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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동학-천도교/천도교〔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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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序說〕 천도교는 경주 사람 최제우(崔濟愚:호는 水雲)에 의해 1860년 4월 5일 우리나라에서 성립한 종교이다. 처음에는 동학(東學)이라 불러 우리 고유종교라는 점이 강조되었으나 1905년 12월 1일 세계적 의미를 가진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선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도 당시의 내외정세를 간추려 보면, 서구(西歐)의 동방침략이 중국에까지 미쳐 1840년의 아편전쟁, 1856년의 영·불 연합군의 베이징(北京) 함락의 큰 사건이 일어났고, 이웃 일본은 먼저 물질문명이 개화하여 이웃 나라를 침략할 기세를 보이는 등 외세의 침략이 임박하였는데, 안으로는 이조건국 이래의 병폐인 당쟁과 세도정치가 임진·병자 등의 큰 난리를 치르고도 시정되지 않고 더 심하여져 백성들은 재래의 미신인 정감록(鄭鑑錄) 등을 들고 피난처를 찾거나 외래종교에 귀의하여 난을 피하려는 등 민족적 위기가 점증되고 있었다. 최제우는 이러한 상황하에서 방방곡곡을 돌면서 오랫동안 고행하고 집에 돌아와 기도한 끝에 1860년 4월 5일 한울님의 계시(啓示)를 받고 많은 문답과 시험을 거쳐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吾心卽汝心)라는 결정적 계시에 홀연히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자신 속에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원리를 깨달아 글을 짓고 절차를 만들어 스스로 시험한 후 다음 해부터 포교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시천주의 원리는 한국 민족의 전통적인 제천(祭天)신앙의 핵심인 한울님을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과 세계를 구하자는 자주적 신앙이며 낡은 세계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개벽(開闢)사상이었으므로, 낡은 제도와 질서 속에 억눌렸던 서민층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 잠시 동안에 큰 사회적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에 조정은 큰 위협을 느껴 1864년 3월 10일에 최제우를 반역죄로 처형함으로써 동학을 근절하고자 하였다. 최제우의 신념은 후계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민중의 힘으로 한국 근대사를 이끌어 나간 동학(東學) 천도교 현실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최제우의 후계자 최시형(崔時亨:호는 海月)은 지하에서 꾸준히 포교를 계속하여 큰 세력이 이루어지게 되자 1892년 11월에 도인들을 삼례(參禮)로 불러 "억울하게 처형된 스승의 죄를 풀어달라"고 당국에 호소하는 신원운동(伸寃運動)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는 신앙과 포교의 자유를 찾자는 최초의 민중 시위운동이었다. 이 신원운동은 광화문(光化門) 앞에서 임금에게 직접 상소하는 복합상소(伏閤上訴)와 충청도 보은장내(報恩場內)에서의 시위운동 등 점차 규모가 커지고 기세가 높아져 그 때마다 조정에서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속을 하였으나 끝내 실천되지는 않았다. 신원운동 후 동학군에 대한 하급관리들의 포악과 수탈이 심해지자 전라도 동학의 접주(接主) 전봉준(全琫準)이 1894년 초에 혁명을 일으켜 각 고을을 함락하고 관군을 패전시켜 전라도의 요충인 전주성(全州城)까지 함락하니 관군측은 동학군이 내놓은 폐정쇄신안(弊政刷新案)을 수락하기에 이르렀다. 이 폐정쇄신안은 서민 대중의 권익을 보증하고 특권층의 횡포를 징계하는 내용으로서, 동학군은 이 정책의 실행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집강소(執綱所)를 각 지방에 설치하여 혁명을 실천에 옮기는 도중 조정에서는 동학군을 치기 위하여 청국 군대를 불러들이자 일본은 천진조약(天津條約:한국에 출병할 때는 서로 미리 알린다는 약속)을 핑계로 군대를 한국에 보내 청나라 군사를 패전시키고 관군과 합세하여 동학군을 치게 되었다. 이에 이르러 그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던 북접(최시형이 직접 지도하던 집단)까지 합쳐 전 동학군이 이와 맞서 싸웠으나 최신 장비와 훈련을 쌓은 일본군 및 관군과 공주 근처에서 7일간 혈전을 벌인 끝에 패전하자 동학혁명은 좌절되고 말았다. 최시형은 1897년 12월 24일 손병희(孫秉熙)를 후계자로 정하고, 다음해 1898년 6월 2일 경성감옥에서 순교하였다. 그동안 한국은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북상하려는 일본의 각축장이 되면서 결국 노일전쟁(露日戰爭)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결국 한국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전쟁이었다. 손병희는 민중이 문화개명(文化開明)하고, 민권이 강한 정부를 만들어야만 주권(主權)을 지킬 수 있다고 보고, 1904년 8월 30일을 기해서 전국에 퍼져 있는 동학도인들에게 일시에 머리깎고 물들인 옷을 입게 하여 세계 신문명에 참가할 뜻을 보였으며 민회(民會)를 조직하여 민권을 떨쳐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 운동은 동학교단 내에서의 분열과 정부의 무기력, 그리고 기어이 한국을 병탄하고자 하는 일본의 방해로 좌절되었으나 그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손병희는 1905년 12월 1일에 동학을 천도교라고 고쳐서 선포하였다. 그러나 1910년 8월 29일에 합병조약으로 나라가 망하고 얼마 안 있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918년 말에 끝나자, 다시는 이러한 비참한 전쟁이 나지 않게 "약소민족은 해방하고 국제분쟁은 국제회의에서 해결한다"는 전후 처리방안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하여 세계여론의 큰 환영을 받게 되었다. 이에 손병희는 최린(崔麟)·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에게 각계와 연락하게 하고 안으로는 교인을 훈련·조직하여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그리스도교·불교와 힘을 합쳐 1원화(一元化)·대중화(大衆化)·비폭력(非暴力)의 3대원칙(三大原則) 아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으로 쇠잔했던 한국의 민족혼이 살아났고, 도의적 새 세계질서를 확립하자는 우리 겨레의 평화이념이 제시되었으나 일본이 전승국이었고 세계 열강이 호응하지 않아 좌절되었다. 3·1운동 직후 손병희는 수감되었다가 보석으로 나왔으나 얼마 후 1922년 5월 19일에 사망하고, 교단은 손병희 재세(在世) 때부터의 새 체제인 중의제(衆議制)로 운영되어 여러 가지 파란곡절을 겪었으나 그 속에서도 청년·학생·어린이·노동자·농민·상민·어민 등 7개 부문 운동을 벌인 청년당·청우당(靑友黨) 운동과 개벽사운동(<개벽>·<어린이>·<별곤건>·<신여성> 등을 발간한 문화 사상운동) 등이 있었고, 2차대전 후에는 남북 분단 반대운동인 3·1재현사건(三一再顯事件), 한국전쟁 때는 반공운동 등이 있었다. 이러한 동안 천도교는 인내천(人乃天)을 종지(宗止)로 하는 교리(敎理)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신앙은 최시형에 의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다. (1) 양천주(養天主)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나 한울님과 같이 못되는 것은 자신 속의 한울님을 키우지 못한 탓이다. (2)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서로 한울님과 같이 대하여야 한다. 최시형의 후계자 손병희는 "누구나 자기가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깨달으면 곧 한울이 된다(覺天主卽人乃天)."는 뜻에서 인내천(人乃天)을 종지로 확정하고 그 입장에서 모든 교리를 설명하게 되었다. 천도교의 도덕관은 성(誠)·경(敬)·신(信)으로 집약된다. 사람이 한울님이 되기 위한 도덕으로 정성(精誠:誠)이 있어야 하니 정성이란 뜻을 이루기 위한 그칠줄 모르는 노력이고, 공경(恭敬:敬)이 있어야 하니 서로간의 관계를 받들고 도와 가는 공경의 정신으로 자신 속의 한울님과 모든 사람과 만물을 공경하여야 한다는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과, 믿음(信)으로 한울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한울님 뜻을 이 세상에 실현하자는 것이 성(誠)·경(敬)·신(信)의 도덕관이다. 한편 인내천(人乃天)의 종지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려면 한울님의 정신인 성령(聖靈)의 뜻을 몸으로 실현하는 성신쌍전(聖神雙全)과 종교정신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교정일치(敎政一致)를 그 행동지침으로 하여 현실사회 속에 구현하라는 것이 천도교의 강령(綱領)이다. 또한 동학 천도교는 한국 민족을 먼저 구하고 나아가 세계 인류를 구하자는 포부를 가지고 출발하였으므로 나라를 보호한다는 보국안민(保國安民)이 우선적인 기원이 되고 나아가 세계 인류에게 새생활을 가르쳐(布德天下) 그들을 구제(救濟:廣濟蒼生)하여 이 지상에 천국을 만드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천도교는 그의 주의·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신앙방법으로서 다음 다섯 가지 일에 정성을 기울이도록 가르치고 있다. (1) 주문(呪文) ―― 주문이란 말은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는 뜻으로, 천도교의 진리목적을 21자로 압축한 글(呪文)을 무시로 외고 기울이면 덕과 한울님 마음에 합일된다는 것이다. 그 뜻을 간추려 설명한다면,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僞大降:우주 본체 생명의 기운을 크게 받고자 하며)·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한울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모시면 한울님 마음과 덕에 합할 것이며)·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한평생 잊지 않고 생각하면 한울님 도를 알고 그 지혜를 받아 지극한 성인에 이를 것입니다)가 그것이다. 이 주문이 소원을 풀어주는 모든 힘이 있다고 믿어 천도교인들은 이 법문을 가장 정성들여 왼다. (2) 청수(淸水) ―― 모든 의식에서 유일한 표준물로 청수를 받든다. 그 이유는 기천(祈天)할 때 정화수를 받드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의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교조 최제우가 순도할 때 청수를 받들고 순도하였다는 데서 그 정신을 받드는 구체적 표준물로 삼게 된 것이며, 천도교인은 모든 의식에는 말할 것도 없고 매일 저녁 9시에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앉아 청수를 모시고 기도드린다. (3) 시일(侍日) ―― 매 일요일은 한울님을 모시는 날로 정하여 교당에 나가 집단교화를 하는 것을 시일이라 한다. (4) 성미(誠米) ―― 매일 주부가 끼니때마다 식구 한 사람 앞에 한 술씩 쌀(혹은 기타 곡식)을 떠내 보은감사(報恩感謝)를 드리고 마지막 시일에 교회에 바치는 것을 성미(誠米)라 하여 천도교인이 바치는 물질적 정성으로 삼고 있다. (5) 기도(祈禱)―― 교인들은 모든 행동을 기도하는 자세로 하며 출입·식사·기거 등에서 심고(心告)로 기도한다. 그 중 시일은 특별히 5홉 정미(精米)를 받들어서 기도드리고 교회에 바치는데 이를 기도미라 하고, 특별한 기원을 정하고 규제(술·담배의 금지 등)를 정하여 정성을 드리는 것을 특별기도라 한다. 이상의 다섯 가지를 5관(五款)이라 한다. 이상에서 훑어본 천도교의 창도동기·약사·교리·신앙목적에 비추어 천도교는 앞으로, (1) 한국민족을 통일시키는 민족주체정신형성을 위한 노력을 모색할 것이며, (2) 그 폭넓은 교리에 비추어 모든 외래사상문화를 소화하여 새 시대를 지향하는 교리를 천명·발전시키려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崔 德 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