 제작.

<내용> 1916년경, 영국 육군정보부 아라비아국(局)의 명령을 받은 로렌스(오툴)는 이집트의 카이로를 출발하여 수에즈운하를 건너, 사막을 지배하고 있는 부족 지도자이며 독립군의 지휘자 파이샬 왕자(알렉 기네스)를 만나, 연합군 작전에 협력케 함으로써 터키군의 중동 기지이자 터키군 후방인 아카바 공략에 성공하여 한때는 영웅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 이윽고 터키군에 붙잡혀서 고문까지 받게 되자, 자기도 평범하고 약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주위(周圍)는 자기를 여전히 영웅으로 취급한다. 아랍민족연합회의를 이룩하려던 로렌스는 자기의 꿈이 깨어지자 아라비아를 떠나간다.

<감상> 아라비아의 로렌스로서 유명한 T.E.로렌스의 영화화로서, 주인공의 성격이나 심리의 기복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은 스펙터클을 목적으로 하는 70mm 대형영화의 개념을 타파하고, 인간성 추구의 드라마로서 커다란 감명을 준다. 후반 부분의 고문을 받고 자기의 무력함을 깨달은 뒤부터는 영화전체의 구성으로 볼 때 중도에서 좌절되는 듯한 느낌은 있으나, 전반 부분의 됨됨이는 훌륭하며, 70mm 대화면(大畵面)에 어울리는 장대성(壯大性)도 넘쳐 흐르고 있다. 특히 사막의 경관(景觀)은 영화역사상 손꼽히는 아름다움이다.

4계절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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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n for All Seasons

감독 프레드 진네만. 주연 폴 스코필드, 로버트 쇼. 색채·스탠더드. 1966년 제작.

<내용> 1528년, 영국의 국왕 헨리 8세(쇼)는 여왕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 결혼하는 문제에 관한 허가를 로마 교황으로부터 얻고자, 신임이 두텁고 국민의 경애(敬愛)를 받는 인물이기도 했던 토머스 모어(스코필드)에게 수고해 줄 것을 의뢰하나 모어는 거절한다. 게다가 또한 월지 추기경(오슨 웰즈)의 노여움을 산다. 헨리 8세가 교황을 무시하고 앤과 결혼한 뒤 모어는 관직에서 물러나 야심가 크롬웰(레오 매컨)의 모략으로 체포되어 반역죄인으로서 사형을 당한다.

<감상> 미국인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장 격조높은 작품으로, 신념대로 살다가 죽어 간 모어를 고전적(古典的)인 아름다운 무드와 드라마적인 감동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대극적인 제재를 받으면서도 영화적인 표현이 풍부하다. 이 성공은 스코필드의 훌륭한 연출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쇼 이하 공연자(公演者)의 절도 있는 뛰어난 연기도 작품의 풍격(風格)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댈러스의 뜨거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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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ecutive Action

감독 데드빗 밀러, 주연 로버트 라이언, 버트 랑카스터. 1973년 제작.

<내용> 미국 버지니아주의 전(前) CIA 고관(로버트 라이언) 저택에서는 몇몇이 모여 비밀협의가 한창이다. 역시 전 CIA의 요원(버트 랑카스터), 텍사스의 석유왕(윌 기어) 등등……. 그들에게는 강력한 이해(利害)의 일치가 있다. 케네디 대통령이 온건정책을 계속하는 한 그들이 입을 피해는 막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케네디 제거를 위한 암살방법이 결정된다. 석유왕이 행동원조와 자금제공을 맡고 나선다. 콜로라도주의 무인(無人) 암석지대에서 고용 살인자의 그룹이 트레이닝을 개시한다. 방법은 3각화선(三角火線), 즉 오픈카로 천천히 행진하여 오는 차안의 사람에게 조준을 맞추어 세 사격수가 잇따라 발사하는 특별훈련이다.

한편, 그와 같은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케네디는 계속 진보적인 정책을 진행시키며 눈부신 활약을 한다. 그러한 장면들이 실제의 뉴스 필름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암살 음모와 그 계획의 진행상태, 흑백판 뉴스에 나타나는 케네디의 움직임이 날카로운 대비(對比)를 보여 숨가쁜 효과를 고조시킨다. 직접 라이플을 다루는 사격의 명수로는 쿠바 혁명 모의 때 조직된 그룹이 기용되고 표적을 태운 자동차는 시속 12마일로 조용히 이동한다. 저격수들은 그 목표가 누구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또한 진짜 사격 범인이 체포되어서는 전모가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은 가짜가 필요하다. 제1의 가짜 오스왈드가 체포되면 제2의 가짜 범인에 의해 사살되고 사건의 주모자는 물론 지령자와 직접 라이플 탄환을 케네디에게 쏜 진범도 영구히 어둠 속에 묻혀야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그리고 성공했다. 댈러스의 뜨거운 햇살아래…….

<감상> 사건은 이렇게 끝났으나 이후 그 사건에 대해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세계는 알고 있는 것이다. 케네디의 암살이 결코 한둘의 암살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는 근본적으로 이해(利害)가 상반되는 검고 더럽고 거대한 손에 의한 것임을.

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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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ing

감독 데이빗 S 워드. 주연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1973년 작품.

<내용> 1936년 시카고 가까이의 어느 소도시 골목에서 마피아의 한 조직원이 두 사나이로부터 미끼치기를 당해 거금을 사취당한다. 두 사기사를 쫓는 마피아의 조직원은 결국 둘 중의 하나를 사살. 겁에 질린 또 한 친구 후커(로버트 레드포드)는 루서의 친구이며 왕년의 대 사기사 곤도프(폴 뉴먼)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자기 친구 루서를 사살한 자가 마피아의 두목 로네건(로버트 쇼우)의 부하임을 알자 복수를 굳게 맹세. 그는 로네건을 상대로 일대 사기극을 벌이려고 치밀한 계획을 짠다. 우선 로네건이 곧 시카고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 열차 안으로 그를 찾아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도박판에 끼어든다. 그리고는 로네건의 사기 도박을 뺨칠 수법으로 거액의 돈을 따낸다. 그러나 사실은 곤도프 부하 하나가 로네건의 속주머니를 재빨리 소매치기 한 뒤, 현금을 내놓을 수 없어 망신을 당한 로네건을 찾아 지불을 요구하는 한편 슬쩍 구미 돋구는 얘기를 귀뜸한다. 곤도프 몰래 자기에게 경마의 마권 장사를 시켜주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꾀는 것이다.

"곤도프의 마권 판매장에 전화로 통보되는 레이스의 승패 결과를 미리 알아내어 이긴 레이스의 마권을 몽땅 사들이는 것입죠. 헤헤"

로네건은 부하를 동원, 후커가 말한 내용을 확인토록 조사시킨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곤도프가 차려 놓은 마권 판매장은 이만저만한 대성황이 아니다. 몇 번 시험삼아 작은 돈으로 후커가 지시하는 마권을 사면 번번이 성공. 이에 맞들인 로네건은 50만 달러의 대금을 걸어 일확천금을 꿈꾼다. 그러나 그게 바로 곤도프와 후커가 노린 점. 거금을 몽땅 잃고 격분한 로네건이 후커에게 다져들자 곤도프의 권총이 후커를 향해 불을 뿜는다.

"망할 녀석같으니! 혼자 해 먹으려고!"

이 곤도프의 시퍼런 서슬에 로네건은 위험을 느껴 도망친다. 그러자 총을 맞았을 터인 후커가 벌떡 일어나 싱긋 웃는다. 모두가 각본대로의 일대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로네건의 50만 달러를 사취한 두 사나이는 줄행랑―.

<감상> 짭짤한 웃음과 입맛 개운한 서스펜스.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외성 등은 그야말로 미국 영화가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흐뭇한 오락영화이다.

엑소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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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orcist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 주연 린다 브레어. 1973년 작품.

<내용> 영화는 우선 북부 이라크의 고대 유적 발굴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유적에서 앗시라의 마신상(魔神像)을 발견, 발굴에 참가했던 노신부(老神父) 메린(맥스 폰 시도우)은 악령 부활의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혀 황량한 황토(黃土)를 뒤에 두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한편, 무대는 바뀌어 미국의 대학도시 조지 타운. 남편과 별거중인 여배우 크리스 마크닐(엘렌 버스틴)은 외동딸 리건(린다 브레어)을 데리고 아담한 집에 살며 촬영에 분주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악마의 검은 손길이 이 평화로운 가정을 덮친다. 리건이 악령에 씌인 것이다. 리건의 침대가 진동하고 소녀의 몸이 꺾일듯이 휘어질 뿐만 아니라 입에서 거품이 아니라 퍼런 독즙(毒汁)을 내뿜고 성대도 변하여 이젠 완전한 마귀할멈의 음산한 목소리. 현대 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 불가사의한 현상은 소름이 끼칠 뿐이다. 결국은 일루의 희망을 가까이에 사는 젊은 신부 칼라스의 도움에 건다. 그러나 젊은 칼라스 신부의 혼신의 노력도 소용이 없자 그는 예수회의 고위 신부에게 청원, 악마 추방령의 허가를 받은 메린 신부가 등장한다. 첫 장면에서 고대의 마신상을 발견, 공포로 온몸을 떨었던 그 노신부이다. 메린과 칼라스 두 신부가 리건의 악령과 처절한 대결을 꾀하나 순식간에 불가사의한 한기(寒氣)가 온 방안을 휘감으며 온갖 괴기현상이 잇따른다. 메린 노신부는 기력이 진하여 악령추방의 의식(儀式) 가운데 숨을 거둔다. 이제는 마지막 수단, 젊은 칼라스 신부는 최후의 염력(念力)으로 악령을 자기 체내로 불러들여 창에서 몸을 던짐으로써 겨우 악령과 자신마저 죽이고 만다. 참혹한 최후로 불가사의한 오카르트 현상을 해결하고 난 뒤의 음산할 만큼의 고요…….

칼라스 신부의 희생으로 겨우 악령의 세계에서 탈출한 리건은 그때까지의 일이 전혀 기억에 없는 채 그 맑고도 청순한 옛 모습의 소녀로 돌아간다. 다만 악령에 씌었을 때 입은 상처만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할 뿐이다.

<감상> 어린 소녀가 십자가를 자기 음부에 찔러 피투성이가 되고 그 피를 어머니의 얼굴에 바르는 처절한 장면으로 미국에서는 실신(失神)하는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재콜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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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y of the Jackal

감독 프레드 진네만, 주연 에드워드 폭스, 1973년 제작.

<내용>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아의 민족운동에 굴복한 드골 프랑스 대통령을 국익(國益)을 위배한 배신자로 단정, OAS로 불리는 보수 과격파가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은 드골 암살을 여러 차례 꾀하였으나 모두 실패. 결국은 외국의 프로 살인자를 고용하기 위한 계획으로 이에 재콜이라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치밀한 두뇌에 용의주도한 계획, 빈틈없는 비밀주의로 자신을 무장한 재콜은 이탈리에서 모든 준비를 갖춘 뒤 신부로 위장, 파리로 잠입한다. 그러나 그의 뒤에는 이 음모를 어렴풋이나마 감지(感知)한 파리 경시청 루벨 경감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항시 따른다. 그는 전 유럽 각국에 정보를 의뢰하는 한편 OAS의 연락원 하나를 체포, 극심한 고문 끝에 드디어 재콜이라는 이름과 8월 초순에 재콜이 이탈리아에서 라이플을 입수, 프랑스에 잠입했음을 알아낸 것이다. 신분을 철저히 위장하기 위해 무용(無用)의 살인을 2건이나 했어야 하는 재콜의 주위에는 서서히 루벨 경감의 수색망이 좁혀지고 있다. 그러나 재콜의 계획 역시 빈틈이 없다. 드디어 8월 25일, 파리 독립기념일의 군중 앞에 드골은 나타나고,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지팡이를 짚은 의족(義足)의 늙은 상이군인이 어느 아파트 옥상으로 오른다. 그가 바로 암살자인 것이다. 지팡이로 가장했던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총탄은 마침 드골이 어느 시민에게 키스하기 위해 그 장신의 허리를 숙인 바로 그 위를 스친다. 당황한 재콜이 두번째의 총탄을 장진할 때 경비경찰의 총구가 그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순간의 일제 사격. 재콜은 죽고 루벨 경감의 오랜 추적도 여기서 끝난다. 군중의 환호성과 드골의 영광의 역사에 가려진 채.

<감상> 저널리스트였던 프레데릭 포오사이의 동명(同名) 소설을 각색한 서스펜스 스릴러. 드골 대통령이라는 실재의 인물을 드라마의 중심에 두고 그 암살을 꾀하는 일당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경찰의 처절한 싸움이 어디까지나 사실이며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알 수 없는 혼연일체를 이루는 박진감은 높이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개봉.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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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地震 Earthquake

감독 마크 로브슨, 주연 찰톤 헤스톤, 에바 가드너. 1974년 제작.

<내용> 건축회사의 부사장 글라프(찰톤 헤스톤)는 사장의 딸인 아내 레미(에바 가드너)와 사이가 나쁘다. 순직한 기사의 미망인에게 지나치게 동정하며 호의를 베푼다고 질투를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레미 부인은 남편의 변심을 원망하며 자살극 소동까지 벌인다. 다급해진 글라프가 의사에게 전화를 걸려는 차에 온 집안이 흔들거리며 지진이 밀어닥친다.

지진연구소에서는 48시간 내에 대지진이 있을 것으로 경보를 내리고, 사실 미국사상 유례없는 대지진으로 온 도시는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고층 빌딩이 붕괴되고 도로는 갈라지며 사방에서 화재가 일어나 시민들은 공포와 절망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미망인은 행방불명이 된 외아들을 찾아 위기일발에서 겨우 구해낸다. 한편 붕괴된 빌딩 지하실에 생매장이 된 수백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글라프와 경관(조지 케네디)은 안간힘을 쓰며 굴을 파는데 마침내 댐까지 무너져 시내는 물바다가 되고 글라프는 거센 물에 떠 밀려 내려가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물론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으나 인사(人事)를 다하고 천명(天命)에 순(殉)하는 그 나름의 행동정신이 아름다운 감동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감상> 스토리로서는 이 대지진이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황폐를 경고하는 하늘의 계시로서 포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국 문명에 대한 반성의 자세가 크게 부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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偉大- The Great Gatsby

감독 잭 클레이턴, 주연 로버트 레드포드, 미아 페로. 1974년 제작.

<내용> 가난한 농가에 태어나 17세로 광산 노동자가 되고 제1차 대전에 참가, 육군소위가 되어 미녀 데이지와 사랑에 빠진 개츠비는 이윽고 프랑스 전선으로 동원된다. 전쟁이 끝나 돌아오자 옛 애인 데이지가 시카고의 부호 톰과 결혼했음을 알고 절망을 안은 채 쓸쓸히 발길을 돌린다.

그로부터 8년 뒤, 개츠비는 당당하고 우아한 청년부호가 되어 데이지의 저택 앞 호반 건너 기슭에 프랑스 왕조풍의 대저택을 사들여 위세를 떨친다. 개츠비는 지난날의 빈곤과 굴욕에 복수라도 하려는 듯 밤마다 사람을 초대하여 밤새껏 파티를 벌인다. 개츠비가 이웃집 니크의 소개로 옛 애인 데이지를 만난 것은 이런 무렵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옛사랑의 불길이 타올랐다. 두 연인은 개츠비의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는 도중 뜻하지 않게 데이지의 남편 톰의 애인인 머어틀을 역살하고 만다. 머어틀의 남편 윌리슨은 아내를 죽인 것이 개츠비의 차임을 알자 집요하게 복수를 노린다. 마침내 개츠비가 오후의 한때를 저택의 풀에서 혼자 수영하며 즐기고 있을 때 권총으로 사살하고 만다. 화려하기만 했던 개츠비는 풀 속으로 가라앉고 새빨간 피만이 풀을 물들인다. 이런 참극을 뒤에 두고 윌리슨과 데이지 부처는 유럽으로 유유히 여행을 떠난다.

<감상>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무엇인가 속은 듯한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게 마련. 그래서 어떻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무엇이 어떻다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다만 화려하게 산 개츠비가 죽은 것만으로 끝나고 있다. 1977년 한국 개봉.

천국보다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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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國-

짐 자무시 감독. 1984년 제작.

<감상> 이 영화에 담긴 미국 사회의 풍경은 아메리칸 드림, 모든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 흑백 장편영화로 짐 자무쉬는 1984년의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형식의 단절감은 무엇보다 대리 만족을 주는 이야기체 영화를 중시했던 미국 영화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자무쉬는 범 벤더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 브레송 같은 유럽 영화감독과 일본 영화의 대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영감을 빌려와 황폐한 미국 생활의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영화 표현의 뿌리를 여러 혈통에서 빌려온 셈이다. 그래서 곧잘 '포스트 모던'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주인공들은 뉴욕에서 클리블랜드의 플로리다로 옮겨 다닌다. 이 여정은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야만의 땅에 문명을 심으며 걷던 신화적인 여정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장소이동 모티브에는 더이상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 클리블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인공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고 중얼거린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타이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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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anic

제임스 카메론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케이트 윈슬렛 주연. 1998년 한국에서 상영.

<내용>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에서 뉴욕을 향해 2,224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4월 14일 밤 11시 40분 뉴펀들랜드의 그랜드 뱅크스 남쪽 150km 지점에서 빙산에 부딪혀 4월 15일 2시 20분에 침몰한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사고로 무려 1,513명의 아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러한 실제 재난을 영화로 만든 <타이타닉>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타이타닉호에 오르는 동안 포커로 따낸 티켓으로 승선하는 가난한 젊은 예술가 잭 도슨과 17세 소녀 로즈. 로즈는 어머니가 엄청난 재물의 상속자와 결혼하도록 강요하자 배에서 뛰어내리려 한다. 그날 밤 갑판으로 바람을 쐬러 올라갔던 잭은 귀족의 딸인 로즈를 설득하여 자살 위기에서 그녀를 구해낸다. 잭은 삼등석에 탄 사람들이 노는 파티장으로 로즈를 데려가고, 그들 사이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다. 로즈와 잭 사이에는 대단한 열정의 언어들이 오가며, 종말을 눈앞에 둔 것 같으면서도 그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로즈는 집안에서 강요하는 결혼을 거부하고 자살하느냐, 아니면 잭과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느냐 하는 기로에서도 마치 소녀처럼 행동한다. 결국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할 때, 로즈는 어머니를 구명정에 남겨둔 채 억울하게 갇혀서 익사 직전에 놓인 잭을 구하러 타이타닉호에 뛰어든다. 로즈는 도끼로 문을 때려부수는 등 잭을 구하기 위하여 몸부림치지만 끝내 잭은 익사하고 로즈만 살아 본국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열정적인 사랑을 포함한 타이타닉호의 이야기는 101세가 된 로즈가 별볼일없는 보석 사냥꾼에게 들려 주면서 널리 알려진다.

<감상> 지난날 바닷속에 잠긴 잔해들을 찾아 이동하는 수중 촬영, 타이타닉호의 웅장한 모습과 승선하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승객들의 모습 등 3시간이 넘는 상연 시간에도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앙상한 잔해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한 사람의 기억 속으로, 화려하고도 생생한 타이타닉의 환상 속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타이타닉은 실제로 있었던 비극적인 재난을 적나라하게 다루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혼합시킴으로써 대작으로 완성시킨 감독의 연출 능력이 돋보이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