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국 제 정 치/현대의 국제정치/군정체제의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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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국 민주정치의 혼미[편집]

新生國民主政治-混迷

제2차 대전 후에 우후죽순격으로 독립을 획득한 신생제국은 당시 이데올로기 대립과 냉전체제를 반영해 두 개의 블록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중 소련의 영향권에 속해 있던 신생제국은 애초부터 인민 민주주의(人民民主主義)라는 허울 밑에서 공산주의적인 전체주의체제로 내닫고 말았다. 이들 나라의 정치체제는 인민민주주의라는 허울과는 달리, 소련 공산주의체제의 재판으로서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 영·미를 주축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해 있던 대다수의 신생국가들은 당시의 정치적 조류를 반영해서 제각기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를 도입했고,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인 외피만 도입하면, 그것이 꽃필 수 있으리라는 환상과 낙관론에 젖어들기조차 했다. 실상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독립정부를 수립했다는 벅찬 환희와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카리스마화한 영도하에서 신생제국의 민주정치는 모형에 가까우리만큼 이어져 갔고, 그 나름대로 뿌리를 내리는 듯도 했다. 이 기간이 이른바 신생제국에 도입된 자유민주주의의 밀월시기였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편에서는 독립정부수립에 대한 환희가 식어졌는데다가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카리스마화한 영도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제도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을 도맡아야 할 효율적인 정치여야 한다는 자각이 신생제국의 국민들 사이에서 일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생제국의 정치제도가 한갖 모형으로 도입되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혼미를 거듭하기에 이르렀고, 오히려 부푼 기대 다음에 오는 심한 실망을 통해 냉혹한 재평가가 내려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냉혹한 재평가의 결과는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는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조성하고, 국민들의 생활향상을 감당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무능하고 낭비적이라는 성급한 속단이 나오게 되었다.

군정체제의 유행[편집]

軍政體制-流行

신생제국의 민주정치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혼미를 거듭할 때,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해서 가장 냉혹한 평가를 내렸고, 또 이러한 정치적 혼미를 스스로의 권력장악의 계기로 이용한 것이 군부세력이었다.

실상 신생제국의 군부세력은 다른 어떤 정치제도들보다 내적으로 정비되어 있었고 또 일사불란한 명령체제를 통해, 무슨 일이든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효율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듯 효율성을 한낱 신조(信條)로 삼고 있는 군부세력으로서는 민주주의란 이름 밑에서 빚어지는 민간정치인들의 비능률적인 논쟁이나 작태를 무능과 부패로 낙인찍기에 이르렀고, 심하게는 이러한 현상들을 민주정치 자체에 내제된 병리현상으로 간파하기조차 했다. 더욱이 신생제국의 군부세력은 민주주의란 근대화를 앞서 달성한 선진국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정치제도로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조국근대화란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는 신생국의 정치적 토양에는 전혀 맞지 않는 정치제도라고 속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민간정치인들에 의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현상을 일소하고 시급한 조국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세력은 신생제국에서는 오로지 군부세력인 자기들만이라고 과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신생제국의 군부세력들이 민주정치를 불신하면서 자기들만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자기과신에 젖어들게 된 것은, 각 나라마다 시기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체로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에 걸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대부분의 신생제국에서는 한때나마 그토록 신봉하던 민주정치를 헌신짝버리듯 내동댕이치고 군정체제로 이행함으로써 군정체제의 한낱 유행현상을 빚기까지 했다. 심지어 새뮤얼 P. 헌팅턴 교수는 "군부의 정치개입의 유행, 그 자체가 군부의 정치개입을 유발하는 동기로서 지적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이렇듯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대부분의 신생제국이 군정체로 이행하는 거센 돌풍을 맞이하는 진통을 겪고 있었다.

군정체제의 성격[편집]

軍政體制-性格

흔히 군의 정치개입, 말하자면 쿠데타의 발발요인들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는 정부가 제시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목표 내지 공약을 달성하지 못할 때, 둘째는 정부가 종족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대립문제에 대처하지 못할 때, 셋째는 정부가 외부로부터의 침략 내지 전쟁에 대처하지 못할 때 등이다. 요컨대 정부가 주어진 과업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없을 때 쿠데타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상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에 걸쳐 신생제국에서 군부쿠데타가 유행하다시피 했던 것도 각 나라마다 특수한 대내적인 상황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민간인정치의 기브 앤드 테이크 과정에서 노출된 비능률과 부패를 일소한다는 명분에서였다. 따라서 군정체제의 일반적인 성격은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더라도,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제고하고 정치질서를 회복하려는 데 있다. 정부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정치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러 기구들에 분산되어 있던 정치권력을 행정부에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군정 체제의 일반적인 성격은 정치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행정부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데서 찾아진다.

지난날의 고전적인 민주정치에서와는 달리, 오늘날의 정치에 있어서는 국민의 의사를 받아들여 효율적인 정책으로 수립할 수 있는 투입기능과 수립된 정책을 행정기구를 통해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산출기능을 함께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정치는 투입기능을 통해서 정통성을 부여받고 산출기능을 통해서 효율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군정체제의 일반적인 성격은 투입기능을 통한 정통성은 송두리째 무시해 버리고, 반면 산출기능을 통한 실효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여기서 산출기능이란 바로 행정기능을 뜻하는 것이고, 또 행정기능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은 바로 행정부에로의 권력의 집중을 뜻하고 있다.

군정체제와 민주주의[편집]

軍政體制-民主主義

오늘날의 정치가 지니는 두 가지 기능들 중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통성을 송두리째 무시해 버리는 것이 군정체제의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한다면, 군정체제는 바로 민주주의와는 배치되는 정치체제임을 쉽사리 판별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국민들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투입기능의 확충을 통해서 정통성을 굳건히 다지는데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입기능을 통한 정통성을 소홀히하거나 또는 무시하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는 존립의 토대를 잃고 만다.

실상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초에 걸쳐 신생 제국에서 한낱 유행처럼 번진 군정체제의 수립은 일반적으로 허약한 기존의 민주주의를 억압 혹은 파기하는 데 있다.

파키스탄의 군정체제의 수립을 예로 들어, 제임스 S. 콜맨은 말하길 "파키스탄 군부는 자기 나라를 보다 민주화된 정치체제로 인도하려는 자각된 목적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부패한 정치과정을 정화(淨化)하고, 또 정치가들이나 정치적 혼란을 권위와 질서와 합리성으로 대체시키려는 의도에서 권력을 장악하였다"고 했고, 또 그레고리 핸더슨은 말하길 "군부세력은 민간인들에 의한 정치를 경멸하고, 극단적인 직접 행동만이 나라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는 구세주적인 자기류의 애국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의 행동의 본질은 조직의 공고성, 계획의 명확성, 행동의 신속성을 토대로 우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데 있었다"고 했다.

이렇듯 군정체제는 그 수립동기부터 민주주의를 억압 내지 파기하는 데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더욱이 일단 수립된 군정체제는 군부세력 특유의 체질에 따라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만을 강조하고 비판이나 반대는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모리스 듀베르제의 말을 빌면 "민주주는 비판이나 반대에서 비롯된다"고 했는데, 이렇듯 비판이나 반대가 용납되지 않는 군정체제하에서는 민주주의가 재생할 토양을 잃고 만다.

군정체제의 한계[편집]

軍政體制-限界

앞서 고찰해 보았듯이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서 군정체제를 수립한 것은 기존 민주주의 체제로 제기능을 올바로 다하지 못한 나라에서였고, 그로 인해 빚어진 정치적 혼란과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이용해서였다. 따라서 군정체제 수립초기에는 그들 특유의 명령체계를 통해 기존체제하에서 빚어진 정치적 혼란과 부패를 일소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국민들의 기대에도 일시적으로는 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군부세력이 정치적 혼란과 부패를 일소한다는 명분아래 정치에 개입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곧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파괴이고 정통성에 대한 침해임은 말할 나위 없다. 우선 군정체제는 국민들의 지지와는 관계없이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했다는 오명(汚名)을 면할 길이 없다. 여기서 군부세력은 그들의 집권이 사적인 권력욕의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취한 일시적인 조치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군정체제는 그 자체로서는 영속화할 수 없는 일정한 시한성이 있게 마련이다.

군정체제의 악순환[편집]

軍政體制-惡循環

신생 제국에서 일단 수립된 군정체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겠다.

우선 첫 번째 유형으로는 군부 쿠데타가 계속 되풀이됨으로써 군정체제가 영속화 내지 체질화되고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유형은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쿠데타를 통해 군정체제가 수립되면 그것이 민정(民政)으로 복귀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나서 기존의 군정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시 새로운 군정체제를 수립하고 만다. 심지어 이들 나라에서는 쿠데타의 연속을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권교체와 동일시하고 있을 정도이다.

두 번째 유형은 군정체제가 시한성을 제시해서, 정치적 혼란과 부패가 일소되고 정치풍토가 순화되면 민정으로 이양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구실 밑에서 구정치인들을 몰아내나 그들로서는 민주적인 정치과정이나 제도들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하여 군부세력은 어쩔 수 없이 권력을 민간정치인들에게 다시 돌려 준다. 그러면 군부세력이 처음 반대했던 것과 또 같은 정치 상황이 재현됨으로써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고 만다. 미얀마가 이러한 유형의 전형적인 예이다.

세 번째 유형은 군정의 주체세력들이 민정에 참여하려고 기도하거나, 아니면 구정치인들과 더불어 나라의 정치집단을 구성하여 권력을 계속 장악하려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그들 역시 정치적 부패에 물들게 되고 정치적 혼란에 휘말려 들게 된다. 이럴 때 그들은 또다른 군부 쿠데타를 유발하는 요인을 만들고 만다. 이러한 예는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이다.

네 번째 유형은 근본적인 발상에서는 세 번째 유형과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군정세력이 하나의 정치집단을 구성하여 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민정이란 집권자들이 군복만을 벗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군정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는 집권자들이 처음에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르는 것 같으나, 싱징조작이나 통치술을 익힘에 따라 민주적인 절차는 한낱 의식(儀式)으로 타락시키고, 자기들의 자의적(恣意的)인 지배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내닫고 만다.

요컨대 군정체제는 그것이 내세우는 명분이나 이상이야 제아무리 그럴싸하고 화려해도 결국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내닫고 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한낱 목표나 이상으로만 내세우는 장식품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목표나 이상으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때, 군정체제란 결코 민주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특효약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張 乙 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