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힌 두 교/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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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힌두교 전사(前史)[편집]

베다의 종교[편집]

Veda-宗敎

북서 인도에 침입한 아리아인에 의해서 대략 기원전 1500년 전후에 발달한 인도의 고대종교. 그 밑바탕에는 인도 원주민족의 원시신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아리아인의 인도-게르만적 요소 외에 제신과 영웅의 명칭·의식(儀式) 등에 인도-이란적(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종교생활의 특색은 하늘·해·달·풍우·산천 등의 자연현상이 갖는 신비력을 신격화하고 그것을 숭배하는 소박한 다신교(多神敎)이다.

그것은 순수한 인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아리아인이 그들의 고향인 카프카스 지방을 방황하고 있던 무렵의 풍습이 반영되었던 모양으로, 예컨대 천신숭배(天神崇拜)에서는 이란의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에 대응하는 것과 같은 바루나(Varuna)신(神)의 존재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연신적 성격의 제신에게 희생을 바치거나 신덕(神德)을 찬양하는 주문을 외어 제신의 은혜를 받으려는 공희(供犧)를 중심으로 한 종교를 일반적으로 '베다의 종교'라고 부른다. 그것은 '베다'라고 하는 인도의 오랜 문헌에 의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베다의 제신[편집]

Veda-諸神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이며 제신에 대한 1000여 찬가(讚歌)를 수록한 <리그베다>에 의하면 베다 종교의 제신은 33신을 헤아리며 천상(天上)·중공(中空)·지상(地上)의 3계(三界)로 나뉘는데 제각기 좌(座)를 갖고 있다. 예컨대 서광(曙光)의 신격화(神格化)인 '우샤스(Ushas)', 태양신의 '수리아(Surya)' 등은 천상에, 폭풍우의 신 '인드라(Indra)'와 그 부하인 제신들은 중공에, 그리고 불의 신 '아그니(Agni)'와 주신(酒神) '소마(Soma)' 등은 지상에 그 위치가 정해져 있었다. 이 밖에 동식물이나 기구(器具), 혹은 추상적 관념 따위가 신격화된 것도 있었으나 많은 신들이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제신 사이의 관계나 행위는 인간적 경향이 강하고 이 제신에 대해 사람들이 적당한 제사를 지내면 적극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험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방법으로서는 사람이 선덕(善德)을 쌓는 것으로가 아니라 찬가(讚歌)와 공희(供犧)의 향응(饗應)으로써 제신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데 있다.

소마주[편집]

Soma酒

공희(供犧) 중심인 베다의 종교의례에서는 제신에게 산양(山羊)의 고기 등 희생물과 곡식·젖 등의 농산물 및 축산물을 바쳤는데 그 가운데 '소마주'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이것은 일종의 신주(神酒)로서 소마초(草)를 가공하여 만든 흥분성이 강한 술이라고 하며 그 황홀한 도취감이 신비스러운 영력(靈力)을 생각하게 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소마주 자체도 신격화되기에 이르렀다. <리그 베다>에서는 소마신에 대한 찬가를 많이 볼 수 있다. 소마주를 바치는 의식으로는 아그니 슈트마가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신전이나 신상(神像)이 아직은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대개의 경우 들판의 빈터에 제단을 설치하고 성화(聖火)를 밝혀 아그니의 신에게 산양을 바치고 제관(祭官)이 부르는 찬가에 따라 신주를 짜내어 내림(來臨)한 제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단일신관[편집]

單一神觀

베다 종교의 중심은 복잡한 공희(供犧)와 제사(祭詞)였으므로 이윽고 그것에 대한 전문 제관(祭官)이 나타났으며, 그들은 시주(施主)의 의뢰로 그 소망의 실현을 제신에게 빌었다. 그러한 경우, 그 소망을 들어준다고 여겨지는 신은 최대의 찬사로 찬양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점에 있어서는 최고의 신으로서 숭앙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 순간에 다른 소망을 들어주는 신과 바뀌기 때문에 막스 뮐러(M.Muller, 1823∼1900)는 '베다의 종교'에 단일신교(單一神敎:henotheism) 또는 교체신교(交替神敎:kathenothe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베다의 종교는 물론 다신교이지만 뒤의 힌두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일신교적 경향에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라문교[편집]

婆羅門敎

베다의 종교 위에 <브라만(梵)> 신앙이 바라문이라고 불리는 사제자(司祭者) 계급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를 말한다.

그것은 뒤에 힌두교로 발전·전개되나, 명확한 종교체계를 갖는다기보다는 인도의 전통적인 민족생활과 사회구조에 기반을 갖는 정통적 철학사상 및 그 신학이나 제사의례 등의 종교현상 전반을 총칭하는 경우가 많다.

카스트 제도[편집]

Caste制度

카스트란 포르투갈어의 카스타(casta)에서 유래된 것이며 원래 혈통을 뜻하는 말이나 일반적으로는 인도 사회의 특징인 4성제도(四姓制度)를 가리킨다. 이미 선주민족인 드라비다인 사이에도 통치자·사제직·상인·농노 등의 구별이 있었으나 기원전 1000년경부터 갠지스강 유역에서 씨족제(氏族制) 농촌 사회가 발달하자 이윽고 브라만(Brahman:司祭階級), 크샤트리아(Kshatriya:王族·武士階級), 바이샤(Va­isha:庶民階級), 수드라(Sudra:奴隸階級)의 4성제도가 확립되었다. 이 분류는 <리그 베다>의 <원인가(原人歌)> 등에 의해 바라문은 원인(原人) 푸르샤의 입, 왕족은 양팔, 서민은 두다리, 노예계급은 두발로부터 태어났다는 식의 종교적 근거가 부여되고, 브라만을 정점으로 하여 왕족, 서민, 노예라는 순서로 사회구조가 고정화하여 각 카스트에 직제·의무·금기(禁忌) 등이 엄연히 정해졌다. 이러한 것들은 <법경(法經:다르마 수트라)>이나 <법전(法典:다르마 사스트라)>에서 볼 수 있다. 이후 더 많은 서브 카스트가 파생되어 인도인은 어느 한 카스트에 속해 태어나고 그 안에서 여러 제약을 받으면서 성장해야만 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 카스트 사회에서 단순한 종교적인 것뿐만 아니라 모든 점에서 최고의 특권이 부여된 것이 '브라만'이다. 바라문교 및 그 발전적 형태인 힌두교는 불교나 자이나교와는 달리 브라만 지상주의(至上主義)인 이 카스트 체제를 성립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에 힌두교 사회는 이에 따르는 폐풍으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탈피할 수가 없었다.

다르마 수트라[편집]

Dharma sutra

<법경(法經)>이라고 번역하나 법뿐만 아니라 널리 종교·도덕·관습 등의 다방면에 걸쳐 브라만족의 일상생활을 규제한 것. 베다 성전(聖典)의 보조적 문헌의 하나로 평가되나 여러 종류의 것이 전해지고 있으며, 가장 오랜 것은 기원전 4, 5 세기경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제사의례는 전문직인 브라만 계급의 전유물(專有物)이었으나 처음에는 한편에 있어서 탄생이나 혼례의 의례 같은 민간에게 행해지는 것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브라만 계급의 세력이 신장됨에 따라 이러한 민간의례도 장악하게 되었으며 모든 의례나 생활 행사·카스트 의무 등 정식(定式)을 교조화(敎條化)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누(manu)법경> 및 그것을 보수(補修)했다고 하는 <마누 법전>은 가장 완비된 대표적인 것으로 바라문 교도의 실제생활을 규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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業 카르만(karman)의 번역. 원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인과(因果)의 연쇄관계에 놓여지는 것이며 행위 자체로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거기에는 과거·현재·미래와 같이 잠재적으로 지속하는 일종의 초월적인 힘이 감득(感得)되어 있으며 흔히 시간(時間:kala)·천명(天命:daiva)·천성(天性:svalhava) 등의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떤 사람도 피할 수가 없으며 그림자가 형체에 따라다니듯이 업은 서 있는 자의 곁에 서 있고 가는 자의 뒤를 따라가며, 행위하는 자에게 작용을 미친다(<마하바라타>)고 한다. 이러한 인과관계에 입각한 행위론은 당연히 선업선과(善業善果)·악업악과(惡業惡果)와 같은 윤리적인 '인과의 법칙'을 낳게 하였다. 바라문교 사회에서는 어떤 특정의 카스트에 태어난다는 것도 그에 상응하는 전세(前世)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업(業) 사상은 광범위하게 인도 제종교의 전체 속에 들어 있어서 불교 및 자이나교에서도 특색있는 업설(業說)을 전개하였으나, 인도사상의 정통(正統)인 바라문교나 힌두교에서 가장 강조되었다.

윤회[편집]

輪廻

현세는 과거 행위의 결과이며 미래는 현세의 행위로 정해진다고 하는 업의 사상과 표리일체가 되어 윤회전생설(輪廻轉生說)이 발달하였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불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인도인은 이 세상에서 공덕을 쌓으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복락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재생도 영구한 것이 아니라 다시금 죽는 수도 있다고 하여 마치 갠지스강물이 흐르듯이 영원토록 사람은 생사의 유전(流轉)을 되풀이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윤회(輪廻:samsara)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식물 일체의 것과 여러 신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며, 이처럼 만물이 윤회하게 되는데 인간이 전생(轉生)하는 과정으로 <우파니샤드>는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숲에서 고행(苦行)을 쌓은 자는 죽은 후 화장될 때 그 불길에서 나와 여러 과정을 거친 뒤 태양·달·전광(電光)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는 신이 되고 다시금 인간세계로 퇴전(退轉)하는 일이 없는 신도(神道)와, 마을에서 제사나 선행을 행한 자가 화장의 불길로부터 여러 곳을 거쳐 허공·바람·구름·비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와 생물의 태내(胎內)에 들어가서 인간이나 동물로서 재생한다는 조도(祖道)의 2가지이다. 이때 선행을 한 자는 브라만·왕족·서민의 카스트에 태어나게 되며 추행을 한 자는 동물이나 천민으로 재생한다. 또한 고행이나 제사도 지내지 않는 극악무도한 자는 앞서 말한 두 도(道)와는 달리 제3의 곳에 떨어져 미세한 벌레가 되어 전생을 계속한다고 하였다.

해탈[편집]

解脫

많은 타민족에게 있어서 사후의 세계는 영원한 종착점이지만 인도의 윤회사상으로 본다면 무한한 유전(流轉)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으므로 절대적인 안락을 찾을 수는 없다. 궁극적인 안락을 얻기 위해서는 생생유전(生生流轉)의 굴레에서 벗어나 윤회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어야만 한다. 이 윤회계박(輪廻繫縛)에서 풀려나와 번뇌를 벗어난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해탈(解脫:vimukti)이라 하고, 바라문 교도뿐만 아니라 인도의 모든 종교의 최대 소원이기도 하였다. 특히 바라문교에서는 해탈에의 길로서 제사나 계율의 엄수, 기도나 명상 등이 있으나 이러한 것을 일관하여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금욕적인 고행이다. 해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트만과 브라만의 합일(合一)로서, 개아(個我)와 최고아(最高我)의 동일(同一)이 직관적으로 파악되면 당장에 모든 고뇌가 소멸되는데 그것이 곧 해탈이다. 그리하여 개아의식의 기반인 육체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번뇌를 단멸(斷滅)시키고자 단식이나 불면 등의 여러 고행이 거듭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라문교에서는 해탈은 재생족(再生族)으로 불리는 서민 이상의 카스트에만 한정되어 있고 평생을 두고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예 계급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는 카스트를 부인하고 보편적인 해탈을 주장한 불교나 자이나교는 바라문교의 차별적인 해탈관에 대하여 혁신적인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또한 힌두교는 카스트 사회의 신분상 차이를 긍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전제로 하면서 종교적 의례의 실천에 의한 4성(四姓) 전체의 구제를 주장했다.

자이나교의 해탈[편집]

Jaina敎-解脫

자이나교는 불교와 함께 같은 시대의 인도에서 창시된 종교이다. 원래 무신론이며, 교조인 바르다마나(Vardhamana)는 불타와 동시대 사람으로 왕족 출신이었다. 30세경에 출가(出家)하여 13년의 고행정진 끝에 대오(大悟)하여 지나(Jina:勝者) 또는 마하비라(Mahavira:大勇)라고 일컬어졌다. 자이나교란 번뇌를 극복한 승자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이 교리는 우주를 영혼과 비영혼으로 나누고 비영혼을 다시 다르마(활동의 조건인 물질), 아다르마(정지의 조건인 물질), 허공, 물질의 넷으로 나누어 영혼과 합쳐 5개의 실재체(實在體)를 이룬다.

영혼은 상승성(上昇性)을 지니며 일체지(一切知)이고 행복이며, 물질은 하강성을 지니고 업의 힘으로 주변에 부착하여 윤회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이 윤회를 해탈하려면 불살생(不殺生)·불망어(不妄語)·불투도(不偸盜)·불음(不淫)·무소득의 도덕적 생활 및 금욕적 고행을 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만 이미 얻은 업(業)을 소산(消散)시키고 새로운 업의 누입(漏入)을 방지하여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바라문교와는 달리 카스트를 초월하여 널리 해탈을 주장했으며 불교와는 다른 고행을 강조한 점이 특색이라고 하겠다. 자이나교는 후에 백의파(白衣派)와 공의파(空依派)로 나뉘었다.

브라만[편집]

Brahman

바라문교 교설(敎說)의 최고이법(最高理法)을 나타내는 우주의 근본원리. 아트만이 인격적 원리라면 브라만은 중성적(中性的) 원리라 할 수 있다. 중국어로는 '범(梵)'으로 음역(音譯)된다. 브라만은 원래 <리그 베다>의 찬미가·제사(祭詞)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브라만 계급에 의해 제사 만능 시대가 되자 거기에 간직된 신비한 힘으로 간주되면서 앞서 나타난 창조신 프라자파티의 창조물 중 하나가 되고 이어서 그것과 동일시되었으며, 마침내 그것을 예속시키고 우주 창조의 이법(理法)이 되었다. 이러한 만유(萬有)의 근원인 '중성(中性)의 범(梵)'은 많은 사상가들의 사유 대상이 되었지만, 널리 인도 민중 숭배의 중심이 된 때는, 그것이 남성적이며 유일 최고의 인격신 '브라마(Brahma, 梵天)'로 확립된 이후이다.

아트만[편집]

Atman

원래는 호흡을 뜻하는 말이다.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조건이기 때문에 생기(生氣)·신체(身體)·본체(本體)가 되고 다시 사람의 본성(本性)인 정수(精髓)·영혼으로서 개인통일의 원리로 생각되었다.

<우파니샤드>나 베단타 철학에서는 자아(自我) 또는 개아(個我)를 나타내는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이 아트만과,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며 우주 자체인 보편아(普遍我:梵)와의 일체화를 이상으로 하였다.

4베다[편집]

四Veda

바라문교의 성전(聖典)은 수가 많으나 그 성질상 근본성전으로 볼 수 있는 것과 그것의 주석이나 제사·의례의 규범(規範)으로 볼 수 있는 것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근본성전에는 4종류가 있으며 이를 4베다라고 한다. 베다(veda)란 지식을 뜻하며 종교제사에 관한 지식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4베다의 하나인 <리그 베다>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인도·아리아인(人)의 자연신 숭배를 반영하는 제신에 대한 찬가를 수록한 것이다. <야주르 베다>는 제사(祭詞)의 집록(集錄)이며 여기에 산문조(散文調) 주해(注解)가 붙은 것을 흑(黑)야주르, 제사(祭詞)만 있는 것을 백(白)야주르라고 한다. <사마 베다>는 가창용(歌唱用)으로 정리된 찬가를 수록한 것이며, <아타르바 베다>는 <리그 베다>와 흡사하나 후대에 성립된 것으로 제사(祭祀)기도의 주문(呪文)이 수록되어 있다.

전승적(傳承的)으로는 <아타르바 베다>를 제외한 3베다가 특히 존중되었던 것 같다. 각 베다에는 <브라흐마나>라는 제사에 관한 주석서(註釋書)나 <아라니야카(森林書)>·<우파니샤드(奧義書)>가 포함되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종교 문헌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말미암아 후에 많은 학설과 학파를 낳게 하였다. 베다 성전의 성립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대체로 서기전 2000년으로부터 서기전 2500년경 사이로 추정된다.

우파니샤드[편집]

Upanisad

베다 성전의 마지막에 있으며 그 성전의 참뜻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여 베단타(Vedanta)라고도 하는 부분. 원래 스승과 제자가 대면해서 전수(傳授)되는 교리상의 비의를 뜻했으므로 <오의서(奧義書)>라고도 하였다. 산스크리트로 쓰여졌으며 대략 기원전 600년부터 3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고(古) 우파니샤드>와 그 후 계속해서 10수세기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신(新) 우파니샤드>가 있다. 그 내용은 일관된 철학적 사상의 전개라기보다는 명상이나 내관(內觀)에 의한 신비체험이 철학적 비유로 표현된 것이 많고 또한 범신적(梵神的) 경향이 짙다. 신구(新舊)의 잡다한 사상이 혼입되어 있으나 바라문교의 철학, 종교사상의 근거가 되었다.

<고(古) 우파니샤드>의 중심 과제는 브라만(Brahman:梵)과 아트만(Atman:我)의 본질론 및 이 둘의 일체론이다. 범(梵)은 우주의 근본적인 이법(理法)이며 아(我)는 개인의 본질인데 이러한 것들이 1원론(一元論)으로 통일되어 있다. 업(業)에 의하여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인간이 고행(苦行)·선정(禪定)으로써 '범(梵)과 나는 하나'라는 경지에 도달하면 윤회의 구속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체득(體得)하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후에는 그것을 신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바라문교 철학의 제파[편집]

婆羅門敎哲學-諸派

베다 성전이 주장하는 바를 긍정하는 정통 바라문교 내부에서의 베다의 보조문헌으로서 천계경(天啓經), 가정경(家庭經), 율법경(律法經), 제단경(祭壇經) 등 많은 수트라(sutra:經)와 종교철학적 시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여러 가지 철학적 학설이 전개되었다. 그 주요한 것은 여섯 가지가 있어서 흔히 6파철학(六派哲學)이라고도 한다. 상키아 학파와 요가파, 니아야파와 바이셰시카 학파, 미망사 학파와 베단타 학파이며, 이러한 파는 두 파씩 성격이나 발달 기원 면에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상키아 학파[편집]

Samkhya學派

한역 불전(韓譯佛典)에서는 수론파 (數論派)로 번역된다. 시조는 카필라 (Kapila:BC 4∼BC 3세기의 사람)라고 하며, 6파 가운데에서 가장 오랜 것. 이 파는 1원론적(一元論的)인 <우파니샤드>의 철인(哲人) 우다라카의 유(有:sat)가 정신적인 원리이면서 동시에 물질 전개(展開)의 원리이기도 함을 비판하고 정신적 원리로서의 신아(神我:푸루샤), 물질적인 원리로서의 자성(自性:프라크리티) 또는 승인(勝因:프라다나)이라고 하는 2원론을 수립하였다. 처음에는 이 2원론을 통일하는 최고신으로서의 범(梵)을 시인하고 유신론에 바탕을 두었으나 후에는 이를 부정하고 무신론적 2원관이 되었다.

푸루샤(神我)는 순수의식으로서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고 다만 프라크리티(自我)를 관조(觀照)할 따름이다. 그러나 질료인(質料因)인 프라크리티는 물질을 전개하는 힘을 지니며 그 결과로서 나오는 물질은 구성의 우열에 따라 차이가 생겨나고 푸루샤와 결합하여 개체가 된다. 개체의 세계는 고(苦)이며 그것은 푸루샤와 프라크리티의 결합에 유인(由因)된다. 그러므로 푸루샤가 물질로부터 떨어져나간 상태에 이르는 것이 해탈(解脫)이다. 그렇지만 푸루샤는 불변순수(不變純粹)이기 때문에 해탈에 의한 변화는 없다. 해탈을 위한 푸루샤의 지(智)를 얻기 위해서는 요가의 수행(修行)이 강조되었다.

요가파[편집]

Yoga派

이론을 위주로 하는 상키아파에 대하여 해탈을 위한 요가의 수행과 실천을 중시한다. 마음의 집중통일을 꾀하는 수행법이 곧 요가(yoga)이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있었으나 <우파니샤드> 이후 요가로 불리게 되었다. 사상적으로는 상키아파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무신론적인 그것과 다른 점은 푸루샤를 최고신과 동등시하는 유신론에 입각한다는 점이다. 해탈을 위한 명지(明智)를 얻기 위해서는 금제(禁制), 즉 불살생·불망어(不妄語)·불투도(不偸盜)·정결·불소득(不所得)과 권제(勸制), 즉 결제(潔齊)·만족·고행·학습·귀의, 좌법(坐法:規定된 자세로 앉는 것), 조식(調息:호흡을 조정하는 것), 제감(制感:感官을 제어하는 것), 집지(執持:마음을 집중통일시키는 것), 선정(禪定:관념을 집중시키는 것), 삼매(三昧:자기를 대상에 몰입시켜 無가 되는 것)의 8단계 수행(修行)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파의 근본성전은 <요가 수트라(5∼6세기경에 성립)>이다. 이와 같이 요가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조정·집중하여 개아(個我)의 '상태(常態)'를 초월하고 신비적인 힘에의 접근을 지향하는 의지적인 실천적 기법(技法)이며, 불교를 매개로 하여 티벳 등지에 전해졌다.

미망사 학파[편집]

Mimamsa學派

미망사란 원래 숙려(熟慮)·고찰(考察)·고구(考究)라는 뜻으로 베다 성전의 해석이나 연구를 가리킨다. 근본성전은 개조(開祖) 자이미니(BC 2세기∼BC 3세기) 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이는 <미망사 수트라(기원 원년경에 성립)>가 있다. 베다의 말을 슈루티(Shruti:天啓)라 하여 절대시하는 점에서 베단타 학파와 함께 전통 바라문교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나, 베단타 학파가 브라만을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하여 미망사 학파는 종교적·도덕적 의무로서의 다르마(法)를 고찰 대상으로 한다. 이 다르마의 연구와 제사(祭祀)의 실천에서 아트만(個人我)에 선한 아푸르바(新得力)가 생겨난다. 이 힘에 의해서 미래에 하늘나라에서 태어나고 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되며, 이를 해탈이라고 했다. 이 학파는 베다를 최고절대의 것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언어도 오류가 없는 것이라 하여 신성화되고 객관적 실재이며 선천적으로 영구불변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상주불변(常住不變)의 베다에 따르는 것이 법이며 그 실천으로 신득력(新得力)이 얻어지는 것이다.

베단타 학파[편집]

Vedanta學派

베단타란 베다의 깊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베다의 제사부(祭事部)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카르마 미망사, 또는 푸르바(前) 미망사에 대하여 지식부(知識部)의 취의(趣意)를 연구하는 것으로 자매 관계에 있다고 하겠으며 우타라(後) 미망사라고도 부른다. 개조(開祖)는 바다라야나(1세기)라고도 하나 전기(傳記)는 분명치 않다.

경전(經典)으로는 <베단타 수트라(4∼5세기, 브라마 수트라라고도 한다)>가 있으나 극단적으로 간결하기 때문에 주석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많은 사람이 주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주석의 차이로부터 분파가 생겨남으로써 베단타 철학의 발달을 촉진하였으며 6파 가운데서도 가장 유력한 것이 되었다. 사상적으로는 베다 성전 가운데에서 특히 <우파니샤드>를 중요시하고 그 중에서도 우다라카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우파니샤드의 사상과 조화, 통일을 꾀했다.

예컨대 상키아 학파의 정신과 물질의 2원론을 부정하고, 절대자 브라만은 프라크리티와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한 정신적인 실체(實體)이며 영구불멸의 유(有)인 동시에 세계를 창조하는 인(因)이라고도 한다. 개인아(個人我)는 브라만의 일부분이며, 보편적인 브라만에 비교하면 원자(原子)만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브라만과 전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무시(無始) 이래 윤회를 계속하고 있는 개인아는 브라만을 기념명상(祈念冥想)함으로써 명지(明知)를 얻고, 브라만과 합일(合一)되어 해탈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명지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우파니샤드>가 중시되었던 것이다.

<베단타 수트라>의 주석서로서 유명한 것은 샨카라(8세기경의 사람)의 것이라 하겠다. 참된 실재(實在)는 유일절대의 브라만뿐이며, 아트만(個人我)은 그 본성을 직관(直觀)하게 되면 그대로 최고아(最高我)인 브라만과 완전히 동일해진다. 이 주관적인 1원(一元)만이 진실이며, 다양한 <마야(現象界)>는 환상(幻像)과 같은 허망한 것이다. 왜냐하면 차별 있는 현상세계를 창조한 자재신(自在神)은 원래 무차별·무속성(無屬性)인 브라만인데도, 우리는 우리의 무명(無明), 즉 무지(無知)로 인하여 그 같은 사실을 모르게 된다. 이 세계는 요술장이가 만들어낸 것과 같은 가환(假幻)의 세계일 뿐이다. 이 세계의 허망성(虛妄性)을 일단 인식하고 나면 브라만과 아트만의 본래적인 동일성(梵卽我·我卽梵)이 직각(直覺)되고 해탈에 도달한다 하여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을 주장하였다. 그 설에는 불교의 영향이 있어서 다른 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결국 정통 바라문교 사상의 주류가 되었다.

바이셰시카 학파[편집]

Vaisheshika學派

승론(勝論)으로 한역(漢譯)된다. 기원전 1세기경에 성립되었다고 하나 창시자 카나다(우르카 또는 카나브주라고도 한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뱌이셰시카 수트라>는 약간 후대의 것으로 생각된다.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 실재론적인 경향이 강하며 바라문교의 신학적 요소보다도 자연철학적인 색채가 짙다.

모든 사물을 실재와 속성으로 나누고 이를 실(實)·덕(德)·업(業)·동(同)·이(異)·화합(和合)의 6개 범주(範疇:句義)로 설명하였다. 실체는 실구의(實句義)로서 대표되며 또한 자연·생물의 두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인 땅·물·불·바람·하늘·때·방향·아(我)·의(意)로 나뉜다. 땅·물·불·바람은 인(因) 상태로는 원체(圓體)의 미진(微震)으로서 불변이며 땅에는 향기, 물에는 맛, 불에는 색깔, 바람에는 촉감이 본래의 덕으로서 화합한다. 이것들은 극히 미세하여 감각할 수 없다.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들이 복합해서 된 결과일 따름이다. 땅·물·불·바람의 4원소의 극미체(極微體)는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결합이 없었고 또한 아트만과 극미체의 결합도 없었다.

그러나, 아트만에는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잠재해 있으며 이것이 불가견력(不可見力)으로서 작용하게 되면 우주의 창조가 개시된다. 그러나 창조된 세계는 일정한 기간을 지속하면 아트만의 불가견력에 의해서 4원소가 차례로 분리되어 다시금 극미체로 해체, 분산하게 된다고 우주의 발생·지속·소멸을 설명하였다. 이와 같이 우주와 인생을 설명함에 있어 물질·정신의 2원적 대립으로써가 아니고 또한 브라만을 유일절대로 하는 1원관(一元觀)도 아닌 다원적(多元的) 면에서 원소·속성·관계의 측면으로 설명하였다.

니아야파[편집]

Nyaya派

니아야란 법칙·규범 등을 뜻한다. 베다 연구를 할 때의 여러 가지 변론이나 사고(思考)에 있어서 논증상(論證上) 법칙이나 규약이 설정되고 이러한 것에 관한 연구와 교설(敎說)이 이윽고 한 학파를 이루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성격상 인명(因明) 혹은 인론(因論)이라고도 부르지만 논리학적 연구는 다른 제학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창시자는 고타마라고도 하나 분명치 않다. 근본경전으로서는 <니아야 수트라>가 있으며 <정리경(正理經)>이라고 번역된다. 이 학파의 성립은 약 1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우주창조설이나 극미론(極微論) 등의 자연철학적 방면은 거의 바이셰시카 학파의 그것을 계승하였고 해탈론에 있어서는 불교나 상키아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 다른 파와 마찬가지로 해탈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으며 그것은 <니아야 수트라>에 정해진 진지(眞知)의 대상인 16체(十六諦)를 올바르게 알게 됨으로써 달성되고 또한 고(苦)·생(生)·동작·과실·사지(邪知)를 마지막 것으로부터 없애 나가면 연쇄적으로 앞의 것이 소멸되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여기에서는 불교에서의 영향도 볼 수 있으며 또한 논증(論證) 중심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베다 신학의 정통파로부터는 냉담시되었다. 10세기 이후에는 바이셰시카파와도 융합되었다.

바라문교의 부흥, 힌두교의 성립[편집]

바라문교의 부흥[편집]

婆羅門敎-復興

마우라아 왕조(BC 321∼BC 184)가 출현하자 인도는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었다. 그 전성기에 있어서 아쇼카 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보호·육성에 힘썼으며 바라문교나 다른 종교에도 관대한 방침을 취했기 때문에 불교 이외의 종교가 특히 배척당하는 일도 있었다. 바라문교는 신흥 불교나 자이나교에 압도되어 부진했으나 남인도의 보수적인 촌락 사회에 전통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대월지족(大月氏族)의 쿠샤나 왕조[편집]

(140-288)가 성립되고 카니시카왕에 의한 불교 보호정책이 취해지자 이와 같은 이민족 지배에 대하여 바라문 교도 사이에 민족종교로서의 자각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마우리아 왕조 이후 처음으로 인도인에 의한 남북통일이 굽타 왕조(320∼520)에 의해 완료되자 그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체제에 즉응하여 카스트 체제에 입각한 바라문교는 눈부신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로부터 '바라문교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바라문 문화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힌두교의 성립[편집]

Hindu敎-成立

8세기 전후부터 배출된 바라문교 철학의 위대한 주석자들의 배출과 불교의 후퇴 등으로 바라문교가 부흥하게 되었다. 다시 소생하게 된 바라문교는 전통적인 신관(神觀) 또는 성전(聖典)·신화·의례·제도 등을 기반으로 삼았으나 동시에 그 부수의 비(非)바라문적 요소까지도 널리 섭취하여 발전시켰기 때문에 반드시 고래(古來)의 바라문교 그대로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예컨대 인격적 지상신(至上神)의 숭배나 신전(神殿)에 신상(神像)을 받들며 그 앞에 공물(供物)을 바치고 지내는 제사 양식 등은 자연신적 신격을 숭배하고 희생을 중심으로 한 제사를 지냈던 옛날의 바라문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색이라 하겠다. 그래서 흔히 이를 고래의 바라문교와 구별하여 힌두교의 명칭 아래 이루어진 새로운 종교의 전개로 본다.

힌두교는 '베다'나 <우파니샤드>의 사상적인 흐름을 따르고, 고대의 신화·전설을 중시하면서 원주민의 민간신앙이나 습속(習俗)을 바탕으로 하여 불교나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 바라문교 부흥이라는 형식을 취하여 대두한 새로운 인도의 민족종교이다.

힌두교의 제신[편집]

Hindu敎-諸神

바라문교의 다신관(多神觀)과 <우파니샤드>의 범신론을 기반으로 하여 원주민의 민간신앙과 결합한 힌두교는 말할 나위도 없이 다신교(多神敎)이다. 베다 이후의 자연신격(自然神格)으로부터 발달한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인격신이나 그 배우신(配偶神) 및 화신(化神) 등이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원숭이·뱀 등의 동물이나 거목(巨木)·거암(巨岩)·산정(山頂)·물가·천체 따위의 자연, 그리고 성력(性力)도 성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어 정령숭배나 주력(呪力)숭배 등 잡다한 신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힌두교의 주신(主神)은 브라마, 비슈누, 시바 등 세 신이라 하겠다.

창조신 브라마[편집]

創造神 Brahma

<우파니샤트>의 일원철학에서는 우주의 최고이법(最高理法)인 중성원리(中性原理) 브라만(梵)은 세계창조의 인격신으로서 남성인 브라마(梵天)로 불렸다.

브라마는 제신 가운데 최고위 신으로서 창조신·유지신(維持神)으로서의 권위를 지녔으나, 공평무사한 신으로서 신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서 힌두교 내부에서 끝내 일파를 형성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현대에도 브라마의 신전은 극히 적다.

유지신 비뉴수[편집]

維持神 Vishnu

<리그 베다>에서는 태양의 편조작용(遍照作用)이 신격화된 것이나 그렇게 유력하지는 못했다. 그후 차차 숭배의 대상이 되어 인도의 2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Ramayana)>의 영웅 크리슈나(Krishna)와 라마(Roma)가 신격화되어 비슈누신의 권화(權化)로 되는 등 새로운 인격신으로 유력해져서 제2의 최고신이 되었다. 세계를 유지하고 그 파멸에 즈음해서는 악마를 멸망시킨다는 비슈누신에게 여러 가지 화신(化身)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신성이나 인성을 지닌 화신 외에 물고기·거북·멧돼지 따위의 형상을 지닌 것도 있으며, 또한 비슈누신의 배우신으로서는 복·부(富)·미의 여신인 라크슈미나 슈리 등이 있다. 그리고 비슈누신에 귀의하는 파를 비슈누파라고 한다.

파괴신 시바[편집]

破壞神 Siva

시바란 <리그 베다> 가운데 폭풍의 신 루드라(Rudra)를 형용하는 존칭이다. 자연현상이 평화와 은혜에 반대되는 면을 지니는 파괴적이고 거친 면을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며 비(非)아리아적 경향이 강하다. 시바 숭배는 생식기(生殖器) 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이른바 링가(linga)를 숭배하는 풍습을 모헨조다로의 유적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인도 원주민(非아리아人)이 지닌 원시신앙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시바의 배우신으로는 '설산(雪山)의 처녀'라는 우마와 광폭한 여신 두르가(Durga)나 칼리(Kali)가 있으며 또한 이러한 여신과 관련하여 성애(性愛)도 중시한 성력숭배(性力崇拜)가 있었다. 시바신을 숭배하는 파를 시바파라 한다.

삼신일체의 사상[편집]

三神一體-思想

창조를 주관하는 브라만은 철학사상의 발달 경과 가운데에서 항상 최고신의 위치를 지니고, 유지신 비슈누와 파괴신 시바는 하위에 있었으나 이윽고 같은 위치가 되고 성스러운 범음(梵音) '옴(om:唵)'에 의하여 시현(示現)되었고 상키아파(派)의 3덕(三德:타마스·라자스·사트바의 性質) 사상 등과 관련하여 '삼신일체(트리무르티)'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것은 시인 카리다사가 노래하였듯이 3신으로서 하나의 신이 표현되는 것이며, 3신이 저마다 수위(首位)에 서거나 또는 말위(末位)에 선다 해도 독존(獨存)하는 것은 아니다. 3신 가운데 브라마는 실제로 신앙을 받은 일이 적으며 다른 2신이 열렬한 신도를 모아 비슈누파, 시바파를 형성하였다. 삼신일체의 사고방식은 각파에 따라 다르며, 예컨대 비시누파에서 최고신은 비슈누 브라마이고, 하위신은 비슈누와 시바로 되어 있다.

성력숭배[편집]

性力崇拜

샤크티(

akti), 즉 성력(性力)이란 활동·창조·생식을 표현하는 여성명사이나 일반적으로 성력(性力)으로 번역된다. 이를 숭배한다는 것은 드라비다 문화 등 인도 고래의 성숭배와 힌두교의 여신숭배가 관련되어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기에 이론적 근거를 부여한 것은 상키아파의 2원론 사상이다.

힌두교의 브라마, 비슈누, 시바의 3대신은 유신론적인 상키아 사상 등으로 인하여 직접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직접활동성을 3대신의 배우신 가운데에서 구하고 그 여신들(특히 시바의 배우신 두르가)이 지니는 생식력을 신비적 힘으로서 숭배하였다. 성애를 중시하고 남성기(男性器) 링가나 여성기 요니 등의 성적인 표상을 숭배하였으나 본래는 결코 불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해석이 통속화하고 해탈의 수단으로서 외설스러운 비의(秘儀), 윤좌숭배(輪坐崇拜) 등이 중시되면서부터 타락하게 되었다. 윤좌숭배란 같은 수의 남녀가 윤좌(輪坐)하여 카스트나 근친(近親)의 구별 등을 무시하고 야간에 만트라(眞言)를 외면서 5M, 즉 마디마(酒), 만사(肉), 맛야(魚), 무드라(菓子), 마이투나(性交)로 표현되는 의례를 행하고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힌두교의 방신[편집]

Hindu敎-傍神

힌두교에는 브라마·비슈누·시바의 3신에 대한 각각의 배우신과 수많은 화신(化神)인 여러 신들의 계보 외에 여러 가지 잡다한 통일성 없는 제신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예컨대 베다교 이후의 화신(火神) 아그니, 태양신 수리아(Surya), 우신(雨神) 인드라(Indra), 새벽의 여신 우샤스(Ushas)를 비롯하여 주신(酒神) 소마(Soma), 명부(冥府)의 신 야마(Yama)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조령숭배(祖靈崇拜)나 아슈라(阿修羅)·야크샤(夜叉)·라크샤스(羅刹)와 같은 악령과 악마로부터 암소나 원숭이·뱀·산양·거북 등의 동물신 숭배, 그리고 성하(聖河)·성수(聖樹)·성석(聖石) 등의 주물(呪物)·서물(庶物)도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해탈에의 길[편집]

해탈의 길[편집]

解脫-

힌두교에 있어서 인간은 윤회(輪廻)라는 큰 강의 흐름 속의 조그마한 물결에 비유된다. 이 우주적인 견해로 본다면 개개의 인간존재는 거의 보잘것 없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해탈함으로써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의 자기 중요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힌두교도의 목표는 현세의 이익이나 사후의 안락보다는 해탈에 도달하려는 점에 있다. 해탈한다는 것은 현세나 사후의 행복과 연결되는 영원한 정적(靜寂)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해탈의 방법이 연구되었다.

바크티[편집]

Bhakti

글자대로 푼다면 '관여(關與)'를 뜻한다. 신에 인간이 결합됨을 말하며 신에 대한 열렬한 절대귀의의 감정과 신애(信愛)라고 번역된다. 이 신애로써 최고신에게 순수무사하게 귀의한다면 그 은총에 의하여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옛날에는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 있어서의 비슈누신 숭배에서 가장 강조되어 훗날의 힌두교도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신애 사상은 비슈누신, 크리슈나 숭배와 함께 발전했으며, 특히 서기 900년경에 <바가바드 프라나>가 만들어져 크리슈나신에 대한 신애가 강조되었다. 이 신애는 매우 열광적이며 신자는 서로 몸을 접촉시키면서 높은 소리로 노래하고 눈물을 흘리는 엑스터시 속에 해탈된다고 한다. 이 점은 <바가바드 기타>의 그것과 다른 점이라 하겠다.

고행[편집]

苦行 업(業)에 구속된 생존으로부터 해방되어 절대영원의 자유적정(自由寂靜)을 주관 안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감성적 자기를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금욕의 고행이 중요시되었다. 고행 가운데 어떤 것은 요가(yoga)라고 일컬어지며 의식의 집중과 제어를 위한 여러 수련이나 기법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행은 인간적인 욕망(또는 渴愛)을 부정하고 참으로 무소득(無所得)이 되어 일체의 것으로부터 관심을 버리는 것을 이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히 준엄한 출가수행(出家修行)이 요청되고, 학습기(學習期)·가주기(家住期)·임서기(林棲期)·둔세기(遁世期)와 같은 수행의 일생을 보내야만 한다고 했다. 힌두교의 수행자 가운데에는 단식이나 불면, 혹은 광폭한 기행(奇行)을 행함으로써 육체에 고통을 주는 고행자가 많으나 이러한 형식주의에 반발하여 고행을 정신적 내용으로 높이려고 한 것도 있다.

제사[편집]

祭祀

힌두교의 제사는 극히 다채롭다. 1일, 1주, 1개월, 1년을 통하여 많은 제사행사가 일력에 따라 배열되어 있으며 경건한 힌두교도는 거의 종교적 의식 가운데에서 일생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해진 제사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며 그럼으로써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례(祭禮)에는 공공적(公共的)으로 사원 안에서 행하는 것과 사적으로 가정 안에서 행하는 것이 있다. 보통 때는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각각 자기네 종파에 따라 의식을 행하나 큼직한 제례는 공동으로 지방적인 특색에 따라서 행한다.

매월 초승달 밤에는 인드라와 아그니신(神), 보름달 밤에는 아그니와 소마신(神)을 제사지내고 차이트라월(月), 즉 3∼4월에는 가우리 여신이나 가네샤신의 제사, 라마의 탄생제(誕生祭)가 있다. 바이샤카월(4∼5월)에는 크리슈나신을 제사지내고 바라문에 시주를 하거나 사자(死者)를 공양(供養)하는 트레타·유가의 제사, 제슈타월(5∼6월)에는 성하(聖河)에서 목욕하는 다샤하라 제례, 아샤다월(6∼7월)은 크리슈나의 라타(ratha)제, 구루(師)를 공양하는 구루 푸자, 슈라바나월(7∼8월)에는 용사제(龍蛇祭), 히말라야의 여신 파르바티의 제례, 바드라파타월(8∼9월)에는 비슈누의 화신(化身)·멧돼지나 바마나의 탄생제(誕生祭), 아슈인월(9∼10월)은 인도 최대의 두르가제, 카르티카월(10∼11월)에는 시바신을 제사지내는 트리푸리제와 칼리 여신제, 마르가시르샤월(11∼12월)은 태양을 제사지내는 미트라제와 다타트레야 탄생제, 파우샤월(12월 1월)은 꽃을 바치는 푸슈파 아슈타카, 마가월(1∼2월)에는 대(大)시바 야제(夜祭), 또 팔구나월(2∼3월)에는 오곡의 풍년을 비는 홀리제(祭)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의례[편집]

儀禮

힌두교에서는 수 많은 제일(祭日)과 수태식(受胎式), 양포식(養哺式), 입법식(入法式), 결혼식, 장례식 등의 통과의례(通過儀禮)에 있어서 제각기 약간씩 변화는 있으나 대개의 경우 신상(神像)이나 이를 상징하는 항아리 같은 것의 앞에서 정수(淨水)와 등불·꽃·향·음식 등을 바치거나 종파에 따라서는 산양·새 등의 희생물을 바치고 목욕재계한 다음 신령을 움직이게 한다는 진언(眞言:만트라)을 외어 푸자라고 하는 예배공양을 드린다. 푸자는 힌두교 특유의 것으로 그 장소는 가정의 제단이나 촌락의 사당(祠堂)이지만 도시의 사원 안에서도 행해졌다. 또한 의례에는 독경(讀經)·무용·주법·결재(潔齋)·단식·명상·행진 등이 따르는 경우가 많고 방울이나 패류(貝類)로 된 악기·촛대·거울·세반(洗盤)·헌공분(獻供盆)·쇄수기(灑水器) 등이 사용되었다.

목욕[편집]

沐浴

목욕은 힌두교의 제사의례(祭祀儀禮)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원래 남국의 민족인 인도인에게 있어서 물가(水邊)의 생활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특히 힌두교에서는 하루에 한 번 목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신성시되어 온 물가에 내려와 몸의 외부를 씻고 양치질을 해서 체내를 정화하고 머리에 관수(灌水)한 뒤 진언(眞言)을 외고 태양을 예배한 후 다시 양치질을 하고 몸의 각부를 문지르고는 숨을 가다듬고 제사(祭詞)를 왼다.

목욕하는 장소는 갠지스강이 가장 신성시되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하천이나 도섭장(渡涉場)·샘터 따위의 기슭이 신이 모이는 곳으로 생각되어 그곳에서 흐르는 물에 목욕하고 재계(齋戒)와 면죄(免罪)의 공덕을 기원하였다. 목욕은 단식 등과 함께 신월(新月)이나 만월(滿月)의 밤, 또는 단독으로 그 밖의 제례가 있는 날에도 행해졌다.

순례[편집]

巡禮

힌두교도에게 있어서는 힌두교와 인연이 깊은 성지(聖地)를 순례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힌두교도가 정수(淨水)를 구하여 하천이나 도섭장(渡涉場)을 찾은 것이 순례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갠지스강 연안의 바드리나트, 하르즈와르, 야무나강과 합치는 지점인 아라하바트, 특히 비나레스 등은 힌두교도에게 있어서 동경(憧憬)의 땅이며, 그들은 임종에 즈음해서는 이 강물로 몸을 씻은 뒤 화장되어지고 뼈를 갠지스강에 흘려 보내는 것을 다시없는 행복으로 생각했다.

갠지스강뿐만 아니라 두 강의 합류점은 프라야가라고 칭하여 신성시되었으며 신상(神像)과 사원(寺院)이 즐비했었다. 또한 비나레스 외에도 마츠라, 드와라카마야 등을 성도(聖都)라고 했으며 순례자가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멀리서 야숙(野宿)을 거듭하면서 도보로 오는 자도 많았으며 그 여행의 어려움과 피로와 질병으로 쓰러지는 위험성도 순례를 다 했을 때에 느끼는 법열(法悅) 앞에는 아무런 장애도 될 수가 없었다. 순례가 끝나면 그 증거로 종파에 따라 여러 가지 낙인을 팔에 찍는 풍습도 있다. 힌두교에는 많은 종파가 있으나 이 순례라는 차원(次元)에 있어서는 종파간의 구별의식이 배제되며 전(全)힌두교라고 하는 통합적인 민족감정으로까지 고양된다.

윤리적 실천[편집]

倫理的實踐

힌두 사회에서는 태어난 자들은 모두 힌두교도이며 다르마(法:종교적·도덕적인 의무와 공덕)의 적용을 받는다. 힌두교는 단순히 교리상으로뿐만 아니라 힌두의 사회제도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에 규제된 카스트 체제를 지키고 윤리적 생활을 보내는 일은 중요시되었다. 즉 브라만 계급은 적정(寂靜)·제어(制御)·고행·청정(淸淨)·관용·정직·경신(敬神)의 본분을 지키고, 크샤트리아는 용감·위엄·견고·기량·불굴의 본분을 지키고, 바이샤는 농목(農牧)과 시주·교역 등을, 노예계급은 봉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법이라 해도 보편적인 법이 아니라 카스트 사회의 신분에 부응하는 것으로서 중요한 것은 운명적으로 주어진 카스트가 아니라 이 법에 규정된 윤리적 실천이라고 하였다.

예컨대 서민 카스트의 상인(商人)은 법에 의거하여 산 것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고, 살생을 하지 않으며, 속임수 없이 상품을 팔고, 남과 다투거나 남을 원망하거나 아첨하지 않고 세상에 대해 평등하게 남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무서움도 주지 않으며 몸이나 말이나 뜻으로 남을 다치지 않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고 했다.

성 전[편집]

힌두교의 성전[편집]

Hindu敎-聖典

넓은 의미에서의 힌두교가 바라문교와 좁은 뜻으로서의 힌두교로 성립되듯이 힌두교의 성전은 바라문교 신화의 원천인 베다문헌과 좁은 의미에서의 힌두교 신화의 원천인 서사시나 푸라나류(類)로 이루어진다.

베다 성전[편집]

Veda聖典

슈루티(天啓)라 하여 절대시되고 있는 것은 <리그 베다(Rigveda)> <사마 베다(Samaveda)> <야주르 베다(Yajurveda)> <아타르바 베다(Atharvaveda)>의 4베다이다. '베다'는 각각 찬가(讚歌)·제문(祭文)·주사(呪詞) 등을 수록한 <상히타(Samhita:本集)>라고 하는 부분과 그것을 설명한 신학적 산문으로 된 부분 <브라마나(Brahmana:梵書)>와 <아라니야카(Aranyaka:森林書)>라고 불리는 숲속에서의 수행(修行)으로 전수되는 비전(秘傳)의 부분과 <우파니샤드(Upanishad:奧義書)>라 하는 사제(師弟)가 근접하여 앉아서 전수되는 비의(秘儀)의 4부로 이루어진다. <우파니샤드>는 성립연대에 따라 <고(古)우파니샤드>와 <신(新)우파니샤드>로 나뉜다.

이에 대해 베다의 보조적 경전 같은 것으로서 성현(聖贅)에 의하여 전승된 '스므리티(聖傳)'가 있다. 즉 '수트라(經)'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제사학서(祭事學書)> <입법학서(立法學書)> 같은 것으로부터 <그리히야 수트라(家庭經)>나 <달마 수트라(法經)> <쇼르바 수트라(測量經)> 등이 있다.

마하바라타[편집]

Mahabharata

<리그 베다> 등에서 볼 수 있는 호전적 부족(好戰的 部族)인 바라타족(族)의 대전사시(大戰史詩)로서 18장(章)에 10만 이상의 송(頌)으로 이루어진다. 내용은 판두족의 영웅적인 싸움이 중심을 이루고 거기에 많은 종교·신화·철학·도덕·제도·교훈 등의 설화가 추가되어 이윽고 이것들이 집대성되어 힌두교의 성전이 되었다. 고래의 '베다 성전'은 노예계급에는 사용이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만인에게 해방된 성전으로서 '제5의 베다'라고 불리게 되었다.

바가바드 기타[편집]

Bhagavad Gita

성스러운 신에 대한 기타(Gita:歌頌)라는 뜻이며 기원전 4∼2·3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신에 대한 신애(信愛)의 실천은 카스트나 남녀의 구별을 초월하여 모두 최고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정통적 바라문교 사상과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열렬한 신애(信愛)의 정은 사상적 입장의 차이를 초월하여 바라문교가 이를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마하바라타> 속에 수록되어 있으나 원래는 별개의 것으로 성립되었던 것이다. 인도에서는 평상시에 늘 암송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친숙해져 있다.

라마야나[편집]

Ramayana '라마의 기행(紀行)'으로 번역된다. 바르미키라는 선인(仙人)이 만든 시라고도 하며 7편 3만 4000송(頌)으로 이루어진다. 라마의 유년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있으며 그는 영웅이 되어 남방의 실론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후에 비슈누신의 권화(權化)로 숭앙받게 된다. 문체는 전아(典雅)하여 인도 고전문학의 기원을 이루고 후세의 범자문학(梵字文學)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푸라나[편집]

Purana

'고담(古譚)' 또는 '고전(古傳)'을 뜻한다. 상당히 오랜 것도 있었다고 생각되나 현재의 것은 대체로 5세기 이후의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1) 우주개벽 (2) 우주의 파괴와 재성(再成) (3) 제신(諸神)과 제선(諸仙)의 계통 (4) 인조(人祖) 마누가 세계를 지배하는 장구한 시기 (5) 일종(日種)과 월종(月種)에 속하는 왕통(王統)의 역사라는 5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존하는 것으로 이 다섯이 모두 갖춰진 것은 거의 없다. '푸라나' 가운데에는 브라아마신(神)에 관한 <라자사 푸라나>, 비슈누신에 관한 <사트비카 푸라나>, 시바신에 관한 <타마사 푸라나>의 3군(三群)이 있으며 모두 합쳐 18푸라나가 있다. '푸라나' 역시 '제5 베다'라고 불려 민간의 경전(經典)이 되었다.

탄트라[편집]

Tantra

교의교전(敎義敎典)을 뜻하는 것으로 샤크티파(派)의 경전.

힌두교에서 80년경부터 일어난 퇴폐적인 변화를 탄트릭의 경향이라고 하며 이러한 가운데에서 성립된 것이다. 성력(性力) 숭배를 강조하고 두르가 여신을 주로 숭배하는 것을 샤크타파(탄트라파)라고 하는데 여신 라다를 숭배하는 비슈누파의 <탄트라>도 있다.

<탄트라>는 내용적으로 4부(지식·요가·예절·실천)로 구성되는데 난해한 '베다'에 비교하면 하층계급의 민속신앙 등을 혼입시켜 평이해졌으며 더구나 윤좌숭배(輪坐崇拜) 등에서는 카스트 외의 천민계급까지 포함시켜 행하여졌기 때문에 벵골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인도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또한 불교에도 영향을 미쳐서 좌도밀교(左道密敎)의 융성을 촉진하였다.

아가마[편집]

Agama

전래(傳來) 또는 전승(傳承)의 뜻으로서 전승된 성전(聖典)이라는 뜻도 있다. 불교에서도 사용한 말로서 특히 <탄트라> 가운데의 시바와 여신 파르바티의 대화에 있어서 후자가 묻고 전자가 답하는 것을 <아가마>라고 부른다. 시바파의 <아가마>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탄트라>와 마찬가지로 4부로 이루어지며 시바신적인 것과 루드라신적인 것 등 모두 합쳐 28종을 헤아리며, 또한 여기에 <부(副)아가마>가 따른다. 그 성립은 가장 오랜 것으로 7∼8세기경이 아닌가 추정된다.

종 파[편집]

종파[편집]

宗派

힌두교는 흔히 숭배 대상의 주신(主神)에 따라서 몇개의 종파로 나뉜다. 그 수는 매우 많으나 대부분은 비슈누파와 시바파의 두 파로 크게 나누어지며, 다른 큰 파인 샤크티파도 시바파의 특수한 발전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밖에 사우라파, 스마르타파 등 군소종파가 있다.

비슈누파[편집]

Vishnu派

비슈누파는 비슈누신을 주신으로 숭배하는 파. 이 파는 크게 <비슈누 푸라나>와 <바가바타 푸라나>를 사용하는 바가바타파와 판차라트라파로 나뉜다. 전자는 넓게 비슈누파 전반을 가리킬 경우에도 사용되는데 일반적으로는 다시 작은 분파로 갈라져 좁은 뜻에서의 종파의 이름으로 쓰인다. <바가바타 푸라나>는 약 900년경에 성립되었으며 크리슈나신(神)에 대한 신애가 고취되었으며 그 영향을 받아 신학을 구성하여 1파를 이룬 것이 마드바파(창시자 마드바:1197∼1276경) 비슈누스와민파(창시자 비슈누와민:13세기), 닌바르카파(창시자 닌바르카:약 1062∼1162), 바르라바파(창시자 바르라바:1479∼1531), 차이타니아파(창시자 크리슈나 차이타니아, 1485∼1533)가 있다.

시바파[편집]

Siva派

파괴적인 면을 가진 시바신을 숭앙하는 종파로서 2세기경부터 종파로 형성되었다. 신애를 중요시하는 비슈누파에 대하여 요가와 성력(性力)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도 역시 여러 파로 갈라졌다.

시바의 이명(異名)인 파슈파티(獻主)를 숭배하는 파슈파타파(派), 요가를 실행하고 모래 속에서 잠을 자며 고창(高唱)·노호(怒號)·약동(躍動)하며 광기(狂氣)와 같은 흥분 속에서 해탈을 꾀한다는 라크리샤파가 있다. 6세기경의 문헌에서 볼 수 있는 카바리카파는 해골을 목에 건 고행자(苦行者)의 집단이었던 모양으로 인신희생(人身犧牲)과 음주를 행하고 성력(性力)을 숭배하였다. 그라크샤나타파(派)는 칸파타 요긴이라는 수행자(修行者)를 중심으로 하타 요가라는 새 형식의 좌법(坐法), 심신(心身)의 정화법(淨化法)과 숨을 가다듬는 법, 인계(印契) 등을 주장하고 이에 의하여 해탈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파의 시조 그라크샤나타는 13세기경의 사람이다. 린가야타파는 마라타 지방에서 행해졌는데 린가를 손에 들고 다니며 시바신에의 신애를 설교하는 편력승(遍歷僧)에 의하여 퍼지게 되었다. 이 파는 신상(神像) 숭배와 카스트 체제에 반대하고 여성의 사회적 해방에도 노력하였다. 이 밖에 <아가마>라고 하는 성전(聖典)에 의존하는 파들도 있다.

샤크티파[편집]

Sakti派

여신(女神), 주로 두르가신이나 가리신의 샤크티(性力)을 숭배하는 파인데 실제로는 시바신 숭배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시바파에 속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원주민의 여성숭배와 성기(性器)숭배에 아리아인의 신앙의 결합, 시바 숭배와 융합하여 상키아 사상의 2원론과 요가 사상으로 이론이 확립되고 다시 <탄트리 문헌>에 의해서 조직되었다. 그 때문에 밀교불교(密敎佛敎)가 발달한 아샘, 벵골 지방에서 전파되었다. 샤크티파에는 윤좌숭배(輪坐崇拜)와 같은 외설스러운 의식을 행하는 좌도파(左道派)와 불순한 요소를 배제한 도파(道派)가 있다.

사우라파[편집]

Saura派

옛날부터 아리아인이 행했던 태양신 수리야 숭배의 계통을 말한다. 북부인도에는 태양숭배의 사원이 세워졌는데, 사제자(司祭者)는 '마가브라만'이라든가 '포자카 브라만'이라고 불렸다. 경전(經典)으로서 <사우라 상히타> 등이 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특히 한 종파로서 강조되기보다도 사우라파의 특색이 힌두교의 일반적 특색을 표명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나파티야파[편집]

Ganapatya派

상면인신(象面人身)의 액을 막아주는 신, 또는 지혜의 신이라고도 하는 가네사의 별명. 가나파티신(歡喜天)을 숭배하는 파. 4, 5세기경부터 융성해졌으나 900년 이후에 성립한 <가네사 푸라나>에서는 가네사는 최고의 브라만이며 신비적 명상으로만 지득(知得)된다고 한다.

스마르타파[편집]

Smarta派

스마르타란 <베다 성전>의 보조적 문헌의 총칭인 <스므리티(Smiriti:聖傳)>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특히 <그리히야 수트라(家庭經)>를 가리키며 바라문교의 전통적 의례나 제사(祭祀) 방식을 가정 안에서 영위하는 사람들을 스마르타파라고 불렀다. 주로 5선(비슈누, 시바, 두르가, 수리아, 가네사)의 공양(供養)을 일상행사로 하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샨카라 철학과 합치되며 많은 신봉자를 얻었다. 현재도 인도 남·서부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슬람교의 영향과 힌두교 개혁파[편집]

Islam敎-影響-Hi­ndu敎改革派

8세기 초기부터 이미 서북 인도에는 이슬람교가 침투해 있었으나 13세기 이후에 이슬람교는 인도 사회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갖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델리왕조와 무갈조(朝)가 성립하였으며, 이슬람교는 불교를 박해하는 한편 알라에 의한 평등한 구제를 주장하여 인도 하층민을 개종시켰다. 더구나 그때 이슬람교는 힌두 사회의 풍속에 융합하여 인도적인 문화변용(文化變容)을 이루었으며, 힌두교는 이슬람교의 순일신교적(純一神敎的) 신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인도에 들어온 이슬람교는 고행에 의한 신(神)·인(人) 합일을 주장하는 신비주의적인 수피파였기 때문에 이슬람교, 힌두교의 두 종교가 융합할 가능성은 많았던 것이다. 15세기에 이르자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 내부로부터 개혁적인 여러 파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카비르[편집]

Kabir(1440∼1518)

카비르는 원래 비나레스 브라만 계급의 한 과부의 아들이었으나 길거리에 버려진 것을 이슬람교도의 방직공 부부가 양육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비슈누파의 수행자(修行者) 라마난다에게 사사(師事)한 뒤부터 유일절대신(唯一絶對神)인 라마(Rama), 즉 범(梵)에 대한 신애(信愛)를 통한 해탈을 주장하였다.

그 설은 힌두교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이슬람교도에 대해서까지 똑같은 해탈을 주장하여 이슬람교·힌두교의 차이를 초월하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우상숭배나 고행, 카스트를 부인하고 일신숭배(一神崇拜) 등의 이슬람교(특히 수피파)적인 영향을 많이 볼 수 있다. 카비르 자신이 방직공으로서의 세속적인 직업을 가졌으며, 더구나 힌디의 속어(俗語)로 설법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은 널리 번져 이윽고 이슬람교의 시칸다르 로디왕(王)과 대립, 여러 나라를 방황한 끝에 죽었다.

카비르파[편집]

Kabir派

카비르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아 약간의 혁신적인 파가 출현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카비르의 사상을 계통적으로 계승한 것이 카비르 판트(Kabirpanth)라고 하는 카비르파이다. 그 중심은 비나레스의 카비르차우라 승원(僧院)이며 또한 카비르가 숨진 곳인 마가르에는 지소(支所)가 있다. 카비르파의 신도는 일반적으로 하층민이 많다. 이 파는 포교나 숭배보다는 기도나 찬가를 중요시하였는데 후에 카비르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우상숭배 경향이 짙어졌다.

나나크[편집]

Nanak(1469∼1538)

나나크는 펀잡 주(州)의 라호르 근교(近郊) 타르반디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전기(傳記)는 분명치 않으나 부친 카알은 힌두교도이면서 이슬람교도의 지주 아래서 일하는 농부 겸 상인이었다고 한다. 나나크가 카비르와 직접으로 서로 아는 사이였는지는 의문스럽지만 그에게 사상적 감화를 받았음은 명백하다. 이런 점에서 나나크에게도 이슬람교·힌두교 융합의 종교사상이 현저하다. 그는 1신(一神) 하리에의 열렬한 신애를 주장했으나 전통적 힌두교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일신의 화신설(化身說)이나 우상숭배 및 고행을 금했으며 세속생활 그대로의 신앙을 긍정하여 이슬람교도까지 문하에 포용했음은 카비르와 마찬가지로 힌두교로서는 이색적이라고 하겠다.

시크교[편집]

Sikh敎

나나크의 가르침은 펀잡 지방을 중심으로 번졌으나 그가 죽은 후 시크(Sikh:弟子)들은 나나크를 구루(guru:師)로서 숭앙하여 하나의 종단(宗團)을 형성했다. 그것은 교주인 스승에 의해서 제자들이 인도를 받아 최고신 하리에 귀의함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 하여 시크 교단이라고 불리었다. 그 후 단결이 강화되었으나 4대조(四代祖) 람 다스(1534∼1581) 때 사제계승(師弟繼承)으로부터 혈통계승(血統繼承)으로 옮겨지고 제5대 교주 아르잔 말(1563∼1606) 때 카비르와 선조의 찬가를 모은 근본 성전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교도에게 과세하는 정치적 색채가 강하여 무갈제국(帝國)의 이슬람교왕과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용맹한 시크교도는 이슬람교왕의 압박이나 영국 통치하의 정치적 박해에 항거함으로써 시크 교단은 두드러지게 전투적 성격을 띠기에 이르렀다. 특히 제10대 고빈드 싱그(1666∼1708)는 이슬람교에 대한 보복심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카르사라고 하는 종교단체를 결성하여 입단식에는 검(劍)의 세례를 주고 단원에게 장발(長髮:kes), 단의(短衣:kack), 철환(鐵環:kara), 빗(kanga), 단검(短劒:kirpan)의 5가지 힘(ka)을 몸에 지니도록 하며 전사(戰士)인 사자(獅子)란 명칭을 붙이도록 하였다. 그 밖에 사회적인 온갖 폐풍을 개혁하고 또한 교서(敎書:그란드)를 편수, 종래의 구루(師) 중심에서 그란트(敎典) 중심으로 교의를 정리하였다. 이렇게 해서 고빈드의 출현을 계기로 하여 시크교(敎)는 크게 세력을 떨치고 종교적 단체로부터 군사적 단체로 발전했다. 또한 그 안에는 이행파(易行派)와 사자파(獅子派:Singh)의 두 계통이 있다.

일반적으로 시크교도는 힌두교도처럼 그 사회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신도가 될 수 없다. 성장해서 시크교도가 되는 의식을 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크교도는 이 입문식(入門式)을 받지 않은 채 시크교도임을 자인하고 있다. 그들은 전사(戰士)와 같은 이상한 옷차림도 하지 않고 농사와 상업의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여 검의 세례를 받은 사자파의 시크교도에 비하면 일반 힌두교도와의 식별도 곤란할 정도이다. 이를 이행파(易行派)라고 한다.

영국 통치하에 있어서 시크교는 1845년의 제1차 시크 전쟁 이후 여러 차례 영국군과 교전하였으나 근대적 장비를 갖춘 영국군에게 패배하였다. 그때마다 시크 교단의 군사력은 약화되었으나 이행파는 오히려 세력이 증대하였고 또한 시크교 내부에서도 자각이 싹터 펀잡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시크교는 힌두교 내부에서 이슬람교 등 외래세력의 영향을 받아 그 결과 대두한 개혁적 제종파들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는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고 마침내는 힌두교의 범위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힌두교와 구별되는 별개의 종교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의 시크교도는 약 784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리스도교의 영향과 힌두교의 근대화[편집]

그리스도교와 힌두교[편집]

Christ敎-Hindu敎

그리스도교가 인도에 전래되기는 6세기에 시리아 교회, 15세기에 로마가톨릭이 전래했으나 조직적인 전도는 18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의해서 개시되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뒤에도 영국의 인도 통치방법은 신교(信敎)의 자유를 인정했으나 힌두교 사회의 여러 가지 악폐, 예컨대 유아결혼, 과부의 분사(焚死:사티), 인신희생 등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금지했다. 이슬람교에 의한 힌두교의 개혁은 주로 종파 내부에 한정되었으나 그리스도교에 의해서는 사회제도의 개혁까지가 시사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르자 뛰어난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하여 힌두교 내부에도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도 고대의 정통적 신앙이 서구적 교양을 통하여 근대적 발현(發現)을 했다고도 하겠다.

람 모한 라이[편집]

Ram Mohan Ray (1772∼1833)

벵골의 브라만족 출생이다. 아버지는 차이타니아파 신도이며 열렬한 힌두교도였으나 어릴 때에 회교도의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그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일찍부터 인도 이외 여러 나라의 종교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어나 헤브라이어 등을 배워 서구적인 교양을 쌓고 인격 또한 고결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도 깊었으며 한때는 유니테리언 교회에도 관계하였으나 결국은 <우파니샤드>와 베단타 철학에 이끌려 힌두교의 개혁·홍륭운동에 진력하였다. 캘커타에 브라마 사마지(브라만을 믿는 사람들의 협회)를 설립하였고, 종래 힌두교 사회의 미신이나 악폐, 예컨대 일부다처제나 힌두교도의 과부 순사(殉死), 우상숭배 등에 반대했다. 그의 입장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비교를 통해 본연의 자세를 추구한 것이며 근대화의 선구자로서 숭앙을 받았으나 일종의 절충주의·협조주의에 입각하였으므로 이 젊은 힌두교의 내외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만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브리스톨에서 객사했다.

브라마 사마지[편집]

Brahma Samaj

브라만을 믿는 신도의 협회, 또는 범교회(梵敎會)라고 번역되며 인도 유니테리언 교회로부터 1828년에 발전하여 창립된 것. 창립 당시의 지도자 람 모한 라이가 죽은 뒤에는 그 친구 드와르카나트 타고르(시인 타고르의 伯父)와 그 아들 데벤드라나트 타고르 등에 계승되었다. 1857년에는 케샵 찬드라 센(1838∼1884)이 참가하여 자선사업을 일으키고 사회 개선과 카스트 폐지를 주장, 포교와 전도에 힘썼다. 이후 협회는 분열하여 센은 거기서 탈퇴하고 인도 브라마 사마지를 만들었으나, 종래의 사마지는 아디(原始) 브라마 사마지로서 지속되었고,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등이 활약했다. 1878년에 다시 새로운 사마지로서 사다란 브라마 사마지가 나타났다. 사다란이란 '다수에 의한'이라는 뜻으로 독재와 전제를 배격, 민주적 평등주의를 목표로 삼아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영혼의 불멸을 확신하며 사회봉사와 자선사업을 하였다.

다야난드 사라스바티[편집]

Dayanand Sarasvati (1824∼1883)다야난드는 카티야왈 지방의 탄카라 마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브라만 출신의 열렬한 시바파 신도였으므로 어릴 때부터 힌두 교도로 '베다 성전'을 학습했다. 22세때 집을 나가 수도생활을 시작, 베단타파의 수행자(修行者) 밑에서 수행을 하고 요가를 배웠으나 이러한 것을 모두 포기, 마지막에 말라의 장님이던 브라만 비라자난다에게 입문하여 감화를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진정으로 베다의 전통에 복귀해야 함을 자각하고 거리에 나서서 브라만의 특권·고행·순례·목욕의 금지, 카스트의 부정 등을 주장했다. 또한 베다에 관한 방대한 주석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의 종교활동은 1875년에 아리아 사마지를 설립한 뒤부터 특히 활발해졌다. 그 의도하는 바는 서구문화나 선진 각국의 지배하에 놓인 인도인의 현상 및 힌두교의 형식화·타락화를 묵시할 수 없어 각성과 개혁을 꾀하려는 것으로서 단순히 종교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의미가 있음을 주목해야만 한다.

라마크리슈나[편집]

Ramakrsna (1836∼1886)

캘커타 교외의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사원(寺院)의 간부 승이 되어 칼리 여신을 숭배하였다. 너무 열심히 순수하게 숭배했기 때문에 때때로 기도에 열중할 때 삼매(三昧)의 경지에 도달하는 수가 있었는데 후에 숲 속에 들어가 12년 동안의 고행을 하여 신비적 체험을 쌓았다. 명상·고행을 중시하는 열렬한 비슈누파 교도였으나 이슬람교·그리스도교 등 각 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었으며 종교 진리는 결국 각 종교의 구별을 초월한 곳에 귀결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끝내 모든 세속적 생활을 이탈한 학문과 덕이 함께 높다고 하는 파라마한사의 존칭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학문에 통달한 것은 아니었으나 샨카라의 베단타 사상에 입각하여 합리주의의 지적 태도로서가 아니라 내발적(內發的)인 열정으로써 설법했기 때문에 많은 공명자를 얻기에 이르렀다.

비베카난다[편집]

Vivekananda (1862∼1902)

벵골 사람. 라마크리슈나의 애제자(愛弟子)였다. 처음 이름은 나렌드라나트 다타였고, 캘커타 대학에서 수학한 수재이며 설득력이 풍부한 고결한인격의 소유자였다. 뒤에 스승 라마크리슈나를 만나 그로부터 결정적인 감화를 받고 세속을 떠나 6년간 히말라야 산중에서 수도하여 이미 지니고 있던 서구적 교양과 지성 위에 열렬한 힌두교 신앙을 전개시켰다.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에서 행한 연설은 동양과 서양의 정신적 융합을 강조하여 네오 힌두이즘(Neo Hinduism)으로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에 다시 미국에 건너가 라마크리슈나 미션을 설립하여 베단타 사상의 보급에 힘쓰고 <각성(覺醒) 인도(Prabuddha Bharata)>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다.

그의 사상의 특색은 종래의 힌두교 개혁자들이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자칫하면 우상숭배를 금지하였던 것에 반대하여 예로부터 내려오는 본래의 힌두교를 보전하자는 것을 강조했던 점에 있다. 또한 그는 일체의 종교는 참다운 의미에 있어서 선(善)이라 보고 종교적 보편성과 관용성을 주장하는 한편 그리스도교로 대표되는 서양문명에 경종을 울리고, 인도의 정신문명 특히 베단타 철학의 불이일원사상(不二一元思想)이야말로 이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 점에 있다. 그러나 당시 인도의 실정은 빈곤과 질병·기근 등의 사회적 문제가 산적해 있었는데 이런 비참한 현실은 서양의 교육과 기술 도입에 의한 새로운 생활양식에 따라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저서로는 <나의 스승(My Master)> 등이 있다.

라마크리슈나 미션[편집]

Ramakrishna Mission

비베카난다가 그의 스승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을 사회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897년에 설립한 교단(敎團). 의료·구호사업·재해구제·교육·출판 등의 사회사업과 봉사를 하여 인도에 있어서 같은 종류의 교단 중에서는 가장 크고 국내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버마,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아프리카, 유럽, 남북 아메리카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부는 캘커타 근교에 있는 베루루 승원(僧院)이며, 각지에 베단타 사상을 보급하기 위하여 이곳으로부터 스와미(導師)가 파견된다.

타고르[편집]

Rabindranath Tagore(1861∼1941)

캘커타 명문 출신. 시인으로서 이름을 날리고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부친 데벤드라나트의 피를 받아 깊은 종교적·철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동양적 자연관 위에 고매한 시풍(詩風)을 전개하였다.

시·희곡·소설·평론·수필 외에 철학논문집 등을 저술하였고, 노벨상을 받은 <기탄잘리>에 보이는 바와 같이, 전 우주는 절대자 브라만의 현현(顯現)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디 사마지에 참가하여 활약하기도 하고, 또한 세계를 순회하면서 동서문명의 융합에 노력하는 한편 캘커타 근방에 독자적인 학풍을 가진 학교를 세워 제자들을 교육하였다.

고스[편집]

Aurobindo Ghose(1872∼1950)

캘커타에서 출생해, 일곱살 때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유럽식 교육을 받았다. 귀국 후에는 민족독립을 위한 정치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30세경에 돌연 계시를 받아 정치운동에서 물러나 정신적 완성을 위하여 요가에 전념하였다. 현대 인도에 있어서 깊이 요가를 수행(修行)하고 철학적 사색을 이룩한 사람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베다' <우파니샤드> 등에 관한 많은 사색과 체험의 결과를 그가 창간한 잡지 <아리야>에 발표하였다. <성스러운 생명(The Divine Life)>은 유명한 것이다 그는 서양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인도의 전통적 정신을 해명하며 그것의 재평가를 시도하여, 새로운 종교적 인간상은 전통적인 인도 사상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하여 힌두교 정신을 선양하였다.

간디[편집]

Mohandas Karamchand Gandhi(1869∼1948)

영국 통치하에 있어서 민족종교인 힌두교는 인도독립의 민족주의와 연결되는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종교를 정치에 구현해 보려고 한 사람이 간디였다. 그는 국민회의파의 지도자로서 시종일관 인도의 독립과 국민의 해방을 위해 싸워서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존칭을 얻게 되었다. 원래는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정치가로서 활약하고 반영불복종(反英不服從)·민족해방·노동운동의 실천가였다. <바가바드 기타>로부터 영향을 받고 사티야그라하(진리의 把持)를 이상으로 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진실·아힌사(不殺生)·브라마차리아(純潔)·무소득을 모토로 폭력을 철저히 부정하고, 단식과 외국 상품에 대한 보이콧 등 평화적 수단에 호소하였다.

1947년 인도가 독립한 다음에는 영국의 인도 지배 정책이었던 이슬람교·힌두교 양교의 대립을 융화시키기 위해 국내 각지를 유세중 1948년에 뉴델리에서 반(反)이슬람교의 힌두교 급진분자에 의하여 암살당하였다. 네루(Nehru, 1889∼1964)가 그의 뒤를 이었다.

독립 후의 인도는 동서의 어떤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고, 비동맹정책을 주장하여 국제긴장의 완충적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는 만물을 하나로 보는 힌두교 정신, 개개의 종교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것을 지행하는 신(新)힌두교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힌두교[편집]

現代-Hindu敎

1947년 인도 독립은 동시에 힌두교도를 중심으로 한 인도공화국과 이슬람교도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국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를 탄생케 했다. 분할 전의 인도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거의 3대 1이었으나, 분할된 이후에는 힌두교도가 전인구의 85%인 데 비해 이슬람교도는 10%에 불과하다.

기타 시크교도, 소수의 불교도·쟈이나교도도 분포해 있으나, 대부분의 인도인에게는 이들 여러 종교가 넓은 의미에 있어서 힌두교의 일파로 인식되어 있어서 힌두교와 이들 여러 종교 사이에는 특히 강력한 긴장관계나 대립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힌두교국으로서 인도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대(對) 파키스탄의 정치적 문제보다는 힌두교 교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관습과 터부 등을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도 사회의 번영과 근대화를 위해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고 하겠다.

뿌리깊은 원시적·주술적 요소[편집]

-原始的·呪術的要素 1947년 파키스탄의 분리는 그때까지 분쟁을 거듭해 왔던 국내의 이슬람교도에 대하여 힌두교의 인도가 취한 정치적인 총결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분리 이후에는 인도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힌두 교도로 되었다. 힌두교는 인도인 민족종교이며 신도의 분포도 거의 인도 한 나라에 한정되어 있으나 인구 10억을 헤아리는 인도의 민족종교이므로 규모로서는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세계종교인 이슬람교에 필적할 만한 신도수를 갖는다고 하겠다. 더구나 힌두교는 극히 복잡한 종교이며 거기에는 오랜 역사적 발전의 여러 단계가 반영되어 있어서 오늘날에 와서도 그것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심원한 철학적 사색의 체계를 구비하고 고도의 지성이 뒷받침된 일면과 함께 여전히 현재에 있어서도 원시적인 주술(呪術)이나 특수한 비의(秘儀)·점술(占術)·금기(禁忌) 등이 혼합되어 있다. 오히려 힌두교는 고도로 발달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원시적인 주술적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 높은 수준 속에 포괄·섭취하여 조화(調和)를 발견하려는 경향이 있다. 힌두 교도가 신성시하는 소의 떼가 뉴델리 시가지 한가운데를 사람이나 자동차의 홍수에도 아랑곳없이 유유히 횡단하는 광경은 하나의 상징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