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민 간 신 앙/행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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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편집]

祭禮

제례는 구체적 신앙의 행동이다. 그 제의 의례를 통해서 신명을 위로하고 그 은혜의 덕을 보자는 데 민간신앙의 제례 목적이 있다고 보여진다. 제에는 길·흉·가·빈·군(吉凶嘉貧軍)의 5례가 관부에서 실행된 예전(禮典)이었다. 이외에 민중에서 행해지는 잡례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잡례가 민간신앙의 제이다. 이 잡례는 풍양(豊穰)의 제와 양재(攘災)의 제로 대별되었는데, 전자를 제라 하고 후자를 구나(驅儺) 또는 나례(儺禮)라 하였다. 그러나 두 제는 혼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풍양의 제는 거의 기도 형식의 제와 다름없다. 이에 속하는 민간에서의 제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성공제[편집]

誠貢祭

성공제는 평안도 지방에서 성행한, 아들을 낳게 하여 달라고 비는 제였다. 음력 4월 8일에 제를 올렸다.

기은제[편집]

祈恩祭

이 제도 성공제와 같이 아이가 주어지기를 비는 행위인데 옛날에는 감악산신(紺岳山神), 양주사(楊洲詞)에서 거행되었다. 이 제는 부녀자들이 깊은 산 속의 깨끗한 곳을 택해서 바위를 신체(身體)로 삼고 그곳에서 지은 밥과 청수(淸水)를 제물로 바치고 소원을 신명(이 경우는 産神)에게 아뢰었다. 그런데 이 기은제는 오늘날 정월·3월·5월·7월 등의 기수(奇數)의 달이고 날짜는 달이 차는 날(盈日)이다. 그리고 신체도 지방에 따라 다르며 바위(제왕바위)·신당목이나 때로는 산신령·용왕님과 같은 신명이다.

기자(祈子)의 주구(呪具)로서 부적·칼·도끼·고추·숯·밤·은행·쌀 등이 사용된다.

자식을 얻고자 하는 데에는 이와 같이 신명에 의지하는 신앙과 주구를 사용하는 주술적 신앙의 두 종류가 민간 속에 흐르고 있다.

기우제[편집]

祈雨祭

기우제는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제로서 이를 지내려면 우선 도랑과 밭뚝길을 깨끗이 한 다음에 12차례의 순서를 거쳐야 한다.

1차, 삼각산·목멱산(木覓山)·한강에 당하3품(堂下三品)의 관을 파견하고 2차, 용산강 저자도(楮子島)에 종2품(從二品)관과 3차, 풍운뇌우수산천(風雲雷雨水山川)의 영사(靈祀)에 종2품관을, 4차, 북교(北郊)에 종2품관과 사직에 정2품관(正二品)관을 보내서 제를 지냈는데, 이 치제(致祭)에서 용신(龍神)에게 제(祭)를 올렸다. 5차, 종묘에서 정2품 관조(官祖)가 치제를 하고 다시 6차, 삼각산 목멱산(木覓山)·한강에서 치제하고 범머리(虎頭)를 가라앉힌다.

이 범머리를 가라앉히는 풍습은 전국의 곳곳에서 기우제에 쓰인 것이다. 밀양의 백연이나 서산의 이매연(鯉埋淵), 고산(高山)의 용연(龍淵), 밀양과 홍천(洪川)의 가리산(加里山)에서 범머리를 용연에 가라앉혀서 비가 내리기를 기도했다.

용(龍)이 강우(降雨)제에서 신격자가 되었는데 용이 잠자고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 가뭄이 계속되기 때문에 용의 적수인 호랑이를 용이 있는 연못에 집어 넣어서 용이 잠에서 깨게 하는 것이다. 용이 활동하면 비가 내린다. 그러기 때문에 용을 잠에서 깨게 하는 방법은 호랑이 머리만이 아니고 용이 있는 연못의 물을 더럽히는 방법도 있다.

봉산(鳳山) 신룡담(神龍潭)에 동리 사람들이 오물을 던져 물을 흐리게 하였더니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져 비가 내렸다고 한다. 비가 어느 정도 내린 다음 다시 연못에서 오물을 건져 물을 맑게 하였더니 비가 개었다고 한다. 근래에는 이와 비슷한 기우의 행위로서 개울 있는 여기저기의 바위에 개의 피를 뿌리고 그 핏물 속에서 동리 부인들이 속옷차림으로 미역을 감는다. 그러면 하늘의 신령님이 더러운 것을 없애기 위해 비를 내리고 또 남자인 신령님이 부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깨끗한 빗물에 미역을 감게 하기 위해서 비를 내린다.

이 행위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더러움과 개끗함이라는 신앙관념이다. 이런 2분관(二分觀)은 음양(陰陽)의 관념에 쉽게 융합된다.

7차와 8차에도 정2품관이 용산강이나 산천운사(山川雲社)에서 제사를 올린다. 위계가 높은 제관자를 파견함은 신령님에게 치성을 다하는 태도인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때에 하늘의 신령님은 소원을 들어준다.

9차 치제하고 모화관의 연못가에서 석역동자의 기우(祈雨)를 행한다. 이 기우제는 10차에서는 경회루의 연못에서, 11차에서는 종묘의 춘당(春塘) 연못에서 올려진다.

석역동자 150명이 푸른 옷·기고(祈袴)·전대(纏帶)·행전·족발(버선)·광소당지(廣小唐只)·숙마혜(熟麻鞋)를 갖추고 물위에 떠있는 석역이 들어 있는 물동이를 두드리고 징을 울리면서 큰 소리로 "도마뱀아 도마뱀아,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해서 큰비를 내리게 하라, 그러면 놓아주리라"고 외친다.

동자군제(童子軍祭)란 바로 위의 제를 말하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병에 물을 담고 그 병 속에 버드나무 가지를 넣고 향을 피우며 방방곡곡에 시렁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이 모여서 비를 부른다.

오방토룡제(五方土龍祭)가 끝차례로 올려진다. 흙으로 만든 용을 동서남북과 중앙노상에 놓고 채찍질해 가면서 제를 지낸다. 동교(東郊)에서 청룡, 남교에서 적룡(赤龍), 서에서 흰 용, 북에서 검은 용 그리고 중앙 종루가(鐘樓街)에서 노란 용을 만들어 놓는다.

헌관과 감찰도 관홀(冠笏)을 갖추고 사흘 동안 제를 지내는데, 치제(致祭)때에 용왕경(龍王經)을 읽는다.

이 동안에 기우 7사(祈雨七事)가 지켜진다. 7사는 다음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① 옥에 갇힌 자와 실직자를 처리한다.

② 과부·고아들을 위로한다.

③ 정부에서의 용역을 덜어준다.

④ 현명한 사람을 거진(擧進)한다.

⑤ 탐하고 사악한 것을 없앤다.

⑥ 남녀를 명합(命合)하고 원한을 치유한다.

⑦ 선(膳)을 줄이고 가락을 금한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보면 기우제는 위에 언급한 곳 외에 모화관(慕華館)·경회루(慶會樓)·춘당대(春塘台)·선농단(先農壇)·한강변(漢江邊)에서 올려졌다. <용재총화>가 전하는 기우제의 장소는 종묘사직과 흥인(興仁)·숭례(崇禮)·돈의(敦義)·숙정(肅靖)의 4대문이었다. 이 기우제에 이어서 비가 오면 수한보제(水旱報祭)가 행해졌다.

부락제[편집]

部落祭

한 고을이 공동으로 고을 신(洞神)에게 치제(致祭)하는 것인데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그 몇 가지만 들어 보기로 한다.

강릉에서 올려지는 단오제(端午祭)가 예나 지금이나 규모가 크고 전통적인 부락제이다.

이 제는 기록에 의하면 (<강릉지>권 2 풍속조) 고려 태조가 신검(神劍)을 토벌하던 남정(南征) 때에 승속(僧俗) 두 신(神)이 병솔을 이끌고 구원하러 온 꿈을 꾸었는데 깨어 보니 싸움에 이겼다. 그리하여 대관(大關)에 이르러 치제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릉의 단오제가 10세기 초반부터 올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단오제의 신체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오늘날 범일국사(泛日國師)가 죽어 서낭(城隍)이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으며 이가 대관령국사 서낭이라고 알고 있다.

문화재관리국의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 자료 <강릉단오제>편에 따라 단오제의 행사를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3월 20일(음력) 제수용 쌀로 술을 빚는다. 쌀과 누룩은 호장(戶長)·부사(府司)·수노(首奴)·성황직(城隍直:男現長) 및 내무녀(內巫女:女巫長)가 목욕재계한 후에 호장청(戶長廳) 하방(下房)에 보관한다.

4월 초하루 사시(巳時)에 대서낭(大城隍)에 신주(神酒)와 시루를 올리고 제사한다. 제는 유교식에 따라 초헌관은 호장, 아헌관은 부사색(府司色), 삼헌관은 수노(首奴), 종헌관은 성황직이고 헌주가 끝나면 무격(巫覡)들이 노래를 부르고 새신(賽神)을 한다. 미시(未時)에 끝난다.

4월 초파일, 불탄일은 앞의 경우와 같다.

4월 14일 저녁 술시(戌時:8시)에 대관령국사서낭을 모시기 위해 출발한다.

행렬의 선두에 악대가 서고 다음에 호장·부사색·수노 및 도사령과 남녀 무당 50, 60명이 따른다. 옛적에는 이들이 모두 말을 탔다고 하며 그 위에 수백명의 마을사람들이 제물을 지고 따랐다 한다.

이 광경은 '타재부대(馱載負戴)'로 형용되었을 만큼 일대 장관이었다고 한다.

다음 아침 10시에 대관령에 있는 국사서낭사 앞에 도착하여 서낭과 산신에게 따로 제를 올린다. 무격은 단골을 위하여 서낭과 산신에게 법과 신주를 올린다. 단골도 각자 밥을 올리고 기도를 드린다.

이때에 칠성당과 정수(井水)에 용왕굿을 하기도 한다. 모두 공식과 음복을 한다.

서낭사의 성역 내에 있는 신력(神力) 있는 나무를 신간목(神竿木)이라 하며, 신간에 실·백지·헝겊 등을 걸어 놓고 액막이하기 위하여 굿을 한다. 이것이 끝나면 모두들 하산하여 귀로에 오른다. 물론 신간이 행렬의 중심이 되고 무격은 말 위에서 노래를 되풀이해 부른다.

귀로의 길가에 서낭을 맞이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도열한다. 국사서낭(신간)이 여서낭사에 들러서 치성과 굿을 올린 다음 대서낭사(設壇한 것)에 도착한다.

무악이 울리는 속에 신간이 사내에 세워진다. 4월 16일부터 5월 6일까지 21일 동안 날마다 새벽에 호장·부사·서낭직·내무녀가 문안을 드리고, 동민들은 직접 대서낭에 치성을 올리거나 무당에게 부탁한다.

5월 1일부터 닷새 동안 매일 사 앞에서 굿이나 가면놀이가 벌어진다. 초하루에 괫대(花蓋)를 만드는데 대나무를 둥글게(직경 6자 정도의 것) 하고 여기에 나무껍질을 감는다. 그 복판에 나무를 대고 거기에 또 다시 목간(木竿)을 세우는 등 수레바퀴를 달아 세운 것같이 만든다.

거기에 오색포(五色布)를 감아 아름답게 만든다. 이것이 괫대이다. 이것이 시가를 지날 때마다 상인들이 다시 색깔 헝겊을 괫대에 감아 준다.

5월 5일 단오날에 신간과 괫대를 앞세우고 시가를 누빈다. 이때에도 악대·임원·무격·동민들이 행렬을 지어 뒤따른다. 곳곳에서 굿을 하고 저녁에 괫대는 여서낭사에, 신간은 대서낭사에 봉안된다.

다음날 대서낭사 뒤뜰에서 소제(燒祭)가 올려진다. 신간·괫대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불사름으로써 끝나는 것이다.

대관령국사서낭의 제사에 초헌관·아헌관·종헌관·집례·대축(大祝)·판진설(判陳設)·봉향(奉香)·봉로·봉작(奉爵)·전작(奠爵)·헌폐·전폐(奠幣)·사존(司尊)·찬인(贊引)이 참가하고, 제물을 장만하는 도가(都家)가 있고 집례(執禮)가 홀기(笏記)를 읽으면 찬인은 그것을 복창하며 사존은 신주(神酒)를 담당한다. 판진설은 두 사람이다.

옛날의 제는 3월 20일에 신주를 빚는 것을 위시하여 4월 1일을 초단오라 하여 신주를 올리면서 무악(巫樂)이 연주되며, 4월 초파일도 같고 재단오(再端午)라 한다.

15일이 3단오로서 서낭제와 산신제가 올려지고, 27일이 4단오로서 무당의 굿이 있다.

5월 초하루가 5단오로서 괫대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단오제가 시작되어 초사흘에 6단오, 초닷새가 7단오로서 무악과 가면놀이가 열린다. 이날이 본 단오제이다. 다음날에 8단오로서 끝나는 소제가 행하여진다.

제물의 진설에 있어서 서낭제에서는 쇠고기와 어물이 바쳐지고, 산신제에서는 백설기와 소머리가 제물이 된다. 양제에서는 포(脯)·과일·탕이 쓰인다.

축문에는 서낭제축·영신축(迎神祝)·산신축이 각각 낭독된다.굿은 부정굿·가내굿·군웅굿·시중굿·서낭굿·지신굿·맞이굿·별신굿·선조굿·성조굿·주왕굿·걸립굿의 12차례 굿으로 구성되고 그 굿마다 무가는 다르다.

제물진설과 치제는 어떤 부락제에 있어서나 거의 같다. 신체(神體)가 지역에 따라 다른 것은 물론이나 대체로 산신이다. 산신은 위패나 그림으로 그려진 우상신(偶像神)이다.

부락제의 목적은 부락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그 가호를 부락민 전체가 받자는 것이다.

그 가호를 받기 위해서 부락민들은 1년 동안 단결하여 산신이 내렸다고 인정하는 금기를 지킨다.

이와 같이 부락민이 공동으로 제를 지내고 금기를 지키는 데서 부락의 공동의식이 조성되고 연대의식이 강화된다. 이러한 부락제는 자연의 마을에는 으레 거행된다. 다만 그 규모가 다를 뿐이다.

옛날에도 부여에 영고(迎鼓), 고구려에 동맹(東盟), 예에 무천(舞天)이란 부락공동체가 있었고 마한에서는 천신제가 전국적으로 올려졌다.

이와 같은 부락제는 곳곳에서 오늘날도 행하여지는데 제주는 엄선되고, 여러 가지 번거로운 금기(禁忌)를 제가 올려지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일정 기간 엄수해야 한다.

제의 행위로서 가장 간단한 것은 서낭(城隍) 앞을 지나갈 때에 행하는 행위이다. 길가에 큰 나무나 돌뭉치가 있는 서낭 앞에서 길가는 사람이 돌을 올려놓고 침을 뱉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하나 두고 지나간다. 이는 토지 수호신인 서낭에게 재난을 없애달라 하며 복을 빌고, 여행의 피로를 풀고 소원성취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성지신(城地神)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고사[편집]

告祀

고사는 주로 가족의 평안과 재앙의 회피를 빌고 집안의 가호(加護)를 기원하는 일종의 제로서 그 대상은 가내에 거주한다고 믿어지는 신체이다.

이때 제주는 주부(主婦)가 된다. 주부는 미리부터 몸을 깨끗이 가꾸고 고사날에는 타인의 출입을 금하고 문에는 새끼줄이나 소나무 가지를 꽂으며, 대문 앞에 흙을 뿌린다. 제주는 성주신(城主神)의 강림(降臨)을 기다려 집안의 구석구석에 고사떡을 바치면서 왼손을 아래로, 오른손을 그 위에 포개서 반신 이하로 굽혀 절하고, 소원의 말을 신체에게 아뢴다. 대개 음력 10월 상달에 들어서서 잡귀(雜鬼)가 요동하지 않는 길일(吉日)에 고사를 올린다. 고사떡은 대체로 3층이다.

고사는 성주대감(대청 마루의 대들보가 대감이 된다)과 토지대감(장독대에 위치한다)에게 주부가 북어·약주·고사떡을 바치고, 빌고 절하는 방식으로 기원한 후 집안의 평안을 기원한다. 그 다음에 우선 대주님(집주인)이 계시는 안방 아랫목에 제물을 드리고 빈 다음에 집식구 차례대로 그들이 쓰고 있는 방과 여러가지 소유물에게도 제물을 바친다.

부엌·변소 등에도 제물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대문에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고사를 끝낸다.

고사에는 떡이 불가결의 제물인데, 그 해에 남겨둔 씨앗을 심어 거둔 쌀을 가지고 만든 떡이다. 이것을 '씨갑떡'이라고 한다.

고사 전에 주부는 이웃의 먼 곳에 다니지 않는다든가 목욕재계하는 등의 결재(潔齋)가 필요하다.

고사 치성(告祀致誠)을 올리는 곳은 다음 여덟 곳이다.

① 내당(안방):이곳에서 제석항(帝釋缸)을 받들고 이때의 신주는 제석이고 이는 자손의 수호신이다.

② 대청(大廳):대들보 위에 성조(成造)를 제사한다. 성조신은 집과 집주인을 지키는 신주로서 남자이다.

③ 뒤뜰:여기에 '지죠리'를 제사하며 대감(大監)이 신주인데, 이 신주는 재산과 복을 더하여 주는 신이다.

④ 마당:이곳은 지신(地神)을 받드는 곳인데, 지신은 여신(女神)이고 그 집의 주부를 보호하여 준다.

⑤ 부엌:이곳에 기주(基主)를 모시는데 기주는 하인들을 지켜주는 신으로서 본래는 텃신이었고 조왕이라는 중국식 신명(神名)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늘날 민가에서뿐 아니라 사찰의 부엌에 모셔지고 있기도 하다.

⑥ 처마 밑:대청 마루 앞에 있는 처마 밑에서 걸립(乞粒)이 고사를 받는다.

⑦ 대문(현관):수문장을 모신다.

⑧ 변소:측신(厠神) 각시를 모시는데, 이것은 여성이라고 한다.

나례[편집]

儺禮

나례는 귀신을 쫓아내는 종교의례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귀신을 쫓을 때에 주력(呪力)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히 기원으로써 쫓는 방법과 조력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는 방법이 있다. 나례는 후자의 방법을 쓰는 구나행사(驅儺行事)인데 고려 정종 이후에 이룩된 듯하다. 관상감(觀象監)의 주재하에 행해진 궁중의 나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석(除夕) 전날 밤에 창덕궁과 창경궁궐 뜰에서 나례가 벌어졌다. 그 제도를 보면 악공(樂工) 한 사람이 창사(唱師)가 되어 붉은 옷을 입고 탈(假面)을 쓴다.

또 탈을 쓴 방상씨(方相氏) 4명이 황금빛 나는 네 눈을 뜬 채 곰가죽을 뒤집어 쓰고 창을 들고 목탁을 두드리며 서로 치고 받고 한다. 지휘자 5명이 역시 붉은 옷에 탈을 쓰고 그림을 그린 벙거지를 쓰고 있다.

또 판관(判官) 5명은 녹색 옷에 탈을 쓰고 역시 벙거지를 쓰고 있다. 조왕신(부엌신) 4명은 청색 도포를 입고, 복두를 쓰고, 목홀(木笏)을 지니고 탈을 쓴다.

소기(小妓) 여럿이 여자 적삼에 탈을 쓰고 치마 저고리는 홍록색(紅綠色)이며 긴 간당(竿幢)을 들고 있다. 또 12신은 각각 귀신탈을 쓰고 있는데 자신(子神)은 쥐 모양을 하고, 축신(丑神)은 소 모양의 탈을 쓰고 있다. 악공들 20여 명이 복숭아가지로 만든 비를 들고 뒤를 따른다. 아이들 수십 명이 뽑혀서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수건과 탈을 쓰고 진자가 된다. 진자는 12∼16세의 소년이었다.

창자(唱子)가,

"갑작(甲作:神名)은 흉한 놈을 꺾고 필위(神名)는 호랑이를 먹고… 만일 네가 급히 가지 않아 늦으면 이들의 양식으로 만들리라. 빨리빨리 법대로 시행하렷다"고 고함을 치면 진자는 "물러가겠노라"고 머리를 조아리고 복죄한다. 이 때 모든 사람이 북과 제금을 울리면서 창하면 귀신들은 드디어 쫓긴다.

이 의례는 사신(邪神)을 쫓는 목적 외에도 칙사(勅使)의 위안으로 수시로 베풀어졌다. 이런 때에는 광대들의 창(唱)이 동원되었다.

나례에 있어서 처용무(處容舞)는 대대적으로 악공(樂工)과 기녀(妓女)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곡예·희학지사(戱謔之事)는 재인(才人)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잡희·백희·나희 등으로 불리었다. 나례 출연자의 명칭에는 나례청에 소속된 우인(優人)·배우·광대·창우(倡優)·수척(水尺)·중(僧)·재인(才人)·현수(絃首)재인·백정·희자(戱子) 등이 있었는데 사회적으로 천시당했다. 나례의 상연 장소는 주로 야외였고, 궁중에서는 사정전(思政殿)·명정전(明政殿)·인정전(仁政殿) 등이었다. 오늘날 나례는 오락적 놀이로서 남아 있을 뿐이다.

방매귀[편집]

放枚鬼

방매귀는 위의 나례를 모방한 민간적 구나(驅儺)이다.

민간에는 진자가 없고 푸른 대나무잎과 싸리가지와 익모초 줄기와 동쪽에 뻗어 자란 복숭아나뭇가지로 만든 비로 창살을 막 두드리고 북과 꽹과리를 마구 울리면서 역귀를 문 밖으로 몰아내는 흉내를 낸다.

푸닥거리[편집]

푸닥거리와 무꾸리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동안에 생기는 생활상의 파탄을 메우기 위하여 특수한 힘을 얻어 보려는 민간신앙이다.

푸닥거리에는 잡귀들이 장난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판단되는 생활상의 파탄을 메우기 위해서 그 잡귀들에게 음식물을 풀어 먹여서 물리치는 행위와 닥쳐올 액을 막으려는 행위가 있다. 귀신을 쫓는 것을 푸닥거리라 하고 후자를 액막이라 하는데, 액막이에 푸닥거리 행위가 취해지곤 한다.

귀신을 막거나 쫓는 데에는 귀신을 정면으로 위협하여 쫓는 것과 음곡(音曲)·춤·공물(供物) 등으로 귀신의 환심을 사는 법이 있다.

위협하는 법에는 귀신들린 사람을 방 안에 넣고 3∼4일간 경을 읽은 후 주구(呪具)로 때리는 구타법(毆打法)이 있고, 귀신이 잠입(潛入)해 있다고 믿어지는 물품을 불로 태워버리는 청정법(淸淨法), 그리고 유사 모방법이 있다.

이것은 안질에 걸렸으면 종이나 땅에 그 사람의 눈을 그리고 거기에 바늘을 꽂아서 눈에 있는 귀신을 압살시키는 방법이다. 귀신을 꽁꽁 묶는 방법도 있고, 땅이나 항아리 속에 묻거나 몰아넣고 봉하는 방법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강압적인 방법을 쓰는 푸닥거리이다.

푸닥거리는 대체로 액막이나 저주, 그리고 가수(嫁樹)의 두 요소로 구성된다. 공물을 바치고 귀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 귀신에게 잘못을 사죄하고 보은(報恩)을 바라는 행위는 치성(致誠)이다.

치성에는 근신(謹愼)이 따르게 되는데 근신은 미의미식(美衣美食)·남녀교환(男女交歡)·가무음곡(歌舞音曲)·향락오락(享樂娛樂)을 피하고 신체의 부정(不淨)을 정화(淨化)하는 일이다.

액막이[편집]

厄-

닥쳐올 액을 막으려는 행위. 액막이에는 주로 타력이 이용된다. 귀신을 막으려면 그 귀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물건이 사용된다.

병마(病魔)·악귀(惡鬼)는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소리로서는 북·금속성·슬픈 소리·고함소리를, 강한 냄새와 강한 자극을 주는 매운 것, 신 것을 싫어하며 뜨거운 것이나 아픈 감각을 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액막이에 이상의 다섯 감각을 주면 귀신은 도망치고 재화(災禍)는 방지된다. 빨간색을 나타내는 것으로는 팥·고춧가루·고사떡이 있으며, 앞에서 보았던 나례의 구나에서 빨간 옷이나 수건이 사용되었다.

굿 중의 오귀 굿에서도 빨간 천을 무당이 머리부터 뒤집어 쓰고 귀신을 몰아내는 것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고,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의 떡을 만들어 그 죽 속에 넣어서 제물로 쓰고 또 사람들이 먹으며, 팥죽 국물을 문짝에 뿌려서 액막이를 한다. 이 풍속신앙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귀신을 팥죽으로써 물리친다"는 초나라의 풍습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기록되어 있다.

부적[편집]

符籍

부적은 액막이나 악귀·잡신(雜神)을 쫓기 위하여 야릇한 글자를 붉은 글씨로 그려 붙이는 종이를 말한다. 저주·악마·귀신 등의 해를 미리 막기 위해서 신체·소유물·집·선박 등에 붙여지는데, 동물의 뼈·뿔·이빨이나 돌·흙·식물·인형 등이 쓰이기도 하고, 글자나 부호 등을 적은 종이나 그림이 사용되기도 한다.

화재를 막기 위해 물 수(水)자를 거꾸로 문지방 위에 붙인다든지 이상한 부호의 주서(朱書)를 붙여서 액을 막는다. 부적(符籍)은 오늘날 가장 유행되고 있는 액막이 방법이다. 주서(朱書)로 그린 것으로 용도에 따라 그림이 각각이다. 부적을 사용하는 법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포박자(抱朴子)>에 있는 '적령부(赤靈符)를 만든다'는 풍속에서 유래했다. 부적의 예를 몇 가지만 예시해 본다.

문배[편집]

門排

문배는 금(金)·갑(甲)의 두 장군상을 그린 그림인데, 대궐문의 양쪽에 붙여서 액과 병마를 예방하는 부적의 기능을 다한다. 그런데 한 장군은 도끼를 들고 또 한 장군은 절을 들고 있는 그림이다.

이 문배의 그림은 여러 가지이다. 붉은 도포와 까만 사모를 쓴 그림의 문배가 있는가 하면, 종규(終南山의 進士. 그는 小鬼를 잡아먹고 唐玄宗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그 모습은 큰 눈에 구렛나루가 많고, 까만 옷에 관을 쓰고 서있다)의 화상(畵像)이 쓰이기도 한다.

민가에서는 귀신의 머리를 그려서 문설주에 붙이기도 한다. 오늘날 절간에 흔히 사천왕(四天王)의 그림이 대문에 그려져 있는데, 이것도 문배신앙에 연유를 둔 것으로 보인다.

도교(道敎) 묘(廟)의 건물 벽에 깃발을 들고 있는 갈장군(葛將軍)의 그림이 걸려 있다. 여기에 교도들이 참배하여 액막이를 한다.

저주[편집]

咀呪

저주는 다른 사람이 목적하는 바를 방해하는 일종의 푸닥거리 행위이다. <광해조일기(光海朝日記)> 권 2에 "김응벽·황광인·이만용 세 사람은 연이(連伊)로 하여금 과(帶飾金具)를 가지고 나오게 하여 고양이를 깊이 1자 되는 곳에 묻고 경문(經文)을 대홍단자(大紅段子)에 써서 묻어 두었다.

한 상궁은 궐 안에서 저주를 행했다. 소경 장순명은 왕자 영창군(永昌君)의 처소에 들어가서 왕자의 생월을 써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경을 송했다. 또 사람을 종이에 그려 놓고 바늘로 눈을 찌르고 그것을 부엌 밑에 파묻었다. 또 산 강아지를 전후(殿後) 술밭에서 죽이고 내관(內官)은 발을 묶어서 김산사의 깊은 못에 던졌다. …내인 환이(環伊)는 금색 고양이의 눈에 바늘을 찔러서 연옹(煙瓮)에 넣어 두었다.

내인 예금(禮今)은 뇌물을 받고 저주물을 주고받고 했다. 그 저주의 방법을 모두 여자 소경으로부터 배워서 했다. …동궁 남쪽 담장 안에 죽은 까치, 죽은 쥐를 던지고, 동궁 담장 바깥에 돼지와 우립(羽笠)을 쓴 사람의 그림을 그려두고 대전(大殿)의 마루 밑에 쥐를 묻는다. …저주 16종을 전후 16번, 열흘 내지 닷새에 한 번씩 행한다"는 저주의 종류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위의 기록은 왕자의 출세를 막기 위해 압승(壓勝)을 음모한 것인데 저주는 힘에 의한 압승이란 신념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욕설에 저주가 개입되기도 한다.

'육실할' 또는 '급살 맞을' 등의 욕설은 저주의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 저주에는 활동·언어·정물(靜物)이란 측면이 있고, 그것의 어느 하나를 행하면 목적하는 효과가 있다는 인간의 욕구나 정서가 있고, 신명이나 정령과 같은 초인간적·초자연적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다른 것에 강제하는 자력(自力)에 의지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가수[편집]

嫁樹

가수는 과일나무 가지에 작은 돌을 끼워두면 과일이 번성한다는 신념하에 행하는 민간신앙의 행위이다. 가수는 속계(俗界)의 활동이 멈추었을 때, 즉 밤중·새벽·섣달그믐날·설날·보름·하지·동지·춘분·추분에 행하여진다.

무꾸리[편집]

무꾸리는 속칭 점이다. 사람들이 행동의 선택에 있어서,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에 그 방법 이상의 방법을 얻어서 행동을 결정하려는 역을 무꾸리는 맡아 준다.

기로(岐路)에 선 인간에게 갈 길을 가리키는 것이 무꾸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때에 사람은 무꾸리를 통해서 지난 일을 알아 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해 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무꾸리는 일종의 예언(豫言)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무꾸리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몇 가지만을 예시해 본다.

음청[편집]

陰晴

정월 상원일(上元日)에 맑으면 백과(百果)가 풍성하다. 2월에 비가 오면 그 해의 곡식은 풍성하지 못하다. 3월 초사흘에 비가 내리면 누에에 좋다.

3월 초사흘에 비가 많이 내리면 곡식이 귀하고 초파일에 비가 오면 그 해는 풍년이다. 7월 입추에 비가 조금 오면 길(吉)하고 큰 비가 내리면 곡식이 상한다. 8월 사일(社日)에 비가 오면 다음 해에 풍년이다. 9월 아흐레에 비가 오면 큰 수확을 거둔다. 10월 보름 날씨가 맑으면 겨울에 따뜻하다.

8절후의 음청을 보고도 점을 친다. 입춘·춘분·입하·하지·입추·추분·입동·동지가 8절후(八節候)이다. 이날의 날씨로 오곡(五穀)과 재앙을 무꾸리한다.

하늘에 낀 구름 모양이나 햇빛의 모양이나 무지개 등에 의해서 다음 날의 일기를 점치는 일도 있다. 이런 것을 음청결(陰晴訣)이라고 한다.

명운[편집]

命運

남녀의 명운을 무꾸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남녀사주·길흉법(吉凶法)은 사주의 태세(太歲)와 월건(月建)과 일진(日辰)과 시수(時數)의 순서로 합하여 본다. 태세의 간수(干數)와 월건의 간수를 합하여 초분(初分)으로 하고, 월건과 일진의 간수를 합하여 중분(中分)으로 하며, 일간(日干)과 시간의 수를 합하여 말분(末分)으로 삼는다.

그 셋을 합한 수를 비결에 맞추어서 거기에 있는 비결문을 해득하여 길흉(吉凶)을 알아 낸다.

단시[편집]

斷時

육임단시결법(六壬斷時訣法)은 점자(占者)의 생년간지(남간여지)와 무꾸리 날짜의 일간(日干)과 점치는 시간의 시지(時支)를 합하여 작괘(作卦)한다. 그 괘에 따라 결문(訣文)을 해석하여 판단을 내린다.

몽참[편집]

夢讖

몽참은 꿈을 꾼 내용을 해석하여 그 뜻을 알고 행동을 취하려는 것이다.

해몽법(解夢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천문일월성신(天文日月星辰), 지리·산석(山石)·수목, 신체·치발(齒髮), 관대(冠帶)·의복, 궁실·옥우(屋宇)·창고, 칼·북·쇠, 금은·주옥, 거울·비녀·빗 등등의 꿈을 꾸었을 때 무엇이 길(吉)이고 무엇이 흉(凶)이라는 것이 해몽법에 기록되어 있다. 그 지시에 따라 행동하면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꿈에서 본 거울이 밝으면 길(吉)하고 흐리면 흉(凶)하다는 따위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용재총화> 등에 점치는 풍속의 기록이 여기저기 실려 있다. 거기에는 청참(聽讖)·삼재법·오행점(五行占)·맥점(麥占)·달맞이 등의 점에 관한 풍습이 실려 있다. 설날 아침에 오행점을 쳐서 새해의 신수를 점친다. 나무에 금·목·수·화·토를 써서 장기쪽같이 만든다.

그것을 일시에 던져 그것들이 넘어지고 엎어진 것을 보고 점사(占辭)에 있는 말을 해석, 이해한다. 혹은 윷을 던져 새해의 길흉을 점친다. 대개 3번을 던져 짝을 짓고 3번 나온 괘(卦)로 요사(繇辭)에 맞춰서 결정한다.

예를 들면 도·도·도…건(乾)이면 아이가 어머니를 만남, 도·모·모…췌(萃)이면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음 따위이다. 요사는 64괘로 되어 있다.

점복하는 사람의 명칭은 여러 가지이다. 조선때에는 박수·선사(禪師)라고도 하였다. <용재총화>에 따르면 광통교(廣通橋) 근처에 나이먹은 맹복(盲卜)인 김을부(金乙富)가 복서(卜筮)로 이름을 날렸던 모양이다.

세인들이 그를 선사(禪師)라고 불렀다. 그런데 독경을 하는 맹인들은 모두 삭발하고 복서를 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복서에 쓰이는 점서(占書)에 당나라 것과 본국의 것이 있었는데 당나라 것이 더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당의 것이 쓰이고 있다. 그리고 점에 종사하는 자를 복술자(卜術者)·복자(卜者)·술자(術者)라고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