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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도 교/도교〔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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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敎〔序說〕 도교는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임에는 틀림없으나 개념화하여 설명하기에는 퍽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도교를 유교(儒敎)와 같이 중국 민족의 민족종교(民族宗敎)라고 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만주·일본, 그리고 인도지나 반도의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아시아 여러 나라 민족의 신앙이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바 있어서, 그들의 생활이나 습관·사상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도교는 모든 시간적 변화와 공간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또 성립의 역사적 한정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존재의 근원적 진실성을 어떤 의미에서 심각하게 파악하여 그 위에 조직되어 있는 교설(敎說)과 그에 따른 실수(實修)를 제창하여 믿게 하는 부동의 지위를 확립해 놓은 교조(敎祖)가 없기 때문에 어떤 특정 인물에 의하여 창시된 생생한 종교라고는 볼 수 없다. 이렇게 객관화된 일정한 체계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주관적 면에서 중국인의 심정(心情·心性) 속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고대에 있어 사람들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그 어느 것에나 정령(精靈)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 단계를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하며, 중국의 원시(原始) 신앙도 여기에서 기원(起源)하였고 정령을 귀신(鬼神)이라 하여 천신(天神)·지기(地祇)·인귀(人鬼)의 세 가지로 생각하였다(<周禮>). 이러한 생각에서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시종하여 인생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현실인생의 행복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 후회하지 않는 중국인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현실적이고 낙천적(樂天的)인 심정이란 것을 설정한 후, 그것을 가지고 도교를 설명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 심정에 깔려 있는 것은 먼저 삶(生), 그것이 기본적 전제로서 요구되고 있는 생의 욕구는 다시 끝없는 연장(延長) 욕구로 발전하는 것이며, 소위 신선사상(神仙思想)의 기본적 명제를 이룩했다. 다음은 생의 충실(充實) ― 소극적으로는 병(病)의 치료 또는 방지, 일체의 재액(災厄)에서의 모면, 나아가서는 몸의 건강·부귀, 집안의 번영 등 ― 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여러 가지 쾌락의 증대가 욕구되며, 생의 충실과 무한한 연장에로의 욕구가 단적으로 육체적·물질적인 면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또 순수정신적(純粹精神的) 뜻으로까지 높여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물질적인 것에서 초월(超越)하는, 즉 구애되는 것에서 해방(解放:脫皮)되는 것이 요청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이런 점에 불교(佛敎)와 상관성이 있는 듯도 하지만, 단지 그러한 경우에도 현실생활에서 떨어져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생의 무한한 연장에 중점을 두고, 때로는 정좌내사(靜坐內思)와 같은 정신주의적 방법을 설(說)하면서도 주로 물질적·기술적 방법이 강조되는 것을 신선술(神仙術)이라 하며 이것은 흔히 정신적 태도로서 오로지 세속적인 것에서 초극(超克)함을 동시조건으로 하는, 일종의 모순을 내포하는 형으로부터 시작되는 실현방법의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는 주로 신비적 수행(神秘的修行)에 의하여 혹은 어떤 의미에서는 초인간적(超人間的)이 되는 힘에 의지하여 생의 충실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도교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도교가 시간을 초월하여 생의 충실을 달성하는 기본적 교설(敎說)의 체계가 없고 따라서 교설의 제창자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민간신앙(民間信仰)의 집성(集成)이라든가 자연종교(自然宗敎)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심정 위에서 목적지향을 위한 많은 교설이 있었고 그 제창자도 눈에 띄게 있어 왔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뚜렷하지 않으나, 중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정체적 경향(停滯的傾向)이 강하기는 했어도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그때의 시대에는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졌음도 당연하다. 따라서 각 시대마다 군소종교자(群小宗敎者)에 의한 여러 가지 교설이 동시에 또는 시기를 달리하여 서로 어떤 관련을 가지면서, 혹은 일면으로는 자주적으로 존립하던 때를 도교 초기의 단계라고 보는 것이며, 도교 내지 도교도(道敎徒)로서의 일체감(一體感) 또는 일체감을 전제로 하는 대립의식이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일체감을 주고 연대의식을 부여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외래종교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이렇게 도교자로서의 일체감을 갖게 되는 시기를 도교의 성립기라고 본다면 이것은 중국에 불교가 침투되어 부동의 지위를 얻게 되는 시기(東晋末로부터 南北朝에 이르는 4, 5세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성격을 가진 교법(敎法)과 교단(敎團)을 들어 도교라고 본다면 그 시원(始源)은 후한말(後漢末:2세기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도교 구성의 제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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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敎構成-諸要素

중국 대륙의 고대신앙인 정령(精靈)신앙은 그 어느 것이나 자연숭배(自然崇拜)를 발단으로 하며, 종교적으로는 단순하나 근원적으로 중국 민족의 심정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던 이들 민간신앙이 도교의 구성 요소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가운데서 형성된 것이 무축(祝)·방사 (方士: 神仙說)·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참위설·도가(道家) 등이다.

(1) 무축(巫祝) ―― 정령(精靈) 가운데 사람의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귀(人鬼), 즉 영혼(靈魂)을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에너지(energy)적인 혼백(魂魄)이라는 물리적인 존재로 단정하고 어떤 방법을 쓰면 그것을 자유자재로 취급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 방법을 주술(呪術)로써 대응하려 한 것을 무축(巫祝)이라고 한다. 무축은 사람과 신(神) 사이를 교통하면서 신의 뜻을 사람에게 알리고 또는 사람의 소원을 신에게 주상(奏上)하는 것으로서, 중국 고대인에게는 최대의 권위와 위력을 가졌다. 그 주된 행위로는 강신(降神)·해몽(解夢)·예언(豫言)·기우(祈雨)·점성(占星) 등이 있었다.

(2)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애니미즘의 단계에서는 아직 영혼과 물질 사이가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으나 양자의 상위(相違)함이 인식되고부터는 음양설(陰陽說)이 고대 중국의 세계관(世界觀)으로 등장했다. 이 사상에 의하여 물(物)의 본체(本體)를 기(氣)라 하고 이 기가 생명의 본원이자 우주(宇宙)의 근본적인 활력이며 그것이 발전하여 음(陰)과 양(陽)으로 분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 즉 삼라만상을 이 음양에 의해서 설명하고, 마침내 상징적인 음과 양의 효(爻)로 이루어진 팔괘(八卦)를 매우 중시하게 되었다. 유교 경전(經傳)의 하나인 역경(易經)은 이러한 사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도교도 이를 수용하여 자신의 논리를 구성하였다.

오행설(五行說)도 이 음양의 원리에서 기원하였으며,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다섯 원소가 우주 사이를 유행변전(流行變轉)하면서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고 단정했다. 이 오행설에 십간(十干: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십이지 (十二支: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간·지를 끌어넣어 일(日) 월(月) 등 시간(時間)을 배정하고 점점 복잡괴기해지면서 도교에 흡수되어 도교의 이론과 방술(方術)의 원리가 되었다.

(3) 도가(道家) ―― 도가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꽃피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하나이며, 유가(儒家)와 함께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학문의 일파(一派)로서 유가를 공맹사상(孔孟思想)이라 한 데 대하여 도가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 일컬었다. 도가는 유가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설한 데 대하여 이를 가볍게 여겨 공격하고, 오직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중하게 여겨 수신치국(修身治國)하는 인간 본연의 도(道)를 체득(體得)한 사람을 진인(眞人)이라 하여 신선설과 결부시켰다. 이 도가의 사상은 그대로 도교에 흡수되어 철리적(哲理的) 근거는 거의 이것에 의존하였다.

(4) 참위설(讖緯說) ―― 중국 한대(漢代)부터 오행설이 역(易)의 팔괘(八卦)와 결합하여 참위설이 성립되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이에 심취하였다는 일화가 있고 후한(後漢) 때(1세기부터 3세기까지)는 더욱 믿어지게 되었다. 참(讖)이라 함은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서 풀이되고 위(緯)는 경(經)에 상대되는 말이어서 경서(經書)에도 싣지 못하는 신비한 내용을 쓴 것이 위서(緯書)라고 풀이되므로 참위설은 유가와 방사(方士)의 합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간계(人間界)의 모든 것은 자연계(自然界)의 길흉의 상징으로서 나타난다고 설(說)하는 등 음양오행설의 강한 영향 밑에서 신비도(神秘度)를 깊게 하여 사람의 심리를 더욱 심층으로 이끄는 사상과 신앙이며, 음양오행설과 함께 도교에 받아들여졌다.

(5) 신선설(神仙說) ―― 도교의 핵심 요소로서 모든 민간신앙에서 수용된 잡다한 사상과 신앙이 그 효용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 이 신선설(神仙說)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3∼4세기경)부터 표면화한 신선사상은 일찍이 산둥반도(山東半島)의 북부 연안지방에서 방사(方士)들이 장생(長生)의 술(術)을 설하여 이것을 체득하면 불로장생(不老長生)했다는 전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부귀장생을 최고의 소망으로 여겼던 중국 민족의 현실적(現實的) 경향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구체적 방안으로서 고대 중국에서 전래(傳來)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 신선사상(神仙思想)과 신선술(神仙術) ―― 신선 혹은 선인(仙人)은 현신(現身)으로서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말하며, 그들은 때로 승천(昇天)까지한다고 되어 있다. 신선술(神仙術)은 신선이 될 수 있는 술법(術法)을 말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개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이 있으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의 방기략(方技略)에 신선10가(神仙十家)의 기술분화(技術分化)를 기록한 사실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들면 황제잡자보인(黃帝雜子步引)·황제기백안마(黃帝岐伯按摩)·황제잡자지균(黃帝雜子芝菌)·태일잡자황치(泰一雜子黃治)가 있고 후한 초의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의 <도허편(道虛篇)>은 신선사상과 신선술을 판단한 것이다.

그 밖의 술법으로는 염담무욕·양정애기(養精愛氣)·복식약물(服食藥物)·벽곡불식·도기양생(導氣養生) 등이 있으며, 내사법(內思法)·송경(誦經)·시해(尸解)·포박자(抱朴子)·삼신산설(三神山說)도 역시 신선술의 하나이다.

도교 교단의 성립과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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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敎敎團-成立-敎理

중국 역사상 중국인 자신에 의하여 도교적 교의(敎義)를 가지고 특수한 교단을 처음 세운 것에 후한말의 순제(順帝:2세기 전반경)때 장각(張角)의 태평도(太平道)와 3장(三張:張陵·張衡·張魯)이 세운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있었다. 3세기초에 오두미도가 한중을 휩쓸다가 삼국시대를 거쳐 5세기의 남북조 시대까지 도교는 교리와 신선도를 정비하고 원시 민간신앙을 탈피, 종교로서의 도교가 성립되었다.

이렇게 하여 교단종교(敎團宗敎)로서의 도교는 불교와 우열을 다투게 되었으며, 극단적으로는 <노자화호경(老子化胡經)> 같은 위경(僞經)과 신선설의 이론과 실제화를 내놓았고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정립시켰다.

수·당의 도교와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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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唐-道敎-

6세기 말과 7세기 초까지의 수·당시대 도교는 교단 완성의 때라고 할 수 있으며, 당의 왕실은 노자(老子)와 성(姓)이 같은 이(李)씨라 하여 노자를 조선(祖先)으로 믿고 고조(高祖)·태종(太宗)·고종(高宗:7세기) 때는 국가종교로서 그 지위를 높였다.

그 후 금조(金朝)때 와서 전진교(全眞敎)·태일교(太一敎)·진대도교(眞大道敎) 등이 성립되었고 원조(元朝)에는 정일교(正一敎)가 일어났으며, 그 중 대표적인 교단이 전진교(全眞敎)로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각국과 세계 각지에 그 이름을 달리하면서 널리 퍼져 있다.

끝으로 도교에는 교단도교(敎團道敎:成立道敎)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사이에 뿌리깊게 믿어져 내려오는 또 하나의 도교, 즉 민중도교(民衆道敎:通俗道敎)도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盧 在 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