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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까지의 천문학
[편집]近代-天文學
천문학의 역사를 훑어보면 연대의 추이에 따라 내용이 풍부해지고 그 수준이 높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연구방법이나 목표에도 진보를 볼 수가 있다.
이집트·바빌로니아·인도·중국 등의 고대 왕국이 번창했던 오리엔트 시대(기원전 약 50세기-7세기)에는, 달력 만들기나 별자리(星座)그리는 기술이 주로 농사와 제사에서의 필요성으로 일어났으나, 천체 현상을 신(神)들의 계시로서 해석하는 신화적·주술적(呪術的) 성격이 짙었다. 다음의 고대 그리스 시대(기원전 6세기-4세기)의 철학자들은 우주를 이성적·논리적으로 고찰하고,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달·5행성(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고 하는 지구중심설(地球中心說)을 구상했다. 그리고 이들 천체의 시운동(視運動)에서 볼 수 있는 지속(遲速)·역행(逆行) 등의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교묘한 기하학적 기구를 고안해 냈다. 천구상에서의 천체상호의 위치 관계를 연구하는 구면 천문학(球面天文學)은 이 시대부터 형성(形成)되기 시작하였다.
중세 시대(5세기-15세기 중엽)의 유럽에서는 봉건제하(封建制下)의 암흑시대였음에 대해, 그리스 천문학을 계승한 것은 아라비아의 이슬람문화였다. 거기에는 지점(地點)이나 방위(方位)를 결정하는 실제 천문학에 대한 요청과 국가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占星術)에 대한 흥미가 뒤섞여 있었다.
해양(海洋)의 개발에 따라 개원(開元)된 과학혁명 시대(15세기 중엽-17세기 중엽)에는 원양항해의 안전을 보증하기 위하여 항해력(航海曆, 천체 위치 추산표)의 개정이 급선무가 되었다. 종래 교황청의 교의(敎義)의 하나로서 그 권위를 인정해 왔던 지구중심설은 항해력 제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당한 기초 이론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太陽中心說)을 채택하여(1543) 우주체계를 전개했다. 이 설에서는, 모형적으로는 중심 천체로서 지구 대신 태양을 바꿔 놓은 것뿐이지만, 행성의 시운동(視運動)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공전 궤도의 모양을 종래와 같이 원형으로 보았기 때문에 항해력의 개량은 예기되었던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점에 수정을 가한 것이 케플러이다. 케플러는 스승인 티코 브라헤에게서 계승한 화성의 관측 자료를 정리하여 행성 공전의 법칙을 발견했다(1609-1619). 또한 이것을 바탕으로 정도(精度)가 높은 행성 운행표를 만들어(1627), 항해자의 요망에 부응할 수가 있었다. 이와 같은 성과는 단순한 기하학적 고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체의 운동을 추적하는 운동학적 연구에 의하여 얻어졌던 것이다. 한편,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발명(1609)에 의해 태양중심설에 관측적인 근거를 만들어 주고(1632), 또한 지상 물체의 실험에 의해서 천체역학(天體力學)의 기초를 구축(構築)하였다(1638).
천체역학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1665)에서 시작되어 매뉴팩처 시대(17세기 중엽-18세기 후반)의 수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모든 현상의 원인을 힘의 작용으로 보는 기계론적 자연관(機械論的自然觀)의 전성기에 지상(地上)에서는 기계의 발명의 잇따르던 때여서 천체의 운동 또한 역사적 이론에 의해서 해명되고, 라플라스가 이것을 집대성했다(1799).
천문학의 발전
[편집]天文學-發展
천체 망원경에 의한 실제 관측과 천체 역학에 의한 이론 계산은 근대 천문학의 무기가 되었고, 이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여러 천체의 발견과 예측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태양계의 범위는 예부터 있던 토성에서 명왕성까지의 약 5배까지나 확장되고(1930), 태양계의 내용은 태양·행성·위성 이외에 혜성(1705)·소행성(1801)·유성물체(1866) 등 다종다양하게 되었다.
관측과 계산이 정밀화함에 따라 지구의 운동도 점차 밝혀지게 되었다. 세차(歲差, 기원전 2세기경)·장동(章動, 1745)·위도 변화(緯度 變化, 1891)의 발견은 지구 자전에 따른 이론적 결론과 합치하고, 또 목성의 위성식 현상(衛星飾現象, 1676)·광행차(光行差, 1745)·연주 시차(年周視差, 1839)의 발견은 지구 공전의 결정적 증거를 제공했다. 그 결과 코페르니쿠스 이래 종교적 교의와 과학적 진리와의 대립의 형태로 계속되었던 지구중심설 대 태양중심설의 시비는 후자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천체역학의 성과를 거둔 그 기저에서 매뉴팩처 시대에 전성했던 기계론적 자연관은 차차 자취를 감추고, 이에 대신하여 에너지론적 자연관이 주류가 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동향은 기계의 원동력을 탐구해 가는 동안에 제1차 산업혁명기(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에 주로 열학·광학의 법칙이 발견되고, 제2차 산업혁명(19세기 중엽-19세기 말엽)에 주로 전자기(電磁氣)의 법칙이 발견된 결과이다. 열·빛·전기·자기에 관한 여러 가지 현상은 힘에 관한 현상을 포함하여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들 모든 자연 현상은 에너지의 수지(收支)에 의해서 환산된다고 하는 견해가 지배적으로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입장에서 천체 연구에도 물리학의 여러 방법이 응용되었다. 옛날 그리스의 히파르쿠스(Hipparchus, 기원전 190년경-기원전 125년경)에 의해 시도되었던 항성(恒星)의 등급 결정은 천체광(天體光)의 정량적 연구(定量的硏究)이고, 이에 대하여 뉴턴에 의하여 창시된 일광(日光)의 스펙트럼 분석(1666)은 천체광의 정성적 연구(定性的硏究)였다. 19세기에 이르러서 광도계(1830년경)나 분광계(1814)가 천체 관측에 채택되자 이러한 천체 물리학의 분야가 발전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양자론(量子論)이 창설되어(1900) 천체 물리학의 이론적 기초가 확립되었다.
연주시차(視差)의 검증(1838)은 태양중심설의 결정타가 됨과 동시에 항성의 거리 측정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에 의하여 천문학의 대상 영역은 태양계를 넘어서서 은하계로 전개되었다. 항성의 위치·거리·운동·반지름 등의 기하학량(幾何學量)과 항성의 등급·광도·색깔·스팩트럼·표면 온도·질량 등의 물리량들은 직접 관측할 수 있는 자료를 기초로 순차적으로 도출(導出) 산정(算定)되는 것인데, 많은 수의 항성 자료의 통계적 처리 결과 몇 쌍의 특정의 두 양(量)을 직결하는 경험법칙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항성의 스펙트럼형(型)과 광도(헤르츠스프룽러셀도, Hert-Russell圖, 혹은 간단히 H-R圖, 1913), 연성(連星)의 질량과 광도(1924), 맥동성(脈動星)의 변광 주기와 광도(1908) 등의 사이에 성립되는 관계이다. 이와 같은 모든 관계는 한편에서는 그 성립 이유가 이론적으로 해명된다는 것과 다른 한편에서는 이 경험법칙을 살려서 미지량(未知量)의 추정에 적용할 수 있다는 2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통계적 연구 방법이 총정리되어서 통계 천문학이 성립되었다.
통계천문학의 원조(元祖)는 허셜이다. 그는 항성의 광도의 천구면 분포를 통계로 나타내어 은하계의 형상을 추정하거나(1784), 근거리 항성의 고유 운동을 통계로 나타내어 태양의 공간 운동을 확인했다(1783). 20세기에 들어와서 미국에 대형 망원경이 설치되어(1918) 관측 가능 범위가 증대되고, 외은하계(外銀河系)의 자료가 집적되었으므로, 이들의 구성 체계인 은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을 관측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대형 망원경 외에 이 천체사진술(1850년경)이고, 우주 구조론에 도움이 되는 기초 이론은 상대론(1915)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급격한 발전을 본 분야에 전파 천문학이 있다. 전파 천체는 전쟁 전(1931)에 이미 발견되었던 것이지만, 전후 전파망원경의 진보에 의하여 발견 수가 현저히 증가되고 광학망원경과는 다른 다채로운 우주상(像)을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각각 다른 진화의 여러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항성의 광열원(光熱源)을 공급하는 것은 항성 내부의 열핵반응(熱核反應)이라는 것이 확인되고(1939), 그 결과 화학조성(化學組成)은 차차 변질하여 방사 기능은 소장윤회(消長輪回)할 것으로 상상된다. 또 외은하계가 그 거리에 비례한 속도로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관측되고(1929), 이것은 우주의 팽창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원시에는 대우주 전체가 한점에서 출발했으리라고 해석된다. 항성도 우주도 함께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하는 진화론적 우주관 아래에서, 오늘날의 천문학에서는 우주 진화론이 착착 추진되고 있다.
태양계의 개척
[편집]太陽系-開拓
옛날부터 해(太陽)·달(太陰)과 5행성(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란 어느 민족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천체여서, 지구중심설에서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이르러서 태양은 중심천체, 지구는 태양을 도는 행성의 하나, 달은 그 지구를 도는 위성으로, 항성의 세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소범위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갈릴레이에 의한 천체망원경의 발명으로 먼저 목성의 4위성이 발견되고(1610), 태양계에 속하는 소천체(小天體)나 멀리 있는 천체가 잇따라 발견되었다. 갈릴레이의 천체 망원경과 아울러 태양계 개척에 효과를 가져온 것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핼리는 이 법칙을 당시 출현한 대혜성에 적용하여, 그것이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길쭉한 타원 궤도상에서 공전(公轉)하고 있는 천체임을 증명했다(1705).
허셜 남매는 망원경의 대형화 개량에 의해서 새로운 행성의 발견이라는 행운의 기회를 포착했다(1781). 그 천체는 토성 궤도의 바깥쪽을 공전하는 천왕성이다. 이보다 앞서 행성의 궤도 장반경(長半徑, 태양에서의 평균 거리)에 대해 보데(J.
E. 1747-1826)와 같은 사람들은 일정한 수열(數列)로 표시하는 경험법칙을 발표했다(1772). 이 법칙은 천왕성에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 알려졌으므로 화성과 목성 사이의 간격을 메울 미지 행성(未知行星)에 대한 협동 탐색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해당하는 천체 제1호는 피아치(J. Piazzi, 1746-1826)에게 발견되었고(1802), 제2호는 올버스(H. Olbers, 1758-1840)에게 발견되었다(1802). 이들은 모두 달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그만 천체인데, 소행성으로 등록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발견된 수는 1,600개를 넘는다.
발견 후의 천왕성 운동은 다른 행성과 비교할 때 케플러의 법칙으로부터의 섭동(攝動)이 현저했다. 파리 천문대의 르베리에(U. J. J. Leverrier, 1811-77)는 이런 현상을 천왕성 궤도의 바깥쪽에서 공전하는 미지 행성의 인력작용에 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 위치와 질량을 역산했다. 베를린 천문대의 갈레(J. G. Galle, 1812-1910)는 예상한 대로 미지 행성을 망원경으로 잡았다(1846). 그것이 해왕성이다. 이와 같은 예보 계산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아담스(J. C. Adams, 1819-92)도 독자적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발견의 영예를 함께 차지하게 되었다. 이론에 의거한 천체 발견의 성공은 '천체 역학의 승리'라고 불리고 있다. 천왕성의 운동에는 아직도 얼마간의 섭동이 남아 있다. 로웰(P. Lowell, 1855-1916)은 이것을 더 바깥 쪽에 있는 미지(未知)행성에 의한 섭동으로 보고, 그의 제자인 톰보(C. W. Tombaugh, 1906- ? )는 그에 따라 명왕성을 발견했다(1930). 그 궤도 반지름은 지구의 약 40배에 해당하며, 태양계의 주변에 다다른다.
보데의 법칙
[편집](Bode-法則)
지구를 제1번 행성으로 하고, 그 평균 거리를 1천문단위(AU=1억
4,960만km)로 나타내면 제 번 행성의 평균거리 a는 2의 n승의 0.3배에 0.4를 더한
값으로 나타낼 수가 있다. 즉 공식 a=2n×0.3+0.4로서 다음 표와 같이 된다. 이
법칙은 비텐베르크대학의 수학 교수 티티우스(J. D.Titius, 1729~1796)가 1766년에
발견하고, 베를린 천문대장 보데에 의해서 1772년에 공표된 것이다. 당시 제3, 5,
7, 8번 행성은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이 법칙은 경험적으로 얻어진 것으로서 결코
이론적으로 유도된 것은 아니었던 만큼, 어디까지 이 법칙이 들어맞을 것인지 의심되고
있었다.새로운 행성인 천왕성을 발견했을 때, 그 평균 거리는 실제로 보데의 법칙의
제6번 행성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보데 등 6명의 독일 천문학자들은 당장에 제3번
행성의 수색 조합을 결성했으나, 1801년에 팔레르모 천문대장인 피아치가 이것을
발견하여 세레스(Ceres)라고 이름을 붙였다. 세레스는 얼마 가지 않아 행방불명이
되었으나 가우스의 궤도 계산에 의하여 조합원들의 손으로 1년 후에 재발견되었다.
세레스는 행성의 파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소행성의 제1호로, 제2호 이하가 차례로
조합원들의 손에 의해서 수를 늘려 갔다.천왕성의 운동은 케플러의 법칙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이 운동의 어긋남을 천왕성의 바깥쪽 제7행성의 인력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아담스와 파리 천문대의 르베리에였다.
그들은 먼저 보데의 법칙에 따라 그 평균 거리를 추정하고, 이에 대해서 천체역학적
정밀 계산을 했다. 르베리에의 예보에 따라 베를린 천문대의 갈레가 발견한 것은
해왕성이었다.보데의 법칙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는 끌어 낼 수 없다. 태양계의
형성과정에서 성립된 것이다. 1755년 칸트의 성운설(星蕓說) 이래 20을 넘는 진화
가설이 제안되었으나, 오늘날 이 법칙을 증명할 수 있는 태양계 진화론이 카이퍼나
시미트에 의해서 고찰되고 있다.
〔표〕-1 보데의 법칙과 실측 거리 | ||||||||||
행성 |
수성 |
금성 |
지구 |
화성 |
세레스 |
목성 |
토성 |
천왕성 |
해왕성 |
명왕성 |
a 실치 |
-00 0.4 0.39 |
0 0.7 0.72 |
1 1.0 1.00 |
2 1.6 1.52 |
3 2.8 2.77 |
4 5.2 5.20 |
5 10.0 9.54 |
6 19.6 19.19 |
7 38.8 30.07 |
8 77.2 39.46 |
허셜
[편집]Wilhel Herschel(1738-1822)
영국의 천문학자. 음악가의 아들로서 하노버에서 태어났다. 7년 전쟁에 군악대원으로 종군했으나, 탈주하여 1766년 런던 교외의 교회전속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그러는 한편, 천체 관측을 취미로 하고, 시판되지 않는 대형 망원경 만들기에 열중했다. 고향에서 불러온 누이동생 캐럴라인(C. Caroline, 1750-1848)을 조수로 하여 1774년 초점거리 5.5 피트의 반사 망원경을 필두로, 차례차례 대형화하여 1789년에는 40피트(구경 4피트) 경(鏡)을 완성했다.
당시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순전히 항해력 편집을 목적으로 하는 소형 망원경만의 설비였으나, 그의 열망은 천공(天空)을 남김없이 탐사하는 데 있었다. 1781년 3월 13일 쌍둥이 자리에서 천왕성을 발견한 것도 남매의 끈질긴 노력의 결정이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업적에 의하여 왕실 부속 천문관에 추천되어 우주 연구에 전념(專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남매가 거둔 성과는 광범하고 또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태양계에서는 천왕성의 제2, 제3 위성, 토성의 제1, 제2위성을 발견했으나, 다시 항성계의 탐사에 나섰다. 핼리가 발견한 항성의 고유 운동(1718)을 통계로 나타내어, 1783년에 태양계의 공간 운동을 발견했다. 또 천구의 선택 구역에서의 항성광도(光度)의 분포를 통계로 나타내, 1784년 은하계의 구조를 추정했다. 또한 연주시차(年周視差)를 검증하기 위하여 2중성 관측을 계속하여 상호 공전을 하는 연성(連星)을 1802년에 발견했다. 그리고 성운·성단의 계통적 조사를 개시, 아들 존(John Herschel, 1792-1871)이 이를 계승하였다. 이러한 방법과 성과는 항성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태양중심설의 확증
[편집]太陽中心說-確證
태양계의 구조에 관한 태양중심설은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기원전 310년경-기원전 230년경)가 제창하였고, 또 지구중심설에 대한 비판은 르네상스 초기에 쿠사누스(N .Cusanus, 1401-1464)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저서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1512)에서 태양중심설을 채택하였고, 케플러는 그의 저서 『새로운 천문학』(1609) 및 『세계의 조화』(1619)에서 행성 공전의 법칙을 발견하였으며, 갈릴레이는 그의 저서 『천문 대화』(1632)에서 태양중심설을 주장하였고, 뉴턴은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Principia)』(1678)에서 공전(公轉)의 역학적 기초를 논증하였다.
이들 일련의 발전이 항상 교황청의 금제하에서 이루어진 것은, 결정타가 될 만한 확증이 좀처럼 얻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 공전의 결정적인 열쇠는 코페르니쿠스가 지시한 것처럼 항성의 연주 시차이다. 이것은 공전 궤도상의 각점에서 같은 항성을 보면, 시선 방향이 1년 주기로 진동하는 현상이다. 그 진폭은 가까운 항성이라도 1초각(角) 이하로서 거리에 반비례하여 작다. 이것이 실측으로 측정된 것은 측미계(測微計)의 발명 후인 1838년의 일이었다.
이와 같은 확증이 얻어지기까지에는 역대 천문학자의 노력이 있었지만, 어느 것이나 정도(精度)부족이 원인이 되어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노력 속에서 뜻밖의 부산물을 얻어 천문학의 진보에 기여한 것도 있다.
뢰머(O. Roemer, 1644-1710)는 파리 천문대에서 목성의 위성이 목성의 배후에 가려지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계속 관측하여 그 원인을 빛이 지구 궤도의 지름을 진행하는 데 약 16분 반이나 걸리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광속도(光速度)와 공전 궤도와의 값을 얻었다.
브래들리는 항성의 연주시차를 검출하는 목적으로 항성의 천정거리(天頂距離, 천정에서 그 천체까지의 각거리)를 계속 관측하여 목적을 이루는 대신에 광행차(1727)와 장동(章動, 1747)을 발견했다. 전자는 항성광(恒星光)에 대하여 지구가 공전 횡단하는 결과 일어나며, 후자는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하여 미소(微小) 진동하는 현상임이 증명되었다.
지구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하여 원추운동하는 현상은 세차운동이라고 불리고, 관측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히파르코스(Hipparchos, 기원전 190년경-125년경)에 의하여 춘분점의 세차로서 발견되었으며, 이론상으로는 뉴턴에 의해 지구 타원체에 대한 달의 인력 작용으로서 설명되었다.
지구 자전축이 지구 표면에 대하여 이동하는 현상은 퀴스트너(F. K
stner, 1856-1936) 및 챈들러(S. C. Chandler, 1846-1913)에 의해서 1888년에 위도 변화로서 발견되었으나, 그것은 이미 오일러(L. Euler, 1707-1783)에 의해서 1850년경 역학적으로 예견되어 있었다. 지구 자전의 직접 측정은 푸코(J. B. L. Foucault, 1819-1868)가 1852년에 했다. 오래 지속되는 커다란 단진자(單振子)로 진동면이 회전하는 현상을 실측하여 공간에 대한 지평면의 회전을 실증한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천체를 관측한 결과, 지구의 공전 주기(1년)는 1세기 간에 0.09초 꼴로 단축되고 있으며, 자전주기(1일)는 0.01초씩 길어져 가고 있음을 알아 낸 것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의 일이다.
푸코
[편집]Jean Bernard Leon Foucault(1819-1868)
프랑스의 물리학자. 파리에서 출생하여,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했으나, 후에 물리학으로 바꿨다. 1851년 스스로 발명한 '푸코 진자'로 지구가 자전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물 속에서의 빛의 속도가 공기 속에서의 속도보다 느림을 측정하여 빛의 파동설을 증명하였다. 1852년 자이로스코프를 발명하고, 1855년 '푸코 전류'라는 맴돌며 흐르는 전류를 발견하였다. 1862년 회전거울로써 빛의 속도를 1초에 298,000km라고 정하였다. 1865년 반사망원경의 반사 거울면을 회전 타원면이나 포물면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는 등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다.
연주시차의 발견
[편집]年周視差-發見
태양중심설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드는 증거는 연주시차이다. 공전궤도의 양 끝에서 같은 항성을 바라보았을 경우의 시선 방향의 차의 반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 항성에서 지구의 궤도의 반장경(反長徑)을 본 각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로 이것이 지적된 것은 1543년이었으나, 관측에 의하여 실제로 측정된 것은 1838년이며, 그 값이 1초각 이하라고 하는 미소각(微小角)때문이었다. 망원경에 측미계(測微計)를 붙여서 미소각을 정밀측정하는 기술이 겨우 이룩되자 우연히도 세사람의 천문학자에 의하여 3가지 다른 방법으로 독립적으로 검출에 성공했다.
케니히스베르히 천문대의 베셀(F. W. Bessel, 1784-1846)은 백조자리 61번 별을 골라 시차(視差) 0.31초를 얻었으며, 케이프타운 천문대의 헨더슨(T. Henderson, 1798-1844)은 센타우르스자리 성(星)을 골라 0.1초를 얻었고, 또 풀코와 천문대의 스트루베(F. G. W. Struve, 1792-1864)는 거문고자리 성을 골라 0.26초를 얻었다. 어느 것이나 고유운동이 크다는 것(근거리인 것), 휘성(輝星)이라는 것을 선택 기준으로 했으나, 측정 방법은 세 사람이 각각 달랐으며, 그러면서도 검출 성공 기일은 거의 동시였다. 연주시차가 측정되던 날, 태양중심설이냐 지구중심설이냐 하는 논쟁은 끝나고 곧 항성계 연구의 길이 열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연주시차에 의하여 항성 거리가 실측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핼리
[편집]Edmund Halley(1656-1742)
영국의 천문학자 겸 수학자.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고 후에 동 대학의 교수, 제2대 그리니치 천문대장을 지냈다. 남쪽 하늘의 항성 관측을 위해 세인트헬레나섬으로 가서 항성 목록을 만들었다. 또한 달의 관측과 그 운동의 이론을 연구하고 남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여행하며 지자기를 관측하여 세계 최초로 지자기 편각도를 만들었다. 그는 뉴턴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뉴턴을 격려하여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완성하게 하였다. 1682년 파리 혜성을 관측하고 뉴턴의 역학의 법칙을 이용하여 혜성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다. 관측을 계속하여 혜성도 75-76년의 주기를 갖고 타원의 궤도를 그리며 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금성이 태양의 곁을 지날 때 태양의 시차 결정의 발견으로 천문학 발달에 공헌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10년 지구 가까이에 온 혜성을 '핼리 혜성'이라 이름붙였는데, 이 혜성은 1986년에 다시 지구를 찾아왔다.
베셀
[편집]Friedrich Wilhelm Bessel(1784-1846)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민텐 출생. 별 목록을 만들었으며 천왕성 바깥에 행성이 있음을 예언했다. 또한 태양 중심 우주 체계에서 케플러의 법칙을 포함하는 수학적 함수(그이 이름을 붙여 베셀 함수라 했다)를 체계화시켰다. 나아가 처음으로 별의 연주시차를 측정하여 태양을 뺀 다른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구했다. 이것으로 베셀은 지구가 공전함을 증명했다.
메시에
[편집]Charles Messier(1730-1817)
프랑스의 천문학자. 밤하늘에 희미하게 보이는 천체가 혜성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1784년에 새로운 목록을 만들어냈다. 메시에 목록을 뜻하는 'M'이라는 접두사는 지금도 성운이나 성단의 이름에 사용되고 있다.
보데
[편집]Johann Elert Bode(1747-1826)
독일의 천문학자. 1786년 베를린천문대장을 지냈으며, 1774년 『베를린 천문연감』을 창간하였다. 또 티티우스가 발견한 혜성의 평균 거리에 관한 실험적 법칙인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을 세웠다. 20장으로 이루어진 그의 성좌도에는 17,241개의 별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저서로 『베를린 기상 연보』 『독일의 천체력』 등이 있다.
르베리에
[편집]Urbain Jean Joseph Leverrier(1811-1877)프랑스의 천문학자. 1846년에 행성 운동의 교란으로부터 발견되지 않는 행성의 적외선적 존재를 생각했고, 수일 후 갈레에 의해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옹스트룀
[편집]Anders Jonas Angstrom(1817-1874)
스웨덴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웁살라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열학·자기학·광학 등에 관한 연구가 많고, 이외에 태양 스펙트럼·북극광의 스펙트럼에 관한 연구가 많다. 빛의 파장 측정에 사용되는 '옹스트롬' 단위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브래들리
[편집]James Bradley(1693-1762)
영국의 천문학자.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으나 숙부의 지도하에 천체 관측에 힘써서 핼리의 인정을 받아 1722년 모교의 천문학 교수가 되었다. 항성의 연주시차의 검출에 뜻을 두고 긴 초점거리의 망원경을 하늘로 향하게 하여 1927년에 용자리 성(星)의 위치의 연주 변화를 확인했다. 그러나 위치의 어긋남은 연주시차라면 태양 방향(지구 공전의 직각 방향)에서 일어날 텐데, 이 경우는 공전의 진행 방향에 일어났다. 이것은 빗속을 달리면 빗발이 앞으로 기우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여 광행차(光行差)라고 이름지었다. 어긋난 각 20초에서 광속도(光速度) 매초 30만km 및 지구공전 속도 매초 30km를 추정했다. 광행차를 계속 관측하여, 항성 위치의 변화에는 주기 18.6년, 진폭(振幅) 9.2초의 작은 진동이 부수한다는 것을 1747년에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은 장동(章動)이라고 하여, 불균등한 지구 타원체에 달의 인력이 작용하는 결과라는 것이 달랑베르(J. C. R. Dalembert, 1717-1783)에 의해서 1749년에 역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브래들리는 1742년 핼리의 뒤를 이어 제3대 그리니치 천문대장에 취임했다.
에어리
[편집]Sir George Bidell Airy(1801-1892)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지구물리학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 자오선 관측체계를 정비하고 달에 관한 수치이론을 발전시켰으며, 진자를 이용한 중력측정으로 지구밀도를 추정했다. 또한 지각이 맨틀 위에 평형을 이루며 떠 있다는 지각평형설을 제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어리의 설은 높이 솟은 지형일수록 평균밀도가 작고, 그러한 윗부분과 대칭되는 뿌리 밑부분이 지구 하부에 깊숙이 박혀 있어 전체적으로 밀도의 평형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애덤스
[편집]John Couch Adams(1819-1892)
영국의 천문학자. 1858년 이후 케임브리지대학 천문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1861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 천문대장이 되었다. 1845년 르베리에와 거의 동시에 해왕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냈다.
갈레
[편집]Johann Gottfried Galle(1812-1910)
독일의 천문학자. 1851년부터 1857년까지 브레스라우 천문대장을 역임했다. 1846년 9월 베를린 천문대에서, 이미 르베리에에 의해 수학적으로 계산된 해왕성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스키아파렐리
[편집]Giovanni Virginio Schiaparelli(1835-1910)이탈리아의 천문학자. 밀런에 있는 브레라 천문대장을 역임. 운석과 쌍성에 관한 연구를 했으며, 화성의 캐널(운하가 아니라 단순히 긴 구조를 한 것이라는 뜻)을 발견했으며(1877), 헤스페리아 소행성도 발견했다(1861).
천체 물리학의 진보
[편집]天體物理學-進步
뉴턴이 1666년에 시도한 일광 스펙트럼 실험을 프라운호퍼가 개량하여 1814년에 다수의 검은 선(暗線)을 발견했다. 키르히호프(G.R.Kirchhoff, 1824-1887)는 61년에 그 검은 선이 태양 대기의 흡수에 기인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대기의 화학 조성을 밝혔다.
1868년의 일식 때, 홍염(紅焰)과 코로나의 스펙트럼 속에 미지 원소의 선이 발견되어 전자는 헬륨, 후자는 코로늄이라 이름지어졌으나 코로늄은 100만도의 고온 속에서 고전리(高電離)된 원자에 기인한다는 것이 1939년에 증명되었다. 헤일은 제에만 효과(1897)에 의한 스펙트럼선(線)의 분열과 편광을 이용하여 1908년에 흑점(黑點)의 자장(磁場)의 세기를 측정했다.
항성의 스펙트럼 분석을 시작한 사람은 허긴스와 세키(P. Secchi, 1818-1878)이다. 전자는 도플러효과(1842)에 의한 스펙트럼선의 편이(偏移)를 검출, 1868년에 항성의 시선 속도를 측정했다. 후자는 1866년에 다수의 항성을 조사하여 스펙트럼형으로 분류했다.
전리 이론(1920)이나 방사 이론(1900)을 스펙트럼 관측에 해당시켜서 항성 대기의 온도·밀도와 항성 표면의 온도·휘도가 구해지고, 한편으로 연주시차(1838)와 시광도(視光度)(1908)의 측정에서 실광도(實光度)가 정해진다. 이 실광도와 휘도에서 항성의 실반지름이 산정되는데, 항성 간섭계(1920)에 의해서 시직경(視直徑)의 직접 측정이 이루어진 거성(巨星)도 있다. 이에 대해 항성의 질량은 허셜이 발견한 연성계(1802)에 케플러의 제3 법칙을 적용하여 얻어지며, 질량과 반지름으로 평균 밀도가 추정된다.
에딩턴은 이 순서를 밟아 물의 수만배(倍)라고 하는 고밀도의 백색왜성(白色矮性)을 1924년에 발견했다. 항성의 실광도에 대하여 3가지 경험 법칙이 발견되었다. 맥동성의 변광주기와의 관계(1908), 스펙트럼형과의 관계(1913), 연성(連星)의 질량과의 관계(1924)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관측치를 통계낸 결과로 얻어진 관계이지만, 이것을 부연하여 먼별의 분광 시차(1916), 성단(星團)·성운의 맥동성거리(脈動星距離), 단독성(單獨星)의 질량의 추정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와 같은 경험 법칙의 이론적 증명을 위하여 1926년 에딩턴은 항성 내부 구조론을 1938년 가모프(G. A. Gamov, 1904-1968) 및 베테(H. A. Bethe, 1906- ? )는 항성 진화론을 굳혔다.
전자에 따르면 항성 내부는 대단한 고온도, 고밀도이며, 후자에 따르면 거기서는 쉴 새 없이 열핵반응이 진행되어 어느 항성이나 방사능을 생산하면서 각각 생애를 경과한다. 1944년 바데(W. Baade, 1893-1960)는 세대를 달리 하는 항성의 중족을 발견했다.
1931년 잰스키가 천체 전파를 잡은 이래, 새로운 우주 관측법이 개척되었다. 대전 후의 전파 망원경의 발달에 의해서 수많은 라디오성(星)이 발견되었으며, 그들의 정체는 팔로마산 천문대 대망원경(1948)으로 해명되어가고 있다.
로얼
[편집]Percival Lowell(1855-1916)
미국의 천문학자. 보스턴에서 출생하여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실업가·외교가로서 오랫동안 동양에서 지냈다. 1893-1896년 애리조나주의 플랙스태프에 사설 로얼천문대를 설립하고, 화성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화성인의 존재를 믿었다. 또 해왕성 밖에 있는 미지의 혹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 혹성은 그의 사후 14년 뒤에 '로얼천문대'의 조수 톰보에 의해 1930년에 발견되어 '명왕성'이라 불리어졌다. 저서로 『화성과 그 운하』 『화성에서는 살 수 있는가』 등이 있다.
허긴스
[편집]William Huggins(1824-1910)
영국의 천문학자. 런던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천문학에 흥미를 보였고, 후에 런던에 사설 천문대를 세워서 천체의 스펙트럼을 연구하였다. 후에 분광기를 발명하고 항성의 스펙트럼 분석으로 항성이 나트륨·칼슘·철·수소 등의 원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라운호퍼
[편집]Joseph von Fraunhofer(1787-1826)
독일의 물리학자. 광학 기계를 제작한 외에 광학과 수학을 홀로 공부하여 태양과 별의 스펙트럼을 연구하였다. 여러 가지 유리의 굴절률을 연구하던 중 나트륨스펙트럼 D를 발견하였다. 1814년 태양의 스펙트럼에서 324개의 검은 선을 발견하였다. 이 선을 '프라운호퍼선'이라 한다. 또 처음으로 회절 현상을 연구하여 빛의 파장을 계산해 냈다.
챈들러
[편집]Seth Carlo Chandler(1846-1913)
미국의 천문학자. 1881년 하버드대학교 천문대와 협력해 혜성 발견의 전화전달체계를 확립했다. 또 위도를 정확히 관측하고자 부유천정의를 발명하여 명성을 얻었다. 1891년에는 지구의 위도 변화를 알아내고, 14개월이라는 챈들러주기를 발견했다.
슈바르츠실트
[편집]Karl Schwarzschild(1873-1916)
독일의 천문학자. 관측천문학 분야에서는 사진을 이용한 별의 광도측정법을 표준화하는 데 노력했다. 이론천문학 분야에서는 별의 흡수선 형성이론과 항성집단의 타원체적인 속도분포이론 등이 유명하다. 또한 우주론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에 대한 완전해로 슈바르츠실트의 해를 구했고, 별이 중력붕괴를 일으키는 임계반지름이론 등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헤일
[편집]George E.Hale(1863-1938)
미국의 천문학자.시카고의 실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재학 중이던 1890년에 일광(日光)의 특정 파장에 의한 태양 촬영법(분광 태양 사진의(寫眞儀))를 발명했다. 시카고대학 조교수를 거쳐 1897년에 여키스천문대 초대 대장에 취임, 1904년 카네기 재단의 힘을 빌어 윌슨(Wilson)산 천문대를 개설하고 태양 물리의 연구에 전념, 1908년 태양 흑점의 강한 자계(磁界)를 발견했다. 이어서 항성 관측을 위하여 많은 기부금을 모아, 17년에 구경 100인치의 망원경을 완성했다.
1923년 천문대장직을 사임했으나, 다시 200인치 망원경 설치를 계획하고 록펠러재단의 원조를 구했다. 1928년, 예산 600만 달러로써 착수했으나, 이것으로 팔로마산 천문대의 완성을 본 것은 대전 후인 1948년이었다. 그 열의에 의해서 인류의 시력은 드디어 수십억 광년의 성운 저쪽까지 달한 것이다.
캐넌
[편집]Annie Jump Cannon(1863-1941)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 델라웨어주 도버 출생. 캐넌은 변광성 300개, 새로운 별 5개, 쌍성 한 개를 발견했다. 또한 286,000개의 별을 분형·밝기·분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연구했으며, 20만 개의 변광성에 관한 목록을 완성했다.
잰스키
[편집]Karl Guthe Jansky(1905-1950)
미국의 공학자. 오클라호마주의 노르만 출생. 위스콘신대학교 졸업. 1931년 대서양 횡단 전파 통신에서 생기는 혼선을 조사하고 있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쉿쉿'하는 잡음을 듣고 몇 개월 동안 연구한 끝에 이 잡음이 태양계 밖에 있는 궁수자리 근처에서 오는 것임을 확인했다.
우주 구조의 탐측
[편집]宇宙構造-探測
항성의 집단 체계에 대한 연구는 허셜에 의해 개시되었다. 항성을 천구상에서 등급별로 성수 계측(星數計測)하여, 암성(暗星)의 밀집 방향으로 깊이를 지닌 원판형의 은하계를 상정(想定)했다(1784).
캅테인은 성좌 사진을 이용하여 성수 계측(星數計測)의 통계 방법을 확충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름 4만 광년인 은하계 범위와 2대 성류(星流)라고 하는 항성의 체계적 운동을 제창했다(1904).
섀플리는 맥동변광성(脈動變光星)의 주기 광도 관계를 이용하여 구상성단(球狀星團)의 거리를 측정하고, 구상성단의 공간 분포로부터 은하계의 지름을 구했으나(1918), 성간 물질(星間物質)에 의한 흡수(1930)를 보정하여 직경 10만 광년, 중심은 궁수자리(弓手座) 방향 3만 광년이라고 정했다.
린드블라드 등은 항성의 체계적 운동을 분석하여 은하계의 회전을 입증하고(1927), 전질량(全質量)을 태양의 약 2000억 배로 추정했다. 회전에 따른 은하계의 나선구조(螺旋構造)에 대하여 모건(W. W. Morgan) 등은 휘성의 배열로 이것을 확인하고, 프루스트(J. L. Proust, 1754-1826)는 성간(星間) 수소 가스의 전파 방사로 이것을 입증했다.
외은하계의 대표로서 안드로메다 대성운(Andromeda 大星蕓)이나 마젤란운(Magellan蕓)이 은하계에 필적하는 항성체계(恒星體系=gallaxy)라는 것은 19세기 중엽에 확인되고, 윌슨산 천문대의 100인치 망원경이나 팔로마산 천문대의 200인치 망원경의 구사에 의하여 그 규모나 성상(性狀)이 밝혀졌다. 특히 허블에 의한 거리·속도의 비례 관계(1929)는 우주 팽창설의 관측적 근거가 되고, 그 이론적 증명이 일반 상대론(1915)에 의하여 고찰됐다. 즉 아인슈타인은 외은하계를 4차원 공간으로 나타내고 중력에 의한 빛의 굴절을 고려하여 이것을 유한 구상(有限球狀)으로 보았다. 1922년 이래 프리드만(A. A. Friedmann, 1888- ? )이나 르메트르(A. Lema
tre, 1894- ? )는 여기에 물질 척력(物質斥力)을 도입하여 반지름 증대의 가능성을 제안했던 것이다.
은하계 성운의 관측은 전파 천문학의 측면에서도 추진되어 우주 진화론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에딩턴
[편집]Arthur Stanley Eddington(1882-1944)
영국의 천문학자. 북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물리학을 배우고, 1906년 그리니치 천문대의 조수가 되어 위도변화 관측 등에 종사하는 한편, 항성의 통계적 운동을 수학적으로 해석(解析)하여 은하계의 회전을 예견했다.
1913년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다음해 동 천문대장에 취임, 1916년부터 항성의 내부 구조에 대하여 이론적 연구를 추진, 방사적으로나 중력적으로나 항성은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기본 가정에 입각하여 온도·밀도의 분포를 산정하고, 24년 질량·광도 관계를 증명했다. 또 백색왜성(白色矮性)의 이상한 고밀도(高密度)에 대하여 상대성이론에 의한 검증 실험을 지시하여 성공했다. 상대성 이론에 관해서도 독창적인 연구를 전개하고, 이것을 우주 구조에 적용하여 독자적인 우주론을 제창했다.
리비트
[편집]Henrietta Swan Leavitt(1868-1921)
미국의 천문학자. 세페이드변광성의 변광 주기의 로그값이 겉보기 등급과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이러한 발견은 나중에 별까지의 거리를 결정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캅테인
[편집]Jacobus Cornelius Kapteyn(1851-1922)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544,875개에 이르는 남반구의 별에 대한 목록을 만들었다. 이것이 '케이프 사진 성도'로서 지금도 남반구에 있는 별의 연구에 중요하게 쓰인다. 캅테인은 좁은 영역 안에 있는 별을 빠짐없이 세어 봄으로써 항성의 통계적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또 별의 운동을 측정하면서 주위 별들의 평균운동에 대한 개개 별의 운동이 한 방향으로 무리지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뒷날 은하계의 구조 연구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섀플리
[편집]Harlow Shapley(1885-1972)
미국의 천문학자. 내슈빌 출신으로, 미주리대학과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였다. 1914년 윌슨천문대원, 1921-1950년 하버드천문대장을 지냈다. 리비트가 1912년 발견한 주기광도 곡선을 연구하여 '맥동 변광성'의 절대 등급을 측정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또 구상 성단의 거리를 측정, 연구하여 처음으로 은하계를 발견하였다. 이 밖에 '실시 연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천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린드블라드
[편집]Bertif Lindblad(1895-1965)
스웨덴의 천문학자. 외레브로 출생. 웁살라대학 졸업. 1926년 별들이 우주공간에서 두 방향 가운데 한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상을 우리은하의 자전 효과로 설명했다. 이것으로 린드블라드는 우리은하가 회전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하였으며, 얼마 뒤 네덜란드의 오르트가 이 이론을 증명했다.
러셀
[편집]Henry Norris Russel(1877-1957)
미국의 천문학자. 1911년 프린스턴대학의 천문학과 교수가 됨. 어두운 원반에서부터 별이 되고, 별이 핵융합 반응이 끝나고 축소되면서 적색 거성으로 변한다는 별의 진화에 관한 이론을 제시했다. 1910년 헤르츠스프룽과는 별도로 별 표면의 온도와 밝기의 관계표를 만들어 H-R도(헤르츠스프롱-러셀도)를 완성했다. 이 도표를 기초로 한 연구는 별의 무리적 성질과 진화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 1929년에는 별의 대기에서 가장 풍부한 화학원소가 수소라는 증거를 제시했다.
헤르츠스프룽
[편집]Ejnar Hertzsprung(1873-1967)
덴마크의 천문학자. 별의 밝기와 색에 관한 관계를 규명한 이후 별의 진화에 관한 연구로 일관했다. 또한 리비트의 방법을 개량하여 외부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허블
[편집]Edwin Powell Hubble(1889-1952)
미국의 천문학자.시카고대학 재학중에 헤일의 감화를 받아 천문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천문대에 들어갔다. 유럽대전 종군 후 1919년 윌슨천문대로 옮겨 100인치 망원경에 달라붙었다.
외은하계 외성운(소우주)의 연구에 전념하여 그 거리·크기·시선 속도를 측정했다. 거리는 맥동 변광성의 광도 주기 관계에 의하여, 또 시선속도는 도플러효과의 스펙트럼선 편이에 의해서 구했다. 수십 개에 이르는 성운의 관측 자료를 통계하여, 이들 성운의 후퇴속도가 그 거리에 비례하여 증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을 허블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외은하계를 포함하는 은하가 다같이 팽창해 가고 있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과정을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 은하의 팽창 개시는 약 100억년 전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편에서 일반상대론에 의한 고찰을 유도하고, 동시에 우주 진화론을 전개시키기에 이르렀다.
바데
[편집]Wilhelm Heinrich Walter Baade(1893-1960)
독일 태생의 미국 천문학자. 별을 분류하는 데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우주의 크기와 연령을 알 수 있는 허블 상수를 개선했으며, 초신성과 전파 은하에 관한 연구도 했다.
가모
[편집]George Gamow(1904-1968)
러시아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핵물리학·우주론·천문학·천체물리학·분자생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했으며 2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특히 핵물리학 분야에서는 알파 입자가 어떻게 원자핵을 탈출하는지를 발견했다. 이 발견은 뒤에 대폭발설(빅뱅)이라고 하는 우주창조설을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카이퍼
[편집]Gerard Peter Kuiper(1905-1973)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천문학자. 카이퍼는 달 접근 사진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레인저 우주계획을 지휘했는데, 이 계획은 미국의 우주선이 달착륙 지점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 다른 업적으로 천왕성의 11번째 위성인 미란다와 해왕성의 8번째 위성인 네레이드를 발견했다.
오르트
[편집]Jan Hendrik Oort(1900-1992)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은하계 역학, 은하면 안의 성간 흡수 분포를 연구해 성간 물질이 밖으로 내보내는 전파에서 은하의 회전법칙을 구하는 연구를 했다. 1951년에는 그이 지휘 아래 레이덴대학교의 연구진이 중성수소가 내는 21cm의 전파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우리은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된 것도 이 관측의 결과이다. 1950년에는 태양에서 1-10만 천문단위의 거리에 1,000억 개 이상 되는 혜성의 구름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오르트의 혜성구름'으로 불리고 있다.
로벨
[편집]Alfred Charles Bernard Lovell(1913- )
영국의 전파천문학자. 1940년대 후반과 1950년 초반에 걸쳐 산발적인 운석을 관측하였고, 레이더를 이용해서 운석의 위치와 속도를 구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호일
[편집]Sir Fred Hoyle(1915-2001)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우주론자. 웨스트요크셔 벙글리 출생.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 우주 안의 물질과 에너지가 없어지면 그만큼 계속 대체되어 정상 상태를 유지한다는 우주이론인 연속창조설을 옹호했다. 그리고 한 순간에 대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이론에 강하게 반대했다. 또한 그는 별에서 기원하는 화학 원소 이론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다.
호킹
[편집]Stephen William Hawking(1942- )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옥스퍼드 출생.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이후 중력에 관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하였다.
그의 연구는 우주가 100억 년이나 200억 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빅뱅이론(대폭발설)을 지지하고 있다. 중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우주의 보이지 않는 천체인 블랙홀에 관한 이론이 유명하다. 그는 또한 양자 역학을 이용해서 블랙홀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폭발하여 소멸할 때까지 입자와 빛을 방출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양자역학과 중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묶어서 우주의 구조와 기원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