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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도 교/도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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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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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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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敎-成立

도교에는 창시자가 없다. 도교는 불교나 그리스도교와 같이 개인격(個人格)을 가진 종교적 천재(天才)가 인간존재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진실을 파악해서 조직화한 종교가 아니다. 도교는 중국에 있어서 중국인의 종교적 자질(資質)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룩해 온 중국인의 종교적 전통(傳統)인 것이다.

중국 고대의 봉건사회가 붕괴하고 중앙집권적 왕조지배체제(王朝支配體制)가 확립될 즈음에 '도교(道敎)' 혹은 '도교적(道敎的)'이라고 불리는 종교적인 집단이 나타났다. 노자(老子)에 이어 황제(黃帝)를 개조(開祖)로 받드는 이른바 '황로(黃老)의 도'를 존숭하는 도가(道家)의 집단,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선설(神仙說)을 주장하는 집단, 이보다 약간 뒤의 일이긴 하지만 부록의 영력(靈力)으로 질병을 고치는 것을 교법(敎法)의 중심으로 삼는 태평도(太平道)와 오두미도(五斗米道)라는 집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인의 종교적 자질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서 후에 중국인의 종교적 전통의 윤곽이 되었다.

도교사(道敎史)의 서장(序章)이라고 할 이 시대 이후, 많은 종교가가 나타나 그 전통의 윤곽 속에서 각기 좋아하는 점을 선택하고 나아가 나름대로의 창의를 덧붙여 자기들의 종교를 창시했다. 이들 여러 종교는 공통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긴 하나 한편 각기 자주적 성격이 강한 만큼 상호의 구별의식이 있어 불교나 그리스도교 종파간(宗派間)에서 보는 것과 같은 동일 종교에 귀속한다고 하는 의식, 연대감(連帶感), 일체감(一體感)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 종교집단이 '도교'라고 하는 연대의식을 처음으로 갖게 하였던 계기가 된 것은 '불교'라는 외래종교의 전래(傳來)에서 비롯되었다. 전한(前漢) 말기에 전래된 불교가 서서히 그리고 착실히 중국사회에 뿌리를 뻗어가는 데에 자극을 받은 토착의 여러 종교들 사이에 비록 미미하기는 하나 비로소 일체감·연대의식이 성립되었으며 이후 점차로 확대되어 갔다. 이것은 외래종교인 불교에 대한 대항의식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동진(東晋)의 석도안(釋道安, ?∼385)에 의해 이룩된 한역불전(漢譯佛典)의 수립·정리는 도교사상(道敎史上)에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중국 토착의 종교측에서도 경전의 수집정리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하나의 종교집단이라는 작은 범위를 넘어서 통합되는 경향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체의 도교 경전(經典)을 편집한 것을 <도장(道藏)>이라 부르고 있다. 오늘의 도장은 그 후의 편집에 의한 것이다. 그 '3동4보(三洞四輔; 세 개의 중심부분과 네 개의 補完부분)'라는 편집방침은 당시에 시간을 두고 확립된 것이다. 이 3동4보라는 관념이 생긴 과정에서 당시의 토착종교측의 연대의식 내지 일체감의 성립·확대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최초에 성립된 것은 3동(三洞)으로서 이것은 4세기말에서 5세기초의 일이다. 이 부분에서는 모산파(茅山派)라는 종교집단의 경전이 최상위에 위치하였고, 다음으로 이 파(派)와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집단의 경전류가 계층적으로 위치하고 있었다. 이로써 먼저 모산파가 가까운 관계에 있던 집단에 대해 친근감 내지 연대감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4보(四輔)의 성립은 5세기말에서 6세기기초의 일로서 이 부분에 추가 분류된 것은 태평도(太平道)나 오두미도(五斗米道) 관계의 경전류(經典類), 도가(道家) 관계의 것, 신선사상 계통의 경전류 등으로서, 성립된 시기로 보면 중심경전인 3동(三洞)보다도 오랜 것이다. 이상으로 모산파와 그에 가까운 관계에 있는 집단 사이에 먼저 성립한 일체감 내지 연대의식이 약 1세기 사이에 오두미도(五斗米道:天師道) 계통·도가 계통, 나아가서 신선설 계통의 것 등 마침내 오늘날 도교라고 말하는 윤곽에 드는 거의 모든 전체에까지 확대된 것을 엿볼 수 있다. 3동4보라는 관념이 성립될 즈음에 '도교'라는 표현이 쓰인 것은 도교사(史)에 있어서 상징적인 일이다.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북위(北魏)의 구겸지(寇謙之, 365∼448)로서 그는 도교를 집대성한 사람, 또는 최초의 교단도교(敎團道敎)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또 중국인은 보통 도교의 교조(敎祖)는 노자(老子:道家의 祖라 한다), 개조(開祖)는 장릉(張陵:五斗米道의 창시자)으로 믿고 있다. 이 계통 관계는 문제가 없지 않으나, 이 관계를 최초로 제창한 사람은 구겸지(寇謙之)였다. 도교의 성립을 관찰하는 경우에 주목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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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家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출현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하나.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의 사상적 전통의 2대 지주(支柱)가 되어 왔다. 노자·장자(莊子)를 시조로 받들기 때문에 이를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 하나, '노자'라는 인물의 실재에는 의문이 많다. 또 기원전 3세기말경으로부터 유가(儒家)가 이상(理想)의 성천자(聖天子)로서 전설상의 제왕인 요(堯)·순(舜)을 들고 나오는 데 대항하여, 요·순보다도 더 오랜 인류 최초의 황제(皇帝)라 생각되는 황제(皇帝)를 노자에 선행하는 시조(始祖)로 받들기 때문에 '황로(黃老)의 학(學)'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대표적 경전으로서는 노자의 작(作)인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노자> 또는 <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장자의 작이라고 하는 <장자(莊子)>가 있다. 그 중심사상은 '도(道)'의 사상이며 도가(道家)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도(道)란 천지(天地)에 앞서 있는 것이며, 만물을 창조하는 근원이며, 천지만물에 빠짐 없이 널리 미쳐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간의 지각(知覺)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영묘(靈妙)한 것인데, '무위(無爲)하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는', 즉 자연스럽게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그리고 모든 현상은 이 도(道)의 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요컨대 도는 천지만물의 현상세계의 배후에 존재하면서 그것을 지배하는 근본원리 내지 진(眞)의 실재를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진(眞)의 실재인 도(道)의 본연의 자세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인간이나 사회의 모습이라고도 하는 것이 도가의 실천적 가르침인 것이다.

<노자>에서는 실천적인 관심을 현실적 성공에 두고 세속적 차원을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지만 <장자>에 이르면 현실세계의 갖가지 차별, 생(生)과 사(死)를 초월해서 무위자연인 도(道) 자체와의 합일(合一)을 목표로 한 종교적 신비주의에 중점이 옮겨지고 개인적 해탈(解脫)·구원이라는 색채가 짙어진다. 또한 <장자>에는 도(道)와의 합일에 도달한 종교적 엘리트(眞人 등으로 불린다)의 자유로운 경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우화(寓話)가 있다. 이 우화의 내용이 신선사상(神仙思想)에서는 현실적인 것으로 파악, 선인(仙人)의 이미지로 되었다. 현상계(現象界)의 차별이나 생사를 초월한 진인(眞人)은 갖가지 신통력(神通力)과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이룬 선인이라는 식으로 변화되어 마침내 도교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정착했다.

유가(儒家)의 사상은 중국의 전통사회를 전제로 하고, 거기에 예악적(禮樂的) 질서를 갖춘 조화의 세계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 합리적·공적 세계의 사상이나, 이에 대한 도가(道家)의 사상은 유가가 말하는 예악적 질서를 인위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이를 배척했으며, 세속세계를 초월한 자유로운 정신적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 비합리적이고 사적(私的)인 세계의 사상이었다. 도가에 의하여 형성된 이 개인적 종교의 전통은 한대(漢代) 초기의 황로(黃老)의 술(術)·위(魏)·진(晋)·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청담(淸淡)에 의해 계승되고 또한 오두미도와 신선사상을 거쳐 교단도교에 계승되었다. 그리고 육조시대(六朝時代)의 불교 수용(受容)의 기반이 된 것도 이 개인적 종교의 전통에 있었다.

신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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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仙說

불로불사의 신선 또는 선인(仙人)이 실재한다는 것과 인간이 선인이 될 가능성을 가졌다고 믿는 사상. 이 설은 기원전 3세기경 중국 산둥성(山東省)의 해안지방에서 발생하였다. 초기에는 인간이 선인으로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며, 선인은 인간계와는 별도로 불사(不死)의 약(藥)이 있는 낙원(樂園:方丈·蓬萊·瀛州의 三神山 등. 삼신산은 三東半島의 동쪽 해상에 있으며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으로 보이고 가까이 가면 없어져버리는 신기루와 같은 낙원)에 살고 있는 일종의 신(神)이라 믿었다. 또한 불사의 약도 신(神)과 인간을 중개(仲介)하는 방사(方士:일종의 샤먼)에 의해 제사(祭祀)를 통해서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이 기원전 1세기경부터는 인간이 선인으로 된다고 믿게 되었으며, 동시에 선인이 되면 불로불사의 초인적 신통력을 얻게 되고 천지 사이를 자유로 비상하는 것(도가계통의 이상을 그린 인간상)이라 하였다. 이후부터 선인이 되는 여러 가지 방법에 관한 설이 활발하게 나오기 시작하였다.

4세기가 되면서부터 신선사상은 불사(不死)를 얻기 위한 여러 방법과 함께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 의해 체계가 세워져 비로소 도교에 도입되었으며, 신천사도(新天師道)와 모산파에 의해 도교의 중핵적(中核的)인 요소가 되기에 이르렀다. 불사를 얻기 위한 여러 방법은 조식(調息)·도인(導引)·방중(房中) 등의 수행에 의한 양생법(養生法)과 불로불사의 약인 단(丹) 또는 금단(金丹)을 만들어 복용하는 것의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어느 것이나 육체 자체를 불사(不死)케 하는 것으로 되어 양자 병용이 중시되었다.

또 사람이 선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 결과적으로 과거의 인간으로서 선인이 된 사람들이 설정된다. 그가 바로 황제(黃帝)·노자 등이다. 이들 선인(仙人)들은 모두 산에 살고 있으며 하늘과 땅 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하고 때로는 인간계에도 나타나서 인간과 교섭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도교 제파(諸派)의 창시와 관련을 가진 신화(神話)에는 거의 모두가 선인 내지 선인과 같은 신(神)이 등장해서 창시자에게 근본경전이나 비전(秘傳), 또는 그들의 권위나 신의 보호를 보증해 주는 부록 등을 주고 있다. 또 선인이 되어 승천(昇天)했다고 하는 하는 창시자도 있다.

태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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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道

가장 일찍 성립된 도교적 종교 교단. 성립은 2세기 전반. 창시자는 우길(于吉)이나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장각(張角, ?∼184)에 의해 발전하였다. 이 교단의 경전은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로서, 여기에 보면 하늘의 신(神)은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인간의 생명을 증감(增減)하며, 질병은 그가 범(犯)한 죄과에 대한 신의 벌(罰)이라는 사과신(司過神)의 신앙을 볼 수 있다.

교법(敎法)의 중심은 병을 고치는 데 있는데 병자에게 자신이 범한 죄과를 반성시키고 신 앞에서 참회고백(懺悔告白)시킨 후 영력(靈力)을 지닌 부록과 물(水)을 먹이며, 9개의 마디가 있는 지팡이(九節杖)를 가지고 기도를 드린다.

장각은 10여 년간의 포교로 10만여 명의 신도를 얻어 이를 조직화하고 황하(黃河) 하류지역을 중심으로 종교왕국을 이룩하여 후한(後漢) 왕조에 반기를 들어 봉기하였다.

이때 머리에 황색 수건을 둘러 표시를 하였기 때문에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린다. 한때는 그 세력이 후한 왕조를 동요시킬 만큼 확대되었으나, 장각이 전사하자(184)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1년 남짓 후에 평정되었다. 그리고 그 잔당(殘黨)은 오두미도에 흡수되고 말았다.

오두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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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斗米道

천사도(天師道)·정일교(正一道)라고도 말한다. 후한 말기에 태평도보다 약간 뒤늦게 성립된 도교적 종교 교단. 창시자는 장릉(張陵)으로서 그는 유교에 정통하였으나 만년(晩年)에 이르러 유교는 장생(長生)에 쓸모가 없음을 깨닫고 장생법(長生法)을 배우려고 쓰촨(四川) 지방에서 수행(修行)하였다. 이때 황제(黃帝)가 선인(仙人)이 되기 위하여 먹었다고 전하는 약(藥:丹)을 만드는 방법을 익히고, 또 노자(老子) 이외의 많은 신(神)들로부터 <신출정일맹위(新出正一盟威)의 도(道)>라는 비술(秘術)을 받았다고 한다. 장릉은 이들 교법(敎法)으로써 병을 잘 고쳤기 때문에 수만의 신도를 얻어 종교 교단을 창시하게 되었다. 또 이 교단은 지방 교구를 분령(分領)한 제주(祭酒)라는 직제(職制), 즉 쌀·비단·기물·땔나무 등을 받아들이는 제도를 갖고 있었다. 오두미도의 이름은 바로 신도들에게 쌀 5두(斗)씩을 바치게 한 데서 유래된다.

장릉의 교법은 아들 장형(張衡)을 거쳐 손자 장로(張魯)에게 계승되었으며 장로에 의해서 대성되었다. 후한 멸망 직전의 약 20년간에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형태를 갖춘 독립왕국이 건설되었으며, 장로 자신의 사군(師君)이라 칭하여 세력을 펴나갔다. 교법의 중심은 병을 고치는 데에 있었고 그 기초에는 병이란 죄를 범한 자에 대한 신(神)의 벌(罰)이라는 신앙이 있었다. 방법은 천지수(天地水)의 삼관(三官:諸神)에게 범한 죄를 고백시키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을 맹서하는 일종의 증문(證文)을 1통씩 봉헌하여 신의 용서를 받는 이른바 <삼관수서(三官手書)>의 법이 있었다.

또 장로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에 주석(註釋)을 가한 생활규범을 만들어서 신도들에게 이를 지키도록 설교하였다. 교단조직은 행정조직과 일체가 되었다. 교구제(敎區制)를 취하여 지방교구·교회를 통괄하는 치두(治頭)를 두었으며 그 아래에 제주(祭酒)·간령(姦令)·귀리(鬼吏)·귀졸(鬼卒) 등의 계급을 만들었다. 또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숙박케 하는 의사(義舍) 등의 공공시설을 설치하였다. 이들은 각각 당시의 국가 통치기구를 옮긴 것으로서, 공적(公的) 교통·통신시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장로는 215년에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침공을 받아 항복하였으며 이로써 교단은 정치적 성격을 잃게 되었다. 장로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장성(張盛)은 장시성(江西省)의 용호산(龍虎山)을 본산(本山)으로 하여 교법을 전하였다. 그후 이 법계는 많은 변천을 거듭하면서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도 장릉 64대 자손이 타이완에 생존해 있다고 한다.

신천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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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天師道

5세기 전반에 북위(北魏)에서 발생된 천사도(天師道:五斗米道)의 개혁파. 처음으로 '도교'를 자칭했다. 창시자는 구겸지(寇謙之, 365∼448). 이 파의 특색은, (1) 오두미도의 전통 가운데 천사(天師)의 세습제와 타락한 남녀합기(男女合氣)의 술(術) 및 신도들에게 쌀·돈 등을 바치게 하는 제도 등을 부정(否定)한 것, (2) 세속의 법인 유교의 예(禮)를 존중한 것, (3) 복이(服餌)·조식(調息) 등의 신선설(神仙說) 계통의 장생법을 채용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주요 경전은 <운중음송신과계(雲中音誦新科誡)>(20권), <녹도진경(錄圖眞經)>(60여권) 등으로 세계관·신관념과 제신(諸神)의 계열·종교의례·의식·복제(服制)·윤리 등이 망라되어 있다.

신천사도의 교법과 경전은 구겸지가 수행중에 태상노군(太上老君:老子) 및 그의 현손(玄孫)이라 불리는 선인(仙人)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또 구겸지 자신은 노군(老君)으로부터 장릉(五斗米道의 開祖)이 죽은 후 적임자가 없는 채 빈자리로 있었던 '천사(天師)' 자리에 임명되어 도교를 바로잡으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구겸지는 오두미도 이래의 전통을 재검토하고 신선사상·유교·불교로부터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여 시대에 적합한 신종교(新宗敎)를 창시하였는데, 그 교법·경전을 노자에 따르게 하고, 노자 → 장릉 → 구겸지 라는 계보(系譜)를 확립하여 이 새로운 종교의 정당성의 근거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서 구겸지는 북위의 황제 태무제(太武帝)의 귀의(歸依)를 받아, 도교를 북위의 국교로 하기에 이르렀다. 태무제는 442년 황제의 권위와 신의 보호를 보증하는 도교의 부록을 받아서 도교군주(道敎君主)가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그후 북위 황제는 즉위시에 도교의 부록을 받기로 되었다고 한다. 태평도와 장로(張魯) 시대의 오두미도는 그 자체가 정치적 독립성을 지닌 종교정권으로서 종교와 정치는 일체가 되었었다.

북위의 국교가 된 신천사도의 경우는 종교가 정치권력에 의존하는 형태로 존재했다. 오두미도의 주대상은 서민이었다. 구겸지도 서민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왕실이나 귀족과의 공적·사적인 연결도 중시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 민중으로부터 종교가 유리된 경향을 띠게 되었다. 도교는 신천사도 이후 왕조 내지 귀족층에 의존한 국가진호적(國家鎭護的) 종교 내지 귀족적 종교와, 민간에 뿌리를 뻗친 민중종교로 분열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당대(唐代)와 송대(宋代)의 왕실과 도교의 관계는 전자의 경우의 대표적인 예이다.

모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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茅山派

3세기말부터 4세기에 걸쳐서 성립된 도교의 일파로서 오두미도와 별개의 것이다. 교단명은 장쑤성(江蘇省)의 모산(茅山)을 본산으로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개조(開祖)는 서진(西晋)의 재상(宰相) 딸인 위화존(魏華存)이지만 제9대 종사(宗師)인 도홍경(陶弘景, 452∼536)에 의해 대성되었다.

경전으로는 <상청경(上淸經)>이라는 일군(一群)의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 <태동진경(太洞眞經)>(39장)이 대표적이다. 이들 경전은 위화존 이외의 선인(仙人)이 강림(降臨)하여 구술(口述)한 것을 적은 것이라 한다. 출가주의(出家主義)의 도교로 '존사법(存思法)'이라는 일종의 내관법(內觀法)을 중요시하고 계율도 엄격한 종파였다. 강남(江南) 지방의 귀족층을 중심으로 전파되었고 서민에의 선교는 활발치 못하였다. 또한 왕조권력과의 관계가 그리 깊지 못하여 교단세력도 별로 대단치는 못했다. 그러나 <삼동경서목(三洞經書目)>의 저자인 육수정(陸修靜, 407∼477), 도홍경(陶弘景:저작에 仙人의 가르침이라는 <眞誥>, 諸神이나 仙人의 계통을 밝힌 <眞靈位業圖>가 있다) 등을 배출해 내는 등 도교교학의 형성이라는 점으로 보면 모산파는 도교 사상(史上)에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태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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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一敎

금대(金代)에 화북지방에서 발생한 신도교 3파 중의 하나. 성립은 1140년경. 개조는 소포진(蕭抱珍). <태일삼원(太一三元)의 법록>이 근본 경전. 당시 태일교는 부록을 써서 재앙을 제도(濟度)하였다 한다. 이는 종래의 도교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측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 중도(中道)를 중히 여기고 대처(帶妻)·음주(飮酒) 등을 엄금한 개혁적 측면도 있었다. 창립 초기에는 교세(敎勢)가 융성하였으며, 금(金)과 원(元) 왕실의 보호를 받아 몽고지방에까지 교세가 미쳤으나 원대(元代)의 중기를 지나서 법계(法系)가 단절되고 말았다.

진대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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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大道敎

금대(金代)에 화북지방에서 일어난 신도교의 하나. 창시자 유덕인(劉德仁, 1122∼1180)은 북송(北宋) 말기의 사회적 혼란을 체험한 사람으로서 1142년 우차(牛車)를 탄 백발 노인(老人:老子)으로부터 한 자루의 붓과 <도덕경요언(道德經要言)>이라는 한 권의 책을 얻어서 이를 근본으로 하여 신종교를 창시하였다. 이 파(派)는 종래의 도교와는 달리 부록을 사용하지 않고 불로장생·금단(金丹) 등의 설(說)도 말하지 않으며, <도덕경요언>을 간결하고 쉽게 풀이한 <서유진인사(書劉眞人事)>(9조)에 의하면 민중의 일상생활 윤리에 중점을 두고 충(忠)·효·(孝)·인(仁)을 쉽게 설명하였으며, 생업(生業)에 힘쓰고 본분(本分)을 지킬 것을 가르쳤다.

불교의 5계(戒)·10선(善) 등도 교법에 넣어서 유·불·도 3교를 융합한 경향이 강하지만 특히 유교색이 짙은 것이 특징이다. 성립 당초 세력이 번성하였고, 금(金)이나 원(元) 왕실의 보호도 받아서 한때는 몽고 남부로부터 강남지방에 걸친 넓은 지역에 포교되었으나 곧 왕실과 관계를 맺는 데에 중점이 옮겨져 마침내 민중으로부터 유리되고 원대(元代) 중기에는 교단 내에 분쟁이 일어나는 등 점차로 세력을 잃어 원대 말기에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전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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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眞敎

금대(金代)에 화북지방에서 성립된 신도교 3파 중의 하나. 정일교(正一敎:天師道)와 함께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본산(本山)은 베이징(北京)의 백운관(白雲觀). 창시자 왕중양(王重陽, 1120∼70)은 실패는 했지만 과거에 합격해서 관계(官界)로 출세할 것을 결심한 바 있으며 유교의 소양도 있었다. 또한 실의(失意)중에 불교에 귀의해서 깊이 깨달은 바 있는 사람이다. 1159년 선인을 만나 가르침을 얻은 것을 전기(轉機)로 해서 회심(回心)하여 열심히 수행, 1163년 신종교를 창시하였다고 한다. 처음은 고향인 셴양(咸陽) 부근에서 포교했으나 실패, 산둥반도에 나가서 비로소 성공하여 마단양(馬丹陽), 구장춘(丘長春) 등의 전진교 7진인(眞人)이라고 전하는 유명한 제자들을 얻었다. 전진교는 불로장생을 목적으로 주술(呪術)이나 부록·금단(金丹)을 중시한 종래의 도교적 방식을 취하지 않고 내용적으로 선종(禪宗)에 가까운 종교적 실천 수행인 진공(眞功)·진행(眞行)에 중점을 두었다. '진공'이란 심의(心意)를 깨끗이 하고 일체 욕념(欲念)을 버리고 마침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며, '진행'은 덕(德)을 쌓아서 세인(世人)을 구제하여 입신(入信)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 두 가지는 불교의 자리(自利)·이타(利他)에 해당한다.

개조(開祖)가 신도들에게 <효경(孝經)>(儒), <반야심경(般若心經)>(佛), <도덕경(道德經)> <청정경(淸淨經)>(道)을 읽게 하고 산둥지방에 만든 회(會)들을 보면 <3교평등회(三敎平等會)>·<3교금련회(三敎金蓮會)>처럼 모두 첫머리에 3교(三敎)라는 말을 쓴 것 등 전진교에도 유·불·도 3교를 융합하는 경향이 강한데, 진공·진행 외에 입교(立敎) 정신을 나타내는 <중양입교십오론(重陽立敎十五論)>에 운유(雲遊:雲水)·불립문자(不立文字)·타좌(打坐)·삼계(三界)를 초월하는 것 등에 대해서 서술된 것처럼 특히 선계(禪系)의 불교색이 짙어서 중국화(化)된 불교라고 할 정도다. 그렇지만 교단 자체는 노자의 도를 깨친 동화제군(東華帝君)이라는 선인(仙人)을 교조로 앉히고 전진교를 노자(老子)에 결부시키고 있다.

왕중양(王重陽)이 죽은 후, 그 뒤를 계승한 마단양(馬丹陽)에 의해 교단의 기초가 굳혀졌으며, 나아가서 다음의 구장춘(丘長春)은 칭기즈칸의 신임을 얻어 원(元) 왕실과 관계를 가지게 됨으로써 교단세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원대(元代)의 중기 이후에 이르러 구(舊)도교의 금단(金丹)을 중시하는 경향이 부활되어 성립 당초의 혁신적 요소는 점차로 희박해지고 교단 세력도 점차 쇠퇴해 갔다.

민중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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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衆道敎

중국의 민간에서 행해지고 있던 일체의 신앙 및 종교관행(宗敎慣行)의 총칭. 정일교(正一敎:天師道=五斗米道)·신천사도·모산파·전진교 등 중국의 종교적 전통 속에서 성립한 도교 교단이 왕실이나 귀족층과 공적 혹은 사적으로 연결을 갖고 국가진호적 종교나 귀족적 종교 내지 전문적 종교가의 종교라는 성격이 짙어서 일반민중의 종교생활로부터 유리되어 가는 것에 반하여 민중도교는 어디까지나 중국의 일반민중의 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종교적 염원에 부응하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교단도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싱크레티즘(Syncretism) 경향이 강하고, 유교나 불교를 비롯한 마니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로부터도 숭배의 대상 기타 요소를 도입하고 있는데 그 경우에도 민중의 종교적 염원이 취사선택(取捨選擇)의 기준으로 되어 있다. 그 조직·형태·내용은 다양하나 종교집단의 형태에서 보면 (1) 촌락이나 직업집단 등의 공동체 종교, (2) 기성(旣成)의 도교교단으로 보면 신흥종교라고 해야 할 종교결사(宗敎結社), (3) 반드시 집단형태를 취하지 않는 미신·속신(俗信)까지 포함한 민간의 신앙이나 종교적 관습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국에서 왕조정부의 지배기구 말단에 있어서 그 체제를 지탱하고 있던 것은 농촌에서는 촌락공동체(村落共同體), 명(明)·청(淸) 시대의 도시에 있어서는 동일 직업인(同鄕의 출신이기도 함)이 모여서 형성하는 동업집단(同業集團)으로서, 이들은 일종의 자치조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자치조직이 공동으로 행하는 것이 공동체의 종교이다. 농업생활의 계절적 리듬에 따라 정기적으로 촌묘(村廟)를 중심으로 제사를 지내어 촌락공동체 성원의 일체감·귀속의식(歸屬意識)을 재확인하고, 촌락사회의 통합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촌락공동체 종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촌묘는 한국에서의 사당(祠堂)과 비슷하며 사당에서와 같이 제신(祭神)이나 제신의 수도 일정하지 않다.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비롯한 토지신(土地神)·관제(關帝) 등의 재신(財神), 삼관(三官), 농업에 관계있는 신농(神農), 용왕(龍王) 등의 제신(諸神), 낭랑(娘娘)이라는 여신(女神) 등 도교의 제신 외에 관음(觀音) 등 불교계통의 신도 제사 지내졌다. 도시의 직업집단도 묘(廟)를 설치해서 날을 정하여 성원(成員)이 모두 참가하는 제례를 행했다. 신앙 대상으로서 묘에 받드는 신(神)은 주로 출신 촌락의 제신(祭神)이나 수공업적 단체의 경우는 그 기술의 발명자 내지 그 업종에 관계를 갖는 인물을 '조사(祖師)'로 받들고 있다. 출신지 제신의 경우도 동업자의 치부(致富)를 위한 신 또는 수호신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홍수·한발·기근 등의 자연재해나 전란 등으로 중국 사회가 위기적 상황에 처하면 평시에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던 신흥종교적인 결사(結社)가 활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때는 지연적(地緣的) 공동체의 범위를 초월한 종교로서, 사회적 위기에 처해서는 대규모적인 사회개혁운동을 일으키거나, 때로는 반란으로까지 발전한다. 멀리는 후한 말기의 태평도나 오두미도가 있으며, 원(元) 말기부터 명·청시대에는 백련교(白蓮敎) 및 그 계통의 종교결사, 배상제회(拜上帝會:太平天國)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대부분의 결사는, 예를 들면 백련교 계통의 보권(寶卷)이나 태평천국의 조서류(詔書類)와 같은 여러 가지 종교 경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일종의 구세주 신앙, 현체제를 부정하는 종말사상(終末思想), 전통적인 대동사상(大同思想) 등 이상사회를 향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중국 민중의 종교적 염원은 다분히 현세적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장수(長壽)·건강·부귀 등 현세의 행복이 종교심의 기초가 되어 있다. 그들은 그 현세적인 염원을 달성하기 위하여 절대력을 지닌 상제(上帝:天帝)를 숭배하고 신통력을 가진 불로불사의 선인(仙人)을 존경하며 자연현상을 주재하는 제신(諸神)을 제사지내고 <삼국지>에 나오는 촉한(蜀漢)의 유명한 용장 관우(關羽)와 은(殷)의 충신 비간(比干)을 신으로서 숭배했다. 이들 신이나 선인은 중국인의 현세적인 염원을 이루어주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것으로 믿어 숭배되었던 것이다. 한편, 일상생활의 행동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한다고 하는 생각이 중국인의 종교생활의 기본이 되어 왔다. 전문종교가가 종교생활의 첫째 조건으로 적선(積善)을 드는 것을 비롯하여, 민중종교에 있어서도 인간 개인의 일상생활을 감시하는 조신이나 삼시신(三尸神) 혹은 성황신(城隍神:서낭신)이나 토지신 등, 또 이들의 신의 보고에 입각하여 인간 수명(壽命)의 장단(長短)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결정하는 천제(天帝), 지옥의 염라(閻羅) 등의 사명신(司命神), 사과신(司過神)이 신앙되었다. 이 사상이 단순화 내지 합리화되면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일상생활의 결과인 것으로 된다. 일종의 자력주의(自力主義) 종교로서 이것은 유교 특히 송학(宋學)에 통하는 것이다. 명·청 시대에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음즐문>·<공과격(功過格)> 등 <선서(善書)>가 대유행했는데 여기에서 중국인의 현세주의·윤리주의적 종교관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민중도교는 명·청시대에 특히 성행했다. 불교이거나 도교이거나간에 교단종교는 이 시대에는 활력을 잃고 민중으로부터 고립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민중은 각기 필요에 따라서 교단종교와는 별개의 종교체계를 만들어냈는데 물론 그것을 구성하는 제요소의 근원을 더듬으면 도교·유교·불교·그리스도교 등 다양하지만, 이미 형성된 것을 보면 위의 어느 것도 아닌 '중국근세 민중종교'라고 해야 옳겠다.

사상·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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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종교사상의 전통에 있어서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로 생각되어 온 것. 천지만물에 선행해서 존재한 것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해 내는 근원이며, 우주를 지배하는 대조화(大調和)의 이법(理法)이다. 중국인의 윤리도덕의 근저에는 이 우주의 궁극적 실재 내지 우주의 이법이 새겨져 있는데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에서는 전혀 대조적인 결론을 내놓고 있다. 도가는, 도(道)는 인간의 지각(知覺)을 초월한 영묘한 것이고, 그 존재 형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도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고 인지(人智)의 소산인 현상세계의 차별(差別:制度規範·生死 등)을 넘어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대우주의 조화에 이르는 길(道)이라고 설명한다. 이와같이 도가가 일체의 인위(人爲)를 피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유가는 '도'라는 대우주의 이법은 대우주와 똑같은 구조의 '인간'이라는 소우주에도 잠재해 있으며, 이 인간 내부의 도(道:道理)를 찾아내어서 이에 따르는 것이 대우주의 조화='천(天)의 도(道)'에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도가가 '대도(大道)가 쇠퇴함에 인(仁)·의(義)가 출현했다'라고 비판하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라는 윤리덕목의 실천이야말로 대우주의 조화=천의 도에 이르는 '인(人)의 도'라 설파하고 있다. 또한 현상세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음·양의 2원소를 드는 음양설(陰陽說), 목·화·토·금·수의 5요소를 드는 오행설(五行說)이 있다. 이것은 각기 들고 있는 원소나 요소로써 도의 존재를 그 현상에 따라 설명하는 입장이다. 중국인의 세계관이나 역사관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흥미 있는 일이다. 도교에서는 '도'가 신격화되어서 최고신인 원시천존(元始天尊)으로 되었다.

불로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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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老不死

이것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생명의 영원을 염원하는 심정의 중국적 표현이다. 그리스도교가 영혼과 육체를 확실히 구별하고 내세에 있어서의 영혼 불멸을 문제로 삼는 데에 대하여, 중국인은 영혼과 육체를 확실히 구별하는 생각을 갖지 않고 이 세상에 있어서의 생명체(生命體) 그것의 문자대로의 불로불사를 문제삼았다. 만물은 '기(氣)'라는 하나의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 오직 영원한 것은 순수(純粹)·정치(精緻)·경묘(輕妙)한 우주의 근본 세(勢)라고도 할 수 있는 기(氣:元氣)로 되어 있으며, 인간을 죽게 만들고 있는 것은 같은 '기'라 할지라도 불순·조잡·둔중(鈍重)한 '기'이다. 그러므로 전자로 후자를 대체하면 인간도 불로불사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위한 수행방법·약물(藥物)을 찾으려 고심하였다. 이것이 신선설 내지 신선술로서 중국인의 현세주의적 종교관을 여실히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상이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이며, <포박자(抱朴子)> 등에 의해 정리되어 이윽고 도교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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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人 신선(神仙:神僊)이라고도 말한다. 처음에는 인간과는 별개의 신(神)으로 간주되었으며, 방사(方士:일종의 샤먼)의 중개로 인간에게 불로불사의 약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여겼다가, 뒤에는 도가사상과 결합되어 인간이 수행에 의하여 이룩할 수 있는 것으로 되었다. 불로불사로서 초인적 능력을 지니고 속세를 초월한 중국인의 이상적 인격상(人格像)이다. <포박자>에 의하면 일단 죽으면 바로 선인이 되는 시해선(尸解仙. 예:漢의 武帝), 수행을 쌓아서 단약(丹藥)을 복용하면 천선(天仙)이 될 수 있는 지선(地仙. 예:彭祖), 또한 낮에 승천하여 천지의 사이를 자유자재로 비상하면서 천상계(天上界)에 살고 있는 천선(天仙. 예:黃帝)의 3종이 있다. 선인은 인간계에도 자유로이 출현하여 인간과도 교섭을 가지며 수행자에게 경문류(經文類)나 비전(秘傳)을 주기도 한다. 또한 도교 교단의 창시(創始)와 관련된 신화 가운데 자주 등장하여 그 교파(敎派)의 교법에 권위를 부여해 주는 것도 선인이었다.

원시천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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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始天敎

도교의 최고신. 옥황(玉皇) 또는 옥황상제(玉皇上帝:玉皇大帝)라고도 한다. 하늘과 땅이 아직 분리되지 않고 혼돈 상태에 있을 때에 최초로 생겨서 신(神)으로 된, 말하자면 천지의 정(精)이며 세계의 개창자(開創者)이기도 하다. 자연히 화생(化生)한 태원옥녀(太元玉女)와 통해서 천황씨(天皇氏)를 낳고 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를 거쳐서 황제(黃帝)가 된 때에 국토가 열리고 인간이 번식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요컨대 <노자도덕경>에 서술된 '도(道)'가 신격화된 것으로서 천지만물 생성의 시원(始源)이며 인과(因果)의 법칙을 초월해서 영원히 존재하는 절대자이다.

그가 살고 있는 장소는 36천(天) 가운데 최고의 천인 대라천(大羅天)의 옥경산(玉京山) 꼭대기에 있는 현도(玄都)로 여기에서 제신(諸神)을 거느리고 있다고 전한다. 또 도교의 교주(敎主)로서 도교의 가르침은 원시천존의 가르침이라는 설(說)도 있다. 원시천존의 신앙은 남북조시대 초기에 발생하여 당대(唐代)에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불교사상의 영향을 볼 수 있었는데 당 말기의 천존 상(像)은 불상(佛像) 바로 그것이었다.

태상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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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上老君

노자(老子)를 신격화한 것. 장자와 함께 도가의 시조. 이 계보가 그대로 신선설을 주장한 신선가(神仙家)를 거쳐서 도교에 도입되어 도교의 교조로 숭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실재는 의문이다.

한대(漢代)에 와서는 성(姓)이 이(李)라고 말하기도 하고 주(周)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던 고관(高官)으로서 유교의 개조인 공자도 노자에게 예(禮)를 물었다고도 전하며, 끝에는 함곡관(函谷關)에서 관리의 청탁으로 <노자도덕경>을 남기고 서방으로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졌다고도 한다. 또 어머니의 태내(胎內)에서 81년이나 있다가 어머니의 좌액(左腋)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벌써 머리털이 백발이었기 때문에 '노자(老子)'라 말하고 태어날 때에 오얏나무(李樹)를 가리켰기 때문에 이(李)라는 성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역대(曆代)마다 나타나서 황제(黃帝) 시대에는 황성자(黃成子), 요(堯)의 시대에는 무성자(務成子)가 되었다는 등 갖가지 전설이 더하여 차차로 신격화되었으며 마침내는 원시천존의 화신(化身)으로까지 되었다.

태상노군이 된 것은 6세기경부터로 당대(唐代)에는 당 왕실의 성과 노자의 성이 같은 이(李)라는 점에서 당실(唐室)의 조상으로도 숭앙되었으며 절대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신천사도 기타 교단도교 제파는 노자와의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지어서 자파(自派)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려 하였다. 그 때문에 이들 교단의 창시와 관련된 여러 신화에는 자주 태상노군이 등장하여 창시자들에게 그 정통성을 인가해 주는 부록이나 그 교단의 근본경전·비법을 주는 등, 주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또 민중도교에서도 근본성전인 <태산감응편(太山感應篇)>은 태상노군의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천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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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天上帝

북방 하늘의 상제(上帝)를 가리킨다. 북극성이 신격화된 것. 북극성제군(北極星帝君)·자미북극대제(紫微北極大帝)라고도 불린다.

밤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공(天空)을 회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에 있는 천계(天界)의 제왕이라고 하였으며, 자연현상과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믿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대우주와 인간의 세계와는 같은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호간에 감응(感應)하고 있다는 관념이 있어서 이로부터 별에 대한 신앙이 왕성하여졌다. 이 별의 신앙에 소박한 천문학적 지식이 결합되어 북극성 신앙이 성립된 것이다. 또한 별에 대한 신앙은 북극성에 한하지 않았으나 동·서·남·북의 4방에 있는 별 가운데 특히 북방에 있는 별이 더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북극성을 하늘의 중심으로 생각한 관념 때문이었다. 현천상제 외에도 북두신군(北斗神君)·문창제군(文昌帝君)의 신앙이 활발했는데 어느 것이나 북두칠성과 관계가 있다.

북두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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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斗神君

북두칠성이 신격화된 것. 중국에 있어서 별에 대한 신앙의 하나이다. 도교에서는 중앙 및 사방에 두성(斗星)이 있다고 하며 북극성(北極星:天帝)에 가까워 특히 북두칠성이 존중되었다고 한다. 하늘에 있으면서 인간의 죄과(罪過)를 기록해 두고 그 수명(壽命)의 장단을 결정짓는 신(神)이다. 또 7성(七星) 가운데 제1성(星)을 괴성(魁星)이라 불렀으며 이는 문운(文運)을 관리하는 신으로서 과거(科擧)에 응시하는 사람들에게 신앙되었다.

문창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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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昌帝君

문창성(文昌星)이 신격화된 것. 문창성은 북두칠성 가운데 여섯개의 별을 제외한 제1성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문창부(文昌府)라는 천제(天帝)의 관청이 있고, 문창제군은 천제로부터 문창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한다. 그 전신(前身)은 황제(皇帝)의 아들로서 몇 번이나 태어나 인간계에 내려왔는데, 최후로 태어난 때에는 장악자(張惡子)란 이름을 한 사람이었다 한다. 또는 장악자는 진(晋)왕조에 봉직하다가 전사(戰死)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시초에는 인간의 행·불행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신앙되었지만 그 이름에 '문(文)'자가 있고 또한 과거를 보는 사람들에게 기서(奇瑞)를 나타냈다고 하는 전승(傳承)도 있어서 뒤에는 문(文)의 신으로 과거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신(守神)이 되었다. 옛 중국에서의 출세는 과거를 거쳐 관리가 되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문자(文字)를 알아야 하는 것이 필수조건으로 되었다. 이로써 곧 문자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영력(靈力)을 지닌 것이 되어 문자가 적힌 종이는 귀중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이것을 석자지(惜字紙)라고 말하며, 이 신앙도 문창제군과 관계를 지어서 만약 문자가 적힌 종이를 소홀히 취급하면 곧 문창제군의 질책을 받는다고 믿었다. 문창제군은 또 문자에 관계 있는 인쇄업·서점·문방구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조사(祖師)' 즉, 직업신으로도 불리었다. 이 신에 대한 신앙은 명대(明代) 이후 널리 일반에 유포된 <음즐문>이라는 <선서(善書)>가 이 신의 가르침이라는 점으로 해서 널리 일반인들로부터 신앙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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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의 신. 일가(一家)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관장하고 있다. 옛날에는 '오사(五祀)', 즉 5가지 제사의 하나로서, 호(戶)·문(門)·행(行) 또는 우물·실내의 4신(神)과 함께 한 가정의 수호신이었다. 그 신앙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중국 각지에서 행해져 왔으므로 갖가지 이설(異說)이 많다. 최근에는 한 가정의 길흉화복을 맡는 신으로 도교의 최고신인 옥황상제의 부하로서 각 가정에 파견되어 그 가족의 언어와 행동을 감시하고 1년에 한 번씩 승천해서 상제(上帝:大帝)에게 보고하는 남녀 2주(柱)의 신. 상제는 이 신의 보고에 근거하여 가정에 화복(禍福)을 주기 때문에 이 신이 승천하는 음력 12월 23일 밤에는 각 가정마다 정성어린 의례가 행해졌다. 부뚜막 위에 붙인 종이로 된 신상(神像) 앞에 갖가지 공물(供物)을 바치는데 그 중에서도 엿(飴)이나 술지게미는 특히 흥미롭다.

이 신에게 엿을 먹게 하는 것은 입을 다물게 하여 한 해 동안 가정에서 일어난 악사(惡事)를 천제에게 보고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며, 술지게미로는 신이 취해서 임무를 잊어버리게 하자는 데에 있다고 전한다. 한밤중에 공물과 함께 신상을 태워버린다. 이때 조신이 승천한다고 한다. 이것은 불에 탄 것은 모두 승천하는 것으로 믿는 데서 연유한다. 옥황상제가 있는 곳까지 올라간 조신은 7일간 천상에 체재하다가 12월 30일에 다시 각 가정으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각 가정은 이때 신상을 다시 부뚜막 위에 붙이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린다. 조신이 승천하는 23일 이후는 신년을 맞을 준비가 시작되며 이 신이 돌아온 30일에 준비는 끝났다. 조신의 제(祭)는 중국에서 송년(送年)의 축제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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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尸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상시(上尸)·중시(中尸)·하시(下尸)의 3신을 말한다.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체내에 살고 있는 벌레가 본체(本體). 상시는 머리·눈·이빨·코 등 인체 상부의 모든 기관(器官)을, 중시는 내장기관을, 하시는 인체 하부의 비뇨기·순환기 계통을 침범하여 병을 일으키거나 쇠약하게 만든다. 또 삼시는 경신(庚申)과 갑자(甲子)의 날 밤중에 사람이 잠든 후 신체로부터 빠져나와 승천하고 인간의 생명을 맡은 사명도인(司命道人)에게 그 사람의 과실을 보고하며, 도인(道人)은 그 보고에 의해 무거운 과실에 대해서는 300일, 가벼운 과실이면 3일간 그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한다. 삼시의 해를 면하기 위해서는 도부(桃符)라는 부적의 영(靈)에 의뢰하는 방법과 수경신(守庚申)이라는 종교적 관행이 있다. '도부'라는 것은 옛날부터 사기(邪氣)를 억눌러 백귀(百鬼)를 제압하는 선목(仙木)으로 믿는 복숭아 나무로 만든 부적(符籍)이다. 수경신(守庚申)이라는 것은 경신의 날에 철야해서 청정하게 보내는 일로서 이것은 사람이 잠자는 동안에 신체를 빠져나와 승천하는 삼시를 방해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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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官 천(天)·지(地)·수(水)의 3신(神). 기원은 오두미도의 삼관수서(三官手書)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북위(北魏) 시대부터 상·중·하의 삼원(三元)으로 나누어 상원천관(上元天官)은 상원의 날(1월 15일)에, 중원지관(中元地官)은 중원의 날(7월 15일)에, 하원수관(下元水官)은 하원의 날(10월 15일)에 태어났다고 전하며, 그것이 각각의 제일(祭日)로 되었다. 천관(天官)은 복(福)을 주는 신, 지관(地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는 신, 수관(水官)은 물이나 불의 재앙을 막아주는 신이다.

토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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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地神

촌락의 토지 및 주민의 평안과 행복을 지켜주는 신. 원래는 오곡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었지만 후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 전반을 지켜주는 신으로 되었다. 신상(神像)은 백발흑의(白髮黑衣)의 노인이고 신체(神體)는 일정치 않으며 지역사회에서 공로가 큰 사람이 죽으면 이에 임명된다고 전한다. 다른 신들과 함께 촌묘(村廟)에 합사(合祀)되어 공동체의 제사를 받으며 민중 각자와도 친근해지고 무슨 일이나 생기면 참배하는 습관이 있었다. 명계(冥界)의 신으로는 최하위이기 때문에 보다 상위의 신들로부터 감독을 받는다고 한다.

성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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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隍神

중국에서 성곽이 있는 지역의 수호신. 토지신의 상위에 있는 명계(冥界)의 신이나 토지신과 마찬가지로 옥황상제의 밑에 있으며 그 지역의 평안, 사람의 행복을 지켜주는 신이다.

신체(神體)는 일정치 않으며 흔히 그 지역의 공로자가 신으로 받들어진다. 토지신과 같이 민중에 친근한 신이다. 때문에 술을 마셔서 옥황상제에게 꾸중을 들었다거나 과실을 저질러 좌천되었다고 하는 민간설화가 많다. 성황신의 신앙은 삼국시대에 시작되어 송대(宋代)에는 번성하였다.

풍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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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대제·포염라(包閻羅)라고도 불린다. 도교에서는 지옥신. 도교의 지옥은 쓰촨성(四川省) 풍도현의 선도관(仙都觀)이라는 도관(道觀)에 있는 우물을 내려가면 그곳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곳은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태양이 빛나며 훌륭한 궁전도 있고, 명계(冥界)의 관리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단 명계(冥界)의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고 걸을 때도 땅을 밟지 않으며 공중을 밟고 다닌다고 한다. 이 지옥을 맡아 다스리는 신을 토지의 이름을 따서 풍도신이라고 칭했다. 지옥에서는 사자(死者)가 생전의 언어와 행동에 의해 심판된다. 풍도신의 신앙은 남북조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다. 명·청 시대에는 이 지옥 입구의 우물에 지옥에서 통용되는 종이돈(紙錢)을 태워서 바치지 않으면 그해에는 반드시 유행병이 발생하는 것으로 믿었으며, 사람들은 해마다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지전(紙錢)을 태웠다고 한다.

이것은 염라(閻羅)의 세금, 명토(冥土)의 세금이라 불리었다. 이 우물을 내려가 풍도신과 만나서 세금을 폐지하도록 교섭한 지사(知事)의 이야기가 있다. 지사는 그때 명계의 복마대제(伏魔大帝:關羽)와도 만났다고 전한다.

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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財神 재산을 불려주는 것으로 믿어진 복(福)의 신. 3종류가 있다. 무재신(武財神)이라 불리는 관제(關帝), 문재신(文財神)으로 불리는 비간(比干), 조현단(趙玄壇)을 중심으로 여기에 4신을 보탠 5현재신(五顯財神) 혹은 5로재신(五路財神)이다. 이들은 단독으로 모셔지거나 합사(合祀)되거나 혹은 기타 제신과 합사되거나 한다. 관제 등은 공동체의 주신(主神)으로 신앙되는 일도 있었다.

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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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帝

촉한(蜀漢)의 무장(武將)인 관우(關羽)를 신격화한 것. 복마대제(伏魔大帝)·관성제군(關聖帝君)이라고도 불린다. 도교에서는 명계(冥界)의 가장 유력한 신으로 믿으며 민중 사이에는 재산을 모아주는 신이라 하여 절대적인 신앙을 받고 있는 무재신(武財神)이다.

관우는 <삼국지>에서 유명한 유비(劉備)의 명장으로서 신의(信義)가 두텁고 협기(俠氣)가 풍부하면서 금전에는 담박한 호걸이었다는 점에서, 이 신에게 빌면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믿어 재신(財神)이 되었다고 전한다. 관제 신앙은 당대(唐代)에 시작되었고 청대(淸代)에서 왕실의 신앙을 얻어 더욱 융성했다.

또 선서(善書)의 하나인 <각세진경(覺世眞經)>이 관성제군의 가르침이라 믿었기 때문에 민중 사이에도 그 신앙이 성행하였다. 중국 각지에 관제를 주신으로 한 관제묘(關帝廟), 또 송(宋)의 명장인 악비(岳飛)와 합사(合祀)한 관악묘(關岳廟)가 있는데,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화교(華僑)도 거주지구의 한 구역에 관제묘를 지어 숭배하고 있다.

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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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干

관제가 무재신(武財神)인 데 대해서 비간은 문재신(文財神)의 대표격이다. 비간은 중국 고대의 은(殷) 왕조 최후의 왕이면서 폭군으로 유명한 주왕(紂王)의 충신이다. 그는 나라를 걱정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주왕을 간(諫)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반드시 들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재신(財神)으로 우러러 받들게 되었다고 한다. 비간 이외의 문재신으로는 춘추시대 제국(齊國)의 부강에 힘쓴 관중(管仲), 월왕(越王)인 구천(勾踐)의 시대에 나라의 재흥(再興)을 위해 진력한 범려 등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5현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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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顯財神

5로재신(五路財神)이라고도 불린다. 조현단(趙玄壇)을 중심으로 초재·초보(招寶)·이시(利市)·납진(納珍)의 4신(神)을 통합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5신은 모두 원수(元帥)의 칭호를 가진 무신(武神)이다. 조현단은 비간과 더불어 은의 주왕의 신하이며 용감한 무장이었다. 주(周)의 무왕이 주왕(紂王)을 쳤을 때에 무왕의 군사와 용감히 싸우다가 마침내 무장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에게 패해서 죽고 은은 망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공망이 그 공(功)을 치하하여, 조현단으로 다른 신(神)을 거느리게 하여 인간의 복록(福祿)을 맡는 신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때부터 5현재신의 신앙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5로재신이라고도 불리는 것은 그가 도조신(道祖神)으로서 사자(死者)의 영을 명계(冥界)로 인도하는 신임과 동시에, 현세에 있어서도 사방오로(四方五路)의 재(財)를 긁어모으는 신으로 신앙된 데서 유래된 것이다. 제일(祭日)은 정월 2일로서, 이날의 재신묘(財神廟)는 새해 초이기 때문에 한 해의 복록을 기원(祈願)하는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날 재신묘를 참예(參詣)하고 그곳에 마련되어 있는 지전(紙錢)을 빌려 와서 한 해 동안 자기의 집에다 두었다가 이듬해에 배(倍)로 만들어 돌려주기도 하고, 또는 소원이 이루어져서 재산이 크게 불어난 때는 10배로 반환했다고 전한다.

동악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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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岳大帝

태산부군(泰山府君)이라고도 불린다. 5악(五惡:東·西·南·北·中의 5개의 名山) 가운데 동악 태산에 있는 태산부(泰山府)라는 관청의 장관(長官). 태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진(秦) 시황제(始皇帝)와 한(漢) 무제(武帝)가 봉선(封禪)의 제(祭)를 한 후부터 더욱 신비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쪽에 있는 동악태산은 만물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장소로서 인간생명의 장단(長短)도 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태산부(泰山府)를 인간의 수명을 맡은 관청으로 여겼다. 동악대제는 천제의 손자이며 이 태산부의 장관으로 숭앙되었다. 그래서 동악대제를 모시는 동악묘(東岳廟)가 각처에 건설되었다.

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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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王

천지를 창조했다고 전하는 8대용왕의 수장격(首長格). 용(龍)은 상상해낸 가상의 동물이긴 하지만 신비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또 용왕은 뇌전(雷電)·풍우, 그리고 큰 하천·호소(湖沼) 등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래서 5월∼7월 중에 촌락공동체에서는 용왕에게 기우제(祈雨祭)를 올리는 행사가 행해졌었다.

낭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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娘娘天

도교의 여신(女神)들의 총칭. 동악대제의 딸인 벽하원군(碧霞元君)을 필두로 다수의 여신이 있다. 이들은 좋은 연분·출산·육아, 자손의 번영, 질병의 쾌유, 장수·치부(致富) 등의 임무를 분담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져 특히 여성들 사이에 신앙되었다. 자손(子孫)·두진(痘疹)·성공(聖功)·최생(催生)·안광(眼光) 등의 낭랑이 있다.

수행법·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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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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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善

선행(善行)을 쌓는 일. 어느 종교이건 간에 어떤 형태의 세속 윤리를 내포하고 있지만 도교에서는 특히 더 중요시되어 일반신도나 전문종교가를 가릴 것 없이 그 종교생활의 전체 내지 기초로 삼고 있다. 선행이 모자라거나 한 번이라도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 밖의 다른 종교적 실천이나 수행을 비록 많이 쌓았더라도 모두 무효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원하는 바의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으로 믿는다. 반대로 선행만 쌓으면 비록 다른 종교적 실천이나 수행을 특별히 행하지 않았더라도 조사(早死)는 면할 수 있다고 한다. 도교가 목적으로 삼는 일은 불로불사 내지 불로장생으로서 벽곡·복이(服餌)·조식(調息:服氣)·도인(導引), 나아가서 내사(內思:存思)·좌망(坐亡) 등의 여러 방법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적선(積善)' 한 가지가 전제조건으로 되어 있는 점이 도교의 특징이라 하겠다.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윤리가 도교에서는 종교목적과 관련지어져 있는 것이다. 후한의 오두미도(五斗米道)·태평도,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나 금대(金代)에 일어난 전진교(全眞敎), 그리고 명·청시대의 <선서(善書)>는 이런 관념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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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五穀:稻·黍·稷·麥·豆)을 먹지 않는 것. 오곡은 조잡하고 불순한 기(氣)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먹고 사는 인간이라면 죽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므로 불로불사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을 피하는 도리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선인(仙人)은 안개(霞)를 먹고 살고 있다고 하며 이것이 속신(俗信)의 근거가 되어 왔다. 이 수행법의 기초에는 천지만물은 '기(氣)'라는 하나의 물질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기'는 천지(天地) 사이에 순수하고 정치(精緻)하며 일정한 형태가 없는 상태(이 상태를 천지의 근원의 勢로서 천지와 함께 영원한 '元氣'라고 말한다)로부터 조잡하고 불순하며 형태를 지닌 상태까지, 단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만물을 구성하고 있다고 하는 중국 고래의 우주관(宇宙觀)이 있다. 이런 관념이 신선설에 도입되어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은 조잡하고 불순한 '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순수하고 정치(精緻)한 영원한 '원기'로 바꾸면 인간은 불로불사의 선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벽곡·조식·도인 등 일련의 수행법이 성립되었다.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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調息

복기(服氣)·태식(胎息)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평안하게 하는 일종의 호흡법인데, 이것은 천지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원기'를 흡입, 체내에 저장하여 인간의 신체에 불사(不死)를 가져오게 하는 수법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벽곡을 소극적 수행법이라 한다면 이것은 적극적 수행법인 것이다.

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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導引

신체를 굴신(屈伸)하거나 마찰하거나 하여 혈액의 순환을 좋게 하는 안마·체조라고도 불리는 건강법으로서 조식(調息)과 병용하는데, 탁한 '기'를 체외로 배출하고 원기를 체내에 저장하는 수행법을 뜻한다.

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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房中

규방(閨房) 중에서 행하는 실천법이다. 벽곡·조식·도인이라는 일련의 수행법과는 별도로 음양설 계통에 기원을 둔 실천법이다. 즉 인간의 성(性) 본능을 거부하지 않는 도교에 도입되어 불로장생을 위해 체내에 있는 음양의 2기(氣)를 조화시키는 실천법이다. 성행위를 행할 때에 지켜야 할 일, 또 그와 관계되는 약물 등이 그 내용이다. 나아가서 불륜(不倫)의 관계를 경계하는 등, 본래는 불성실한 것이 아니었으나 성관계를 다룬 만큼 후에는 차차 음란한 일로 되어버렸다.

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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服餌

인간 신체를 불사케 하는 약(藥:仙藥 또는 丹藥이라 함)을 복용하는 것. 식물류에서 금속·광물류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것이 약 재료가 되었으며 또 그 약품에 따라 복용법이나 효능이 정해져 있다. 최상의 약은 '금단(金丹)'이라 불렸다. 이것은 금석(金石)을 가열하거나 냉각하거나 해서 그 정기(精氣)를 환약으로 지어 만든 것이나 그 목적은 황금(黃金)이 지닌 불변성에 있었다. 황금을 복용해서 신체 자체를 불변한 것으로 만들면 그에 의해 불로불사를 얻는 것으로 믿었다. 이 착상(着想)을 준 것은 단사(丹砂:黃化水銀)의 환원성이었다. 단사를 태우면 수은을 석출(析出)해내는데 그 수은을 식히면 황과 화합하여 다시 단사가 된다. 여기에서 그들은 단사를 복용하는 경우에는 수은으로부터 더 나아가 황금도 석출해낸다고 믿었다. 물론 이 약을 제조하는 단계나 복용하는 단계에는 갖가지 '터부(tabooː禁忌)'나 종교적 실천이 필수조건으로 되었는데 황금을 석출하는 단사(丹砂:金丹)가 인간 육체 자체를 불로불사케 하는 것이라 하여 중요시되었다. 금단은 고대의 소박한 의약 지식과 초보적인 화학 지식에 종교적인 요소(신앙이라고 말한다)가 결합되어 성립한 것으로 실제는 맹독(猛毒)인 것이다.

실제로 도교를 맹신(盲信)한 당(唐)의 왕실에서 금단을 복용하고 도리어 수명을 줄인 황제가 여섯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신선이 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금단의 복용은 더욱더 성행했다고 한다. 금단을 복용하는 것은 조식·도인 등과는 별개의 계통이지만 도교에서는 병용되었다.

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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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思

도교의 내관법(內觀法). 존사(存思)라고도 말한다. 사람이 멀리 한 산야(山野)에 묻혀 제신(諸神)이나 신선을 찾는 단계에서 방향을 바꾸어 정신을 자기의 내부에 향하고 거기서 신을 발견하려 하는 높은 종교적 실천단계의 수행법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대상은 인체 내의 오장육부(五臟六腑)에 편재하는 제신으로서 이 신들은 자칫하면 체외로 빠져나가는데 그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을 가다듬어 제신이 체외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장생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이 수행법은 인간 외부의 대우주에 편재하는 신들은 동시에 인체라는 소우주에도 대응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인체소우주론(人體小宇宙論)'이라는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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坐亡

수일(守一)이라고도 한다. 종교적 천재·엘리트들만이 가능한 일로서 우주의 근본원리인 '도(道)'와의 합일을 뜻하고 있다. 내사(內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엑스터시를 수반한 명상(冥想)의 경지로서, 도교에 있어서 종교신비주의적 수행법이다. '도'와의 신비주의적 합일의 경지는 생사(生死)를 초월한 경지로 육체의 불로불사를 문제삼는 정신상태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이 경지는 도가 계통의 전적(典籍), 특히 <장자(莊子)>에 실린 우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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齋醮

도교의 기도의식. 재(齋)는 심신을 청정히 하는 것, 초(醮)는 단(壇)을 만들어 주식(酒食)을 바쳐서 신에게 제사 올리는 것. 재초(齋醮)란 신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도사(道士)가 단을 만들고 제신을 권청(勸請)하여, '청사(靑詞)'라는 일종의 축사(祝詞)를 주상(奏上)하며 기도하는 의식이다. 권청되는 제신(諸神)은 도교 최고신 원시천존(元始天尊)의 화신(化身)인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의 3청(淸)을 비롯하여 열성(列聖) 360분위(分位), 성위(星位) 3600 등 다수의 신들로서 이들의 위패(位牌)가 늘어서 있는 앞에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향화(香華)·등촉(燈燭) 기타 제구(祭具)를 진열한다.

재초의 내용은 천변지이(天變地異)를 다스려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 제왕의 복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것, 조상과 사자(死者)의 영혼을 제도(濟度)하는 것,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것, 널리 일반민중의 복리를 기원하는 것 등 매우 다양하다. 재초의 형식이 정리된 것은 남북조시대로서 도교가 당시 왕조의 신앙을 얻은 당대나 송대에는 특히 번성하여 하나의 국가적 행사가 되었었다.

조직·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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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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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觀

궁관(宮觀)이라고도 불리는 도교의 사원(寺院)이다. 도관의 시초는 4세기 후반으로서 북위(北魏) 시대부터 불교사원과 비슷한 체제가 되었다. 도교가 왕조의 신앙을 얻어 보호를 받은 시대, 특히 당대(唐代)에는 우후죽순(雨後竹荀)처럼 건립되었다. 도관은 십방총림(十方叢林)이라고 하는 '대도관'과 보통의 '소도관'으로 분류된다.

소도관은 몇 사람의 도사(道士)들이 있어서 신을 모시고 기도를 하거나 수행을 쌓는 곳이며, 십방총림인 대도관은 종파의 구별 없이 널리 천하의 도교자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수행도장(修行道場)으로서, 장차 도사가 되고자 하는 도교자들이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는 도관인 것이다.

최근에까지 전진교계(前進敎系)·정일교계(正一敎系)·모산파계(茅山派系) 등 다수의 종파가 있었지만 도관에는 종파별 차별관계가 없다. 전진교의 본산인 베이징(北京)의 백운관(白雲觀), 정일교의 본산인 용호산(龍虎山)의 태청궁(太淸宮) 등 전통적으로 특정 종파와 관계를 갖는 몇 개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도관은 종파색을 찾아볼 수 없다.

종파의 문제는 도관에서 사는 도사 개인 차원의 문제일 따름이다. 또 도관은 경제적 기초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속에 대한 종교활동이 활발하고 왕실이나 귀족층의 보호와 민중의 귀의(歸依)를 얻은 때는 번영하였으나 그렇지 못한 때는 비참하였다. 근세 이후에는 특히 그런 경향이 현저하였다. 왕실로부터 토지·농민을 기진(寄進:喜捨) 받아서 마치 장원지주(莊園地主)와 같은 대도관도 있긴 했지만 이것은 특별한 예일 뿐이고 전반적으로는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그 일부를 학교로 이용하거나 상점으로 빌려주기도 하였다. 또 도사들도 타락하여 일반사회의 경멸을 받기도 하였다.

교단도교의 시설이 바로 도관이지만 그 밖에 민중도교의 시설로는 묘(廟)가 있다. 촌락에 위치한 촌묘(村廟), 직업단체의 묘, 또는 일반민중의 재신묘(財神廟)가 그것이다.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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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士

도교의 전문적 종교가. 여성의 도사는 특히 여관(女冠)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종교생활을 세세히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계율을 지키고 여러 가지 수행법을 실천하면서 세속을 초월한 이상(理想)의 선인(仙人)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제신(諸神)과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영력(靈力)을 지닌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도사가 만든 부록들은 인간의 염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신뢰되었으며, 또한 신에게 뭔가 소망이 있을 때는 도사에게 기도를 청했다. 그래서 도사들은 특수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서 한때는 병역과 납세의 의무가 면제되는 특권을 부여받았으나 근세에 이르러 도교 자체가 쇠퇴해지자 종교생활도 문란하여졌으며 도사들이 종교가로서의 위의(威儀)를 지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구걸행각(求乞行脚)을 하는 도사까지도 생겨나게 되었다.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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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藏

도교의 경전류를 모은 것으로 불교의 대장경과 같은 것이다. 도장의 성립은 당대에 비롯되었지만 현행의 도장은 명(明)의 정통년간(正統年間:1436∼1449)에 이루어진 <정통도장(正統道藏)>(5305권)과 만력년간(萬曆年間:1573∼1619)에 추가된 <속장(續藏)>(180권)을 합하여 모두 5485권이다. 청(淸)의 도광(道光) 25년(1845)에 중수(重修)되었으며 1925년에 상하이(上海)에서 사진판이 간행되었다. 원본은 베이징(北京)의 백운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통도장>은 삼동사보(三洞四輔)로 분류된다.

삼동(三洞)은 동진(洞眞)·동현(洞玄)·동신(洞神)의 3부(部)로, 동진은 대승(大乘), 동현은 중승, 동신은 소승의 각 교법을 전하는 것이라 한다(불교의 3승의 관념을 빈것). 사보(四輔)는 삼동의 교법을 돕는 4부(部)를 의미하는데, 이에는 태현(太玄)·태평(太平)·태청(太淸)·정일(正一)의 4부가 있다. 태현은 동진을, 태평은 동현을, 태청은 동신을 돕고, 정일부는 삼동 전체를 통일한다는 의미를 갖는다(天台宗의 一乘三乘의 관념을 빌린 것). 그리고 삼동은 각각 본문(本文)·신부(神符)·옥결(玉訣)·영도(靈圖)·보록·계율(戒律)·위의(威儀)·방법(方法)·중술(衆術)·기전(記傳)·찬반(讚頒)·표주(表奏)의 12류(類)로 세분되고 있다(불교의 12部經의 관념을 빌린 것). 이와 같이 <삼동사보12류>라는 분류법 자체는 불교의 관념을 빌려서 성립된 정연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경문류(經文類)의 배분은 실제로 극히 무질서하여 매우 잡다하다. 이것은 중국 토착의 '도교'라는 종교가 지닌 교학의 미숙(未熟)과 그것의 역사적·내용적인 잡다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삼동사보에 대한 사고방식의 성립에 대해서는 '도교의 성립' 참조).

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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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書

중국의 민간에서 행해진 권선(勸善)의 서(書). 민간의 의료서나 음식의 공덕을 적은 것도 있으나, 일상윤리에 관계된 것이 민간도교의 성전(聖典)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유·불·도의 3교를 융합한 내용의 것으로, 갈홍(葛洪, 282∼343)의 저작인 <포박자(抱朴子)>도 선서의 선구(先驅)가 되는데, 특히 명·청 시대에 왕성하였다.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각세진경(覺世眞經)>·<음즐문>·<옥력지보초>·<공과격(功過格)> 등은 대표적이다. 또한 선서는 그 밖에도 무수히 있으나 작은 소책자여서 몇 종류를 모아 간행된 <경신록(敬信錄)>·<성세록(醒世錄)>·<관제보훈(關帝寶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