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한국의 정치/한국인의 정치의식과 정치행동/한국인의 정치의식과 정치행동〔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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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人-政治意識-政治行動〔序說〕

사람들이 어떤 정치행동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그와 같은 선택으로 인도하는 의견·판단·인상·감각 등이 작용한다. 사람들의 정치행동을 결정하는 이와 같은 정신작용을 정치의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치의식은 사람들이 처해 있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또는 정치문화와 상황에 따라 각각 달리 나타난다.

그러면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인의 정치의식은 대체로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조선왕조 5백년의 전제적 지배에 이어 36년간에 걸친 일제(日帝)의 식민지적 지배에 예속되었다가, 제2차 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해방을 맞이하게 된 우리나라는 서구적 의미에서의 근대화(近代化)를 경험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적 인간유형이 형성되지 못했다. 근대적 인간유형의 정치의식의 특징으로서는, ① 질서형성의 주체자라는 의식이 강하다는 점과, ② 자기의 이익에 대한 뚜렷한 관념을 가지고 만일 자기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될 경우에는 그것에 대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물론 해방 이후에 활발하게 된 각종 학교교육과 종교교육 및 기타의 사회교육을 통해서 근대적 인간유형이 활발하게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전통지향형(傳統志向型)의 인간유형이 뿌리깊이 잔존하고 있으며, 그 위에 기형적으로 형성된 도시화에 따라서 보여지게 된 현대적인 타인지향형(他人志向型)의 인간을 서로 접목이라도 한 것과 같은 사회적 인간이 바로 오늘날의 한국인의 인간형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전근대적인 인간형을 전통지향형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이런 인간의 정치의식은 전통지향형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정치가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서 독점되어 사회의 밑바닥에 처해 있는 민중의 정치 참여가 폐쇄되어 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서 발생되는 무관심의 타입이다. 그런데 그러한 무관심의 내용은 정치에 대한 지식의 결여와 통치자에 대한 묵종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 현대적 인간형을 '타인지향형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이런 인간의 정치의식은 이른바 '타인지향형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정치가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 대중민주주의시대에 보이는 무관심의 타입이다.

이것은 '읽고 쓰는 능력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도구와 상당한 정도의 조직화의 능력 그리고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는' 주로 도시의 새로운 중간계층(中間階層)이 보이는 무관심이다.

이 타입은 전통형 무관심과 달리 정치를 일종의 자연현상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인간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아니라 '그네들'이라는 의식에 현대형의 무관심은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형의 무관심은 전통형의 무관심과 같은 정적(靜的)인 체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초조감과 울분을 내포한 말하자면 동적(動的)인 무력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은 어떤 계기만 마련되면 비합리적인 격정으로 발동되어 어떤 정치세력과도 무차별하게 결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그 기구한 역사적 전통으로 인하여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훈련이 부족하며, 또한 정치에 대한 주체적인 자각과 주체적 능동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곧잘 지적되고 있다.

또한 특히 정치행동면에서는 추잡한 파벌현상을 보인다는 점이 곧잘 지적되고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다른 국민들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별로 못난 점이 없는 것만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세 사람 이상만 모이게 되면 곧 파당(派黨)을 이루어 치열한 반목(反目)과 대립투쟁을 보이기가 일쑤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우리 국민성의 결함에 관하여 입을 열게 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추잡한 파벌현상을 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파벌은 정치집단에서 뿐 아니라 기타 온갖 조작과 단체에 따르기 쉬운 실체(實體)와 그림자와 같은 관계의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원래 파벌은 조직과 단체의 활동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관한 지도권이나 지배적 지위를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가 생기는 데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파벌은 전적으로 병리현상이라고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일면도 있는 것 같다. 그 파벌이 조직체의 일종의 균형점을 의미하며, 그 운영과 정책작성에 있어서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수행하는 한에 있어서는 생리작용으로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집단 안에서의 파벌이 정책상의 이론(異論)에 기인되기보다 오히려 전근대적인 인간관계에 기인되는 면이 강하기 때문에 정치에 있어서의 합리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비난하는 일이 많다.

어쨌든 질서형성의 주체자로서의 의식이 강한 근대적 인간유형을 착실하게 그리고 활발히 형성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정치적 과제의 하나라 할 것이다.

<李 克 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