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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통상·산업/세계의 산업경제/세계경제와 국제협력/세계경제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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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經濟動向 19세기에 있어서는 정치·경제적으로 볼 때 산업혁명을 제일 먼저 시작하여 성공시킨 영국이 명실공히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1760년대 이래 섬유공업부문에서의 기술혁신과 이에 따른 생산조직의 변혁이 시작되었으며, 섬유공업 중에서도 특히 면방직공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이와 같이 영국에서 면방직공업이 섬유공업부문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광범위하게 기술혁신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당시 면직물은 대중적 수요품으로서 18세기초 이래 영국 농촌공업으로 광범위하게 발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둘째 면직공업은 영국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공업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여하튼 18세기 후반 이래 급격히 진행되었던 영국의 산업혁명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각종 산업분야에 걸쳐 일단의 완성을 거두게 되어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시대가 시작되었다. 19세기 전반에 들어와서는 영국의 산업혁명 경험을 토대로 하여 프랑스(1830년대)·독일(1840년대) 등 서유럽과 미국(1860년대)도 급진적으로 산업혁명에 돌입하였으며,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부터는 영국의 산업을 능가하는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20세기에 들어오자마자 세계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열강들간의 치열한 블록경제의 확산과 심화가 지속됨에 따라 관세전쟁과 보호주의가 만연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세계는 대전쟁(제1차 세계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을 자초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은 결국 승전국(연합국 :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과 패전국(동맹국 : 독일, 오스트리아 등)간의 심각한 대립양상의 씨앗이 되었고, 또한 미국은 19세기의 정치·경제대국이었던 영국을 대신하여 국제간의 지도적 지위를 걸머지게 되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전쟁으로 말미암은 경제시설의 폐허로 허덕이고 있던 와중에 세계는 설상가상으로 또 한번의 시련을 겪게 되었는데, 그것이 소위 세계대공황(Great Depression;1929년∼1933년)이다. 1929년 가을 미국 뉴욕 월가(Wall Street)의 증권주가가 대폭락함으로써 시작된 세계대공황은 1933년에 미국에서 체택된 뉴딜정책(New Deal Policy)과 영국에서 1932년 7월에 체결된 오타와협정(Ottawa Agreement)에 의하여 확립된 스털링 블록(Sterling Block)에 의해서 1933년에서야 겨우 진정되었다.뉴딜정책이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3월에서 6월까지 100일 만에 미국의회를 통과시킨 18개의 법률(실업구제법, 농업조정법, 테네시계곡개발법, 1933년 은행법, 국가산업부흥법 등)을 기초로 하여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7년간에 걸쳐 세계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한 일련의 경제사회정책이다.오타와협정이란 세계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1932년 7월 영국본토 등 대영제국을 구성하는 9개국(영국,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남아 연방공화국, 뉴 파운드랜드, 인도, 남로데시아)이 캐나다 오타와에서 대영제국경제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 회의에서 체결된 대영제국의 경제협조와 영연방특혜제도의 확립, 그리고 대외정책의 기준원칙을 제정한 12개의 협정을 말한다.그리고 앞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영국과 그 식민지 및 속령은 세계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1932년 7월 오타와협정을 체결하여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블록을 설정하였는데, 스털링 블록이란 일종의 통화영역으로서 자국통화를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Pound Sterling)에 연계시키고 자국의 통화준비와 외화자금을 파운드화로 보유하여 무역과 기타 대외거래를 주로 영국의 파운드화로 계산·결제하는 스털링지역을 말한다.이러한 세계대공황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또다시 대전쟁(제2차 세계대전:1939년 9월 1일∼1945년 8월15일)을 겪게 되었다.연합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소련 등)과 동맹국(독일·이탈이아·일본을 주축으로 하는 파시즘 추축국)간에 벌어진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전체는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진영(자본주의 국가군)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동구진영(공산주의 국가군)으로 양분되어 양진영간의 냉전체제가 시작되었다.제2차 세계대전은 그 전쟁의 속성, 즉 서구열강 간의 제국주의적 전쟁,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 간의 이념전쟁, 그리고 제국주의 대 피압박민족 간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3가지 성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경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향으로 재편성되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첫째, 미국경제의 절대적 비중 확보 및 유럽경제 지위의 상대적 약화를 초래했다. 제2차세계대전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경제의 비중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유럽경제의 지위를 상대적으로 크게 약화시키어 결국 팍스 유로피나(Pax Europina)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시대가 시작되게 만들었다.특히 미국이 압도적인 정치·경제적인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전쟁기간 중 오로지 미국만이 산업시설의 파괴를 모면함으로써 생산력의 기반을 그대로 보존하게 됨과 동시에 연합국에 대한 군수품 독점 판매자의 입지까지 누렸던 반면에, 유럽제국들은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생산력의 기반인 산업설비의 처참한 파괴를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이에 따라서〔표〕-1에서 보듯이 미국은 1948년에 세계 금보유량의 80%, 세계 공업생산액의 56.4%, 세계 총수출의 32.5%를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둘째, 사회주의 경제권의 확대·강화되었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으로 소련만이 유일하게 사회주의체제를 갖추었는데, 제2차세계대전으로 소련만의 사회주의체제가 동구·아시아 등으로 확대되어 다수국 사회주의체제로 변모하였으며, 이로 인해 팍스 루쏘-아메리카나(Pax Russo-Americana) 시대가 시작되었다.셋째, 신생 독립국가의 탄생과 서구시장의 축소현상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식민지체제가 붕괴되고 한국 등 많은 신생독립국가가 탄생되어 새로운 세력권을 형성하게 됨과 동시에 서구 자본주의 시장은 그만큼 축소되게 되었다.이와 같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개편과정에서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결국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의 기본틀인 GATT- IMF체제의 탄생을 가져오게 하였다.즉,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7월 1일부터 22일까지 미국은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 연합국 44개국을 초청하여 전쟁의 근본원인을 패전국인 독일에 대한 가혹한 전후처리와 1929년 대공황의 결과로 취해진 세계 각국의 지나친 보호주의 정책과 경제블록화 현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세계가 다시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하며 나아가 세계번영을 위해서는 각국이 자유로운 무역을 통하여 전세계의 무역을 확대시켜야 한다는 데 합의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브레튼우즈 협정이라고 부른다. 이 협정에 의해서 탄생된 국제기구가 세 가지 있는바, 그것은 무역의 자유화를 위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국제통화 및 외환의 안정을 위한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국제투자의 합리적인 촉진을 위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다.

〔표〕- 1 전후 서구자본주의 주요국의 지위변화


(단위:%)


공 업 생 산

수 출

1937

1948

1953

1958

1937

1948

1953

1958

미 국


영 국


독 일


프 랑 스


이 탈 리 아


네 덜 란 드


일 본

41.4


12.5


9.0


6.0


3.0


-


4.8

56.4


11.7


4.3


4.1


2.1


-


1.5

53.3


8.3


7.8


4.0


3.1


-


2.2

46.6


8.2


10.5


5.4


3.5


-


-

14.2


11.3


10.3


4.1


2.4


2.9


5.2

32.5


9.8


0.5


4.0


1.4


1.5


0.4

21.4


9.9


6.0


5.2


2.1


2.9


1.7

20.9


9.5


8.7


5.1


2.6


3.1


2.9


자료:小량廣勝, 『世界經濟入門』, 1982, p134.


Deutsches Wirtschaft Institut, Bericht I, 1950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무역질서가 자유경쟁의 원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판단하에서, 첫째 현존하는 국제교역의 장애요소들이 상당한 정도로 제거되어야 하며, 둘째 국제무역은 쌍무적인 방법보다는 다자간 베이스로 규율되어야 하며, 셋째 국제무역은 무차별적이어야 하며, 넷째 모든 국가에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국제규범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세부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34년 이래 여러 나라와 체결하고 있었던 쌍무통상협정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GATT체제를 구상하게 되었다.이렇게 해서 성립된 GATT체제의 출범으로 자본주의권의 세계무역은 급팽창하게 되었고, IMF를 통하여 각국은 국제수지가 일시적인 기초적 불균형(fundamental disequilibrium)에 처해지게 될 경우에 한하여 정해진 한도내에서 외화자금을 인출하여 그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은행이라고도 불리우는 IBRD는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의 부흥과 저개발지역의 개발원조자금의 공급원이 되어 세계경제는 급속한 발전을 지속하게 되었다.이와 같이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선진국 중심의 GATT-IMF체제의 성립으로 말미암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자본주의권의 세계경제는 착실한 경제성장을 실현시켰으며, 또한 경제성장을 상회하는 높은 수출입증가율(〔표〕-2 참조)을 기록하였다.여기에서 눈여겨 볼 수 있는 특징으로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높은 수출입증가율은 그동안의 착실한 경제성장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패전국이었던 서독·이탈리아·일본의 경제성장률과 수출입증가율이 승전국들에 비하여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이것은 GATT-IMF체제가 지향했던 자유무역주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국제유동성의 공급에 의해서 자유무역주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국제유동성의 공급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로써 이 시기에는 GATT가 추구하였던 자유로운 세계무역의 확대를 통한 세계경제의 발전이 확실하게 현실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표〕- 2 전후 세계경제의 연대별 수출입 증가율



(단위:%)


1950∼60

1960∼70

1970∼80

1980∼1988

수 출

수 입

수 출

수 입

수 출

수 입

수 출

수 입

선 진 공 업 국


미 국


캐 나 다


E C (12)


영 국


서 독


프 랑 스


이 탈 리 아


일 본

8.5


6.8


6.8


9.6


5.0


19.1


8.0


11.5


16.9

7.8


5.4


7.1


8.2


5.2


13.9


7.2


11.5


16.9

10.3


7.7


11.0


10.6


6.7


11.6


10.5


14.1


17.6

10.5


10.3


9.4


10.5


6.1


11.6


12.3


12.5


14.5

18.2


17.8


14.9


18.5


18.0


18.1


19.2


18.8


20.6

18.8


20.0


15.6


18.9


17.4


19.1


20.2


20.0


22.1

5.5


3.4


6.3


5.5


3.1


6.8


4.6


6.1


9.0

4.7


7.7


6.4


4.2


5.4


3.9


3.5


4.4


2.3

개 발 도 상 국


중 남 미


아 프 리 카


중 동


아 시 아


오 세 아 니 아


O P E C

3.4


2.9


5.1


7.8


1.2


10.3


6.9

5.9


5.2


6.7


8.8


5.1


9.1


9.0

7.5


5.2


9.2


10.6


7.0


11.1


9.2

6.8


6.4


5.8


7.8


7.4


15.7


6.4

24.9


20.1


20.1


32.2


25.0


15.9


30.4

22.6


19.9


20.9


29.4


22.7


14.3


28.4

-0.5


-1.1


-6.0


-11.0


9.1


2.4


-11.1

1.8


-3.2


-1.6


-1.5


7.0


2.8


-3.2

사 회 주 의 권

12.6

12.0

8.2

8.7

17.7

17.9

5.7

5.6

전 세 계

7.6

7.8

9.5

9.5

19.6

19.4

4.1

4.2


자료:UN, Yearbook of International Trade Statistics, 각 연도



1960년대 말에 가서는 GATT-IMF체제 자체의 내재적 모순이 누적되어 스스로 그 체제의 동요와 재편을 강요받기 시작하였다. 즉, 전후 막강하고 유일한 경제력을 가진 미국의 국내통화인 달러가 가장 큰 국제적 신인성을 갖게 되어 국제통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 그러나 미-소간의 냉전체제에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발발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해외로의 달러 누출은 급증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달러화 가치는 계속 하락하게 되었고 대신 금가격은 계속적으로 폭등하게 되었다. 10년 이상이나 지속되었던 이러한 달러가치의 하락과 금가격의 폭등으로 말미암아 세계경제는 금파동(gold rush)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1971년 8월 15일에 공정가격(순금 1온스??미화 35달러)에 의한 달러의 금태환(金兌換)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킴과 동시에 10%의 수입부과금제도 등을 체택하는 소위 '8대 닉슨조치'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닉슨쇼크(닉슨조치로 인한 경제적 충격)로 말미암아 전후 자본주의권의 세계경제질서를 좌지우지 해온 GATT-IMF체제의 기본틀은 전면적으로 붕괴하게 되어 소위 신보호무역주의(New Protectionism)가 대두되어 세계경제질서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설상가상으로 1973년 10월에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으로 말미암아 중동산유국들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등의 국가들에 대한 석유금수조치(embargo)를 단행하는 소위 석유무기화정책으로 석유파동이 시작되었으며, 이 석유파동은 결국 다른 자원보유국들에게까지 파급되어 자원파동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로써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자원보유국을 제외한 전세계는 경제침체의 늪속으로 깊이 빠져 들게 되었다. 이때 경기침체 속의 인플레이션이라는 기이한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말미암아 비산유국들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1973년의 제1차 석유파동에 의한 경제적 충격(석유쇼크)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78년에 다시 발생한 제2차 석유파동으로 말미암아 세계경제는 장기침체 속으로 빠져들어가 그 영향은 1990년대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요 선진국들은 두 자리 숫자의 물가상승률을 겪게 되었다.

〔표〕- 3 주요 선진국의 물가상승률


(단위:%)


1973∼75

1976∼78

1979∼81

1982∼87

1988∼91

미 국


영 국


프 랑 스


서 독


일 본


이 탈 리 아


캐 나 다

8.9


16.6


11.0


6.8


16.0


15.6


9.2

6.6


13.5


9.4


3.6


7.1


15.3


8.1

11.7


14.4


12.6


5.3


5.5


17.9


10.6

3.8


5.3


6.7


2.2


1.5


10.3


5.6

4.6


7.1


3.3


2.6


2.4


6.1


4.9