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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문화
[편집]Christ敎-文化
문화라고 하는 것은 넓은 의미로 인간이 자연환경에 작용하여 쌓아올린 활동의 과정과 결과이며, 언어·습관·사상·관습·사회의 법적 경제적 조직·문화재·기술·가치 등으로 된 인간의 사회적 업적이다. 또한 문화는 이른바 전통으로서 지속되고 끊임없이 선택되고 탐구되며 유지되는 유산이다.
문화는 자연에 버금가는 제2의 세계이며 <신약성서>에서도 '세계'에 관해 언급될 때에는 이 문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모든 사람은 일정한 문화에 종속되어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태교적 문화로부터 발생하여 유태교를 비판하면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리스·로마 세계에 진출하여 서양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러한 관계에는 문화와의 내적 대립과 긴장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는 이스라엘 왕국의 부흥을 대망하는 유태교 민족주의와 대결하여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복종이라는 인격적 관계에서만 인간은 하느님 앞에 살아갈 수가 있음을 말하고 현세주의적 유태교에 대한 문화비평을 행한다.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유태교적 율법관을 비판하고, 일반의 문화적 가치관에 대립되며 모순되는 계율(戒律)을 말하고, 하느님과의 인격관계를 파괴할 뿐이라 하여 사회적·문화적 통념과 재물을 거부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있어서 바울은 복음의 유태주의화와 헬레니즘화를 막기 위하여 싸우면서도 그리스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채택하려고 하였다. 초기 가톨릭 교회에서는 많은 이단논쟁을 거쳐 주요한 교리를 확립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서양문화를 그리스도교로 개조해보려고 노력하였으며, 토마스는 그리스도교와 문화를 통일하여 중세 통일문화를 이룩하였다. 그런데도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은 인문주의와의 결별 이래 또 다시 원시 그리스도교의 문화부정의 입장에 되돌아가게 되었는데, 새로운 직업윤리는 근대자본주의 사회와 그 문화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와 문화와의 문제에는 하나의 확정적 해답은 찾아볼 수 없고 몇 가지의 유형적 해답이 있을 수 있다. (1) 문화와 대결하는 그리스도교, (2) 문화주의적 그리스도교, (3) 문화와의 통일을 지향하는 그리스도교, (4) 문화와의 내적 긴장 관계를 갖는 그리스도교, (5) 문화를 개조하는 그리스도교의 다섯가지 유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와 문학
[편집]Christ敎-文學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의 문학은 신앙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간에 모두 그리스도교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에 의한 문학은 무수하나 여기에서는 직접 그리스도교적 주제에 의한 문학과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짙은 문학에 한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또한 신앙적 입장에서 보는 가치와 문학적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성서는 내용과 그 번역을 통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문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욥기(記)·시편·아가(雅歌)·예레미아서(Jeremiah書)와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 바울의 서간(書簡)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러나라 말로 번역되었으나 특히 영국의 흠정역성서(欽定譯聖書)와 독일의 루터역성서 등은 그 사상과 문체에 있어 문학에 기여한 바가 많다.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가로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신곡(新曲)>을 쓴 단테, <실락원(失樂園)>의 밀턴, <천로역정(天路歷程)>의 버니언(John Bunyan),신과 인간·신앙의 문제를 추구한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와 톨스토이, 미국에는 <주홍글씨>의 호손(N.Hawthorne), 폴란드에는 <쿠오 바디스>의 셴키에비치(Sienkiewicz), 프랑스에는 <좁은 문>의 지드와 모리악, 독일에는 토마스 만, 영국에는 그레이엄 그린 등이 있다. 이외에 시인으로서 프랑스의 크로델, 독일의 릴케, 영국의 T.S. 엘리엇 등이 이름 높다.
그리스도교와 회화
[편집]Christ敎-繪畵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회화를 규정할 경우 그 외적 조건으로는 그리스도교적 제재(題材)를 그린 것이어야 할 것과 내적 조건으로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부터 탄생된 그림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로서의 그리스도교 회화는 근세 이후에도 뛰어난 작품이 많이 나왔음은 말할 것도 없으나 주로 중세에 시작되어 중세에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태교와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우상숭배에 대하여 부정적이어서 도상묘사(圖像描寫)에 대하여 때때로 논쟁이 일어났으며 때로는 이를 파괴하려는 운동이 일어나 시토오회와 같이 의식적으로 표현예술을 배척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리스도 교회는 회화예술을 긍정하고 이를 보호육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그리스도교 회화는 종교적 의도로 보아서 민중 교화를 위한 도상표현(圖像表現)과 건축·성서·성기(聖器) 등을 꾸미기 위한 장식표현의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중세의 회화는 '문맹자를 위한 성서'라고 일컬어진 것과 같이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을 위한 성서·외전(外典)·성인의 이야기와 교리 등 모든 가르침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도상표현에는 일정한 약속이 있었다. 즉 물고기·포도나뭇가지·양치기에 의하여 구세주를 상징하고 비둘기로서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영혼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소박한 상징주의는 이어서 신학의 심화와 더불어 더욱더 복잡한 것으로 되어 갔다. 회화의 장식표현으로서 중요한 것을 들어보면 로마네스크 시대에 꽃피었던 교회의 벽화, 고딕 시대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중세 전체를 통한 성서의 삽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공간을 메운다는 장식적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도상표현에 의하여 교화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많았다.
그리스도교 음악
[편집]Christ敎音樂 협의로는 그리스도 교회의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을 가리키나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교회의 축제일과 그 밖의 경우에 있어서 대중에게 성서의 진리를 보여주고 이를 들려주기 위하여 교회에서 사용하였던 음악도 포함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음악과 종교의 관계는 매우 깊고 오랜 것이며, 특히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그 관계는 더욱 밀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 시편(詩篇)을 집전자와 회중(會衆)이 교창(交唱)함으로써 노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리하여 중세 초기에는 음악의 예배적 성격도 정리되어 '그레고리안 찬트'가 성문화되고 이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로마가톨릭 교회 음악의 중심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한편 동방교회에 있어서는 '비잔틴 찬트'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예배음악을 발전시켰다. 르네상스 초기에는 '네덜란드 악파(樂派)'(블랑드르 악파)의 활약이 대단하였고, 그리스도교 음악은 이른바 세속음악과의 교류를 강화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종교개혁 시대에는 16세기 가톨릭 교회의 최대 작곡가로 불리는 팔레스트리나(Palestrina)가 종교적 순결성을 담은 예술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가톨릭 교회가 전교회 공통의 교리와 예배음악을 갖는 데 대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각파는 각 교파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독일 루터파의 것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즉 가톨릭 교회의 복잡한 다성음악(多聲音樂)에 대하여 루터파의 것은 독일어로 회중(會衆) 전체가 노래할 수 있는 단순한 코럴로 발전시킨 것이다. 17, 18세기의 이른바 바로크 시대에는 이러한 코럴을 중심으로 하는 세련된 음악이 많이 출현하였고 J.S.바흐에 이르러 프로테스탄트 음악은 절정에 달한 셈이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음악가에 의하여 많은 걸작 종교음악이 만들어졌는데 이들 대부분은 좁은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음악의 영역을 초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건축
[편집]敎會建築
신앙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 교회와 건물과의 상관관계를 보면 '교회'와 건물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해 처음부터 예배를 보는 장소로서 중요한 곳이었다. 또 '교회'는 종종 지상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집으로서 그 자체가 신성시되었으며, 또 죽은 자를 기념하는 장소로서, 일상의 집회와 휴식의 장소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그러므로 '교회'의 건축은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교 예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교회건축이 시작되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부터이며, 이 4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변천과 건축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실로 다양한 건축양식을 만들어냈다.
그 변천 과정을 더듬어보면 우선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기본적 양식으로서 납작한 지붕으로 된 장방형 평면의 '바실리카식(basilica式)'과, 돔(dome) 또는 볼트(vault) 천장을 가진 원형과 다각형 평면으로 된 '집중식'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비잔틴식(Byzantine式)'은 돔의 집중식 구조를 장방형 또는 장방형의 평면에 채용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뒤에는 그리스 십자형 평면이 이 양식의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로마네스크식(Romanesque式)'은 11, 12세기의 서부 유럽 지역에서 널리 채태되었던 양식으로서, 지역에 따라 각각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그 공통된 특색으로는 바실리카 방식을 채택하면서 중량 있는 석재와 벽돌로 천장을 받치도록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양식은 벽면의 양감(量感)이 현저하고, 대체적으로 건물 외관이 중후한 느낌을 준다. 이것의 뒤를 이은 '고딕식'은 대표적인 건축물을 현재에도 볼 수가 있다.
중세 예술의 정수를 모아놓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 건축양식은 당시 크게 위력을 떨쳤던 중세 그리스도교 정신을 반영한 것이며, 또한 새로운 기술개발의 성과이기도 하였다. 특히 종래의 벽체 구조(壁體構造)가 갖는 역학적 결함을 기둥 구조에 의하여 해결한 것이 그 뒤의 그리스도교 예술에 커다란 변화를 주게 하였다.
근세 이후에도 각 시대를 반영하는 '르네상스식', '바로크식', '로코코식' 등의 건축양식이 발생했으며 금세기에 건축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사회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서 과거의 '교회' 건축양식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한 외관과 평면 구조를 갖는 많은 건축물이 생겨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