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동학-천도교/천도교의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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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경전〔개설〕[편집]

天道敎-經典〔槪說〕

천도교의 성서로는 교조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의 친저인 <동경대전>이 있다. 1860년 동학(東學)을 대각(大覺)한 다음 해인 1861년부터 1863년 사이에 저작한 것으로서 순한문으로 쓰여져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분류하면 포덕문(布德文)·논학문(論學文)·수덕문(修德文)·불연기연(不然其然) 4편과 주문(呪文)·팔절(八節)·우음(偶吟) 등 기타 시문(詩文)을 부록으로 하고 있다.

또한 순한글 가사체(歌詞體)로 쓰여진 <용담유사(龍潭遺詞)>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용담가(龍潭歌)·안심가(安心歌)·교훈가(敎訓歌)·도수사(道修歌)·권학가(勸學歌)·도덕가 (道德歌)·몽중노소 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흥비가(興比歌)·검결(劍訣) 등 9편으로 엮어져 있는데 <동경대전>의 내용을 구체화시킨 자매편으로서 천도교의 기본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 최제우(1824∼1864)는 경주인(慶州人)으로 자(字)는 성묵(性默), 호(號)는 수운(水雲)이라 한다. 수운(이하 수운이라 함)은 1860년 4월 5일에 한울님(天主)의 계시(啓示)를 받아 천도(天道)를 깨닫고 동학(東學)을 창도하였다. 수운이 1년 후부터 도(道)를 펴기 시작하자 경상도 일대에 교도가 수만에 달했다. 당시 봉건통치자들은 최제우를 이단자로 체포하려 했다. 이에 수운은 자신의 운명이 오래지 못할 것을 깨닫고 체포되기 전에 자신의 사상을 서술하기 위하여 전라도 선국사(善國寺) 은적암(隱寂庵)과 경주에 은신하면서 이 책을 저술하여 1863년 8월 14일에 당시 수제자인 최시형(崔時亨:호는 海月)에게 도통(道通)을 전수하고 이 글을 출판하여 경전으로 삼으라고 유시하였다고 한다. 그후 최제우는 1863년 12월 9일 마침내 관헌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3월 10일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좌도난정률(左道亂正律)로 참형을 당하였다. 제2세 최시형은 스승이 참형된 뒤 동학도에 대한 탄압이 날로 심하여지자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알고 이 유고(遺稿)를 소중히 간직한 채 강원도 태백산·소백산을 거쳐 20년 동안을 숨어다니다가 1880년 인제(麟蹄)에서 처음 출판하였다. 1883년에 충청도 목천과 공주에서 경주개간(慶州開刊)으로 재판한 목판원본(木版原本)이 있다(天道敎中央總部所藏). 이 <동경대전(東經大全)>은 많은 분량의 경전이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 실린 문장과 의의는 중요한 시사성(示唆性)을 지니고 있다. 한자 한자 정성된 문장으로 과거·현재·미래를 통찰한 명저(名著)이다. 이 책의 4편과 기타 부록을 합치면 4,846자로 엮여 있는 문헌이지만 저자 최제우는 이 글을 저술하면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천지의 무궁한 수와 도의 무극한 이치가 모두 이 글 속에 실려 있다(天地無窮之數道之無極之理皆載此書)"(論學文)고 강조하고 또한 "우리 도의 이치는 한량없이 넓지만 요약하면 실천에 있어서는 정성과 공경과 믿음 세 글자에 있다(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誠 敬 信三字)"고 덧붙였다. 여기서 저자는 기성 종교의 모든 경전들은 방대한 문헌으로 짜여진 경전적 교리(經典的敎理)이므로 그를 모두 배워 행하기란 극히 어려우나, 이 책은 간략하면서도 행하기 쉬운 공식적 교리라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글로 <용담유사>를 지어 교도들을 위한 저자의 주도면밀한 배려를 나타내었다. 즉 <동경대전>은 순한문으로 되어 있으므로 당시 동학에 입도한 서민 대중은 이 글을 이해하기 곤란하리라는 점을 그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용담유사>를 지은 또 하나의 주요한 이유는 유교사회의 봉건체제 아래에서 자신의 사상을 서술함에 있어 기성체제에 대한 반항의식이 강렬하게 반영되었으므로 때로는 은유둔사(隱喩遁辭)로 또는 영탄(詠嘆)과 풍자로 당시 사회상을 비판하고 미래사회에 자신의 주의가 실현될 것을 암시하였기 때문에 한문으로는 당시 서민 대중에게 침투시키기 어려울 것을 예견하고 순한글 노래체로 된 <용담유사>를 저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노골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당시 사회의 정치·경제·윤리·도덕의 퇴폐상을 비판하고 또는 풍자와 비유로써 부정한 것이 역연하다. 여기에서 저자의 강인한 자주의식의 일면을 알 수 있다. 당시 유교문화의 전횡하에서는 '기송사장지급(記誦詞章之習)'은 이단지교(異端之敎)라고 배척하고 우리 한글마저 언서(諺書)니 내서(內書)니 하여 천시하던 풍토 속에서 용감하게도 이 글을 우리 글과 말로써 저작·간행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용담유사>에 실린 문장들은 <동경대전>과 떨어질 수 없는 자매편으로서 성서의 체제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동경대전(東經大全)> 4편을 통해 저자가 지닌 사상을 간추려 보면 첫편이 포덕문(布德文)이다. 이 편은 수운 자신의 사상을 펴기 위한 선전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머리에서 (1) "먼 옛날부터 봄과 가을이 갈아들고 4시의 성쇠가 옮기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은 한울(天主)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밝혀진 것이다(蓋自上古以來春秋迭代四時盛衰不遷不易是亦天主造化之跡昭然于天下也)." 이렇게 천도(天道)·자연의 성쇠 원리를 천명하고 우주진화의 발전법칙을 밝혔다. (2)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천도의 떳떳한 이치를 원시인간들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고 지적하고(愚夫愚民未知雨露之澤知其無爲而化矣), (3) 오제(五帝)때부터 성인들이 배출하여 글자를 만들고 천지도수와 일월성신의 운행하는 이치를 가르쳐서 모든 천리(天理)에 순종케 하여 덕치시대를 이루었다고 찬양하였다 (自五帝之後聖人以生日月星辰天地度數成出文卷而以定天道之常然一動一靜一盛一敗付之於天是敬天命而順天理者也). (4) 하(夏)·은(殷)·주(周) 3대의 성운이 다하고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인심은 각자위심(各自爲心)이 되어 천명을 어기고 천리에 순종치 않는 어지러운 세상이 되었다고 개탄하고, (5) 근래에 와서는(수운의 당시) 모든 사람들이 불순도덕(不順道德)하고 미지시운(未知時運)하여 도탄중에 빠져 갈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음을 크게 걱정하는 때에 전해들리는 말이 서양사람들은 천주를 위하는 뜻으로 부귀를 탐내지 않는다고 공언하면서 후진국들을 쳐서 빼앗고 천주당을 세워 서학을 펴고 있으니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였다(傳聞西洋之人不取富貴攻取天下 立其堂行其道故吾亦有其然豈其然之疑). 이상과 같이 5단계로 과거와 현실을 분석·비판하고 탄식하기를 "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敎訓歌)라고 지적하고 새시대의 새원리인 무극대도(無極大道), 즉 동학을 창도한 것이니 이는 곧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역사적 사명을 지닌 필연적인 출현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천도(天道)'는 수운이 자의로 창명(彰明)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20년간 구도적 수련 끝에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창도(唱導)하였음을 밝혔다. 즉 "한울님이 나에게 말씀하기를 개벽 후 5년 만에 내가 또한 공이 없었으므로 너(수운)를 세상에 나게 하여 이 법(天道)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하노니 의심치 말라(余亦無功故生汝世間敎人此法勿疑)(布德文)". 그러므로 이 글을 공손히 받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한울님을 올바로 믿게 하라는 것이 포덕문의 줄거리이다.

다음은 논학문(論學文)이다. 이 편은 동학의 원리를 제자들과 문답식으로 의논한 글로서 그 골자를 들면 다음 <주문(呪文)>과 같이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의 해석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과 <수심정기(守心正氣)>를 해설한 것이다. 주문 중의 지기론(至氣論)과 시천주(侍天主)가 이 편에서 주요한 진리를 간직하고 있다.

수운은 지기(至氣)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지자(至者)는 극(極)을 지라 하고 기자(氣者)는 허령이 창창하여 무슨 일에나 간섭하지 않는 데 없고 무엇에나 명령치 않는 데 없지만 형상키도 어렵고 보이지도 않는 혼원한 일기라(至者極焉爲至氣者虛靈蒼蒼無事不涉無事不命然而如形而難狀如聞而難是亦渾元之一氣也)"고 하여 우주의 생성원리를 지기일원(至氣一元)으로 보았다. 즉 우주는 신(神)의 창조나 다원(多元)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자기의 자율적인 진화(進化)의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기는 원래 심(心)도 아니고 물(物)도 아닌 물심 이전의 혼원일기(渾元一氣)로서 진화향상하여 우주만유가 자율적으로 표현되면서 최후의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본 것이다. 인간은 우주진화의 결과적 최고존재로서 대우주(大宇宙)의 본체생명(本體生命)의 분화(分化)이므로 한울님의 무궁성(無窮性)을 인간 자신의 정신 속에 모시고 있다고 본 것이 시천주(侍天主) 신앙이며, 나아가서 이를 또한 인내천(人乃天)의 사상으로 승화시키게 된 것이다.

수운은 시자(侍字)의 의의를 이렇게 풀이했다. "시자는 내유신령하고 외유기화하니 일세지인이 각지불이자야(侍字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라고 했다.

이를 풀이하면 각도(覺道)할 당시에 한울님의 계시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한울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으로 분화되어 계시다는 가르침에서 발원(發源)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기에 수운은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어서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하지 말라(敎訓歌)"하여 인간 외에 어떤 신이나 우상을 부인하고 내시천주(內侍天主)를 수행하는 자력적 신앙을 강조하였다. '내시천주'를 믿는 방법을 수심정기(守心正氣)라 역설했다.

천심(天心)이 곧 인심(人心)이라 하였으니 마음을 바로 지키고 기운을 단정히 하며 <주문>을 정성껏 외는 것이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을 잘 믿는 길이라는 것이 이 편의 내용이다.

다음은 수덕문(修德文)이다. 이 편은 도덕을 닦는 수행을 가르치기 위해 수운 자신이 탄생한 곳이며 동학을 대각(大覺)한 고장이기도 한 구미산(龜尾山)을 예찬하고, 선조의 도덕문장을 찬양하며 자신의 덕행과 제자들의 수도의 효과를 칭찬한 글이다.

다음은 자신의 도학이 높아짐에 따라 전국의 선비들이 도를 물으러 많이 모여들어 기뻐했다. "문을 열고 오는 손님을 맞이하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자리를 펴고 설법을 하니 그 맛이 그럴 듯하다"(修德文)하여 자신의 도락(道樂)을 노래하였고 제자들의 수행에 대하여

"아름다워라 그대들의 수행이여!

붓을 들어 글씨를 쓰매 왕희지의 필적인가 의심하겠고, 입을 열어 시를 읊으매 누구라 감히 초부의 앞에서 머리 숙이지 않으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은 바른 수행(正心修道)에 있나니 바른 수행은 네 가지 계명을 지키는 데 있다.

(1) 번복지심(飜覆之心)을 두게 되면 이는 역시 역리자(逆理者)요, (2) 물욕(物慾)이 교폐(交蔽)하면 이는 역시 비루자(鄙陋者)요, (3) 헛말로 유인하면 이는 역시 혹세자(惑世者)요, (4) 안으로 불량하고 겉으로 꾸며 대면 역시 기천자(欺天者)라(四戒命)" 하여 수도자는 이 계명을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끝으로 '불연기연'이다. 이 편은 위의 세 편에 서술한 원리를 종합하여 결론지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우주만유의 생성원리를 '불연기연'의 상반(相反)된 것으로 보아왔지만 구극은 일체(一體)의 원리에서 분화생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기연'은 긍정(肯定)이요, '불연'은 부정(否定)이다. 또한 '기연'은 정(正)이요, '불연'은 반(反)이다. 만상을 분산 고립되어 각각 떨어져 있는 형상으로만 보면 '기연'이 되지만 맨 처음 근원을 캐어 보면 '불연'이 되는 것이다. 수운은 위에서 논급한 '지기일원(至氣一元)'인 일체의 원리에 귀납시킨 것이며, '반대일치(反對一致)'의 원리에 의하여 우주는 생성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저자는 이렇게 풀이했다. 즉, "'내'가 '나'된 것을 알아 보면 부모에게서 왔고 뒤로서 뒤될 것을 생각하면 자손이 이어가는 것을 알 수 있지만(其然), 지나간 세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의심컨대 사람으로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기 어렵도다" 하고 또한 "태고에 천황씨는 어떻게 사람이 되었으며 어떻게 임금이 되었겠는가? 맨 처음에 사람의 근본이 없지 않았는가?(不然其然)" 그러므로 사람된 것이 아니며 신의 창조도 아니요, 지기(至氣)로부터 천지만유가 진화 향상하면서 최후로 표현된(又其然) 것이 인간이라고 갈파하였다. 여기에서 '동학, 즉 천도교(天道敎)'의 우주관·인생관이 정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金 用 文>

동경대전과 용담유사[편집]

東經大全-龍潭遺詞

이 책은 수운 최제우가 구도(求道)를 위한 20여 년간의 자기 성찰을 통하여 얻은 종교적 체험과 깨달음, 그리고 역사를 꿰뚫는 혜안으로써 1860년부터 1864년까지 약 4년간에 저술된 것으로서 포교를 위한 강도(講道)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저술은 기본교리가 담겨진 포덕문(布德文) 525자, 논학문(論學文) 1338자, 수덕문 (修德文) 1050자, 불연기연 (不然其然) 523자,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 174자, 필법(筆法) 및 팔절(前八節後八節)이 각각 192자 등으로 되어 있으며, 계속하여 축문(祝文)·입춘시(立春詩)·강시(降詩)·좌잠(座箴)·화결시(和訣詩)·결(訣)·우음(偶吟)·제서(題書)·영소(泳宵) 등 약 7000여 자로서 전부 한자로 되어 있다. 이것을 통틀어 <동경대전(東經大全)>이라 한다. 흔히 한 종교의 경전(經典)은 <동경대전>보다 양적인 면에서 상당히 지면이 많다. 그러나 <동경대전>은 간략·평이하게 진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저술되어 있다. 이 경전의 내용은 대체로 여섯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좀더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대중을 위하여 저술된 <용담유사(龍潭遺詞)>라는 한글체 가사를 알아야 한다. 이 <용담유사>는 72구절(句節)의 용담가(龍潭歌), 145구절의 안심가(安心歌), 227구절의 교훈가(敎訓歌), 85구절의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 100구절의 도수사(道修詞), 114구절의 권학가(勸學歌), 68구절의 도덕가(道德歌), 93구절의 흥비가(興比歌) 등 8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가사체의 글이다. 이 글은 근본적인 교리 및 천리를 천명하는 데는 <동경대전>과 다를 바 없으며, 상층부의 지도층과 지식층을 위해 한문체로 쓰여진 <동경대전>과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한글로 된 <용담유사>는 기술문자(記述文字)의 차이일 뿐 그 요체(要諦)는 같다.

이 두 권의 책 속에 보완 설명된 요점은,

(1) 근대국가의 정치이념에 뚜렷이 나타난 국민주권사상이 기초가 되어, 양반 계급과 유자(儒者)의 전유물이든 보국안민(保國安民)의 책임을 서민대중의 책임으로 자각케 했고 민족주체성의 사상적 계기를 형성시키고 있다.

(2) 그러므로 반왕조적(反王朝的)이며 반체제적(反體制的)인 교리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인 사상은 당시의 외부 세력인 서양과 일본에 대한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기치가 되었으며, 민중의 총화를 이룩하여 외부의 침략에 구체적으로 투쟁하도록 조직화시키는 데나, 한민족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형성시키는 거점이 되었다.

(3) 유·불·선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온 왕조에 있어서 유·불·선의 누적된 폐단과 지도이념의 붕괴를 들어 정면으로 맞섰으며, 혁명적인 개벽 사상을 통한 새로운 지도이념의 구현과 민족의 장래를 구상하는 데 원전이 되었다.

(4) 논리에서뿐만 아니라 한민족고유의 신앙을 승화시켜 신앙적인 자세로 퇴폐한 사회풍조와 인심을 개조하여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된 대중사회를 형성시키려 했다.

(5) 개인의 이익이 바로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천리천명과 직결되어야 한다는 교리로서 개인은 개인 그대로가 아니라 전체 속의 개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다는 개전(個全)일체, 모든 사람은 동귀일체(同歸一體)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6) 모든 개혁은 비폭력에 의한 인간본연의 마음의 자각을 통하여 사회에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측면에서는 종교적인 신앙보다는 정치·경제·문화·사회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는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교조인 최제우 스스로가 종교와 정치는 동일한 것이라고 본 데서 출발했다.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성령(性靈)과 육신은 서로 온전해야 한다는 성신쌍전(性身雙全)에서 출발한 교정쌍전(敎政雙全)은 천도교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새 역사 속에 던져진 혁명적인 종교의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앙인이 국가와 민족을 저버린다면 참다운 신앙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론이다. 마찬가지로 수운은 신앙인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으로 분류되는 신분의 차이 이전에 국가와 민족을 위한 총력에서 제외될 수 있는 특권은 없다는 것이다. 흔히 종교인들 속에서 발견되는, 국가 혹은 민족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고, 절대자인 한울님의 신민(神民)이라는 사고를 수운은 용납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운은 경전 속에서 인내천(人乃天)의 진리를 사람마다 터득하도록 했고, 인내천 사상으로 인간평등을 근거로 한 시민사회형성과 지도이념의 체계를 형성하려 했다. 수운은 <용담유사> 속에서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더욱 밝혀 수운 자신과 신앙인과의 관계를 알려 주고 있다.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고 효유한 수운은 인간 각 개인을 스스로 한울님같이 모시고 행동하도록 자신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절대자이거나 초월자이거나 귀신이거나 다 인간 스스로임을 가르쳐 주고 이 우주의 주인은 바로 인간임을 가르쳐 준다. "카인의 것은 카인에게, 한울님의 것은 한울님에게"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은 인간에게, 인간의 것은 자신에게"라고 혁명적인 사고를 하도록 요구했다. 오직 소중한 것은 그 자신이며 인간이란 진리 위에서 민족과 국가는 오직 나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자신이 일체감(一體感) 속에서 이해될 때 자기 성찰을 통한 무한한 발전이 이룩된다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속에서 말하고

있다.

포덕문[편집]

布德文

1860년 한글 가사체의 글을 수편 지은 다음 1861년 논학문(論學文)과 함께 지었다. 이 글은 덕을 편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서 자연의 질서와 인간질서를 대조 비교하며 교조 자신의 득도과정(得道過程)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동학의 새원리의 발견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거나 또한 자신의 인격과 재질이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어지럽고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으므로 이를 구제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정성의 결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각기 제 마음대로 천리에 순종하지 않고 천명을 돌보지 않으므로 항상 마음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든가, 우리나라는 나쁜 질병으로 가득 차서 백성들이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으니 어려운 시련이 닥쳐 오리라는 것을 지적했으며, 서양의 세력이 점점 다가오는데 장차 보국안민할 계책이 과연 나올 것인가 하고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득도를 위한 수운과의 천사문답(天師問答)이 이루어지는데 그는 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상제와의 대화에서 상제 자신이 공이 없음을 자책하고 이 세상을 건지는 것을 너, 즉 수운에게 일임한다는 것과, 서도(西道:가톨릭)에 의해 어지러워진 세상을 어떻게 바로잡아 보국안민할 것인가라는 수운의 질문에 새로운 도로써 하라고 수운에게 가르쳤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동학이었다.

이렇게 얻어진 동학을 세상에 펴려 하였으나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옳게 여기고 믿으나 많은 사람들이 도덕을 순종치 않아 이를 개탄하면서 올바른 이치이므로 간략하게 적어 교훈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와 같이 포덕문은 동학에 대한 윤곽과 득도 과정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현상과 동학의 이해를 기술하고 있다.

논학문[편집]

論學文

포덕문(布德文)과 함께 1861년작이다. <동경대전>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논학문은 동학의 이론을 기술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대우주의 본체생명의 상대적인 작용에 의하여 만물이 화생(化生)하였는데 그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신령하다고 했다. 이어서, 과거의 인간들은 자연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부정하고 잘못된 신을 믿었음을 통박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운이 깨달은 새로운 사상도 갖도록 원하고 있으며, 또한 전래되어온 서교에 대하여 잘못된 이론체계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득도 과정에서 있었던 한울님과의 대화를 계속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동학의 기본사상인 "내 마음이 네 마음"이란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오심 즉 여심(吾心卽汝心)'은 인내천의 원천이며 사인여천(事人如天)의 도덕적 규범을 낳았다. 또한 천도교의 주문(呪文)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였는데 여기에서 우주만물이 화생(化生)하는 근본원리를 말하였고, 인간사회의 발전법칙과 개인의 인격향상에 대한 수련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논학문에서는 동학이라고 불리는 까닭이 설명되어 있다. 끝부분에는 천지무궁의 도와 무극한 이치가 이 한편의 글 속에 들어 있으므로 간단히 보지 말고 가장 바르게 깨닫는 동시에 이것을 더욱더 발전시켜 천명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수덕문[편집]

修德文

1862년에 저술된 것으로서 덕을 닦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글이다.

먼저 유가(儒家)의 선비들이 덕을 닦던 것과 그 덕이 전하여 온 경위와 수운 자신의 가계(家系)를 말하고, 수운이 40세가 되도록 이루어 놓은 것이 별로 없음을 탄식하면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있다.

마음으로는 가정을 돌볼 생각이 있지만 농사 짓는 일을 알지 못했고, 글공부를 독실히 하지 않은 것은 벼슬하려는 뜻이 없었던 까닭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히면서, 그리하여 복잡한 심경을 떨치고 일어나 구도를 위해 독공에 들어갈 것을 다짐하고 용담정에 파묻혀 버린다. 여기에서 득도하여 포교하는 과정을 간략히 서술하고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새로운 수도법을 정하여 가르치고 있다. 수심정기에 의해 지극한 수도를 하면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인재가 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도성덕립(道成德立)은 정성의 깊이와 사람의 됨됨이에 달려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주문만 외어 그냥 얻고자 함은 그릇된 것임을 조용히 타이르고 있다. 수운은 동학이란 정성과 믿음에 있음을 밝게 가르친다고 끝을 맺고 있다.

불연기연[편집]

不然其然

이 글은 1863년 그의 신앙이 가장 원숙한 때에 쓴 글로서 우주만물의 생성 과정에서 '그러한 것(其然)'과 '그렇지 않은 것(不然)'의 이치를 밝힌 것이다. 우주만물과 모든 현상은 이 두 가지 상반된 원리의 연쇄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보면서, 옛날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상반된 이치를 잘못 깨달아 사물을 관찰하는 데 그릇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수운은 불연과 기연의 새로운 이치를 발견하여 이론적으로 진리를 탐구하거나 사물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현상 그대로를 보지 말고, 그 현상이 나타나게 된 동기를 살펴 기연과 불연의 이치를 통해서 통일원리를 발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불연기연은 수운의 사물관찰에 대한 기본방법인 동시에 동학의 새우주관·새 사회관·새 인생관이며 인내천 사상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본래 우주는 한덩어리의 생명체이므로 살아서 부단히 자라는 것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낡은 부분은 소멸하고 새로운 부분이 생겨 계속 발전 향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낡은 것과 새것은 서로 반대의 내용을 가지고 있고, 이 반대원리에 의해서 형성된 만리만사를 관찰하는 데는 불연기연의 법칙에 의하지 않고는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올바르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불연기연에 의한 통일원리에서 보아야 하며, 우주만물은 서로 분산 고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단히 성장 발전하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본체생명인 한울님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탄도유심급[편집]

歎道儒心急

이 글은 불연기연과 같이 1963년에 지은 글로서 도인들의 조급한 마음을 탄식한 것이다.

수운이 포교(布敎)를 시작한 지 3년에 이르러 많은 수의 교인들이 모여들었으나 도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빨리 덕을 이루고자 함을 보고 이치를 밝혀 교인이 가져야 할 바를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금언처럼 말하고 있는 몇 가지를 들어보면,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올바로 가져야 도의 참다운 맛을 알고, 생각이 한결 같아야 만사를 자기 뜻대로 이루리라고 하였으며,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잘못을 탓하지 말고 내 마음의 작은 지혜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하였다. 모든 것은 때가 있으므로 그때를 기다려야 하고 마음을 조급하게 먹는 것은 올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

8절[편집]

八節

이 글은 두 개의 짝으로 되어,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8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으로 1863년에 지은 글이다. 그 8가지란, 사물에 밝은 사람이 되는 길, 덕을 아는 길, 생명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아는 길, 도를 깨닫는 길, 지극한 정성을 아는 길, 공경을 하는 방법, 두려움을 멀리하는 길, 참다운 마음을 갖는 길 등이다. 이 8절은 이상의 8가지를 통하여 자기성찰과 수행으로써 참다운 인간이 되도록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교훈가[편집]

敎訓歌

1860년에 지은 글로서 수운이 자신의 후세에게 가르치는 형식을 갖추어 당시의 제자들과 후생들을 교훈한 글이다. 이 교훈가에서 수운은 자기 가계의 훌륭함을 찬양하고 자기의 대(代)에 와서 몰락하게 됨을 탄식하면서 주유천하하다가 마침내 득도하게 된 동기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득도함으로써 조상에 대해 보답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포덕에 나선다.

수운은 이러한 자신의 일생을 설명하면서 후손과 후생들에게 이 도를 믿으면 현인군자가 되고 도성덕립이 가능하다고 하며, 이와 같이 쉬운 도를 믿지 않게 되면 자포자기의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안심가[편집]

安心歌

교훈가와 같이 1860년에 지은 글로서 수운이 자기의 부인을 안심시키는 형식을 갖추어 당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여성들에게 자기가 득도한 도를 통하여 한울님의 뜻에 맞는 생활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안심시키고 있다. 이 안심가는 동학의 여성관을 자세히 밝힌 글로서 여성 지위를 향상시켰다. 특히 1860년대의 봉건사회 속에 여성 지위는 거의 노예나 다를 바 없었던 무가치한 존재였는데 수운은 그러한 여성들에게 인생의 참다운 모습과 여성의 참다운 가치를 자각시키고, 나아가 여성의 위치는 한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한 사회에서도 절대적인 것이라고 가르쳐 여성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했다.

용담가[편집]

龍潭歌

이 글도 역시 1860년에 지은 글로서 수운이 득도한 용담정을 중심으로 용담의 유래와 득도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먼저 경주의 산수풍경과 신라 고도의 찬란한 문화를 찬양하고, 용담이 있는 구미산의 절경을 노래했다. 그러면서 수운은 득도한 용담을 천년이 지나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용담이 만약 역적의 소굴이라는 누명 아래 없어지게 된다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탄식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몽중노소문답가[편집]

夢中老少問答歌

이 글은 1861년에 지은 글로 꿈 속에서 늙은이와 젊은이가 주고받은 이야기의 형식으로 지은 글이다. 당시 한국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이 세상을 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도를 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도수사[편집]

道修詞

몽중노소문답가와 함께 1861년에 지은 글로, 이 글은 정부의 주목을 피하여 전라도 지방에서 각처에 있는 동학교도의 지도자에게 도인들을 지도하는 도리를 밝혀 놓은 글이다. 과거 유도의 전승이 사제간에 올바른 계통이 서지 못하여 잘못 전하여졌음을 거울삼아, 내가 득도한 동학은 조금도 잘못됨이 없이 전해지도록 힘쓰라고 당부하고, 도가 잘못 전하여지는 것은 윗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난법난도(難法難道)하는 사람을 경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권학가[편집]

勸學歌

도덕가와 함께 1862년에 지은 글로서 이 글도 역시 전라도 피신중에 고향에 있는 제자들에게 도를 열심히 믿도록 가르친 글이다.

수운은 낡은 세상은 곧 가고 새로운 세상이 천리에 의해서 꼭 돌아오게 되므로, 나 자신이 한울님을 위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확대요, 천리를 따르는 것이므로 한울님을 지극히 정성스럽게 공경하면 반드시 좋은 시절을 만나 잘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도덕가[편집]

道德歌

이 글은 1862년에 지은 글로서 역시 객지에서 지은 글이다. 이 글은 도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인데, 본체생명인 한울님의 의사에 합치하는 개인의 모든 행위를 올바른 도덕으로 규정하고 그 밖의 모든 인간의 행위를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수운은 한울님과 천지·귀신·음양도 본체생명으로 통일시키고 있다. 천지 사이에 가득찬 생명계가 음과 양으로 갈라져 상반된 작용에 의하여 만물이 화생케 된 것이므로 개체생명은 본체 생명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개체성명은 본체생명과 동일한 것이 되며 통일원리에 의해서 성장·발전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흥비가[편집]

興比歌

이 글은 1863년 당시의 도인들의 염려되는 행실을 걱정하면서 지은 글이다. 당시 도인들이 너무나 단순해서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하여 불미스러운 결과가 많은 것을 보고 경계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도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사리에 밝지 않거나 참을성 없이 중도에서 그침을 개탄하면서, 도인들의 그러한 자세는 올바른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다.

검가[편집]

劍歌

이 글은 원칙적으로 가사 8편이라고 하는 속에서 들어 있지 않으나 매우 중요한 글이다. 이 검가는 검결(劍訣)이라고도 하는데 1861년에 지은 글로, 교조 최제우는 이 글을 외며 목검을 갖고 칼춤을 추었다. 이러한 육체적 수련방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는데 성신쌍전에 근거한 수련방법의 하나로 쓰여졌다. 이 검가의 내용은 보검을 들고 무적의 기개(氣槪)를 자랑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그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