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동학-천도교/동학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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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사상〔개설〕[편집]

東學-思想〔槪說〕 1860년 4월 5일 최제우(崔濟愚)는 문득 한울님(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이 종교적 체험을 통해 그는 하나의 새 종파(宗派)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동학이다. 이 동학의 사상은 최제우가 그의 종교적 체험을 혹은 노래하고 혹은 서술하고 혹은 풀이하는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그의 사상을 나타낸 글들을 엮어놓은 것이 바로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이다. 동학의 사상은 우리 민중이 오랫동안 믿어온 민간신앙(民間信仰)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민중적인 사상이다. 예컨대 놀라운 힘을 가진 한울님을 믿으며 혹은 어떤 무속(巫俗)적이고 주술(呪術)적인 색채를 보이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편으로 동학은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온 그리스도교, 곧 서학(西學)에 맞섰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유래한 유교(儒敎)와 역시 중국문화를 매개로 하는 불교와도 맞서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민족적인 사상이라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동학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한울님을 지극히 받들라는 것이다. 한울님을 지극히 공경하면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구원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한울님을 정성껏 공경하는 것을 간단히 "한울님을 모신다(侍天主)"고 말한다. 한울님을 모시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동학의 핵심적인 교리이다. 이것은 동학이 한울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한울님은 놀라운 힘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어떤 인격적인 신(神)이라고 볼 수 있다. 매우 윤리적인 유교와 매우 철학적인 불교를 받아들이고 있던 당시의 우리 사회에서 동학은 놀라운 힘을 지닌 어떤 인격적인 신 곧 한울님을 모시라고 가르쳤다. 안으로는 양반들의 횡포에 시달림을 받고 밖으로는 놀라운 서양의 무력에 위협을 받아 거의 절망 가운데서 허덕이고 있던 우리 민중은 한울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 너도 나도 동학으로 몰려들었다. 이것은 동학이 유교나 불교와는 달리 일신교적(一神敎的)인 종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당시에 중국을 통해 우리 나라에 들어왔던 그리스도교, 곧 서학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당시의 관리들에게 동학은 서학이라는 지목을 받게 되어 드디어 교조(敎祖)인 최제우는 극형을 받았다. 그러나 동학이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여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동학은 그리스도교와는 매우 다른 종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래도록 우리 민간신앙에 뿌리를 박고 있는 민족적인 종교이다. 동학에서 말하는 한울님은 대체로 다른 일신교적 종교의 신과 다른 바가 없다. 그러나 신의 위력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믿는 태도에 있어서는 역시 민족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동학에서는 한울님이 조화를 부린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조화란 한울님의 전능(全能)에서 유래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특히 초기에는 우리 나라를 위협하는 무서운 서양세력의 무력을 막아낼 수 있는 어떤 신비적인 위력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조화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한울님의 질서있는 섭리를 조화라고 보았다. 여기에는 주술적인 것으로부터 종교적인 것으로의 발전과정이 엿보인다. 한울님의 또 하나의 위력으로서 영부(靈符)를 내려 준다고 한다. 이 영부도 한울님의 전능에서 유래하는 일종의 신기한 약이다. 이것은 무서운 질병을 막고 장생(長生)할 수 있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 영부는 종이에 그려진 일종의 부적(符籍)이다. 부적을 환자에게 먹이는 우리의 민간신앙이 있는데 동학의 영부는 이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역시 다른 점은, 영부는 한울님이 내려주는 것이고 또 한울님을 지성으로 위하는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울님을 지성으로 섬기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여 드디어 한울님만 지극히 위하면 영부도 필요없다고 말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주술적인 것으로부터 종교적인 것으로의 발전과정이 엿보인다. 이와 같이 조화나 영부는 한울님의 전능에서 유래하는 신비스러운 위력이다. 조화는 놀라운 무력을 막아내고 영부는 무서운 질병을 막아낸다. 이것은 당시의 우리 민중이 특히 서양의 무기와 전염병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조화나 영부는 한울님의 전능을 부분적으로 열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한울님은 전능하므로 사람의 어떠한 어려움도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동학은 한울님만 모시면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동학의 종교적인 실천도 결국 한울님을 모시는, 곧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노력으로 된다. 그런데 한울님을 모실 수 있게 하는 글이 바로 주문(呪文)이라고 한다. 따라서 종교적인 실천에서, 구체적으로는 이 주문을 일정한 절차에 따라 정성껏 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되어 있다. 그러면 이 주문이란 과연 어떠한 글일까? 이것은 21자로 되어 있는 짤막한 한문체의 글귀인데 그 중에서도 뒷부분의 13자로 된 구절이 그 핵심이라고 한다. 그 구절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울님을 모시면 조화가 체득되고 길이 잊지 않으면 만사가 깨달아진다(待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면 한울님의 놀라운 조화를 받을 수 있고 한울님을 길이 모시고 잊지 않으면 만사가 저절로 깨달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조화를 받는다느니 만사를 깨닫는다느니 하는 것은 결국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으로 보면 동학의 주문은 한울님을 모시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문을 끊임없이 왼다는 것은 한울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다짐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바로 한울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다지는 작업이다. 이렇게 동학에서는 주문을 외는 것이 종교적 실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로 되어 있다. 주문은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한울님을 위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는 글일 뿐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울님을 위하는 것일까?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한울님을 모셔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誠)·경(敬)·신(信)이라고 한다. "따로 다른 방법과 이치는 없고 오직 성·경·신 세 가지면 그만이다(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 " 한울님을 진심으로 믿고, 한울님에게 정성을 다하고, 한울님을 우러러 공경하는 것이 한울님을 모시는 길이다. 이와 같이 한울님에 대한 믿음과 정성과 공경이 바탕이 되어, 나아가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신의(信義)·성실(誠實)·공경(恭敬)이라는 세 가지 덕목(德目)이 실현된다. 이렇게 한울님을 모시는 종교적 실천으로부터 사람들 사이의 참된 윤리를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이상으로 최제우가 전개한 동학사상을 대충 더듬어 본 셈이다. 이러한 동학사상은 그 뒤에 계승되었는데 역시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다소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제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은 35세에 동학에 들어온 후 72세에 극형을 받고 순교하기까지 37년 동안 동학을 위해 활약하였다. 이 시기의 사상으로서 주목되는 몇 가지를 추려 보기로 한다. 먼저 '한울님을 기른다(養天主)'는 사상이 눈에 띈다. 최제우는 한울님을 모시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한울님을 먼 데서 찾지 말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최시형의 시대에 와서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서 신봉이 된 성리학(性理學)과 통하게 된다. 하늘이 명한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성리학에 대하여 동학은 사람은 본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결국 한울님의 싹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그런데 사람의 본성이 하늘에서 유래한다는 것과 한울님의 싹을 사람은 이미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서로 깊이 통해 있다. 사실상 최시형의 시대에 동학의 지도층(指導層)은 동학사상을 성리학적으로 풀이하려고 했다. 아마 성리학에 젖어 있는 당시의 우리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사람이 이미 한울님의 싹을 지니고 있다면 문제는 오직 그 싹을 키우는 데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최시형을 정상으로 하는 지도층은 드디어 "사람은 한울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 무렵의 동학은 사람은 이미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고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한울님의 싹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미 지니고 있는 싹으로서의 한울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한울님을 기른다(養天主)'는 사상이다. 다음으로 "사람을 섬기기를 한울님을 섬기듯이 한다(事人如天)"는 것이 주목된다. 여기서 사람이란 학식·지위·나이 따위를 떠나 널리 모든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결국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지극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한울님을 섬기듯이 섬기라는 것은 요컨대 지극히 존중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역시 사람은 누구나 이미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인간을 그 자체로 존중하라는 매우 휴머니즘적인 주장을 이끌어 냈다. 역시 시대적인 요청에서 오는 사상적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모든 사물이 한울이다(物物天事事天)"라는 것이 주목된다. 이것은 좀 풀이하기 어려운 말이다. 대체로 모든 사물 속에 한울님의 요소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사물 속에 있는 한울님의 요소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만일 그것을 만물의 이법(理法)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면 역시 성리학적 입장과 깊이 통한다. 과연 이 무렵의 지도층이 매우 성리학적인 설명을 꾀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철학적으로 흘러 종교적인 성격이 매우 약해진다. 역시 표면적으로는 성리학적인 설명을 하여 전통적 사상(예컨대 유교나 불교의 사상)과 통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실질적으로는 동학의 독특한 종교 사상을 전개한다고 보아야 한다. 사물 속에 들어 있는 한울님의 요소란 어떤 이법(理法)과 같은 것이라기보다 한울님의 뜻인 듯하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다 한울이다."라는 말은 실질적으로는 모든 사물이 한울님의 뜻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매우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듯하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역시 그것은 한울님을 모신다는 동학의 독특한 사상이다. 최제우는 처음에 사람은 마땅히 한울님을 모셔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뒤에 차차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생각이 동학 안에서 굳어져 갔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모든 사물은 다 한울이다(物物天事事天)"라는 구호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구호는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종교적인 의미를 가졌으리라고 믿어진다. 그러나 최제우가 사람은 마땅히 한울님을 모시라고 외친 데 대하여 최시형이 모든 사물이 이미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면 역시 여기서 사상적 발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곧 범신론(汎神論) 쪽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최시형 시대의 사상적 특색은 바로 범신론적이라는 데 있다. 이상으로 제2대 교주 최시형 시대의 사상적 경향을 대충 살펴보았다. 다음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 시대의 사상도 역시 범신론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손병희는 1900년(庚子)부터 동학의 지도권을 완전히 잡게 되었고, 한동안 지하에서 활동하다가 1905년 12월에 동학이라는 이름을 고쳐 천도교(天道敎)라고 함과 동시에 합법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비로소 근대적인 교회 조직에 착수하였는데 그 작업의 일부로서 교리의 체계화(體系化)도 진행하였다. 이리하여 천도교의 교리가 비로소 합리적으로 해석·정리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해오던 동학사상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계승·발전시키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범신론적인 방향을 더욱 추진했다. 이리하여 "사람은 곧 한울이다(人乃天)"라는 구호를 내걸고 인간을 떠나서 따로 한울님이 없다는 방향으로 풀이되었다. 나아가서는 자연을 떠나서 한울님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범신론적 경향이 매우 두드러졌다. <崔 東 熙>

천도교의 우주관[편집]

天道敎-宇宙觀

천도교에서는 우리 우주를 창조론적 입장에서 보지 않고 우주발전론적 입장에서 본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 광물까지도 절대자의 창조에 의해서 일시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보고, 모든 것을 성장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간단한 데서 복잡한 것으로, 저급에서 고급으로, 불완전에서 보다 완전한 것으로 향상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사물을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긴 하지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울님이라고 하는 본체생명과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본다. 개개의 사물은 성장발전하는 과정을 통하여

본체생명의 성장 발전을 나타내고 있다.

천도교의 인간관[편집]

天道敎-人間觀

천도교의 우주관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도 역시 무용한 본체 생명이 성장 발전하는 과정에서 차차 개체화·복잡화·고도화되어 인간계라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우주 만물 가운데 가장 고도로 발달된 것이 인간이며, 현대인간이 과거인간보다 더 발전되었다고 보며, 미래인간이 현대인간보다 더 발달된 형태라고 보는 것이 인내천사상에 의한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울님의 의지는 인간을 통해서 표현된다고 믿음으로써 절대자에 의해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인간의 무력함을 암시하는 사상과는 상반된다. 우주 속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계는 우주의 주인인 동시에 우주의 중심이다.

천도교의 내세관[편집]

天道敎-來世觀

일반적으로 천도교에는 내세관이 없다고 말한다. 즉, 개체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 행하여진 선·악 행위에 따라 죽은 후에 천당(또는 극락)이나 지옥으로 떨어져 무한한 고뇌 속에 허덕이거나 천사와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한다고 믿거나, 윤회 전생하여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거나 하는 사후관은 없다. 천도교의 사후관은 성령출세(性靈出世)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이 살아 있는 동안 올바른 행위와 사상을 가졌을 때 그 사상과 행위는 사회적으로 계승되어 만인의 가슴 속에서 사회정신으로 남아 있게 되며,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굳이 형상을 남기기를 원한다면 위대한 인물의 동상이나 초상화로 남겨진 형상에서 영생불멸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래에 가졌던 관념으로서 내세관의 충족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내세관이라 할 수 있다. 천도교는 이러한 성령출세에 의한 내세관도 중요시하지만 현실을 개혁하여 인간생활에 알맞은 사회인·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현실에 집착한다.

시천주 사상[편집]

侍天主思想

천주라고 하는 말은 일반적으로 절대자 또는 초월자를 의미하는데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을 한자로 표기할 때 쓰이는 말이다. 많은 종교에서나 일반 사람들의 사상 속에서 초월자나 절대자는 인간계와는 멀리 떨어져 높이 있는 전지전능하며 형상을 가진 존재로 믿고 있다. 그러나 천도교에서는 인간 속에 한울님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교조 수운은 그의 법설(法說) 가운데에서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하단 말가" 하였는데, 이 말의 뜻은 한울님이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벌을 줄지도 모르는 무서운 절대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하며 인간에게 올바른 언행을 가르쳐 주는 친근한 존재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절대자나 초월자로서 믿는 신앙과 내재적인 존재로 한울님을 믿는 신앙은 상반된 가치관을 형성한다. 인간은 동적인 존재이므로 죄악을 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죄악을 범하였을 때 전지전능한 절대자나 초월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 시천주 사상에 의한 종교신앙은 이러한 불안감을 없애고 안정된 심정 속에서 한울님과 대화를 나누어 인생의 최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시천주 사상은 모든 의식면에서도 절대자나 초월자를 우상화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모신 한울님과의 맹세로서 인격적인 향상을 가져오며 돈독한 신앙심을 굳힌다. 그리고 이 시천주 사상은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고 하는 인간지상주의의 사상적 기조(基調)를 형성한다.

인내천[편집]

人乃天

이 말은 '사람이 곧 한울님'이란 뜻이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란 말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깨달으면 한울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원리상으로는 우주 만물을 모두 한울의 표현으로 보고 그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진화의 선두에 서 있다고 본다. 앞으로 인간을 통하여 우주가 진화 발전하게 되어 있으므로 우주의 창조력은 인간을 통하여 실현된다는 뜻에서 사람이 곧 한울이며, 도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주 가운데 가장 귀중한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자면 서로 돕고 힘을 합쳐 세상을 발전시켜 나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에서 볼 때 한울을 알고 깨닫고 사는 세상이 되려면 이 세계가 천국이 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러한 지상의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 '인내천'은 사상 또는 주의로 불리고 있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인내천 사상은 신 본위의 사상도 아니며 영적 본위의 사상도 아니고 물적 본위의 사상도 아니다. 아울러 인내천주의는 자연주의·개인주의·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것들을 통틀어 인간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인간중심 사상에서 출발한 인간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이상의 모든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형성된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그 어떠한 것도 무가치하다고 본다.

지기일원론[편집]

至氣一元論

존재문제에 있어 유심과 유물로 나누어 설명하지 않고 지기의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기(至氣)는 한울님과 이위일체(二位一體)적인 것으로 한울님은 광원(光源)과 같고 지기는 그 빛과 같다. 지기는 무한한 대립상극의 모순성과 조화일치(調和一致)의 통일력을 속성(屬性)으로 하는 우주의 유일실재이다.

교조 최제우 선생은 "지(至)는 지극한 것을 가리키고, 기(氣)는 허령(虛靈)이 가득하여 일마다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령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형상이 있으나 표현하기 어려우며 소리가 있는 듯하나 보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혼원한 하나의 기운이다"라고 하였다. 이기학설(理氣學說)에서 볼 때 기라는 것은 유물로 인정하나 여기에서의 지기는 유심물론의 대립모순을 일원화한 유일실재인 것이다.

우주를 유심적 측면에서 보든지 물질적 측면에서 보든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지기일원적 입장에서 보면 다를 수가 없다.

우리 생활을 유심적인 측면에서는 정신적·관념적·향내적(向內的)·정체적(停滯的)으로 보지만 유물의 입장에서 볼 때 물질적·현실적·향외적(向外的)·극단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인생은 이렇게 일방적일 수 없으므로 유심유물의 입장이 상호 절충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될 수 있는 바탕을 지기일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성신쌍전[편집]

性身雙全

성(性)은 개성을 의미하고 신(身)은 사회적 생활을 의미한다. 인내천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성신쌍전은 개성의 완전해탈과 사회적 생활의 완전해방을 의미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은 정신적인 측면을, 신은 육체적인 측면을 의미하여 양쪽이 다 건전하여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성은 본체생명인 한울님을, 신은 개체생명인 인간을 의미하여 인내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성신쌍전은 사회적 측면에서 교정일치(敎政一致)로 발전되는데 교는 교화 이념, 즉 목적을 의미하고 정은 정치 실천, 즉 수단을 의미하여 올바른 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서로 온전할 때 이룩되는 것으로 믿는다.

정신개벽[편집]

精神開闢

3대개벽의 하나로서 낡은 관념을 일체 청산하고 새로운 관념의 개성을 이루는 정신적인 혁명을 의미한다. 먼저,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 편견을 버리고 인간 본래의 숭고한 위치로 돌아가 모든 것을 올바르게 보고 살펴 끊임없는 수양과 올바른 생활 태도를 가지며 성실한 언행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의 자각을 통하여 새 세계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민족개벽[편집]

民族開闢

3대개벽의 하나로서 민족의 완전해방을 의미한다. 민족집단이 낡고 나쁜 생활풍습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새 생활에 대한 부단한 신생활 운동을 전개함을 의미한다. 사대사상으로 인해 민족혼이 병들고 주체사상을 상실하여 민족이 타락하고 허덕일 때 민족정기의 발양이 시급하다. 그러므로 민족주체적인 사상을 확립시키고 미래지향적인 민족으로 개조되어 새로운 문화창조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개벽[편집]

社會開闢

3대개벽의 하나로서 개성의 정신개벽 및 집단의 민족개벽과 함께 사회개벽은 세계개벽을 의미한다. 이는 인류의 항구적인 평화와 생활을 위하여 민족이나 국가간의 침략·정복·갈등 등 어떤 한 민족이나 국가에 해가 되는 것을 지양하고 서로 돕는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사인여천[편집]

事人如天

사람이 곧 한울님이므로 사람을 섬기되 한울님을 섬기듯이 경건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내천의 도덕적·윤리적 측면에서 실천의 정신기조가 되므로 사인여천의 자세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인내천은 성립되지 않는다. 폭넓게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용서와 관용, 그리고 만물을 대할 때에는 애용과 절약도 포함된다.

용시용활[편집]

用時用活

사람이 때를 맞추어 나가지 못하면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때를 만들고 때를 이용할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경설[편집]

三敬說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천은 넓게는 독립과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 같은 대의에 공헌하는 것을 의미하며 좁게는 한울을 공경하는 것을 말한다.

경인은 사회적으로 차별없는 개개인의 인격과 활동을 존경하는 것이며 경물은 한울이 준 만물의 가치를 깨달아 자연자원의 보호나 물건을 절약하여 쓰는 것을 의미한다.

삼전론[편집]

三戰論

도전(道戰)·재전(財戰)·언전(言戰)을 말한다. 첫째 도전이란 도의의 전쟁을 말하는 것으로 현대에는 인간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여 싸움이 계속되리라 보며, 그 싸움에 이기려면 먼저 서로간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은 도(道), 즉 종교가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가 이 일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각 나라마다 독특한 종교가 있어 그 민족을 통일시키고 있으며, 발전되지 못한 나라에 먼저 발전된 나라가 종교로써 백성의 마음을 빼앗아 가므로 하나의 근본인 백성을 빼앗기고는 나라가 온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세계 각국은 그 나라의 종교를 지켜 백성을 편안케 하여 나라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도전이라 하며 종교전쟁을 의미한다. 둘째 재전은 경제전쟁으로서 재물이란 한울이 준 보배로 인간이 이용하고 사는 바탕이다. 그러므로 각국간의 경제전쟁에서 이겨내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된다.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슬기로운 인재를 찾아 기술을 발달시키고 생산을 하여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 언전이란 외교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외교전에 승리함으로써 나라가 존립하고 민족이 편안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삼전론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생활의 이치와 국제정세의 변화를 살펴본 손병희가 1903년도에 다가올 한국과 세계정세를 관망하면서 내놓은 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